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아란은 한동안 그대로 굳어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미친 듯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대공은 되려 그녀의 팔다리를 구속하고 더 세게 끌어안았다. 빈틈없이 맞물려 있던 성기가 더 깊숙이 박혔다.
“그만, 아, 응……!”
거부를 말하기 위해 벌린 입술이 교성을 터뜨렸다. 밖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자에게도 분명히 들렸을 것이다. 수치심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자, 흐읏, 잠깐!”
아란이 저항하자 대공은 그녀의 양 손목을 한 손으로 그러쥐어 벽에 눌러 붙이고는 더 깊고 강하게 자신을 찔러 넣었다. 그럴 때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결국 아란은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는 여전히 그곳에 서서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 누가 감히 황제의 은밀한 일을 보고도 물러나지 않는 걸까.
황제의 침실 주변을 오갈 수 있는 자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아란은 수치와 쾌락으로 엉망이 된 머리로도 이성적으로 헤아리려 애썼으나, 굵은 성기가 끝까지 치받아 오자 겨우 붙잡은 정신이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이미 진득하게 풀어진 그녀의 아래가 음탕한 액체를 줄줄 흘리며 굵고 흉측한 물건을 기쁘게 삼켰다. 대공이 거세게 추삽질을 할 때마다 젖은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을 요란하게 울렸다.
어느 순간, 오싹한 쾌감이 등골을 타고 달렸다. 눈앞이 빠르게 명멸하며 저절로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감당하기 힘든 쾌락에 아래가 조였다 풀어지길 반복했다. 절정이 오는 것을 직감한 아란이 다급하게 다리를 버둥거렸다. 저 무엄한 그림자에게 그런 모습까지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것이 대공을 자극했는지, 그가 그대로 아란의 다리를 잡아 누르며 두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출렁이는 가슴을 꽉 깨물었다.
“흣!”
입술을 깨물었는데도 억누른 소리가 샜다. 그 순간에도 두툼한 귀두가 그녀가 좋아하는 곳을 긁고, 사정을 봐주지 않고 찔러댔다. 아란의 입술이 한껏 벌어졌다.
안 돼, 보지 마……!
“아, 싫……! 아응, 아아!”
절정을 맞은 아란이 온몸을 격렬하게 떨며 필사적으로 대공에게 매달렸다. 아래부터 시작된 쾌락이 단숨에 머리까지 관통했다.
그림자는 문밖에 서서 그녀의 가장 은밀한 얼굴마저 전부 눈에 담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란이 뒤늦게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으…….”
그녀가 가는 것과 동시에 파정한 대공이 잘게 떠는 몸에 입술을 맞댔다. 아란은 몸서리치며 그의 입술을 피했다. 숨 가쁜 오열과 함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그녀의 정신은 오로지 바깥에 서 있는 사람에 쏠려 있었다.
어느 정도 여운이 가시고 아란이 다시 손을 내렸을 때, 문밖엔 아무도 없었다.
* * *
황제의 첫 순행은 무탈하게, 그리고 예정보다 조금 이르게 끝났다. 드물게 설레는 낯으로 황궁을 떠났던 황제는 지치고 넋이 빠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크게 이유를 궁금해하거나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황제는 활기찼던 적이 더 드물었고, 몸도 약하니 짧은 순행마저 벅찼던 거라며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황제의 기분을 살피는 건 늘 그랬듯 이번에도 대공뿐이었다.
“폐하.”
그의 부름에도 아란은 돌아보지 않았다. 일부러 무시한 게 아니라, 아예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요즘 그녀는 어딘지 이상했다. 황제로서 쓸모를 증명하겠다며 늘 부지런히 책과 서류를 넘기던 손은 초조하게 책상 위만 두드리고, 시선은 틈만 나면 허공 어딘가에 머물렀다. 안 그래도 작은 얼굴이 눈에 드러날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폐하.”
몇 번을 불러도 듣지 못하자 답답해진 대공이 아란의 턱을 쥐고 제 쪽을 향해 돌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가 급히 눈을 깜박였다.
뒤늦게 그녀는 이곳이 자신의 집무실이며, 지금 대공을 독대하던 중이라는 걸 떠올렸다. 그가 자신을 여러 번 불렀다는 것도.
“아……. 뭐라고 했지?”
“편찮으신 게 아닌지 여쭈었습니다.”
“아니, 걱정할 것 없네.”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에도 다시 얼굴이 멍해졌다. 대공은 미미하게 눈가를 찌푸렸다. 그 앞에선 늘 맹수를 마주한 사슴처럼 긴장하던 황제가 이렇게 넋을 놓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무슨 고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살짝 벌려진 입술 틈으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본인도 자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갸름한 턱을 만지작거리던 대공이 대담하게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집무실에서 이러지 말라며 기겁했을 그녀가 오늘은 잠자코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의 뜻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단순히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서였다.
도통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그녀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대공은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 손을 꽂아 넣고 다짜고짜 끌어당겨 입술을 겹치려 했다. 그제야 아란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를 밀쳐냈다.
“뭐, 뭐 하는 거야?”
