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폐하의 밤-106화 (106/146)

106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늘어진 두 팔을 본 그가 제 목을 껴안게 했다. 아란은 순순히 그 목에 매달렸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불이나 쥐어뜯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그냥 예전처럼 해. 너도 참기 힘들잖아. 이건 강간도 아니야.”

증오스러운 체온을 끌어안으며 아란이 그를 비웃었다. 비웃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건 대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간이 아니라면, 더 그렇게 하기 싫습니다.”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그는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갈라진 틈 위로 도톰하게 튀어나온 돌기를 문질렀다.

비부에 오랜만에 타인의 손이 닿자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조금 풀어졌던 몸에도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녀가 보여주는 반응 하나하나에 대공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조급한 마음을 억눌렀다. 아직 부족했다. 대공은 순행을 나갔던 어느 날, 순전히 변덕스러운 마음으로 다정한 척하던 자신에게 열렬히 화답했던 그녀를 생각했다.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는 아예 시체처럼 눈을 감아버린 아란을 바라보았다. 입을 꽉 다문 채, 반응하지 않으려고 신음조차 억누르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그때보다 더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았다.

적어도 당시 아란은 끊임없이 과거의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도드라진 유두를 다시 입에 물었다. 작은 유실을 혀로 굴리자 가는 허리가 흠칫했다. 기꺼운 반응이었다. 동시에 아래로 음핵을 끊임없이 희롱하자, 어느 순간 그녀의 몸이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떨리기 시작했다. 입구에서도 조금씩 끈적한 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액을 묻힌 손가락으로 돌기를 누르자 짧게 절정을 느낀 그녀가 그의 어깨에 손톱을 세웠다.

“아으……!”

그는 그 틈에 젖은 입구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

갑자기 몸이 열리자 그녀는 몹시 당황하며 이번엔 그의 어깨를 밀쳤다. 그는 재빨리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조금 전보다 눈에 열기가 도는 것이 아픈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도 그녀의 내부는 침입자를 반기듯 그의 손가락을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아직은 모자랐다.

“이, 이제 해도 될 것 같아.”

아란이 숨을 쌕쌕거리며 말했다.

“아직 안 됩니다.”

관계가 잦았을 때도 그녀는 오래 공들이지 않으면 그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쩌면 처음 그에게 강제로 몸이 열리던 날처럼 아파할지도 몰랐다. 그는 억지로 그때의 기억을 떨쳐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가락이 끝까지 들어가자 아란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프십니까?”

“아니.”

아프지는 않았지만 미묘한 기분이었다. 아란은 질구를 드나드는 손가락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얼추 젖은 것 같은데, 그는 손가락을 성기처럼 넣었다 빼길 반복했다. 안쪽이 아까보다 더 젖어 든 것이 아란에게도 느껴졌다. 숨결 역시 조금씩 가빠졌다.

“하아…….”

그 반응을 살피던 대공은 손가락을 하나 더 넣었다. 내부는 어느 정도 풀어져 두 개를 받는 것에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끝을 구부려 느리게 안쪽을 긁자 아란이 비음을 흘렸다.

“으응…….”

젖은 내부가 부드럽게 손가락을 조이는 느낌에 그는 아찔해졌다. 그녀가 제 아래를 감싸올 때의 감각이 떠올라 입이 말랐다. 아란처럼, 그 역시 그녀만 알았다.

그는 참지 못하고 발그레 물든 얼굴을 당겨 입을 맞췄다. 짧은 숨결과 신음이 입 안을 울렸다. 목이 마른 사람처럼 입 안 곳곳을 훑고 혀를 빨아당겼다. 그 와중에도 손을 움직이는 건 잊지 않았다.

위아래 점막이 모두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 느껴졌다. 뜨거운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이성을 잃고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손가락은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났다. 찰박찰박 음탕한 물소리가 났다. 그의 손이 아래를 헤집을 때마다 허벅지와 배에 애액이 튀었다.

“그만……. 아, 잠깐!”

쾌락의 고점이 머지않았는지, 아란이 허리를 뒤틀며 다리를 꼬려고 했다. 그는 체중으로 그녀의 다리를 눌러 더 활짝 벌렸다. 손놀림이 더 빨라졌다.

“응, 아, 아……!”

마침내 절정이 오자 그녀가 그의 목을 놓고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대공은 그 얼굴이 보고 싶었지만, 지금 팔을 내리면 아란이 화를 낼 게 분명해 잘게 떠는 몸에 입 맞추기만 했다. 비록 얼굴은 가렸지만, 그녀의 온몸이 조금 전 느낀 쾌락의 증거를 전부 내보였기에 그래도 만족했다.

그는 여운으로 떠는 몸을 쓸고 또 쓸었다. 아, 그는 역시 그녀를 두고 죽을 수 없었다.

호흡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아란이 조심스레 얼굴을 가린 팔을 내렸다. 그러나 아직도 뺨이 발그레했다.

“이제 됐으니까…….”

빨리 목적을 이루자고 말하려던 아란은 애액이 그의 손을 전부 적시고도 모자라 끈적하게 고여 떨어지는 것을 보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리고 기회를 엿보던 대공은 그녀가 충격으로 굳은 사이 흥건히 젖은 밀부에 입술을 댔다.

