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인기폭발 (2) (10/110)



〈 10화 〉인기폭발 (2)

“그런 건 난생처음 본다.”

최영훈도 난데없이 벌어진 소란에 꽤 놀란 것 같았다.
목소리로 짐작건대 들으니 그도 별 탈은 없는 듯싶었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비교적 침착했다.

“어떻게 재미있게 놀았어?  어쩔 수 없이 도망쳤지만.”

“놀기는 인마! 나까지 엮여서 출입금지 당했다. 이제 한동안  클럽 못 간다.”

그런 소란을 일으켰으니 어쩔 수 없나?
아니, 애초에 우리가 무슨 잘못이야?
몰려든 여자들이 잘못한 거지.

“그런데 내가 원래 클럽에서 먹어주는 스타일인가?”

나는 여자들이 몰려들던 기이한 현상을 떠올리며 물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모르고 있던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너? 그냥 평범하지. 오히려 평균 이하?”

하지만 돌아온 말은 지극히 현실적인 말이었다.
짜식!
빈말이라도 칭찬은 없다.

“아, 그건 그렇고.너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 있어. 꽤 거물이야. 친하게 지내면 반드시 너에게 도움이 될 거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톡으로 어떤 이름과 연락처를 보내왔다.

[주아린, 010 - XXXX - XXXX]

“이게 누군데?”

“혜성그룹 알지?”

“어.”

“거기 회장 딸이래.”

“진짜? 그런데 이 사람이 왜...”

“그날 거기에 있었나 보더라고. 그 난리를 보고 너한테 흥미를 느낀 모양이야. 나중에 놀고 싶어지면 연락하라고 하더라.”

나는 얼른 인터넷을 검색했다.
정말 막내딸의 이름이 주아린이었다.
사칭하면서 사기를 치려는 건지, 아니면 정말 나에게 흥미를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 내가 꽤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모양이다.
이런 거물이 관심을 두니 말이다.

“어쨌든 조만간 연락해 보라고. 너한테 반드시 도움이  거다. 크게 되고 싶으면 큰 인물이랑 엮여야 하는 거야. 알지?”

이런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나 있을까?
그저 신기한 마음에 찔러나 보는 거겠지.
어차피 이런 사람들과 우리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하지만 최영훈 말대로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겠지.
나는 연락처와 이름을 따로 저장했다.
상대방이 찔러보는 거라면 나도 찔러보면 될 뿐이다.
재벌에게 전화한다고 경찰에 잡혀가지는 않을 테니까.
뭐든지 용기를 가지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 어디서 나오는 말이냐고?
최근에 읽고 있는 자기계발서나 위인전에서 주워들은 문구다.

“알았어. 나중에 보자고.”

그렇게 나의 휴가는 끝을 맺었다.
임상시험 아르바이트부터 미용실의 정사, 클럽의 소동까지 정신을 차릴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니까.

“걱정이 많아. 자네는 다리가 불편하니까. 주간에는 사람도 많은 편이고.”

편의점에 출근하자 사장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바뀐 시간표는 주간 근무였다.
예전처럼 인적이 뜸한 야간 근무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사장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내가 회복한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거라면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제자리에서 다리를 굽혀다가 펴기도 하고, 뜀뛰기도 뛰면서 회복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사장은 입까지 벌리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자네!”

“네. 어떻게 재활에 성공해서요.”

“어떻게 그사이에?”

“저도 신기하다니까요.”

나는 임상시험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이야기는 슬쩍 뺐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한다고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치료가 좋았다는 이야기로 둘러댔다.

“어쨌든 회복돼서 정말 다행이네. 다행이야!”

사장님은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다.
역시 좋은 사람이다.
그렇게 나는 권아영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시간대로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다.

“...이거 얼...얼마...”

“1500원이요.”

“...”

하지만 전혀 어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주간이라지만 손님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종종 쭈뼛거리며 말을거는 손님도 있었다.
원래 주간 업무가 이렇게 힘든 건가?
하지만  곧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오빠, 몇 살이에요?”

“...21살입니다.”

“애인 있어요?”

“...없습니다. 저기 근무 중이라서.”

여중생이나 여고생들이 종종 말을 거는 것도 예사였다.
설마?

“저 오빠랑 말했다! 아이, 좋아~! 꺄르르르르~!”

나에게 말을 걸고는 친구에게 달려가 자랑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렇다.
클럽에서 일어났던 일이 여기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여성들이 나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이건 어찌  일인가?
처음에는 주간 업무의 강도가 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를 보려고 일부러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일이 많아졌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힘들었던 것이다.
자업자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업자득을 일궈냈다.
살면서 인기가 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나로서는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나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사장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다시 근무시간을 바꿔 달라고 부탁할 셈이었다.
이대로는 못 버티겠다.
일도 일이지만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추파를 던지는 여성들 때문에 도저히 버티지못할 정도였다.

“자네 혹시 지난 며칠간의 매상이 얼마였는지 아는가?”

“네?”

