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불청객 (20/110)



〈 20화 〉불청객

020. 불청객

‘이게 지혜 씨가 말한 일이겠지?’

평소와 다름없이 편의점 근무를 하고 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묘한시선으로 이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
무슨 일이냐고?
며칠 전부터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부터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여성의 과도한 관심도 버거운데 이제는 심지어 남성이다.
하지만 난 이미 원인을 알고 있다.

‘약...’

지혜 씨가  몸에 시험한 약품 때문이겠지.
그녀가 말하기를 조만간 누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다녀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근무시간이 끝나갈 무렵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나를 계속 감시하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순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전 이런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경비업체 에이스 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경비업체  하나다.
이런 회사에서 왜 나를?
신지혜의 연구를 노린다면 제약회사나 ‘화이어 제약’의 사람이 접근해야 말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 회사 말이 많던데.’

불명확한 회계자료와 군납품비리, 게다가 세계 최대의 민간 군사 기업(private militarycompany)인 블랙 애로우(black arrow)와도 접점이 있다고 알려진 회사였다.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나는 명함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의 이름은 ‘차승현’.
에이스 원의 ‘이사’를 맡고 있다고 한다.
전체적인 느낌은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얼굴에 약간의 주름이 있다.
적어도 40은 넘었겠지.

“이제 퇴근이죠? 여기서 말하기도 뭐하고 근처 카페로 가실까요?”

“그냥 여기서 말씀하셔도 되는데.”

“공개된 자리에서 말하기 그런 내용이라서 그럽니다. 시간을 많이 빼앗지는 않을 겁니다.”

거절하는 말투로 말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강하게 밀어내도 또 감시를 붙이거나 귀찮게 하겠지.
어쩔 수 없다.
일단 확실하게 말로 하는 쪽이 좋겠지.

“자, 이제 말씀해보세요.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신 거죠?”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커피로 입을 축이고는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얼마 전에 임상시험 아르바이트하셨죠?”

“네.”

“그때 무슨 이상한 일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나의 대답에 그는 품에서 사진을 꺼내서 내밀었다.
신지혜의 얼굴이었다.

“이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요?”

여기서는 모른 척이다.

“아니요.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CCTV의 장면을 인화한 사진이었다.

“분명 CCTV에는 당신이 그녀와 만나는 것이 찍혔는데요?”

“그곳에서 만났던 연구원이나 의사들을 제가 어떻게 다 기억하겠어요? 만났을 수도 있겠죠.”

상대가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며 의표를 찔러왔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둘러댔다.
그리고 속으로 나의 기지를 스스로 칭찬했다.
거기에 연구원이나 의사가 한두 명이겠는가?
기억에 없다고 하면 될 일이다.

“그렇군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면서 사정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한동안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와 계약을 맺고 신약을 개발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그 약품을 빼돌렸다는 걸 발견했죠.”

“그런데요?”

“그날 그녀가 접촉한 사람에게 넘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하고 있습니다.”

기색을 보니 그녀가 접촉한 사람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나에게만 신약을 투여했다는 말도 없었고, 쫓는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 여러 명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쨌든그녀가 했을 법한 행동이다.
그녀는 머리가 영리하니까.

“어쨌든 전 모르겠군요. 뭘 받은 기억도 없고요.”

“알겠습니다. 어쨌든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자 그도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자리를 일어났다.
하지만 자리를 뜨면서 묘한 말을 남겼다.

“그런데 다리는 괜찮아요?”

“네?”

“군에서 사고를 겪어서 장애를 얻은 거로 알고 있는데요. 너무 멀쩡해 보이는군요.”

제길!
또 뭔가를 알아챈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둘러댔다.

“아, 이거요? 재활이 잘 돼서요. 평범하게 걷는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가볍게 다리를 흔들어 보였다.
애초에 걷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고도 걸었던 사람이 바로 나다.
비록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어쨌든 몸에 이상이없다면 다행입니다.”

“...무슨 말이죠?”

“그녀가 빼돌린 약품이 상당히 위험한 약입니다. 아직 어떤 효과를 낼지  수가 없는 신약이죠. 그걸 사용해서 다리가 회복된 거라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꺼내 본 말입니다.”

그는 은근슬쩍 무시무시한 말을 하면서 나를 자극했다.
이건 떡밥이다!
낚이면 안 된다.
세간에는 ‘공포 마케팅’이라는 수법을 동원해서 소비를 촉진하는 행위가 있다.
분명 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의 공포심을 자극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하는 거겠지.
그런다고 내가 털어놓을 줄 알고?

‘미안하지만, 나를 감시하면서 겁주는 당신보다는 똑똑하고 상냥한 신지혜를 믿겠어!’

본능이 나에게 포커페이스를 권했다.
나는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진정시켰다.
그리고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네. 전 다른 거 받아먹은 게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어쨌든 무슨 일이 있으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 바랍니다.”

그가 사라지자 나는 자리에 앉아 남은 음료를 들이켰다. 무표정한 얼굴로 음료를 비웠다.

‘역시 아직 나를 감시하고 있네.’

