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페로몬 그리고 진실 (28/110)



〈 28화 〉페로몬 그리고 진실

“그러니까 나에게 먹인 약이 회복제가 아니다?”

“네.”

“그러면 그 약이 뭐죠?”

나의 추궁에 그녀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나도 더는 참을  없다.
군수 사업에 손을 대는 위험한 기업에 사찰을 당하기도했고, 사람들이 돌변해서 달려들기도 했다.
이제 진실을 알아야겠다.

“그 약은 사실 무기로 개발된 겁니다.”

“무기요?”

황당한말이 들려왔다.
무기라고?
무슨 무기가 사람을 회복시키고, 주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는 말인가?
그녀는 나의 반응을 살피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적을 조종할 목적으로 설계된 약이었습니다.”

“조종이요?”

“네. 전장에서 적을 조종하고 무력화하기 위해서 개발된 신약이었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숨을 골랐다.

“저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죠. 영화처럼 초능력을 이용해서 ‘마인드 컨트롤’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요.”

“그래서 당신들은 어떤 방법을  겁니까?”

“그러던 중에 우리는 페로몬에 주목했습니다.”

“페로몬?”

“네. 이성이나 다른 개체에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호르몬이나 화학성분이죠. 효과는 거의 절대적이어서 반드시 생물의 행동을 끌어냅니다. 우리는  점에 주목했죠. 페로몬을 연구하면 다른 생물을 조종할 수 있다는판단을 내린 겁니다.”

나도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페로몬은 이성을 유혹하고 특정 행동을 유발한다고.
설마 그러면 나에게  약이?

“그러면 그 약이?”

“네. 페로몬을 내뿜게 만드는 약이었죠.”

이제야 내가 인기가 많아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페로몬을 내뿜는 약이었다니!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인간은 ‘야콥슨 기관’이라는 ‘보조 후각 기관’이 퇴화한 상태다.
따라서 다른동물들처럼 예민하게 대기 중의 화학성분을 느끼거나 페로몬을 감지할  없다.

“야콥슨 기관이 퇴화한 인간도 페로몬의 효과를 볼  있는 건가요?”

“퇴화한 거지 없어진 건 아니거든요. 유효한 자극만 있으면 인간도 페로몬의 효과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 팀이 연구한 방식은 페로몬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는 유전자 변형 기술을 이용해서 ‘인간의 뇌에 어떤 메시지를 심는 약’을 개발했습니다.”

“잠깐, 잠깐, 뇌에 메시지를 심어요? 페로몬을 내뿜게 만드는 약이라고 했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저희도 페로몬이 어떤 것인지 완벽하게 규명하지 못했거든요. 페로몬은 크게 시각적 페로몬, 화학적 페로몬, 청각적 페로몬, 촉각적 페로몬으로 나뉩니다. 그중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 화학적 페로몬이죠. 하지만 화학적 페로몬도 언어적 페로몬, 집합 페로몬, 길잡이 페로몬, 유혹 페로몬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됩니다.”

점점 알아듣기 어려워진다.
나는 잠자코 그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쉽게 말해서 총을 쏘면 구멍이 뚫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멍을 뚫기 위해서는 총이 필요하다는 명제를 거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죠. 그렇다면 거꾸로 우리가 구멍을 뚫기 위해서는 총의 모든 구성성분과 작동원리를 이해해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죠.”

“그렇죠. 그저 사용법만 알면 되고, 공장에서 사 오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네. 저희는 뇌를 공장이라고 보고 명령을 내린 거죠. ‘페로몬을 생산해라’라고. 그런 메시지를 심도록 유전자를 변형하는 약을 개발한 겁니다.”

맙소사!
그러니까 이 인간들은 사람이 페로몬을 생산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뇌를 변형시키는 약을 만들었다는 소리다.
그것도 유전자 단위로.
이런 미친!

“그러면 제 상처가 치유된 것은?”

“일종의 ‘사이드 이펙트(부작용)’로 나타난 효과일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저에게 호의를 보인 것도?”

“네. 전형적인 화학 작용이고요.”

“몸이 건강하고 미남형이 된 것도?”

“일종의 ‘시각적 페로몬’이 작동한 결과겠죠. 저도 놀랐습니다. 페로몬이 화학적인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효과를 낼 줄이야.”

은근히 설레는 모습을 보이니 약이 올랐다.
지금 사람의 뇌를 ‘미약을 내뿜는 공장’으로 바꿔 놓고 뭐 하는 태도란 말인가?

“...그래서 고칠 수는 있는 거죠?”

“그건 불가능에 가깝네요. 억지로 되돌리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도 없고요. 정확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절제해도 후유증이 남을 겁니다.”

“아니, 이런 위험한 걸 왜 먹인 겁니까!!!! 왜!!!!!!! 아-아아아악!!! 왜!!!!!”

지금까지 참고 있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나는 신지혜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녀는 잠자코 나의 모든 독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한참이고 그녀에게 분노에 찬 외침을 퍼부었다.

