소설리스트

〈 48화 〉가슴이 두근거리다 (48/110)



〈 48화 〉가슴이 두근거리다

내가 페로몬의 힘을 얻은  불행일까?
아니면 행운일까?
어쨌든 나를 둘러싼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믿을 수 없구나. 네가 대기업에 취직하다니.”

“무슨 요술을 부린 거야?”

“흠. 어쨌든 큰 회사니까 잘 해봐라. 너에게 좋은 공부가 될 거다.”

가족들은 나의 새로운 시작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나도 놀랍다.
설마 주아린이 나에게 뭔가를 느끼고 자리를 제안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그럴듯한 사건이 있었으니.

“저 사람이 조향기 씨?”
“얼마 전에 사장의 비서로 들어온?”
“그거 있잖아. ‘볼쇼이 데레바’의 M&A를 막았다는 소문.”
“막기는 무슨! 결국, 유통은 넘어갔다면서요? 결국 백기를 든 거라고요.”

사람마다 평가는 달랐다.
하지만 나는 회장과 주아린도 해내지 못했던 협상을 끌어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비해서 내가 조금은 나은 편이었다.
그렇게 나는 졸지에 그룹의 명운을 가른 사나이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회사에서는 나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허허허, 그냥 낙하산이 아니라고. 허허허, 특채야 특채!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회장은 나의 채용한 것을 자신의 용병술로 포장했으며.

“여러분 일이나 하세요. 뒷말이나 할 시간에 조형기 씨 반만큼이라도 일하는 건 어때요?”

주아린은 나를 싸고돌았다.
그것이 나에 대한 애정인지, 아니면 나를 기용한 자신의 안목에 대한 확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녀와 회장은 이제 나를 완전히 자신들의 사람으로 여기며 귀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뭐, 그렇게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나는 영원히 이 회사에 있을 생각은 없다.
혹자는 말한다.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라고.
하지만 이건 어리석은 말이다.
정말로 그 사업가가 하는 일에 동의해서 당신은 회사에 다니는 것인가?
정말 돈이 목적이 아닌 것인가?
여기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돈과 자신의 꿈을 위해서 회사에 다닌다.
이 관계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미명에 숨어서 자신의 주머니를 불리기에 바쁜 사업가와 ‘생계’라는 현실에 짓눌려 치열하게 일하는 노동자가 있을 뿐이다.
아마 대부분 회사원이 이런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선택지는 자명하다.
처음에 품었던 꿈대로 나의 사업을 해야 한다.
남의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닌 나의 일을 말이다.

“회장님, 혼담이 계속 들어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거? 거절해. 이미 좋은 사람이 있으니까.”

“아빠도 참. 헤헤헤.”

조금 머쓱한 상황이라면  씨 부녀가 나를 장래의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지금은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니 그들의 곁에서 최대한 열심히 일할 뿐이다.
그런데 주아린은 노골적으로 나와 우리 가족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었고, 회장은 당연하듯이 나를 사위처럼 대하고 있었다.

‘싫지는 않지만, 내키지 않아.’

무슨 ‘츤데레’냐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애정을 가지고 대해주는 것도 좋았고,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도 좋았다.
넉넉한 임금을 주면서 각종 일을 가르쳐주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가족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혜성그룹이 아시아에서 이름을 날리는 대기업이라고 해도 말이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게 되면 자유를 잃게 된다.’

그들과 가족으로 엮이면 결국 나는 사라지게 된다.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은 ‘가족의 공의’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게  것이다.
대의에 휩쓸릴 것이다.
내가 꿈꾸는 사업을 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그룹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고, 모든 친족과 주주의 손익을 고려해서 움직여야  것이다.
그들의 돈과 명성을 빌리는 대가는 절대 값싸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나는 이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나오는 불편한 감정과 거부감이 이따금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나는 이 회사에도 오래 있지는 못하겠지.

‘결정적으로 주아린을 그 정도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랬다.
주아린은 매력적인 사람이지만 ‘사랑’까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게 가장  이유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아니에요.”

주아린이 건네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우리는 오늘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강윤소.’

그렇다.
톱스타인 강윤소를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가 직접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아역부터 활동한 대표적인 종합 엔터테이너였다.
춤, 노래, 연기 못 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연예인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나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그녀를 우리가 맞이하러 가는 것은 새로운 광고에 대한 협의 때문이었다.

‘보통 이런 건 소속사 임원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광고를 찍더라도 절대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광고주가 도덕적인 사람인지, 제품은 건실한지, 계약금과 잔금은 확실하게 지급되는지를 직접 챙기고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일견 까다롭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모습에서 그녀에게 은근한 호감을 느꼈다.
암, 모름지기 일은 꼼꼼히 챙겨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은 더욱더 그렇다.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가 광고를 대충 찍었다가 얼마나 구설에 올랐는가?
제품을 써보지도 않고, 광고주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보지않고, 제품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광고를 찍었다가 낭패를 본 스타들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스타라고 하지만 나까지 나서야 한다니.”

주아린은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나는 슬며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린 씨, 그런 성격 좀 고치라고 했죠? 강윤소 님은 우리가 고용하는 일꾼인 동시에 고객입니다. 그리고 대중에게 영향력이 있는 ‘빅 스피커’라고요. 설마 윤소 님 앞에서도 그딴 태도를 보일  아니죠?”

“하지만 우리 같은 기업들이 돈을 주지 않으면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딴따라 따위...”