문밖에 있을 사람들을 의식한 그녀가 한껏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제 앞에서 마음을 놓으면 어찌 되는지 잘 아시는 분께서 계속 긴장을 풀고 계시기에, 드디어 절 완전히 허락하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농담처럼 가벼운 어조였으나 맨 밑바닥엔 은근한 노기가 깔려있었다.
“……미안하게 되었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아 그러니 이해해 주게.”
빠르게 황제의 모습을 되찾은 아란이 사과했다.
“단순히 여독 문제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문제가 폐하를 괴롭히는지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그런 거 없어.”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었다. 거듭된 거짓말은 대공을 더 언짢게 만들었지만, 아란은 그의 기분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당장 제 불안을 추스르기에도 벅찼다. 공작성에서 누군가에게 대공과의 관계를 들킨 이후, 그녀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초조했다.
도대체 누구였을까.
아란은 그자의 외형을 보지 못했다.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살짝 열린 문틈으로는 그자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고, 그자가 서 있던 복도가 방보다 환해 역광이 진 탓도 컸다. 키가 큰 사내라는 것만 어렴풋이 파악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했으면 어떡하지?
공작성은 그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만 천 명에 가까운 거대한 성이었다.
그 사람들이 전부 자신과 대공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게 되면…….
아까부터 대공이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아란은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 사이 그의 눈매는 점점 차가워졌다.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거짓말이라니?”
이번에도 그녀는 잡아뗐다.
거짓말을 할 거면 들키지나 말던가.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대공은 감히 자신을 속이려 드는 그녀에게 벌을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저번처럼 이 책상 위에 그녀를 눕히고 정신 못 차릴 때까지 괴롭혀 줄 수도 있었다. 아직 그러지 않는 건, 며칠 새 야윈 얼굴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황제에게 너무 물러졌다. 그 사실을 본인도 자각하고 있었으나 아직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간 너무 괴롭혔으니 당분간은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마음 편히 생각했다. 그는 한 번 화를 눌러 참고는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그녀를 달랬다.
“고민이 있다면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다정한 목소리에 아란의 눈이 흔들렸다. 확실히, 그녀에겐 이런 방식이 잘 통했다. 대공이 까칠해진 뺨을 쓸며 덧붙였다.
“제 앞에선 억지로 꾸며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폐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종이니까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비록 아란이 원한 일은 아니었다고 해도.
여기서 비밀 하나를 더 털어놓는다 하여 두 사람의 사이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망설이던 그녀가 마침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 봤어.”
“무엇을 말입니까?”
“공작의 성에서 너와 내가 그러고 있던 거…….”
아란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를 떠올리자 또 그날의 수치와 모멸감이 되살아났다. 주먹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예? 누가 감히…….”
“그래서 내가 그만하라고 했는데……!”
그녀가 원망스럽게 외쳤다.
반대로 대공은 조금 기가 찼다. 황제의 말을 들어보니 누군가 그들의 정사를 훔쳐본 모양이었다. 그제야 다음날 그녀가 도망치듯 공작성을 떠나 황궁으로 향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작 그런 일로…….
아무리 허울뿐이라지만 그래도 황제였다. 저 멀리 어느 나라의 왕들은 신에게 제를 올릴 때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난교를 벌이기도 한다던데, 제국의 주인 된 자가 겨우 그런 일로 끙끙 앓고 있었다니, 우스우면서도 한심했다.
아란이 들으면 좌절할 일이지만, 확실히 그녀는 성군이 되기엔 너무나 그릇이 작았다. 차라리 르벨 백작령 정도의 작은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였다면 그녀도, 그녀의 영지민들도 행복했을 것이다.
대공의 생각을 모르는 아란이 절박하게 물었다.
“어떻게 해? 소문이라도 나면…….”
“무엇을 그리 애태우십니까. 폐하와 제가 뒹굴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기라도 할까 봐 그러십니까?”
“뭐?”
천박한 표현에 아란이 대답할 말을 잊고 입을 벌렸다.
“어, 어떻게 애태우지 않을 수 있어? 우리는 부부도 아니고, 하다못해 연인도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이 알면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야.”
고지식한 아란은 정부란 개념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공이 설핏 웃음을 흘렸다.
“그게 그리도 걱정되신다면, 이참에 연인이라고 발표할까요?”
“무슨 말을…….”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아란의 낯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건 또다시 대공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 그는 앙갚음하듯 일부러 더 천박한 표현으로 황제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사실 다를 것도 없지 않습니까. 폐하와 저처럼 매일 밤 붙어먹으면서 입으로 사탕발림이나 몇 마디 늘어놓으면 그게 연인 아닌가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대공이 저런 식으로 말할 때면, 아란은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는 아란을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 취급했지만, 그녀는 연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적어도 대공보다는 훨씬 잘 안다고 자부했다. 아란은 단 한 번도, 에녹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 없었다.
물론 마냥 순수한 감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를 보면 입술을 맞대고 싶고, 안기고 싶고, 때로는 더 강렬한 감각을 원할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전부 부차적인 일이었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때로는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그런 애틋함을 저런 식으로 폄하 당하는 건 괴로웠다.
“연인이 싫으시다면, 정부는 어떠십니까.”
아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물론 제 신세가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의 입으로 확인받으니 더 비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