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아란은 가슴을 애무하는 그의 머리를 밀어내며 허리를 뒤틀었다.
“으응, 이제 거긴…… 그만…….”
대공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을 바라보기가 힘들어 아란은 시선을 피했다.
“허리 드세요.”
어느새 허리까지 흘러내린 드레스를 그가 완전히 벗겨내며 말했다. 아란은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늘 언제 옷이 벗겨졌는지도 모르게 알몸이 되곤 했는데, 이렇게 그를 도와 허리를 들으려니 몹시 부끄러웠다.
벗겨진 드레스가 마차 바닥으로 떨어졌다. 속옷 한 장만을 남기고 알몸이 되었으나 등 아래 깔린 숄과 대공의 체온 덕에 춥지는 않았다
“착하십니다.”
대공이 그를 칭찬하듯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아란은 멍한 머리로 어쩌면 지금 이 행위가 진짜 연인들의 것을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그녀가 에녹과 나누길 원했던 애틋한 성애 같은 것.
그러나 지금 그녀가 마주한 건 에녹을 닮은 다른 남자였다.
그런데 왜…….
대공이 아란의 한쪽 다리를 제 어깨 위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속옷을 건드렸다. 그의 손이 닿은 후에야 아란은 속옷이 젖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이 더 달아오를 수 없을 만큼 붉어졌다. 아란은 분명 대공이 자신을 음탕하다며 조롱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는 한동안 속옷을 벗기지 않고 손가락으로 그 위를 문질렀다. 연약한 살이 그의 손가락과 속옷 아래 뭉개졌지만 힘을 주어 만지는 건 아니라 아프지는 않았다. 대신 젖은 천이 클리토리스와 질 입구에 질척하게 달라붙어 비벼지는 느낌이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웠다.
손가락 윗부분이 속옷과 함께 질구로 들어왔을 땐 저절로 허리가 움찔거렸다. 안쪽이 계속 움찔거리며 입구에 살짝 들어온 손가락 윗마디를 조였다.
“다른 때보다 더 기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대공이 다시 유두를 물며 물었다. 치아가 단단해진 살점을 누르자 헉 소리가 났다.
“아, 니…….”
힘겹게 부인하는 그녀를 벌주듯 그가 유두를 조금 세게 깨물었다.
“아앗!”
손가락으로는 계속 속옷 위를 비비고 있었다.
“아으……아, 응.”
그것만으로도 아란은 전에 없이 달아올랐다. 특히 유두와 클리토리스가 동시에 문질러질 땐 두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고는 덜덜 떨었다.
몇 번이나 속옷 위로 손가락을 밀어 넣던 그가 머리를 내려 속옷 위에 입을 맞추고는 천과 돌기를 한꺼번에 빨아들였다.
“아, 안……, 아!”
날카로운 쾌감에 절로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마차를 세워둔 곳과 저택은 꽤 거리가 있었지만, 밤이라 저택까지 들렸을지도 몰랐다. 황급히 다시 입을 막은 그녀가 다리에 힘을 주어 그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
“잠, 잠깐만…….”
아무래도 이건 이상했다. 아직은 괜찮지만 이대로라면 분명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아래를 핥던 대공이 고개를 들었다.
“아프십니까?”
“그건 아, 닌데……. 너, 무 이상해……. 하지 마……”
새빨개진 얼굴로 대답하는 아란을 보며 대공이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곤 다시 한번 속옷 위에 입을 맞추곤 클리토리스가 위치한 곳에 이를 세웠다.
“아……!”
아란의 몸이 격렬하게 튀어 올랐다. 대공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아란은 부끄러움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아래에 뜨거운 것이 왈칵 흘러내리는 느낌과 함께 눈앞에서 별이 튀었다.
“으응, 으.”
한껏 억눌린 소리가 목 깊이 울렸다. 커다란 손에 잡힌 허벅지가 부르르 경련했다. 절정이었다.
대공은 그제야 마지막 속옷까지 완전히 벗겼다. 그리고 아란이 절정의 여운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손가락을 넣었다. 내벽이 손가락을 꽉 물었다. 경련하는 내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 흐읏, 응…….”
그가 쾌락으로 무방비해진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세웠다. 손가락이 깊게 내부를 쑤실 때마다 애액이 왈칵 쏟아져 아래와 숄을 흥건히 적셨다.
