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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의 밤-145화 (145/146)

13화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런 식으로 정사를 나누는 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양심 없는 에녹은 그녀의 순진함을 멋대로 이용했다.

“이, 이제 그만…………, 아으, 응………….”

아란이 흐느끼며 애원했다. 벌써 이 상태로 두 번이나 절정에 오른 뒤였다. 이제 그만 하고 누워서 다정하게 안아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에녹은 단호했다.

“몇 개나 들어갈지 궁금한데.”

아란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그녀의 내부를 휘젓고 있는 손가락이 이미 세 개였다.

“아, 안 돼, 아, 아파.”

네 번째 손가락이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오자 아란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그녀는 거짓말로 이 상황을 모면해보려 했다. 그러나 비음이 섞인 목소리는 그녀가 듣기에도 앙탈로밖엔 여겨지지 않았다. 에녹이 웃음을 참으며 유일하게 밖에 나와 있던 엄지손가락으로 음핵을 꾹 눌렀다.

“아, 아아!”

거짓말이 무색하게 높은 교성이 튀어나왔다. 에녹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소리를 듣자 뜨거운 액체가 왈칵 쏟아져 허벅지를 온통 적셨다.

“후…………. 정확히 표현하셔야죠. 아픈 건지, 아니면 좋은 건지."

“아, 아프다니까…….”

아란이 재차 거짓말을 했을 때, 갑자기 에녹이 손을 빼냈다.

“거짓말."

잔뜩 벌어졌던 아래가 허전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몸이 뒤집혔다. 예고도 없이 자세가 바뀌는 바람에 아란이 크게 휘청이자 에녹이 허리와 골반을 단단히 잡아 고정했다.

자신이 흘린 물로 그의 손이 미끄럽게 젖어 있는 것을 느낀 아란이 이를 악물었다. 처음 관계를 맺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는 놀랄 만큼 능숙했다. 그리고 점점 더 능숙해지는 중이었다.

왜 나만………….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빠져나간 손 대신 뭉툭하고단단한 것이 단번에 진입해 몸속을 채웠다.

"아으윽!"

아란이 반사적으로 몸을 휘었다.

에녹이 튀어나온 날개뼈에 이를 세웠다. 연약한 피부는그것만으로도 금세 자국이 남았다. 가학적인 충동이 그를부채질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아란이 어깨를 잔뜩 옹송그리곤 몸을떨었다.

그녀는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간절한 눈으로 에녹을 바라보았다. 무섭게 하지 마. 그녀가 소리 없이 말했다. 그게더 그를 부추긴다는 사실을 아란만 몰랐다.

“에녹・・・・・…."

어떻게 할까.

그는 고민하며 여린 안쪽을 거칠게 짓이겼다.

“으흑, 으, 아, 응..…………!"

요청을 거절당한 아란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으나 이미풀어질 대로 풀어진 내부는 그마저도 탐욕스럽게 삼켰다.촘촘히 달라붙는 점막을 느끼며, 에녹은 문득 궁금해졌다.

더 아프게 해도, 더 난폭하게 굴어도 받아

줄까.

이따금 그는 두려움과 수치로 떠는 얼굴이 보고 싶다는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원하는 대로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다시 한번 깊이 박아 넣었다.

“나 정말, 흐, 힘, 들어………”

그러나 아란이 진심으로 간청하자 잔인한 충동은 녹은 듯이 사라지고 애틋한 마음이 차올랐다. 에녹은 그녀의 어깨를 당겨 품에 안았다. 그러곤 이 대신 입술로 잇자국이 난 곳을 부드럽게 문지르고 배어 나온 땀을 핥았다. 품에 안긴 몸에서 긴장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으응, 아.......”

아란이 바라는 대로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자 완전히 안심한 그녀가 순수하게 쾌락만 들어찬 황홀한 소리를 냈다.

“낮이니까 앞으로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선심이라도 쓰듯 하는 말에 아란이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한 태도에 마음이 너그러워진 에녹이 관자놀이에 부드럽게 입술을 내리눌렀다.

그가 상체를 일으키자 그에게 안겨 있던 아란 역시 일어나 앉은 자세가 되었다. 체중 때문에 삽입이 더 깊어졌다. 몸을 비틀었으나 그녀를 휘감은 팔은 그대로였다.

반대쪽 손이 슬금슬금 내려와 한껏 벌어진 구멍 위를 더듬었다. 아란은 꼼짝없이 그가 끌어내는 쾌감을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체력도, 쾌락도 한계에 다다른 아란은 이따금 앓는 소리를 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에녹은 울지 말라는 말 대신 한껏 고개를 숙여 솟아나는 눈물을 마셨다.

“아란.”

그녀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깜박거렸다.

“너무 조여. 좋아서 미칠 것 같아.”

다정한 척하고 있지만 잔뜩 갈라진 데다 거친 숨소리가 섞여 가증스럽게밖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의 마음을 풀어놓기엔 충분했다. 오랜 짝사랑으로 목말랐던 아란이라, 자신을 욕망하는 그의 눈동자가 너무나 기꺼웠다.

“나도 그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짐승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

"아란"

나직하게 부르자 아란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책에 고정된 채였다.

얼마 전부터 그녀는 그를 상대도 안 해줬다. 밤낮으로 침대에서 시달리다 못한 아란이 마침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시녀에게 잠자리에 관해 물어보았고, 그 결과 그간 에녹이 얼마나 자신을 착취했는지 알게 된 것이다.

에녹은 그게 너무 서운했다.

