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인기폭발 (1)
“나중에 밥이나 먹어요.”
미용실을 나서는 나에게 그녀는 작은 쪽지를 건넸다.
[김희연, 010 - XXXX - XXXX]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아, 나도 뭔가 건네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허둥대면서 펜과 종이를 찾자 그녀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무 때나 연락 주세요. 지금은 약속이 급한 거 아니에요?”
마치 에로영화에나 나올법한 일로 첫 경험을 치른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운이 좋다면 클럽에서 총각 딱지를 떼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리를 다듬기 위해서 찾은 미용실에서 거사를 치르다니?
분명 여기는 퇴폐적인 서비스를 하는 그렇고 그런 가게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꿈만 같은 일을 경험한 것이다.
‘의외로 시간이 많이 지나지는 않았네?’
다행히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
몇 번이고 몸을 섞어댄 것 치고는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나는 얼른 약속장소로 향했다.
“왔냐?”
그곳에는 이미 최영훈이 나와 있었다.
평소에는 잘 지키지도 않는 놈이다.
그런데 클럽을 간다고 하니 칼같이 시간을지키는 것이었다.
속이 보인다.
속이 보여!
“그래~. 내 말대로 머리 자르니까 사람처럼 보이네. 이제 가자.”
그는 내 모습을 한번 확인하고는 클럽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문 앞에는 건장한 체격의 사람이 입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민증~.“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20대라 그런지 신분증 검사를 한다.
우리는 얼른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내밀었다.
그는 우리의 신분증을 꼼꼼히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신분증을 돌려주면서 그는 최영훈과 나의 복장도 훑어봤다.
아마 물을 흐릴 정도의 복색이라면 걸러낼 심산이겠지.
어쨌든 입구를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섰다.
‘워,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안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음량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런 걸 EDM이라고 하던가?
힙합도 아니고, 팝댄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한 전자음악도 아닌 음악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기괴한 음악이다.
본격적인 춤보다는 생각 없이 몸을 흔들기에 딱 좋은 음악이었다.
‘하긴 클럽에 요즘에 누가 춤추려고 오나. 다 외로워서 오지.’
클럽에서 춤 실력을 갈고닦던 시절은 예전 이야기라고 한다.
정통 힙합이 클럽의 주류 음악을 이루던 때 말이다.
지금은 교습소도 많아져서 굳이 이런 곳에서 춤을 배울 필요도 없다고 하더라.
클럽에는 관심도 없다는 놈이 이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군대 동기 중에 백댄서를 하는 놈이 있었다.
덕분에 그 녀석과 초소를 나가면 늘 음악이나 춤 이야기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도 이런 곁다리지식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형이 클럽을 다닐 때는 테크노가 주류라고 했었지.’
EDM의 일종이자 유럽에서 유행을 만들었던테크노가 한반도의 클럽을 장악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에 나는 미성년자라 자세한 느낌이나 감상은 모른다.
그저 심심할 때 인터넷에서 그 음악을 찾아볼 뿐이다.
전체적인 감상은 요즘 음악보다는 덜 과격해서 오래 춤추기 좋다는 것 정도였다.
“새끼~. 촌스럽게! 귓구멍에서 손가락 안 빼?”
심장마저 진동시킬 것만 같은 과격한 울림에 나는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최영훈은 나를 살짝 밀치며 소리쳤다.
그가 소리치니 겨우 들릴 정도다.
엄청난 음악이 주변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스피커 옆에서 춤추는 인간들은 뭐란 말인가?
대단하다.
이미 청력을 잃었거나 잃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여기는 입장은 무료인데 놀려면 주조건 기본 음료를 시켜야 한다. 음료를 한잔 사는 게 입장료 같은 거지.”
특이한 시스템이었다.
보통 입구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는 거 아닌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손등에 도장 같은 걸 찍어준다고 하던데.
“일단 자리를 잡자고.”
기본 음료를 가지고 돌아온 최영훈은 나를 한쪽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 클럽은 작은 규모는 아니었다.
방을 잡고 편하게 음주를 즐길 수 있는 ‘룸’,
주로 춤을 추면서 교류를 할 수 있는 ‘댄스 스테이지’,
댄스 스테이지와 가까운 곳에서 앉아서 쉴 수 있는 ‘테이블’,
음료나 주류를 주문할 수 있는 ‘바’까지 갖추고 있었다.
최영훈의 말에 따르면 규모가 작은 곳은 ‘댄스 스테이지와 바’만 있는 곳도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네.’
평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최영훈에 따르면 주말에는 발 디딜곳이 없을 정도로 붐빌 때도 있다고 한다.
“어때? 적응 좀 되었냐?”
“그럭저럭?”
“그러면 적당히 춤추면서 분위기 좀 보자고.”
저 말뜻은 분명 괜찮은 여자가 있는지 보자는 소리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런 부분에 아쉬울 것은 없었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동정도 졸업했고, 질펀하게 한판 하기도 했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춤도 추기 싫을 정도로 가벼운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이 녀석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생각해서 권해준 자리에 나와서 시종일관 싫은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일단 적당히 맞춰주기로 했다.
“저기에 여자 많다. 저기! 저기!”
나는 최영훈이 이끄는 대로 나아갔다.
그리고 댄스 스테이지의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음악에 맞춰서 천천히 몸을 흔들었다.
‘생각보다 재미있네?’
음악에 맞춰서 몸을 흔들다 보니 생각보다 흥겨웠다.
아니면 조금 전에 마신 맥주의 취기가 오른 탓일까?
