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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화 〉백수에서 정규직으로 레벌 업! (1) (38/110)



〈 38화 〉백수에서 정규직으로 레벌 업! (1)

“정말 기분 좋았어요.”

몸을 늘어뜨리고 숨을 헐떡이던 주아린이 서서히 의식을 회복했다.
나는 그사이에 대충 주위를 정리했다.
또한, 조절 장치의 수치를 1%로 조정했다.
그러면서 나의 정액이 담긴 콘돔들과 돈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사실 그녀가 어떻게 느꼈든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고 싶을 뿐이었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나를 벌레 취급하는 것이 싫었다.

“또 만날  있을까요?”

“...하는 거 봐서.”

슬며시 다가와서 나의 팔에 자신의 팔을 두르는 그녀였다.
그렇게 팔짱을 끼면서 애교를 부리는 것이었다.
평범한 남자였다면 이런 표현에도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본성을 알고 있었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철저하게 강한 쓰레기.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니 기분이 썩 좋다고는  수 없었다.

“옷이나 입어.”

나는 그녀에게 원피스를 던지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웃는 표정으로 원피스를 받았다.
그리고는 그걸로 주위를 닦기 시작했다.

‘비싸 보이는 옷을 걸레로 쓴다고?’

조금 황당한 상황에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직원들이 치우겠지만, 우리가 뒹굴었다는 걸 너무 티 내기는 싫으니까요.”

아, 그쪽이냐?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옷으로 주위를 대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걸 그렇게 써도 되겠어?”

“후훗, 괜찮아요. 이렇게 써도 돼요.”

역시 재벌은 재벌인 모양이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궁지에 몰린 순간에 페로몬이 도움이 되었어. 하지만 상대를 조정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는 말이지. 오히려 상대가 쾌락에 취해서 멋대로 복종했을 뿐이야. 이런 게 무기로서 가치가 있을까?’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기는 했다.
이성에게 절대적인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페로몬의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전장에서 무기로 쓰인다면이야기가 좀 다르다.
즉각적으로 상대에게 효력을 보일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몸에 깃든 ‘페로몬의 힘’은 영화나 만화에서 나오는 ‘마인드 컨트롤’과는 달랐다.
즉각적으로 정신이나 심리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의 쾌감이나 욕망을 자극해서 스스로 행동을 바꾸도록 만드는 일종의 촉매나 폭발제 느낌의 능력이었다.

[똑! 똑!]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가져왔어?”

“네.”

“문 앞에 두고 가세요.”

주아린이 뭔가를 시킨 모양이다.
그녀는 거친 말투를 쓰려다가 나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부드럽게 입술을 움직였다.
분명 입술이 ‘꺼져’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쳐다보니 내숭을 떨면서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흥, 그렇게 한다고 네년의 본성을 숨길 수 있을 것 같나?
하지만 거짓 선행도 선행이고, 거짓 호의도 호의다.
가식을 통해서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건 뭐야?”

“옷이요.”

그녀는 슬며시 문을 열고는 잽싸게 뭔가를 낚아챘다.
그것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종이가방이었다.
 안에는 새로운 속옷과 원피스가 들어있었다.

‘저것도 비싸 보이는군. 그런데 바로 가져왔네?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흔한 건가?’

서비스가 좋은 건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주점의 응대는 빈틈이 없었다.
주아린이 전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녀의 취향인 속옷과 원피스가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쳐다보니까 부끄럽네요.”

그녀는 천천히 속옷을 입으며 말했다.
이미 홀딱 벗고 놀아난 사이끼리 뭐가 부끄럽다는 말인가?
나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렇게 부끄럽다면 조금쯤은 배려해줄 수도 있다.
그게 내가 저런 족속들과 다른 점이다.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상대의 처지를 고려한다.
일견 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은 덕목이 이것이다.

“등에 지퍼 좀...”

어느새 원피스까지 챙겨 입은 그녀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머리를 앞으로 넘기면서 등을 나에게 내밀었다.

“자, 오케이?”

나는 그녀의 지퍼를 올렸다.
그러자 그녀는 엉덩이를나의 물건 쪽으로 붙여왔다.
그리고는 양팔로 나의 목을 감았다.
그 상태에서 그녀는 그대로 나의 입술을 취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뒤에서 껴안는 자세로 키스를 하게 되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끄는 동작에 나도 모르게 키스를 하고 말았다.

“당신도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거죠?”

“흥, 착각은.”

나는 키스를 마치고는 그녀를 슬며시 밀어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구 쪽으로 향했다.

“괜찮으면 저와 잠시 이야기라도 나누시겠어요?”

어차피 급한 일은 없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와 주아린은 주점을 빠져나왔다.

“아가씨, 모시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부를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려.”

그녀는 자신에게 따라붙는 측근이나 경호를 밀어냈다.
그리고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렇게 우리가 향한 곳은 한적한 카페였다.

“지금 향기 씨는 무슨 일을 하고 있어요?”

“백수.”

“여자 친구는 있어요?”

“없어.”

“그건 잘된 일이네요.”

