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여왕님 길들이기 (1)
‘이게 무슨 꼴이야.’
나는 슬쩍 최영훈을흘겨봤다.
그도 미안한지 고개를내리깔고 있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리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뭐라고 따질 수는 없다고 해도, 튼튼한 다리는 가지고 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했다.
이 자리가 나에게 맞지 않으면 떠나면 될 일이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문 쪽으로 향했다.
‘어?’
하지만 그녀의 일행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문을 막아섰다.
여유로운 미소와 잘생긴 얼굴, 만두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만뒤귀는...’
인터넷에 흔히 도는 농담이 있지 않은가?
‘만두귀와는 싸우지 말라’고.
그는 그 만두귀를 가진 역전의 사나이였다.
분명히 어떤 운동을 했겠지.
“용건이 없으면 이만 가고 싶은데요?”
“응? 누구 마음대로 가? 이제야 연락한 것도 빡치는데 마음대로 가겠다고?”
아름답고 요염한 외모와 다르게 입은 걸걸한 면이 있었다.
나는 입구를 막아선 남자와 주아린을 번갈아 봤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지금 저를 감금하시겠다는 거예요?”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냥 같이 이야기도 하고 놀자는 거지.”
그녀는 자신의 옆자리와 돈다발을 손으로 건드리며 말했다.
“누가 공짜로 놀자고 했냐? 돈 줄게. 그러니까 일단 이리 오라고.”
나는 슬쩍 입구를 바라봤다.
틈이 있으면 단번에 뛰쳐나갈 속셈이었다.
초면에 돈지랄하고 성추행하는 걸 보면 정상이 아니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돌아서는 척하면서 얼른 입구로 몸을 날렸다.
[터-덕!]
하지만 그런 나의 시도는 만두귀의 날렵한 손길에 가로막혔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손잡이를 가리는 동시에 나의 팔을 꺾어서 등 뒤로 돌려버렸다.
그렇게 제압당한 나는 다시 그녀의 앞으로 끌려왔다.
“못 간다니까 그러네. 그러지 말고 같이놀자고.”
나는 분한 얼굴로 최영훈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나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뜻이겠지.
나는 팔의 힘을 풀며 몸부림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러자 내 팔을 꺾던 그도 손을 풀었다.
이어서 능글맞은 표정으로 입구를 막아서는 것이었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거물과 인맥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나의 욕심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이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쓰레기인 것이 문제일까?
어쨌든 나는 신변을 위협을 느낄 정도로 불편한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무슨 특기라도 있어?”
그녀는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로 물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다.
공교육을 마치는 것만 해도 바빴고, 군대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만으로 버거웠다.
게다가 구직활동까지.
그런 것을연마할 여유는 없었다.
“특별한 재주는 없습니다.”
나는 뻣뻣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상하네. 분명 뭔가가 있을 텐데.”
그녀는 평범한 나의 모습에 실망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뭔가 특별한 것을 찾기 위해서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방에 감금까지 시키면서 말이다.
그녀는 그날 나에게 인파가 몰려들었던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페로몬 때문에 몰려들었던 거란 말이지.’
나는 굳게 마음먹으며 자신을 다스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사실을 말해서는 안 된다.
신지혜와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진실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
그냥 일반인에게 털어놔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막대한 권력과 재력을 지닌 대기업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에게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서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르거나 ‘에이스 원’에 이 사실을 알릴지도 모른다.
무조건 입을 다물어야 한다.
‘말해도 죽고, 말하지 않아도 죽는 상황이라면 끝까지 입을 다물어야 한다.’
떨리지만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쉽사리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겠지.
일이 틀어져서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도 별일은 없을 것이다.
고작해야 몇 대 얻어맞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공포심과 흥분, 불쾌감을 다스려야 한다.
저쪽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 된다.
“그러면 노래나 좀 해봐.”
그녀는 뚱한 태도로 쭈뼛대는 나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나는 마지못해 받아들고는 평소에 부르는 노래를 몇 곡 불렀다.
“선곡은 좋은데 가창력과 목소리가 별로네. 그렇다면 이건 아니고.”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나를 멈추게 했다.
나는 마이크를 내려놓으며 슬쩍 문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가면 안 된다니까. 어떻게 너처럼 평범한 남자가 그런 붐을 일으켰던 거야? 난 그게 미치도록 궁금하다고.”
그녀는 나를 연신 훑어보며 턱까지 쓰다듬기 시작했다.
“너희가 볼 때는 이 새끼어떠냐? 남자로서 괜찮아 보여?”
주아린은 다른 여자들에게 나에 관해서 물었다.
그러자 그녀들은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밖에.
지금은 페로몬을 완전히 억누르고 있으니.
“야, 그러면 춤이라도 춰봐.”
“...춤 못 춥니다.”
“음악에 맞춰서 대충 흔들어 보라고. 평가는 내가 할 테니.”
곧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대충 몸을 흔들면서 리듬을 탔다.
춤이라고는 춰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노래보다 더 불편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야, 야, 야! 그만해. 그만!”
나의 막춤에 질린 주아린은 휴지까지 집어 던지며 나를 책망했다.
그러게 내가 못 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음. 촉감이 좋거나 분위기가 압도적인 것도 아니고.”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서 냄새를 맡거나 몸을 더듬었다.
그래도 별다른 느낌이 없는지 금세 흥미를 잃고 자리로 돌아갔다.
“술은 잘 마셔?”
“그냥 평범합니다.”
“그래? 어쨌든 움직여서 목이 마를 거 아냐?좀 마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탁자에 있는 유리컵에 위스키를 따르기 시작했다.
‘스트레이트 잔’이 아닌 ‘글라스 잔’이었다.
