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쌍둥이 인형은 반격을 꿈꾼다 (47/110)



〈 47화 〉쌍둥이 인형은 반격을 꿈꾼다

“이런 씨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위에 있는 의자를 걷어찼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도 그녀들의 모습은 평온하기만 했다.
오히려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정말 친아버지가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응.”
“그래.”

재차 묻는 대답에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연신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신을차리기 위해서 계속 얼굴을 문질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잔혹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행동은 그녀들을걱정시킬 뿐이다.

‘정말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이 존재하는구나.’

그녀들에게 전해 들은 진실은 이랬다.

그녀들의 아버지는 ‘볼쇼이 데레바’의 회장인 ‘미하일 이바노프’라고 했다.
겉으로는 자수성가한 매력적인 사업가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장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공무원에게는 뇌물을 찔러주고, 사업에 방해되는 라이벌이나 사람들은 마피아를 이용해서 제거하면서 자리를 잡은 소위 ‘악덕 기업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지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급기야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이용하기에 이른다.
그렇다.
그는 자신의 쌍둥이 딸을 성(性) 접대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들 말로는 정확히 언제부터 그런 일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몸이 변하면서 ‘여자’라는 것을 자각한 순간 그녀들의 아비라는 작자는 그녀들을 교섭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라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 빈곤에 지쳐서 자식을 파는 부모도 없는  아니니까. 그런데 정말 최악인 건 뭐였을 것 같아? 우리를이용한 것도 모자라서 우리의 미래도 빼앗아 갔다는 거야.”

그랬다.
그 미친 인간은 각종 호르몬제와 약물, 미약, 민간요법을 이용해서 쌍둥이를 철저하게 개조했다.
오직 남자를 즐겁게 하기 위한 인형으로 개조했다.
그 과정에서 둘의 신체적인 성장은 멈췄고,  기능에도 이상이 찾아왔다.
다른 성숙한 아가씨들에게 찾아와야 하는 마법도 그녀들에게는 찾아오지 않았다.
달거리를 할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했을  그는 더욱더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크크크. 그러면 임신할 걱정은 없겠네? 하하하! 고객들이 더 좋아하겠어.’

그 악마를 상대로 그녀들은 최대한 저항했다.
하지만 모든 헛수고였다.
그녀들을 구하기 위해서 저항하던 그녀들의 어머니마저도 잔인하게 살해했으니 말이다.
그 후에 그녀들은 그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면서 자신들에게 흥미가 떨어지기를 기도했다.
그래도 하늘이 무심하지 않았는지 기회는 찾아왔다.
회사가 제법 커졌을 무렵이었다.
그녀들에 관한 관심이 눈에 띄게 줄어든것이다.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쌍둥이를 찾지 않게 된 것이  이유였다.
그는 그녀들을 퇴물 취급하며 적당히 내버려 두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그 틈을 이용해서 얼른 정보를 모았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상식을 익히고, 밀린 공부를 했다.
주위에 자신들이믿을 수 있는 양심적인 사람들을 모았다.
그렇게 준비를 하며 버텼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최고의 호기가 찾아왔다.
그 호기는 그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이제는 유럽과 대륙도 지겹다. 일본과 한국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그의 꿈틀대는 욕망을 감지한 그녀들은 재빨리 먼저 제안을 했다.
자신들이 건너가서 기반을 닦겠노라고.
그 말에 그는 기뻐하며 그녀들을 대한민국으로 보낸 것이다.
혜성그룹을 빼앗으라는 특명을 맡긴 채.

‘씨발! 내가 지금 들은 거지? 이거 막장 드라마 아니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치가 떨렸다.
어떻게 부모라는작자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앞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얼굴을 후려치고 싶었다.
나는 입술에 흐르는 피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얼마나 주먹을 꽉 쥐었는지 관절은 뻐근했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였다.
그래도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는 분노하고 있었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도 절로 화가 치밀었다.
다시금 말하지만 난 딱히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사람의 도리는 아는 사람이다.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면 머리가 은발인 것도...”

“모발에 색소가  침투하지 못하게 민간요법을  거야. 예전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방법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키가 작고, 얼굴이 동안인 것도...”

“응. 밥을 굶기고, 약을 먹였지. 덕분에 우리는 아직도 10대 모습이야.”

“실례지만 나이가?”

“30세.”

나는 놀라서 비틀거렸다.
그렇다면 얼마나  세월을 그런 악마의 곁에서 버텼다는 말인가?
 일도 아니었지만, 분노와 공포에 아찔함을 느꼈다.
그렇게 동요하는 나를 그녀들은 부드럽게 다독이며 말했다.

[[“그래도 당하고만 있었던 건 아니야. 이번 계획이 잘 되면 반격할 수도 있으니까.”]]

그녀들은 애써 웃는 표정을 보이며 한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그런 악질에게 반격을 가할 생각인가?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봤다.
그녀들의 눈빛에 흔들림은 없었다.

“그러면 현지 법인화를 요구한 것도 본사에 돌아갈 경제적 이득을 최소화하려는 방법이었군요.”

“그렇지. 사실 우리는 힘을 키워서 그 개자식의 목을 칠 생각이거든.”

그녀들의 눈빛에는 살기를 넘어선 독기가 이글거렸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기존 사업으로 진입하려고 하셨군요.”

“새롭게 진입하는 건 시간이 너무 걸려. 우리가 한국의 경제구조를  모르기도 하고. 자동차를 일일이 조립할 필요가 있어? 만들어진 기성품을 사들이면 되는 거지.”

그녀들은 비교적 큰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본사에 보내는 돈은 적은 쪽이 좋은 듯했다.
그래야 그녀들이 그 악마와 맞설 돈을 모을  있을 테니 말이다.
대충 상황을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런 딱한 사람들에게 나는 페로몬을 썼으니...’

