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폐하의 밤-48화 (48/146)

48화

꽤 오래 아란의 입술을 탐한 대공이 곧바로 그녀를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서 열기를 읽은 아란이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대공은 딱히 그것을 탓하지 않으며 얇은 드레스를 걷어 올렸다.

아란은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저항은 없었으나 가슴팍은 가파르게 위로 솟았다 꺼지길 반복했다. 대공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드레스와 속옷을 벗겨내 그녀를 완전히 나신으로 만들었다.

등잔불 아래 마른 몸이 가감 없이 노출되었다.

대공은 평소처럼 성급하게 그 위에 올라타는 대신, 손바닥으로 선명한 갈비뼈의 윤곽과 납작한 배를 덧그렸다. 깡마른 몸이 왜 이렇게 눈길을 끄는지 알 수 없었다. 여자의 몸이란 원래 이렇게 눈앞을 어지럽게 만드는지 궁금했으나, 굳이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배 위를 배회하던 손이 더 위로 올라가 유두를 둥글게 굴렸다. 평소와 다른 그의 행동에 의문을 느낀 아란이 슬며시 눈을 떴다.

“생각해 보셨습니까?”

“뭘?”

“제 청혼.”

그 말에 아란이 난처함을 숨기지 못했다.

설마 진담이었나?

그녀는 유두를 자극하는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대공을 설득하려 했다.

“나와 혼인하면 너한텐 아무 득도 없잖아.”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너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 계승권뿐인데, 앞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고…….”

아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월경도 끊긴 지 오래고, 대공과 그렇게 많은 밤을 보냈는데 임신하지 않은 걸 보면 자신은 이미 수태 능력을 잃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야. 대공가도 손이 귀하잖아. 건강한 아내를 들이지 않으면, 읏…….”

그가 갑자기 목덜미를 아프게 깨무는 바람에 아란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잔소리는 이미 실컷 듣고 왔으니 폐하께서까지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퉁명스럽게 말한 그가 그녀의 허벅지를 한껏 잡아 벌렸다. 사내의 시선 아래 음부가 노출되자 아란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황제는 전체적으로 색이 옅었으나 그곳만은 꽤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셀 수도 없이 그를 받아들였음에도 그곳은 조밀하게 다물려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 방어적인 태세로 항상 냉담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와 꼭 같았다.

그러나 그 안이 얼마나 뜨거운지 대공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남자는 이 세상에서 그 하나뿐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순식간에 아래에 피가 몰렸다.

그는 조급해지는 걸 참으며 손가락으로 꽉 맞물린 입구를 훑었다. 입맞춤과 조금 전의 자극으로 조금 젖긴 했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금방이라도 파고들 것처럼 그 위를 슬쩍 누르자 입구 안쪽이 긴장으로 바짝 조여드는 게 느껴졌다. 대공은 서두르지 않고 흘러나온 애액을 손가락 끝에 묻히곤 틈새 위에 자리한 돌기를 눌렀다. 그러자 급히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아란의 아랫배가 움푹 꺼졌다가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왔다.

대공은 아란의 두 다리를 제 어깨에 걸치고는 그 돌기를 가지고 장난치는 데 열중했다. 음핵 주변을 문지르던 손이 모르는 척 돌기를 누를 때마다 아란이 앓는 소리를 내며 진저리를 쳤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고 나자 돌기가 단단해졌다. 빠르고 불안정한 호흡이 아란의 입술을 통해 연달아 새어 나왔다. 이제는 어떻게 스쳐도 도드라진 돌기가 닿아 괴로웠다.

손을 뗀 대공이 이어 커다랗고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으로 음부 전체를 감싸곤 힘주어 그 위를 문질렀다.

“하앗…….”

아란이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손가락으로 애무할 때처럼 강렬하지는 않아도 손바닥이 고루 애액을 묻히며 클리토리스와 돌기를 전부 압박하는 느낌은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쾌감이 느리지만 착실하게, 차곡차곡 모였다.

대공은 손바닥 아래 비부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키스했다.

“아, 흐으응.”

가볍게 간 아란이 짧은 신음을 흘리며 그의 손바닥에 끈적한 액체를 쏟았다.

대공은 태연하게 손바닥에 고인 애액을 핥으며 그새 느슨하게 벌어진 틈을 바라보았다.

제 마차에서 그녀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는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처럼 그녀가 안달하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에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건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아란을 매달리게 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폐하.”

그는 짐짓 다정한 어조로 아란을 부르며 갸름한 턱과 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셔츠를 벗었다. 두툼한 근육이 빈틈없이 들어찬 상체가 드러나자 아란이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시선을 떨구었다.

그가 아는 사람 중 아란만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이도 없었다.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은 제법 귀여웠으나 한편으론 조금 아쉽기도 했다. 대공은 황제가 다른 여자들처럼 제 몸을 갈망하는 눈으로 봐주길 원했다.

그는 심술궂게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제 배와 가슴 사이에 얹었다. 단단한 근육이 손끝에 닿자 아란이 파드득 놀라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그는 고집스레 그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도리어 구부러진 곳마다 관절이 희게 돌출된 손을 억지로 펴 제 몸을 비비게 했다.

