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연구원 신지혜 (1)
그녀의 성기에서 나의 엑스칼리버를 뽑아냈다.
이미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콘돔은 처음의 탱탱하고 늘씬한 모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나의 정액과 격렬한 행위로 말미암아 임산부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런 콘돔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물티슈와 휴지를 사용해서 깔끔하게 뒤처리했다.
끝을 동여매서 나의 엑기스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같이 씻을까요?”
씻기 위해서 화장실로 향하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따로 씻자고.”
“그래도...”
아무래도 다른 무엇인가를 원하는 모양이다.
정서적인 어떤 것을 나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받아줄 의리는 없다.
나는 냉랭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그냥 섹스만 한 거야. 그것도 네가 원해서.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그녀는 입술을 비쭉거리며 아쉬운 티를 내기 시작했다.
몸이라도 섞으면 내가 특별한 감정이라도 갖게 될 거로 생각한 건가?
그거라면 대단한 착각을 한 거다.
첫인상부터 최악이었고, 접근하는 방식도 최악이었던 사람을 어떻게 사랑스럽게 대할 수 있을까?
“...여자 친구 있어요?”
“...없어.”
“그러면 나랑사귀어요. 그러면 언제든지 이렇게 같이 즐길 수도 있고...”
또 들이댄다.
분명 거절했을 터인데 또 들이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는 씻는 것에 열중했다.
얼른 집에 가서 쉬고싶은 생각뿐이었다.
단순히 내가 냉정한 사람이고, 성욕이 식은 현자 타임이라 이렇게 그녀를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녀와 그런 관계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애초에 성욕이 끓어오르지 않았다면 몸을 섞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녀의 열기를 식혀주자는 마음에 한 번 허락했을 뿐이다.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봐. 너처럼 행동하는 사람과 사귈 수 있겠냐?”
씻으면서 퉁명하게 내뱉자 더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샤워를 마친 후 문을 열고 나서자 문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걸 어떻게...”
두 손까지모으고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씻어.”
“...”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그렇게 내가 좋은 걸까?
참으로 모를 일이다.
얼마 전까지 여자에게는 인기는커녕 경험도 없는 사람이 나였다.
나란 인간이었다.
키가 크기를 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키는 172 cm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체격이 남자답고 당당한가?
그렇지도 않다.
체격은 마른 멸치에 불과했다.
그러면 얼굴이 잘생긴 것인가?
그건 더욱더 아니다.
평범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으며, 딱히 매력적인 요소도 없다.
그런데 최근에 이 모양이다.
여자들이 끊임없이 달려드는 것이다.
나이, 직업, 성향 등과관계없이 나에게 꼬이고 있었다.
‘사람 마음 약해지게.’
벌거벗은 모습으로 미적거리며 입구에서 서성이는 그녀였다.
나는 그녀의 등을 살며시 화장실 쪽으로 밀며 말했다.
“앞으로 내 말을 잘 들으면 주인으로서 다뤄주지.”
“...애인은?”
“그건 꿈 깨셔.”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장난스럽게 후려쳤다.
그러자 그녀는 작은 웃음을 터뜨리며 얼른 화장실 안쪽으로 향했다.
애인은 사양이지만 섹파라면 오케이다.
그녀가 나의 몸을 원한다면 어느 정도는 어울려 줄 수 있다.
“주인님, 그러면 다음 근무시간에 뵙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그렇게 깍듯하게 대하라고. 나에게 귀여움받고 싶으면.”
모텔을 빠져나온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서 인사를나눴다.
그녀는 나에게 장난스럽게 예를 갖추었다.
거기에 나는 한술 더 떴다.
당당하게 그녀의 예를 받아들였다.
우리의 관계는 딱 이런 정도가 좋다.
깊게 가서 피차 좋을 것은 없는 사이다.
뭐가 문제냐고?
성격이 너무 맞지 않는다.
권아영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위험한 구석이 있다.
깊이 사귀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히히히.”
어떤 형태로든 나와 관계를 지속하게 된 그녀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졌다.
그렇게 좋을까?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녀는 나에 끌린 것은 사실이지만, 진심으로 사랑한 건 아니라는 뜻이겠지.
‘이건 뭐지?’
집에 돌아와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상당히 많은 메시지와 연락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력이 잔뜩 밀려있었다.
나는 천천히 확인했다.
‘응? 신지혜?’
자신을 ‘신지혜’라고 밝힌 사람의 메시지와 전화였다.
무슨 일로 이렇게 자꾸 연락한 거지?
메시지를 살펴봤다.
아르바이트 비용 지급에 문제가 생겼으니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일단 확인을...’
나는 얼른 계좌를 확인했다.
역시나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신지혜라는 사람의말이 사실이란 뜻인데.
[뚜르르르르]
바로 연락을 넣었다.
일해주고 돈을 받지 못한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쉽게 말해서 돈을 도둑맞는 것과 똑같은 일인 것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이 문제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어쩔 수 없다고 해서 사용자의 사정을 봐주거나, 못 받은 돈은 기부한 것 정도로 여기며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임금체납은 절도에 버금갈 정도로 비윤리적인 행동이다.
법적 처벌이 가볍다고 하더라도 그에 실린 책임과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그런 행동은 남의 재산을 가로채는 것만큼 악질적인 행동이다.
타인의 시간과 노동력을 낭비하게 만들고, 자신은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행동이니 말이다.
내가 사업가가 된다면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신호음이 연결음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
“여보세요?”