“미안해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나를 속이고 실험체로 삼은 거 아냐?”

“아니요. 그러면 좀 더 은밀하게 실험체를구했겠죠. 그것도 ‘에이스 원’ 쪽에서.”

그러고 보니 그녀는 그들을 피하는중이었다.
그렇다면?

“저는  약이 병기로 쓰일 거라는 것도 몰랐어요. 그저 인간의 페로몬을 연구해서 상대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만들  있다고 믿었죠. 인간의 언어는 불완전하니까요.”

실제로 본심과 다르게 나오는 말에 의해서 벌어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가깝게는 인간관계가 틀어지고, 심할 때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마 인간의 마음을 서로 온전히 이해할  있는 날이 오면 범죄와 전쟁, 헤어짐과 엇갈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이걸 무기로 쓴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고작 무기로 쓰려고 하다니. 그래서 저는모든 연구 자료를 폐기하고 당신에게 약을 먹인 겁니다.”

“그러면 일부러 나를 이용한  아니라는 거죠?”

“네. 그때 ‘에이스 원’측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었거든요. 급한 마음에 향기 씨에게 투약한 거죠.”

이제야 ‘에이스 원’이 그녀 쫓았던 것과 나를 사찰한 이유를  수 있었다.
그들에게 그 약은무기로 써먹기 좋은 신기술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의 변명을 다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내가  약을 먹었다는 것이고,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화만 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줄 거예요?”

“지금 향기 씨는 능력이 폭주하고 있는 거 같아요. 뇌가 무차별적으로 페로몬을 뿜어내고 있는 거죠.”

“그래서 방법이 있어요?”

“예전에 뇌를 자극해서 호르몬을 조절하는 장치를 개발한적이 있어요. 그걸 응용하면 아마 페로몬을 조절할 수 있을 거예요.”

방법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며 말했다.

“알았어요. 지혜 씨가 그 장치를 가져올 때까지 집에 있겠습니다. 최대한 빨리와주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몸을 살폈다.
유전자가 변형되어 뇌까지 변했다고 한다.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소리도 아니었다.

‘고놈 참 잘생겼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며 거울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나라고 믿기에 어려운 미남이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의 얼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묘한 감정이 솟아나는 것이었다.

‘이야~! 누구  자식인지 몰라도 정말 잘생겼다~.’

나는 지금까지 없던 ‘자기애(自己愛, narcissism)’가 솟아나는 것을 느끼며 계속 거울을 바라봤다.

‘나보다 잘생긴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묘한 두근거림과 희열을 느끼면서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이 몸으로섹스를 하면 어떨까?’

나는 이성도 아닌 나의 육체를 보면서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서서히 손을 옮겨 나의 물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의 육체를 보면서 자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다.
마치 섹스를 하는 듯한 짜릿함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다.
자위는 그저 일시적인 해소에 불과할 뿐이었고, 이성과 나누는 성교와 비교해서 그 쾌감은 현저히 떨어졌다.
‘오나홀’ 같은 자위도구를 쓰지 않는  높은 수준의 쾌감을 얻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짜릿한 감각이 나를 휩쓸고 있었다.
나는 더욱더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크-으~. 좋다. 곧   있어!’

나는 다른 손으로 젖꼭지까지 애무하며 격렬하게 자지를 문질렀다.
거울에 비친 미청년은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게슴츠레  눈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내가  하는 거지?’

그렇게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며 즐기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나까지 페로몬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육체를 보면서 흥분하다니!
자기도취도 이런 자기도취가 없었다.
나는 얼른 행위를 멈추고 물러섰다.
그리고 거울이 나를 향하지 않도록 벽으로 돌려버렸다.
이제는 자신의 모습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가족들은 괜찮을까?’

나는 슬며시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부모님과 형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다행히 나에게 성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동생,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다만 유난히 상냥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엉덩이에 발차기가 날아들었을 것이다.
TV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알짱거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귀찮은 기색도 없이 나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역시나 페로몬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엄마, 나 한동안 집에 있을 거예요. 알바도  겁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까지 나에게 벌어진 일은 모두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좋은 약을 얻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나를 괴롭히던 장애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행운에 행운이 더해지듯이 인기까지 생겼다.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누렸던 모든 것들이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미지의 약 때문이었다니!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불편과 불안이 그 약 때문이라니!
배신감과 분노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신지혜가 오면 한바탕 퍼부어줄까?’

분한 마음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독기로 차올랐다.
그녀의 사정에 나는 휘말린 꼴이니 말이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지금까지의 일은 어쩔 없다고 치자!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생기게 될지 불안하기만 했다.
에이스 원이 약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나의 표본을 원할 수도 있고, 페로몬에 의한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아, 몰라! 어쨌든 제대로 책임지게 해주겠어.’

나는 불안에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달랬다.
생각해 보니 내가 피해자인데 나의 운명은 그녀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닌가?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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