다부진 가슴을 쓸어내리는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정사 중 단 한 번도 그에게 먼저 손을 댄 적이 없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한때는 이렇지 않았다. 어린 그녀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부끄러움이 없어 툭하면 그의 옷을 벗기려 들었다. 흉터로 가득한 그의 피부 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근육을 거리낌 없이 만졌다. 입술을 대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무구하게 그의 성감을 자극한 후에는 피가 몰린 성기가 신기하다며 하의까지 벗기려 들어 되레 그가 민망한 적도 많았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꿈처럼 까마득했다.

그의 몸은 더이상 아란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모든 여자가 탐내는 그 육체가, 아란에겐 그저 위협이었다.

다부진 어깨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움츠러들게 하고, 탄탄한 팔은 올가미보다도 끈질기게 사지를 옥죄었으며, 두툼한 가슴이 몸을 짓누를 때면 감옥에 갇힌 것처럼 숨을 쉬지 못했다. 허리 아래는 그녀를 찌르고 꿰뚫을 창이나 칼과 다르지 않았다.

대공도 아란이 저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이제 와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흘러간 일을 곱씹는 성격이 아니었고, 제가 아란에게 저지른 일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이유를 조금,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욕망과 애정이 담긴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던 그 눈동자가 보고 싶었다.

“눈 뜨십시오.”

아란이 눈을 뜨지 않자, 그가 축축하게 젖은 입구에 가운뎃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한 사람에게 오래 길들여진 입구는 별 무리 없이 손가락을 삼켰으나, 그 주인은 미미한 아픔과 이물감에 놀라 눈을 감은 채로 얼굴을 찡그렸다. 검지와 약지까지 한 번에 더 넣자 그제야 가늘게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열기에 젖어 있었으나 그뿐으로, 연인을 향한 애정이나 갈망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와 새삼스럽게 입 안이 썼다. 그는 씁쓸함을 떨치려 행위에 더 열중했다.

다소 뻑뻑한 내부를 천천히 넓히며 진입한 그가 아란의 코끝을 깨물었다.

“아,”

겁에 질린 얼굴이 쾌락으로 몽롱해지는 건 순간이었다. 억지로 그의 가슴팍에 닿아있던 아란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손톱을 바짝 세웠다.

“흣, 앗, 아으.”

손가락이 빠르게 치고 나갈 때마다 끈적이는 액체가 튀었다. 대공은 빠르고 단호하게 그녀가 좋아하는 곳만 정확히 찔러댔다. 아란은 그때마다 어김없이 그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피부가 빠르게 마찰하는데도 증발하는 것보다 흘러내리는 것이 많아 매번 찰박찰박 소리가 났다. 그 손장난에 아란은 몇 번이나 가버렸다.

“아응, 흐으, 으.”

정작 본격적인 행위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아란은 이미 녹초였다.

그러나 대공은 이제 시작이었다. 어느새 바지까지 벗어 던져 완전히 알몸이 된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등불 아래 그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아란은 못내 당황했다.

대공은 그녀가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입구를 벌리고는 선단을 밀어 넣었다. 오랜 갈망으로 달아올랐던 내부는 움찔거리며 기쁘게 그의 성기를 삼켰다.

미끌미끌한 점막이 기둥을 꽉 물며 더 깊이 들어올 것을 졸랐지만, 그는 유혹을 뿌리치고 애태우듯 천천히 진입했다.

“아으으…….”

아란이 한껏 달아오른 몸을 어쩌지 못하고 다리를 뻗어 그의 허리를 감쌌다. 대공은 한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를 악물어 참았다.

“아, 제발…….”

그녀가 간청하듯 내뱉었다.

그 한마디에 대공의 인내심이 무너졌다. 씹어 삼키듯 짧게 거친 욕설을 중얼거린 그는 더 지체하지 않고 뿌리 끝까지 진입했다.

“아흑!”

아란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세차게 튕겼다. 대공은 한순간 움직이는 것도 잊고 그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 그자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 분노로 눈앞이 홧홧해졌다.

그는 있지도 않은 그녀의 남편을 질투하며 허리를 뒤로 뺐다가 다시금 한 번에 꿰뚫었다.

“하으으응…….”

또다시 짧게 절정에 달한 아란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대공은 그녀를 배려하지 않고 빠르게 치받기 시작했다.

“아, 아아, 조금, 만, 천천히……”

“제가 아니면, 혼인, 허락 못 합니다.”

“무, 무슨 소리, 를……. 아!”

아래에서 쳐올릴 때마다 세차게 흔들리는 가슴을 대공이 콱 움켜쥐었다. 사정 봐주지 않는 우악스러운 힘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란이 고통스럽게 몸을 파드득 경련했다.

“아, 아파!”

참지 않고 내뱉은 한마디에 대공이 즉각 손을 뗐다. 그러나 이미 연약한 피부 위에는 벌겋게 손자국이 남은 뒤였다. 제가 만든 자국임에도 그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그는 그 흔적을 덮기 위해 고개를 숙여 말캉한 살을 빨아들였다. 그러나 순흔으로도 점점 짙어지는 손자국을 감출 수는 없었다. 되레 더 얼룩져 엉망이 될 뿐이었다.

그는 포기하고 아란의 등 아래로 손을 넣어 가슴을 밀착시켰다. 둥글게 부푼 가슴이 근육 아래 짓눌렸다.

“흐아…….”

결합이 깊어지자 아란이 진저리를 쳤다. 그러면서도 그녀 역시 대공의 등을 껴안고 있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