어려서부터 감이 좋았다.
집 밖에서 집안의 TV가 켜진 것을 느낄 정도로 감각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 감을 빌려 말하자면 분명히 있다.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그녀가 걱정한 대로 사람들이 따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천천히 음료를 비우고 집으로 향했다.

‘계속 따라붙네?’

묘한 시선은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계속 느껴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집에 도착한 나는 주위를 살피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신지혜는 이미 짐작했다는 듯한 말투로 나를 위로했다.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사실대로 말하고 그런 거 아니죠?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라고요.”

“네.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어서 잡아뗐어요.”

“잘하셨어요.”

“그런데 저에게 주신 약이 위험한 약인가요? 그 사람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에이, 그런 건 아니에요. 저를 믿으세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거짓’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뭐, 괜찮겠지.
어쨌든 나는 그녀와 통화를 끝내고 창밖을 내다봤다.

‘아직도 느껴진다. 아직 있어.’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직도 이쪽을 살피고 있다.
앞으로 도청이나 해킹도 신경을 써야겠다.
특허 전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몸을 진정시키며 인터넷을 뒤졌다.

‘한동안 밖에서 뛰는  그만두자.’

떨리는 손길로 ‘수동식 트레밀(러닝머신)’을 검색했다.
밖에서  수 없다면 집안에서 달릴 수밖에.
나는 저렴하고 튼튼한 놈을 찾아서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쳤다.

“요즘 예민해 보여요. 무슨  있어요, 주인님?”

뒤통수를 찌르는 듯한 시선에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섰다.
그런 나에게 권아영이 말을 걸어왔다.
차승현을 만나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나를 감시하는 시선은 없어지지 않고 있었다.
지겨운 놈들!
언제까지 이럴 셈이지?
빨리 신지혜가 신약을 완성해서 특허를 등록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저놈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질 일도 없어질 것이다.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일에 몰두했다.
자주 찾아오는 단골들이나 내 얼굴을 보기 위해서 몰려든 여자들도 연신 나의 안부를 물었다.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고 있는 걸까?
어쨌든 답답한 마음이 겉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좋지 않은 일이다.

‘어디라도 가서 좀 쉬고 싶다.’

저들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마음 편히 쉬고 싶었다.
집에 있어도 묘한 시선이 느껴지니 어디 마음 편하게  수가있나?

“정말 아무  없는 거예요?”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권아영은 은근슬쩍 몸을 기대며 말을 걸어왔다.
귀찮다.
좋아하는사람의 스킨십은 좋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녀의 접근은 귀찮을 뿐이다.

‘어라? 이것 봐라?’

급기야 그녀는 야릇한 표정으로 나의 물건을 문지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눈치채는 사람은 없는  같았다.
나는 그녀를 슬며시 밀쳐냈다.
그리고는 인상을 쓰면서 입을 뻥긋거렸다.

‘들키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흥분되고 좋잖아요, 주인님.’

어라?
그저 귀찮을 뿐인데.
분명히 그럴 텐데 나의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맹랑한 행동과 야한 표정이 나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동시에 피가 쏠리며 나의 물건을 단단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스트레스 발기라는 것이 있었지.’

언젠가 봤던 의학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거기에서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남성은 필요이상으로 발기를 하기도 하고, 발기 부전에 걸리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전자의 경우인 모양이다.
딱히 연애감정도 없고, 성적 매력을 느끼지도 못하는 권아영에게 다시 흥분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나랑 뒹굴고 싶다는 거지?

‘근무 끝나고 따라와. 주인님이 오랜만에 놀아주지.’

나는 주위의 시선을 피해서 권아영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녀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여기까지 따라와 보시지?’

나는 근무가 끝나고 권아영을 데리고 모텔로 향했다.
나를 쫓는 여자들과 감시하는 남자들을 뿌리치기 위해서 몇 번이고 길을 에둘렀다.
멀찍이 돌아서도착한 모텔은 근무하는 편의점이나 우리 집과도  곳이었다.

‘이곳까지 오지는 못하겠지?’

드디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겨우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애초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성욕과 분노를 발산하고자 찾아온 모텔이었다.
그런데 막상 침대에 몸을 묻으니 노곤함이 밀려왔다.

“놀아준다고 했잖아요, 주인님.”

잠에 빠져들려는 나에게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아영의 볼멘소리였다.
모르겠다.
그냥 자련다.
나는 잠든 척을 하면서 몸을 뒤척였다.

“흥! 그러면 혼자서 놀아야지.”

[츄-르르릅!]

그녀는 나의 물건을 입에 머금고 연신 빨아대기 시작했다.
하여간 이 여자도 대단하다.
그만큼 싫은 티를 냈으면 나에게 정이 떨어질 만도 한데 말이다.
또 이렇게 정성껏 서비스해준다.
이러면 내가 힘을 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벌려! 세게 박아줄 테니까!”

분위기를 잡거나 배려하는 일은 일절 없는 일갈이었다.
하지만 나의 태도에 그녀는 싫은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기뻐하며 흥건하게 젖은 음부를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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