또, 또! 나는 얼른 그녀의 얼굴을 흘겨봤다.
역시 그 인성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도 같잖은 선민의식에 빠져서 나대고 있었다.
내가 성난 태도를 보이자 주아린은 얼른 태도를 바로하며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뭔가 말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오늘은 입 열지 마세요. 그냥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윤소 씨, 영화촬영은 어땠나요?”
“현지에서 어려움은 어땠나요?”
“스티브 그레이와 섬씽이 있다는 소리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여기 좀 봐주세요!!”

얼마 기다리지 않아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주위에는 그녀의 팬과 기자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저 웃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직 한 명의 경호원만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철-컥-!]

나는 그녀의 경호원과 호흡을 맞춰서 그녀를 얼른 차에 태웠다.
그리고 웃는 표정으로 취재진과 팬들을 달래며 차에 몸을 실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주아린입니다.”

“전 비서인 조향기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소란스럽죠? 전 강윤소라고 합니다. 이렇게 데리러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유명세에 비해서는 거만하지 않고 싹싹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주아린은 자신보다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나자 은근히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평범한 대학생 같네.’

그녀는 그 흔한 ‘공항패션’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품이 넉넉한 와이셔츠에 청바지가 전부인 차림이었다.
심지어 몸내가 드러나는 ‘스키니진’도 아니었다.
거기에 튀지 않는 ‘반다나’로 머리를 정리했고, 렌즈가 넉넉한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액세서리도 과하게 착용하지 않았고, 직접 배낭과 손가방까지 들고 있었다.
언뜻 보면 정말 여행 다녀온 대학생으로 보일 정도였다.

‘사람이 괜찮아 보이네.’

그녀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차를 몰았다.
그렇게 우리는 회사로 돌아왔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강윤소라고 합니다. 이번에 귀사의 신제품에 대한 광고 제의를 받았죠. 오늘은  부탁드립니다.”

회의실에 관계자들이 모이자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모인 사람들은 명함을 건네거나 인사를 주고받았다.
보통 누군가 소개를 해주거나 해야 움직이는 것이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속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나이에 정상급의 스타가 되었음에도 거만한 구석이 없었다.

“흥. 착한 척은...”

오직 주아린만이 작은 목소리로 못마땅한 심정을 읊조릴 뿐이었다.

‘실물이 훨씬 예쁘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살펴봤다.
선글라스를 벗고 일어선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키는 약 165에서 168cm 정도 되어 보였고, 체중은 50kg 전후로 보였다.
눈은 큼직하고, 코는 오뚝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서 보기 좋은 형태였고, 입술은 막 피어난 앵두처럼 붉고 탐스러웠다.
게다가 가슴과 엉덩이는 넉넉한 볼륨으로 아찔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고, 허리는 가늘고 날렵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미인인  같았다.
싱그러운 매력을 내뿜던 신지혜를 압도하는 진짜배기 미인이었다.

‘괜히 연예인이니 아니네.’

회의실에 모인 다른 사람들처럼 감탄하며 입이 벌어질 찰나였다.
주아린의 팔꿈치가 슬며시 날아와 나의 옆구리에 박혔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특별히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귀사는 친일을 하기는 했지만, 독립군에게 더 자금을 많이 댔고요. 군사 정권에 부역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네요.  정도면 제가 광고를 찍어도 문제는 없을  같네요.”

언제 조사했는지 우리 회사의 내력까지 상세히알고 있었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그녀의 철저한 준비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나도내심 감탄하며 주아린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야무진 강윤소가 못마땅한지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서류나 보고 있어라.
여기에서 그녀가 개판을 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네. 우리 회사와 일하는 것이 크게 꺼려지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준비한 제품과 광고 내용을 살펴보시죠.”

그녀는 내가 내미는 서류를 진지한 표정으로 훑어봤다.
몇 번이고 뒤적이며 꼼꼼히 확인했다.

“이 신제품이 컵밥이죠?”

“네. 이번에 학생과 홀로 사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제품을 개발했거든요.”

“저가인 것도 중요하지만 제품의 질도 중요해요. 영양 면에서 문제는 없나요? 오히려 그런 처지에 있는 분들의 건강이  중요하거든요.”

“다행히 질 좋은 원재료를 싸게 구할 수 있게 되어서요.  부분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제가 좀 먹어볼 수 있을까요?”

광고 협의에 와서 시식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투자자나 개발자, 유통사가 시식을 요구하는 상황은 종종 있었다.
자신들이 손을 대는 상품의 상태가 어떤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니까.
그런데 광고를 찍는 모델이 시식을 요구하다니?
어차피 대부분 맛은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것이고, 보통은 자신의 출연료에 더 집착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영양과 맛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
오히려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출연료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은근한 호감을 느꼈다.
만약 그녀가 연예인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냥 회사원이나 노동자로서도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이렇게 프로의식이 투철하니 말이다.
오히려 어중간한 우리 회사 직원보다 소비자와 제품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음. 쩝쩝. 맛이 있네요. 재료도. 쩝쩝. 아끼지 않고 잘 쓰셨고요.”

그녀는 컵밥이 나오자 눈치 보지 않고 단숨에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솔직한 감상을피력했다.

‘어, 나  이러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이 떨려왔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그녀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으며 상품을 분석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쯥!”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자 주아린의 은근슬쩍 나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리고는 불쾌한 표정을 드러내며 혀를 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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