면담에서 사장님은 뜬금없는 소리를 꺼냈다.

“지난달 매상의 두 배야. 두 배!”

매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뭔가 조금씩 사기는 샀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게 이런 식의 결과를 만들어 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제가 못 버틸 지경이라고요.”

“이제 자네는 우리 편의점 간판이야. 간판! 제발 부탁이네. 버텨주게.”

“그러면 전 그냥 그만두겠습니다.”

강수를 뒀다.
다리도 멀쩡해진 마당에 아쉬울 것도 없었다.
사장님이 워낙 좋으신 분이라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몸과 마음이 소모되는 건 참기 어려웠다.
예전처럼 다리가 불편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거나 힘쓰는 일이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른 일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말고 사정 좀 봐주게나.”

사장님은 자제분들 대학등록금부터 남은 대출금에 관한 이야기까지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발길을 돌리기 어렵게 최대한 인정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마음이 흔들렸다.
아무도 나를 써주지 않을 때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준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약해졌다.

“그리고 시급은  배로 해주겠네.”

그렇지 않아도 다른 편의점에 비해서 시급이 높은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두 배라니?

“그래도 일이 너무 많아서 혼자는힘들어요. 역시 제가 일을 그만두는 게...”

이런 식이면 언제고 사달이 날 수도 있다.
이쯤에서 내가 물러나는 것이 가장 좋아 보였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나를 노리고 편의점에 출입하는 여자들도 줄어들겠지.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에 사장님은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러면 자네 타임에 사람을 한 명  쓰겠네. 자네는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좋아.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된다고.”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더는 거절할 재간이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렇게 나는 2인 1조의 주간근무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상대가 문제였으니.

‘권아영!’

하필이면 나에게 독설을 내뱉고 근무시간을 바꾸게 만든 원흉과 짝을 맺어준 것이다.
출근한 후에야 비로소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사장님에게 연락을 넣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저 귀여운 이모콘티와 변명의 말만이 톡에 떠오를 뿐이었다.

[당장 사람을 구할 수가 없어서. 미안하네. 자네에게 사과한다고 하더군. 다시는 그런  없을 거야. 일단 같이 일해보라고.]

얼굴만 봐도 울화가 치미는 사람과 어떻게 같이 일하라는 말인가?
나는 이 사람 때문에 근무시간까지 바꿨다.
그런데뭐라고?
분기가 치밀어 인상을 쓰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그녀가말을 걸어왔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웬일로 순순히 사과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반성한 걸까?
어쨌든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분을 삭이며 근무를 시작했다.

“...”

그녀는 싫은 내색도 없이 묵묵히 일을 처리해 나갔다.
나도 말을 아낀  일에 몰두했다.
나를 보기 위해서 몰려든 사람들을 상대해야 할 때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제일 고역이었다.
제대로 된 감정노동을 해야 하니까.
무조건 미소를  채로 적당한 대화를 해야 했다.
그래도 사람이 한 명 늘어나니 훨씬 일하기가 수월했다.
적어도 응대와 일 처리라는  가지 업무에 동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근무 시간이 끝나자 나는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고 편의점 뒷문으로 향했다.
편의점 뒷문은 이 건물에 관련된 사람만 드나들  있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뒷문을 이용하면 나에게 따라붙는 여자들을 떨쳐내기에 좋았다.

‘내가 무슨 대스타도 아니고 이게 무슨 꼴이야.’

졸지에 찾아온 인기에 나는 유명연예인들의 심정을 맛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나의 인생에 불쑥 끼어들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말이다.
그들과 비슷한 상황이 되어서야 그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그들도 늘 이렇게 노출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일까?

“저기 잠시 시간 있으세요?”

퇴근하려는 나에게 권아영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로?”

혹시  욕을 퍼부으려는  아니겠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잠시면 됩니다.”

“네. 하세요.”

“여기서는 좀...”

아무래도 다음 근무자나 손님이 듣는 건 싫은 모양이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카페도 괜찮나요?”

“괜찮습니다.”

그녀도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한 것인지 싫은 내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조금 멀리 떨어진 카페로 향했다.

“그래, 이제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이죠?”

커피가 나오자 나는 그녀에게 용건을 물었다.

“제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이유?”

“네. 사실은...”

그녀는 자신의 사정에 대해서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자신과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와 내가 닮았다는 것이다.
소름 끼칠 정도로.
게다가 다리까지 저는 것이 판박이여서 처음 봤을 때는 무척 놀랐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제가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변명이  수는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정식으로 사과드리고 싶었어요.”

“그 아버님은 지금 어떻게...”

“변변한 재산도 남기지 않고 집을 나가버렸어요.”

사정을 알고 나니 어느 정도 분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진심을 담아서 사과하니 속에 쌓인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다독이며 말했다.

“힘내세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 잘해 봅시다.”

“네. 사과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얼굴을 붉히는 거지?
그녀는 안도하는 것치고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후련함을 제외하고 또 다른 감정이 하나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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