‘저거 40도가 넘는데...’
그다지 술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이것도 부담스러웠다.
내가 망설이자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술 잘 마시면 바로 돌려보내 줄게.”
그녀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물일수록 말에 무게를 가지게 되는 법이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신용을 잃게 되면 주변에 사람이 없어진다.
신용이 없는 사람은 언제든지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거나 배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하는 거예요?”
“오케이, 오케이. 빨리 마시기나 해라.”
나는 목이 타들어 가는 감각을 참으며 술을 넘겼다.
급하게 넘긴 탓이었을까?
마치 불덩어리를 집어삼킨 듯한 후끈한 감각이 서서히 내장을 휘저었다.
“후후, 속 버리겠다. 아~.”
여자 중의한 명이 다가와 나에게과일 안주를 먹여줬다.
본심을 말하자면 그 어떤 호의도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주를 먹지 않고는 버틸수 없을 정도의 술기운에 나는 냉큼 안주를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우, 어지럽다. 한번에 훅 오네.’
독주를 급하게 넘긴 탓인지 금방 취기가 올랐다.
나는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며 탁자에 잔을 내려놨다.
그리고 호쾌하게 외쳤다.
“쟈~. 이제 가겠습니다. 비켜 주세요!”
술이 좀 들어가서 그런가?
행동에 조금 자신이 붙었다.
나는 최영훈을 가리키며 손을 얼렀다.
“넌 그리고 나중에 나한테 뒤질 줄 알아? 알았어?”
슬슬 풀려가는 다리를 이끌고 입구로 향했다.
여전히 만두귀가 팔짱을 낀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아직 아니야.”
그는 턱짓으로 주아린을 가리켰다.
그녀는 묘한 미소를 띠고는 말했다.
“술을 좀 먹이니까 재미있어지네. 좀 더 마실 수 있겠어?”
“약속대로 마셨으니까 집에나 보내주시죠?”
“에이, 왜 그래? 그러지 말고 뭐 재미난 이야기 같은 거 없어.”
그녀는 취한 상태의 나에게서 뭔가를 찾고 싶은 것 같았다.
특별한 유머라도 바라는 건가?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되는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지금 건장한 남자들과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둘러싸여서 협박당하고 있는 저희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입니다. 돈도 없고, 꿈도 없고, 미래도 없죠. 그렇다고 부모님께 물려받을 재산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가진 게 많아서 그런지 참 여유가 있어보이네요. 그리고 아까는 얻어맞을까 봐 말을 아꼈는데. 댁들 지금 사람을 붙잡고 뭐 하는 겁니까? 사람 한두 명 죽여도 당신들은 빠져나갈 자신이 있나 봐요?”
얼굴이 후끈할 정도로 오른 취기의 힘을 빌려 말을 쏟아냈다.
그러자 몇 명은 심기가 불편한지 입을 비쭉거리기 시작했고, 몇 명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버지 유명한 건달이야. 너 묻는 건 일도 아니지.”
“우리 어머니는 검사. 나 어릴 때 정신병도 있었어. 기소 안 될걸?”
“난 한국 국적 아니다. 너 담그고 바로 캐나다로 뜨면 된다고.”
“요즘은 돈 주면 현장을 바로 정리해주는 전문 업체도 있어. 그런 건 문제도 아니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정말 위험하게 노는 놈들은 모양이다.
어쨌든 이미 뱉은 말이다.
나는 짐짓 호기를 부리며 말했다.
“어쨌든 댁들의 이 유치한 짓거리에 더 어울려 줄 생각 없습니다. 저는 여기를 나가겠습니다.”
나는 최영훈의 손을 이끌고 입구로 향했다.
그러자 주아린과 일행들은 순식간에 우리를 에워쌌다.
“어딜 마음대로 가려고 해?”
그들은 최영훈과 나를 갈라놓았다.
그리고 나를 주아린 앞으로 끌어냈다.
[짝-!]
그녀의 손바닥이 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귀가 먹먹하고 뺨이 얼얼한 불길이 순식간에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뺨따귀를 올려붙인 것 치고는 얼굴에 어떤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묘한 비웃음만 서려있을 뿐이었다.
“누구를 삼류 양아치로 보나? 죽이긴 누굴 죽여? 우리는 주로 불구로 만들어.”
그녀의 말에 다들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인 모양이다.
악독한 놈들.
“그리고 취해서 날뛰는 모양새도 별로다. 멘트도 후지고. 야, 우리가 쓰레기연놈들인 거 모르고 이러는 거 같아? 우리 다 알고 이러는 거야. 그런데 왜 이러는 줄 알아?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거든. 적당히 선만 지키면 뭐든 게 우리 뜻대로 된단말이야. 알아들어? 그러니까 없는 것들 특유의 열등감이나 공포심 드러내지 말라고. 더 구려 보이니까.”
그녀는 자신이 후려갈긴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의 입술을 덮쳤다.
[쪼-오오옥!]
그녀의 키스가 날아온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며 최대한 저항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일행들은 나의 팔다리를 붙잡는 것은 물론이고 턱까지 억지로 벌렸다.
그리고 혀까지 사용한 농염한 키스로 내 육체와 영혼을 휘저었다.
굴욕적이었다.
‘확 깨물어 버릴까?’
치밀어 오르는 분기에 잔인한 상상까지 했다.
하지만 여기서 섣불리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다.
먼저 손을 댔다가는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기때문이다.
법, 금전, 물리적 폭력까지 주도권을 그녀가 모두 쥐고 있었다.
어쨌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쩝, 뭐야? 혀 맛도 별로네. 도대체 이 새끼의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는 거지?”
그녀는 더욱더 눈빛을 번뜩이며 자신의 턱으로 흐르는 침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