지나치게 뻔뻔한 이야기지만 그가 아란에게 바라는 건정사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그시 그의 눈을 들여다볼 때,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칼을 넘겨줄 때, 인사를 건네며 가볍게 입 맞춰줄 때마다 에녹은 더없는 고양감과 행복을 느꼈다. 몸을 겹치는 건 가장 확실하게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란에게 외면당하자 스스로가 짐승처럼 굴었다는 자괴감 역시 몰려왔다. 그는 늦게나마 자신이 짐승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다. 아란에게 쓸데없는 소리나 늘어놓은 시녀를 제대로 혼쭐내주리라 다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름이 로지나였던가.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한낱 시녀 한 명을 벌하는 게 아니었다. 아란이 그를 외면하는 동안 그는 짝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그녀 주위를 맴돌았고, 드디어 말을 건넬 기회를 얻었다.

“아란흐로드.”

"......."

두 번째로 무시당한 에녹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란의속눈썹이 빠르게 깜박였다. 그는 조그만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고는 허리를 굽혔다.

“남편을 이리 홀대하시다니요.”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섭섭함이 물씬 묻어났다. 그제야 아란이 마지못해 눈을 맞췄다.

“…………왜 불러?”

커다란 녹색 눈엔 경계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이렇게 멀끔한 모습에 속아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절절히 깨달은 탓이다. 그녀라고 이렇게까지 하고싶지는 않았지만 어떤 행동이 그를 자극하는지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불행히도, 잔뜩 몸을 사린 그 태도에 에녹의 하체가 일어섰다. 이래서야 짐승 취급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이상했다. 허기질 때 식사를 하면 배가 차고, 피곤할 때 잠을 자면 피로가 풀리는데, 그녀를 향한 욕망은 도무지 채워질 줄을 몰랐다. 그나마 서로 빈틈없이 닿아 있을때만 잠시나마 그 목마름이 잊혔다.

“이, 일 안 해?”

“잠깐 미룬다고 큰일이라도 날까요."

에녹이 옷자락으로 하체를 슬쩍 가리며 대답했다. 그녀가 제 욕망에 응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는 그저 사랑받고 싶어 애가 닳았다.

“미루고 뭐, 뭘 하려고?”

“뭘 하고 싶으십니까?"

에녹이 은근슬쩍 아란에게 결정을 넘겼다. 형형하게 불타는 눈을 순종적인 태도로 감춘 채.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녀도 얕은수에 넘어가 주지 않았다.

“난 지금 공부하는 중이잖아. 그리고 너도 할 일이 있고.”

그녀는 세게 나가야 한다는 로지나의 말을 상기하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잔소리까지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리고 아무리 신혼이라도 그렇지, 영주가 아내 때문에 일을 미루면 어떻게 해? 어제도 네 부모님께 편지가 왔던데, 걱정 끼쳐드리면 안 되잖아. 읽어 봤어?"

"물론입니다."

에녹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부모가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도 방금 알았다. 내용은 궁금하지 않았다. 어차피 잔소리일 것이다. 급한 일이었다면 편지만 달랑 보내진 않았을 테니까.

그가 정말로 받고 싶은 편지는 따로 있었다. 에녹은 서재깊은 곳에 고이 모셔놓은 아란의 편지들을 떠올렸다. 과거에 그녀가 보냈던 편지를 전부 잃어버렸다고 고백하자 아란이 새롭게 써준 편지들이었다.

결혼 전엔 하루에도 몇 번씩 써줬는데, 어느 순간부터 횟수가 급격히 줄더니 그나마도 최근엔 아예 없었다. 물론 그것 역시 펜을 들 여유조차 주지 않았던 그의 탓이었지만 말이다.

“두 분이 제 걱정을 하시는 건 그냥 습관입니다. 전 그간단 하루도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아란은 그 말을 쉽사리 믿지 못했다. 로지나가 말하길, 아무리 체력이 좋은 남자라도 밤마다 그런 식으로 힘을 쓰면 기가 빠져 낮엔 정신을 못 차린다고 했다. 아란도 그 말엔 동의했다. 아무리 타고난 체력이 다르다지만 매일 그 난리를 치는데 지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의심을 떨치지 못하자, 에녹은 그간 착실히 일해온 증거를 보여주었다. 깔끔하게 처리된 서류 더미를 보니 아란도 할 말이 없었다. 지금 보니 책무를 소홀히 한 사람은 에녹이 아니라 그녀였다.

그 와중에 일을 이렇게 많이 했다고? 아란이 질린 눈으로 에녹을 바라보았다.

내가 괴물과 결혼한 건가?

“그, 그간 열심히 일했구나. 쉬어도 되겠어………….”

"그럼 이제 ・・・・・・….”

에녹의 얼굴이 기대로 환해졌다. 아란은 책을 펼치는 척하며 황급히 시야를 차단했다. 저 얼굴을 보면 또 마음이 약해질 게 뻔했다. 독하게 나가야 했다.

지금 승기를 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같은 상황일 거라고 로지나가 말해줬다. 아란은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편히 쉬어. 나는 공부를 마저 해야 해. 늦게 시작한 만큼 열심히 해야지."

….…...”

책 너머로 에녹의 실망감이 여실히 전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란도 에녹과 함께 보내는 밤을 좋아했다. 그는 언제나 그녀의 쾌락을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국 매달리는 쪽은 아란이었다. 그렇지만 계속 일상생활을 제쳐둔 채 살 수는 없었다.

“저는 한낱 책만큼도 재미없는 못난 남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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