뭔가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춤을 추는 걸까?
유흥과는 거리가 있는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는 신선한 느낌이었다.
“야, 무슨 춤이 그래? 기본 스텝이라도 알아보고 왔어야지. 크크크.”
최영훈은 나의 막춤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않고 나름대로 신명 나게 몸을 흔들었다.
“야, 야, 조금 있으면 부비부비 타임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지 잘 찾아보라고.”
땀까지 흘려가며 몸을 흔드는 나에게 그는 소리쳤다.
그게 뭐지?
하지만 이내 나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영훈은 눈에 띄게 느려진 페이스로 몸을 움직이면서 눈으로 자신의 취향인 사람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커플링을 하기에 좋은 곡이 나오겠지?’
아버지가 예전에 해주셨던 말이 기억났다.
예전에 ‘락 카페’라는 곳에서는 격렬한 음악이 나오다가도 뜬금없이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는 때가 있다고 했다.
그때를 가리켜서 ‘블루스 타임’이라고 했던가?
그때 기존의 커플들은 애정행각을 벌이고, 새로운 커플은 짝을 맞춰서 블루스 춤을 추었다고 한다.
‘부비부비 타임’이란 것도 아마 비슷하겠지.
[둠-칫! 두둠칫! 둠-칫! 두둠칫!]
느리고 끈적한 느낌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댄스 음악인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뭔가 야릇한 느낌을 품고 있는 그런 리듬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춤사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리 점찍어 놓은 이성에게 다가가 요염한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했다.
“혼자왔어요?”
옷이라고 부르기에는 천이 부족한 의상을 입은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나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는 흐느적대기 시작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녀의 엉덩이가 연신 나의 물건을 스쳤다.
이것이 바로 부비부비인가?
이 얼마나 음란하고 기분 좋은 춤이란 말인가?
“아니요. 친구랑 같이 왔어요.”
나는 최영훈이 찾았다.
그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부비부비에 빠져서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부끄러워진 나는 얼른 손을 내리고 춤을 즐겼다.
“좋은 냄새가 나요~.”
등을 보이고 엉덩이를 실룩이던 그녀는 어느새 돌아서서 내 목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슬며시 목과 귀를 핥으며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순진하시네. 이런 곳에서는 여자가 리드하는 대로 하는 게 편한데~.”
그때였다.
잠시 그녀와 거리가 벌어진 틈으로 다른 여성이 끼어든 것이다.
원래 이래도 되는 건가?
나는 놀란 표정으로 가장 먼저 나에게 다가왔던 여성을 바라봤다.
그녀는 태연한 척하면서 춤을췄다.
하지만 느낌상 기분이 상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저런 애는 별거 없어요. 나랑 놀아요. 오빠~.”
다른 여성은 더욱더 요염한 동작으로 내 물건을 자극했다.
‘사람의 허리가 저렇게 돌아갈 수도 있구나!’
나는 그녀의 움직임에 감탄하면서 슬며시 몸을 뒤로뺐다.
너무 자극이 강해서 발기가 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씨! 넌 뭐야!”
공간이 벌어지자 또 다른 여성이 밀고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마치 살사나 삼바를 연상시키는 열정적인 동작으로 내 아들을 자극했다.
서서히 내 물건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오빠, 나 섹스 잘해! 그냥 이런 년들 내버려 두고 나랑 나가자!”
이번에 다가온 여성은 노골적으로 잠자리 이야기까지 꺼내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당황해서 비척거렸다.
하지만 내가 비틀거리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른 여인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내 몸에 들러붙어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몸짓을 하기 시작했다.
“어때? 감오지 않아? 나 침대에서는 더 잘 움직인다고,”
갑자기 인기폭발이다.
“야! 이-샹년아! 내가 먼저 왔어! 넌 매너도 없냐?”
“매너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저 오빠가 간택해야 짝이 맞는 거지. 먼저 오면 장땡이냐?”
“발정 난 년들!”
“너는 안 그랬어?”
추가로 몰려든 여자들과 합세해서 그들은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가 누군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그다지 인기가 있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리 인기가 폭발하는 것인가?
미장원에서 갑자기 정사를 벌이게 된 것도 그렇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도 그랬다.
참으로 이상한 날이다.
“저...저기 싸우지 마시고...”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들을 말렸다.
하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벌써 구석에서는 머리채를 뜯으며 뒹구는 사람들이 있었고, 일부는 다가와서 나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오빠! 내가 좋지? 내가?”
“나랑 나가요! 내가 잘해줄게요.”
“아니야~. 나랑 갈 거야~.”
“이거 안 놔? 내가 찜했어! 안 꺼져?”
“오빠, 나 명기예요. 명기! 내가 홍콩 보내줄게요.”
“존나 잘 빨아요. 내가 아주 엑기스까지 빨아줄게요.”
몰려든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입구 쪽으로 향했다.
여기 있다가는 큰일을 치를지도 모른다.
“뭐하는 겁니까? 당장 그만두세요!”
소위 ‘기도’라고 불리는 안전요원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뒤엉켜서 싸우는 여자들을 떼어놓거나 클럽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뛰듯이 클럽을 빠져나왔다.
“오빠~. 어디 있어~. 오빠!”
클럽에서 쫓겨난 상황에도 여전히 나를 찾는 여인들이 많았다.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고 주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몸을 숨겼다.
‘영훈에게는 집에 가서 전화하자.’
기괴한 상황에 질린 나는 얼른 현장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