“네. 신지혜 씨?”
“아, 네. 접니다. 혹시 조향기 씨?”
“네. 아르바이트 비가 안 들어와서요.”
“그 문제로 전화를 드렸어요. 일단 정말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대로 지급만 해주시면 전 불만 없습니다.”
솔직히 불쾌한 기분이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진상’으로 낙인찍히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 또 아르바이트하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여기서는 일단 조금 기분을 누그러뜨리는 편이 좋다.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지나간 일로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수는 없지.
“사과도 겸해서 직접 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서로의 시간만 뺏는 거 아닐까?
내가 계좌번호만불러주면 될 거 같은데.
“혹시 몸에 어떤 변화가 없었나요?”
뭐지?
혹시 뭔가 알고 전화를 한 건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면 다리가 회복된 것을 감출까?
만약 회복된 사실을 말해서 치료비를 요구하기라도 하면 어쩌지?
생각해보니 남는 장사를 한 사람은 나였다.
알약 하나를 먹고 나서 몸을 괴롭히던 장애를 극복했으니 말이다.
은근히 성을 내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사실 변화가 있었습니다. 약을 먹고 나서 오래된 상처가 나았거든요.”
나는 감추지 않고 사실대로 털어놨다.
약을 개발하는 처지에서는 그 효과를 확실히 알필요가 있다.
그런 약속으로 참가한 실험이다.
나는 참여자로서 사실을 전해줄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이 조금 수상했다.
“네? 그런 효과가 있을 줄은...”
“에? 저에게 주신 약 때문인 줄 알았는데요?”
“호호호, 그렇죠. 분명 그런 회복 효과가 있었죠. 하지만 너무 약효가 극적이라 저도 좀 놀랐네요, 호호호.”
둘러대는 모양새가 이상하다.
혹시 나의 몸에 생긴 현상은 일종의 부작용은 아닐까?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모 발기부전 치료제가 사실은 그런 용도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는 소리를 말이다.
애초에 그 물건은 혈관을 확장하게 시키는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약품의 효과가 탁월해서 음경에 있는 해면체의 조직과 혈관까지 확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고, 덕분에 발기에 어려움을 겪는사람들을 위한 의약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처럼 부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기능성을 발견한 의약품들이 의외로 많다.
혹시 나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개발자들도 알 수 없는 효과를 보인 환자.
‘의도한 효과가 아니라면 치료비를 요구하지는 못하겠지?’
불안한 마음이 조금가신 상태에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치료비를 요구하고 그러지는 않죠?”
“설마요. 약이 효과를 보인다고 해서 임상시험에 참가해주신 분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은 없어요.”
다행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속으로 안도의한숨을 내쉬고 있을 무렵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어쨌든 상태를 자세히 보고 싶기도 하고, 사과도 드리고 싶어서 한번 뵈었으면 합니다. 시간 되세요?”
치료비를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만남을 피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몸이 회복된 것이 부작용이나 예측하지 못한 효험 때문이라면 전문가에게 보여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면 늦어질 수도 있다.
이런!
불안을 해소하니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온다.
아니면 단순히 내가 걱정이 많은 걸까?
“네. 그러면 약속을 잡죠. 제가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요. 근무가 없는 날에 뵙고 싶네요.”
“아, 일하고 계세요? 뭔가 문제는 없나요?”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왜 이 대목에서 더 놀라는 건데?
내가 그렇게 백수로 뒹굴거릴 상인가?
일한다는 말에 놀라는 건 뭐지?
나는 그녀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뭔가 묘한 낌새를 느꼈다.
그녀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뭔가가 더 있는 모양이다.
“아직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역시 직접 보는 쪽이 좋겠죠?”
“네. 그러면 만나서 상태를 좀 보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약속을 잡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녀가 숨기는 구석이 있다면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었다.
의약품 부작용은 의외로 무서운 법이니까.
“안녕하세요. 제가 신지혜입니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말한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는 나에게 알약을 건네줬던 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조향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통성명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간단한 음료를 주문한 후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흥미롭네요.”
“네?”
“아닙니다.”
나를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나에게 말하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것이다.
“일단 이거...”
그녀는 나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는 제법 두툼했다.
이건 또 뭐지?
“너무 많이 넣으신 거 같은데요?”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에 비해서 너무 과한 임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웃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르바이트 비용, 특별 시험 참가비, 거기에 비밀유지를 위한 비용까지 얹은 겁니다. 과한 게 아니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사실 저희 팀이 연구하고 있는 신약을 가로채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아, 네.”
“그래서 이번 결과에 대해서는 저만 알았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임상시험에서 있었던 일, 지금 제가 지혜 씨를만나는 모든 일을 비밀로 하라?”
“그런 이야기죠. 우리 회사 관계자를 포함한 다른 어떤 사람이 와도 입을 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흔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기술을 훔치거나 빼앗는 일.
혹시 알고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는 타인의 특허권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도 벌금이 고작 1억 원 이하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그렇다.
돈만 충분히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허락도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게 자금을 이용해서 기술력이 있는 회사를 짓뭉개고, 시장을 잠식하는 대기업이 무척 많다.
내가 앞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고, 경계로 삼아서 타인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네. 뭐,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챙겼다.
많이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그렇다고 지켜야 할조건이 까다로운 것도 아니다.
비밀 유지에 대한 조건은 흔한 일이니.
“그러면 본격적인 검사를 위해서 자리를 옮기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