그녀는 뭐가 좋은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어쩌지?
나는 너 같은 여자와 사귈 마음이 없는데.
억만금을 줘도 저런 인간은 싫다.
아무리 재벌의 딸이라고 해도 말이다.
적어도행동이나 사고방식이 ‘사람’인 존재와 교류하고 싶다.
아무리 내가 돈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해도 짐승만도 못한 존재와 사귈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향기 씨, 저와 사귀는  어때요?”

“싫어.”

“왜요?”

“네가  행동을 생각해 봐.”

그녀는 정말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설명했다.

“너는 사람을 초대하고는 갖은 모욕을 줬다. 그것도 모자라서 강제로 범하기까지 했지. 그런데  같으면 그런 상대와 사귈 수 있겠냐?”

“어, 그건 다 풀린 거 아니었어요? 우리 조금 전까지 같이 뒹굴었잖아요.”

“그건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쇼’였다. 진심으로 내가 너를 좋아서 품은 거로 생각해?”

나의 성난 목소리에 그녀는 짐짓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면  된다. 강자에게는 굴종하고, 약자는 착취하라고 배웠겠지.역사나 현실을 들먹이며 주변에서 이상한 바람을 넣는 놈들도 많았을 거야. 뭐, 그래. 일부는 인정해. 그래도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윤리와 도덕을 지키려고 애쓰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려고 하는 부분이 아닐까? 그런데 너는 어땠지? 그저 호기심과 쾌락을 위해서 타인의 몸과 마음을 짓밟았잖아? 반대의 경우라면 너는 상대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그녀는 시무룩한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기가 죽은 모습을 보이니 또 마음이 약해진다.
나의 안 좋은 버릇이다.
이런 물러터진 성격도 때에 따라서는 ‘악’이  수도 있는데 말이지.
나는 정의를 신봉하거나 완전무결한 ‘선’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말고 살자는 게 철학이다.

“뭐, 그 쓰레기 같은 태도만 고친다면 친구로는 있어 줄게.”

나는 그녀에게 앞으로 좋지 못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더불어 큰 ‘부’를 가진 사람답게 품위를 지키며 책임감을 가지라고 말했다.
그녀는 썩 내켜 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나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너는 자신을 강자라고 생각했지. 돈과 권력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그런데 어땠지? 나는 너를 약물이 넘어서는 강렬한 쾌락으로 굴복시켰어. 자, 어때? 힘의 강약으로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부질없지 않아? 세상을 둘러보면 우리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넘치고 넘친다고. 그러면 그때 가서 또 고개를 숙이며 상황을 모면할 건가?”

"못할 것도 없죠.“

“만약에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아부와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가끔 그런 게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그때는  인생이 끝나는 순간일 거다.”

나의 정론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너무 쏘아붙였던 걸까?
아니다.
 정도는 해둬야 한다.
그녀가 사는 방식을 보면 언제고 선을 넘었을 것이다.
말로는 선을 지킨다.
언제든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떠든다.
하지만 현실은 늘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기 마련이다.
저들의 삶의 방식은 ‘선과 악’의 개념으로 봐도 비틀려 있지만, 확률적인면에서도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들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단번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삶의 태도다.
저런  신념도 뭣도 아니다.
그냥 생각이 없는 거지.

“알았어요. 노력할게요. 그러면 친구가 돼줄 거죠?”

“그래. 지금까지 네가 피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사죄하고 보상하면.”

나의 말에 그녀는 결심을 굳힌 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얼굴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솔직하게 나오면 어쩔  없다.
불쾌했던 마음이 풀어지며 나의 욕망도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걸 계기로 괜찮은 인맥을 손에 넣으면 나도 좋고.’

솔직히 나도 그녀와 완전히 관계를 끊는 것보다는 이렇게 이어나가는 것이 형편에 좋았다.
그녀가 누구인가?
대 혜성그룹의 영애다.
잘하면 앞으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백수라고 했죠? 전에는 편의점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앞으로 뭐 할 거예요?”

관계가 얼추 정리되니 나에 관해서 물어왔다.
부분은 나도 막막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점이었다.

“사건이 있어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 지금은 생각 중이야.”

“그러면 차라리 우리 회사에서 일해 보는  어때요? 제가 아버지에게 말해서 자리를 만들어 볼게요.”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리를 꿰차는  열심히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뺏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안 돼. 내가 특채로 들어가면 공채가 줄어서 안 돼.”

그러자 그녀는 잠시 뺨에 손가락을 올리고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러면 공채를 줄이지 않으면 되잖아요. 그냥 향기 씨는 놀러 온다는 기분으로 회사에 나오세요.”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인가?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어떤 형태로든 대기업에서 일해볼 수 있다는 건 좋은 기회였다.

‘내 사업을 하려면 뭐든 알고 있는  많아야 한다. 어쨌든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굴리는 혜성그룹이라면 사업에 대한 노하우도 많이 알고 있겠지?’

막연히 사업을 꿈꾸는 나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였다.
내가 들어가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채를 줄이지 않는 거로는 부족해. 작년과 비교해서 2배로 늘려. 그 조건이면 입사해주지.”

이런 호기로운 요구가 먹힐까?
하지만 그녀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네요. 향기 씨를 곁에 둘 수 있는 것치고는 싼 대가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스마트폰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분명 관계자에게 뭔가 연락을 하는 것이겠지.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한 방 먹여줄 생각이었는데 졸지에 취업했네?’

참으로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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