“뭐 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란이 그의 머리채를 잡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한껏 예민해진 곳에 그의 혀가 파고들자 그대로 무너졌다. 이어 콧날이 음핵을 비비는 순간, 말 그대로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자, 아……! 으응!”

아란은 격렬하게 몸을 틀며 그의 머리카락을 닥치는 대로 잡아당기고 어깨를 발로 찼다. 아프지도 않은지 그는 걷어차이면서도 놓아주지 않았다.

“안 돼, 안, 아, 아……!”

몰아치는 감각에 그녀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아란은 되는대로 울부짖다 종내엔 애타게 애원했다. 죽은 것처럼 반응하지 않고 견디겠다는 다짐은 진작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는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버둥거리는 다리를 제 어깨에 걸치고, 그녀가 더 큰 쾌락에 몸부림칠 때까지 약점을 공략했다.

“아으으응……!”

마침내 쾌락에 굴복한 그녀가 길게 신음하며 허벅지를 꽉 조였다. 애액이 왈칵 흘러 그의 입가를 더럽히는 걸 느꼈지만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만, 하라고, 했잖아……!”

여운으로 떨면서 그녀는 눈물 고인 눈으로 대공을 노려보았다. 어쩔 줄 모르는 그녀와 달리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젖어 번들거리는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아란의 얼굴이 더 달아오를 수 없을 만큼 빨개졌다. 그녀는 거의 흐느끼다시피 하며 늘어진 몸을 추스르려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경련하는 아래를 음험하게 바라보며 다시 빈틈을 노렸다. 그것을 깨달은 아란이 한 번 더 발길질했다. 그는 이번엔 맞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날아드는 발을 낚아채 발바닥에 얼굴과 입술을 묻었다. 엄지발가락 아래 도톰한 살점을 물린 아란은 너무 놀라 힘이 쭉 빠졌다.

“뭐 하는 거, 악……!”

발을 빼기도 전에 그가 발가락을 입에 넣었다. 뜨겁고 물컹한 점막이 발가락을 감싸는 느낌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소름이 쫘악 끼치며 힘이 풀렸다. 그녀는 붙잡힌 다리 대신 팔로 그를 말려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하지 마!”

아란은 부끄러워 미칠 것 같은데 그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

크기가 제각각 다른 발가락 열 개에 전부 입을 맞추고 그 사이를 구석구석 핥고 나서도 그는 입술을 떼지 않았다. 아란은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겨우 그를 밀쳐내는 데 성공했다. 그마저도 울기 직전인 그녀의 얼굴을 본 그가 놔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대체…….”

앙칼지게 쏘아붙이려 했을 때 밀부로 다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아흑!”

“하지만 더 젖었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그가 몇 번 더 손장난을 치자 질구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시트를 흥건히 적실 정도였다. 제 내부가 수축하며 그의 손가락을 꽉 무는 게 느껴져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의지를 따라주지 않는 몸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결국 전의를 상실하고 늘어진 아란을 껴안으며 그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지금만큼은 품 안의 그녀가 제 것이라는 충만함에 그는 기꺼이 빠져들었다. 사랑스러움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아란이 사랑스러울수록 갈증은 더 커졌다. 동시에 절망적이기도 했다. 이렇게 피부를 맞대고 있으니 그녀의 마음을 되찾을 방법을 영영 잃었다는 사실이 더 여실히 와 닿았다.

그녀는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연달아 절정을 느낀 탓에 눈을 흘길 기력조차 없었다.

후희를 즐기듯, 그는 그녀의 뺨과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부푼 가슴을 어루만졌다. 입술을 맞대려 하니 조금 전 그가 어디를 빨았는지 아는 아란이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그 얼굴마저도 너무 예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쾌락으로 우는 얼굴도 좋았지만, 지금처럼 제 품에 안겨 노곤하게 눈을 깜박이는 얼굴도 계속 보고 싶었다. 꺼지지 않는 불길 같던 욕망을 그는 한순간 잊었다. 그는 아란을 더 깊이 껴안으며 마른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그냥 이대로 잠들어 깨고 싶지 않았다.

다정한 손길에 아란은 긴장이 풀렸다. 본론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눈이 감겼다.

이런 걸 생각한 게 아니었는데…….

막 잠에 빠지려던 아란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와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대공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아란은 정말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

“너……!”

속내를 들킨 그가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그는 끝까지 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처음부터 몰아붙인 것도 그녀가 지쳐 잠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눈치챈 아란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폐하께선 몸이 너무 약하십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신다면…….”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란이 그의 성기를 덥석 잡았다. 그러자 아주 잠깐 수그러들었던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곤란했다. 이젠 정말로 참기 힘들었다.

“폐하, 제발…….”

지금은 억지로 누르고 있지만 곧 한계가 올 것이다. 그때는 그녀가 울고 애원해도 놔줄 자신이 없었다.

“말했잖아. 물러날 생각 없다고.”

아란이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가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제 안에 성기를 삽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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