뒤늦은 죄책감이 들었다.
아무리 자신을 보호하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목적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그녀들을 농락한 셈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그저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당신들이 나에게 보여준 모든 것은 당신들이 경험한 ‘고통의 산물’이었네요.”

그녀들의 살결에서풍기는 향기와 현란한 테크닉, 귀엽고 아름다운 외모에 반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그것은 모두 그녀들에게 강요되었던 고통의 결과였다.
그걸 좋다고 허리를 흔들었다니.

“아니야. 사실 우리도 놀랐는걸.”
“맞아. 다시는 남자와 침대에서 뒹구는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녀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녀들은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명이 동시에 사랑을 느꼈기에 몸을 허락했다고.
그 땅에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나에게 느꼈노라고.

‘미안합니다. 그거 다 페로몬 때문입니다.’

나는 그 악마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해 한심함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 귀염둥이는 어떻게 살아왔어?”

이번에는 그녀들이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최대한 솔직하게 나의 인생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물론 페로몬에 관한 이야기는 빼고 말이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면 그녀들이 더 충격을 받을지도 몰라. 일단은 나중에...’

그렇게 핑계를 대면서 중요한 부분을 빠져나갔다.
지금 입을 섣불리 놀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천천히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일이...”
“그래도 건강을 회복해서 다행이야.”

크~~.
어떻게 이렇게 착할 수가 있지?
원래 지옥을 경험한 사람은 ‘지옥 같은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군대에서 다친 부분과 장애로 고생했던 부분을 이야기하자 눈시울까지 붉히는 것이었다.
죄책감에 아픈 가슴이 더욱더 아픈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잡고 메이는 목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역시 이건 운명이야.”
“맞아. 우린 느낄  있어.”

그녀들은 눈물이 맺힌 촉촉한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훌쩍 몸을 날려 발레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서 한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야. 그 상처에 서로가 끌린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나의 가슴에 안기는 것이었다.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녀들을 꼭 껴안았다.
 감정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녀들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동정을 느끼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녀들을 지켜주고 싶다고.
그녀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싶다고.
그녀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으면 한다고.

“그런데 정말로 주 씨 가문에 해코지하려고 했던 거예요?”

“아니, 일종의 허풍이었어. 어차피 각종 비리와 관련된 증거도 많이 가지고 있었거든. 그걸 흔드는 방법도 있고, 다른 대기업을 노리는 방법도 있지. 대한민국의 대기업은 흠결이 많아서 상대하기 편하더라고.”
“게다가 엄청난 쫄보지. 역대 정권에 다 부역했잖아? 조금만 흔들면 넘어올 거로 생각했지.”

진심으로 주  가문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었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렇게 협상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녀들과 연락처를 교환하고는 호텔을 빠져나왔다.

“어, 어, 그래! 향기 군, 협상은 잘 되었나?”

“네.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일단 안에서 이야기하시죠.”

회사로 복귀하자 회장과 주아린이 버선발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회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목소리를낮춘 상태로 사건의 내막을 전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회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사업한다고 별의별 못된 짓을 많이 했다네. 그리고 미친놈도 많이 만나봤지. 하지만 자기 자식까지 사업의 도구로 삼는 악마는 처음이라네.”

“그런 환경에서 컸으니 성격이 그 모양인 것도 이해가 됩니다.”

주아린이  소리는 아니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상황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협상의 성과를 전했다.
전자와 식품은 지켜냈고, 유통 분야를 넘겨주기로 했다고.
그러자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향기 군, 수고했네. 잘했어. 그 정도면  출혈 없이 끝난거야. 게다가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우리에게 이익이네. 잘했어. 굿!”

회장의 칭찬에 주아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들의 사정은 딱하지만, 우리는 하루아침에 사업 분야 하나를 잃은 거라고요. 그런데 그게 잘된 일이라고요?”

역시 곱게 넘어갈 주아린이 아니다.
하지만 회장은 그녀보다 머리가  더  돌아가는 듯했다.

“어차피 그룹의 미래를 생각해서 유통 분야는 따로 독립시킬 생각이었다. 우리 그룹에 이바지한 공신이 어디 한둘이냐? 그들에게도 제대로 포상을 해줄 생각이었지. 그래야 제국이 오래가는 법이거든. 그런데 마침 적임자가 나타났으니 그들에게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게다가 생각해 보렴. 이건 정말 좋은 위장이 될 수가 있어.”

“위장이요?”

“그래. 어쨌든 저들은 명목상 ‘볼쇼이 데레바’의 명으로 이곳에 온 거다. 그리고 우리의 사업 분야를 가져갔지. 그렇다면 본사에서는 한동안 우리에게 손을 대지 않을 거 아니니?”

“아하!”

그렇다.
‘볼쇼이 데레바’는 우리가 알짜배기를 남기고 유통만 넘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게다가 그녀들이 모든 진실을 밝혔다는 사실도.
이렇게 우리는 치명상을 피한 상태로 몸을 숨길  있게 된 것이다.
혜성그룹의 처지에서 보면 시간을 벌어도 한참 벌었다고 할 수 있다.
한동안은 그들은 승리했다고 생각하며 어떠한 추가적인 공격도 해오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혜성그룹은 그들이 가해올 물리적, 경제적인 위협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잘했네. 아린이의 반응으로 배짱이 있는 건 알았지만, 자네 상당한 거물이었군?”

주대철 회장의 칭찬에 뭔가 머쓱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에서 바코드 스캐너를 잡던 ‘편돌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기업의 사업 분야를 논하는 사람이 되다니.
뭔가 기분이 얼떨떨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더니. 나는 자고 일어나니 M&A 전문가?’

너무 빠르게 변해가는 풍경에 나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앞으로 나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