“이렇게 뜨거워져서는…….”
평소보다 훨씬 뜨겁고 흥건한 비부에 대공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조금 다정하게 군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감당하기 힘든 쾌락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충분히 안을 넓힌 대공은 더 지체하지 않고 손가락을 빼냈다. 그도 이제 한계였다. 바지춤을 내린 그가 단번에 아란을 꿰뚫었다.
“아아아!”
아란이 비명 같은 교성을 질렀다. 그렇게 거대한 것을 넣었는데도, 얼마나 젖었는지 아무 저항 없이 쑥 들어갔다.
단지 삽입한 것만으로도 아란은 다시 한번 절정에 올랐다. 점막이 있는 대로 성기를 조이며 압박했다.
“너무, 좁아.”
지나친 압박감에 그가 잘생긴 눈썹을 찡그렸다.
아란 역시 충격을 받았다. 삽입만으로 절정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대공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란은 겁을 집어먹었다. 아파서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쾌락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 야, 아, 모르겠어…….”
녹색 눈동자엔 벌써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대공은 다정한 척하겠다는 결심도 잊고 거칠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저 없이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한번 빠르게 진입했다. 그러나 이미 젖을 대로 젖은 아란은 아무 무리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더 난폭하고 거칠게 움직여 주길 원했다.
“으아, 아……! 아, 앙!”
아란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쾌락이 너무 커 아픈 줄도 몰랐다. 그가 아래를 한 번 치받을 때마다 애액이 흥건하게 흘러넘쳤다.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그가 안에서 빠져나가려 하면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고 매달리게 되었다. 머리부터 아래까지 온통 엉망이 된 것 같았다.
“아, 응, 어떻, 게, 해……. 너무…….”
아란은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 줄도 모르고 나오는 대로 외쳤다. 대공 역시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접합부가 너무 뜨거워 녹아내릴 것 같았다. 늘 소극적으로 그가 주는 쾌락을 견디기만 하던 황제가 이렇게까지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정신없이 아란의 입술에 키스하며 거세게 추삽질을 했다. 손으로는 빠르게 흔들리는 가슴을 꽉 쥐었다가, 제 것이 박힌 구멍 위에 있는 돌기를 문지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란은 자지러지며 그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어느새 두 사람은 땀과 서로의 체액으로 흠뻑 젖었다.
“응, 앗, 좋아……. 조금 더, 아!”
대공은 그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란이 입술을 벌려 숨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동시에 허리가 세차게 튀어 올랐다. 신음도 되지 못한 흐느낌이 그녀의 입에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대공 역시 아란의 내부 깊이 사정하며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아, 에녹……!”
쾌락에 빠져 이성을 잃은 아란이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대공의 얼굴이 굳었다. 눈을 감고 있던 아란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대공은 잠든 황제의 몸에서 제 것을 빼냈다. 아래를 확인한 그가 황망하게 입을 벌렸다. 애액과 정액이 뒤섞여 황제도 자신도 아래가 엉망이었다. 숄을 깔지 않았다면 마차 의자를 바꿔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는 숄에 아무렇게나 제 성기를 문질러 닦았다. 한차례 사정했는데도 아직 단단했다. 평소 같으면 기절한 황제를 부여잡고 남은 욕망을 해소했을지도 몰랐다. 그를 유혹하듯 아직도 그녀의 몸은 뜨거웠다. 그러나 어쩐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는 체액으로 엉망이 된 숄과 구겨진 드레스 대신 제 겉옷으로 아란을 단단히 감쌌다. 품 안에 안아 들자 그녀가 잠결에 이마로 그의 심장 위를 비볐다. 마음이 크게 일렁였다. 예전에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너무 오래 잊어버리고 있던 탓에 그게 나쁜 건지, 아니면 좋은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밤공기가 차가웠는지 아란이 몸을 떨었다. 그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밤새 저택을 감시하는 경비병과 사용인들의 눈을 피해 아란의 침실에 도착한 그는 그대로 그녀를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부유한 르벨 백작의 저택은 수도 시설이 훌륭히 갖춰져 있었다. 그는 꼼꼼하게 아란을 씻긴 후 커다란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침대 위에 눕혀주었다. 그리곤 말없이 황제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 곧 조용히 그곳을 나섰다.
* * *
다음 날, 르벨 백작과 그의 딸 부부는 몹시 서운한 얼굴로 황제와 대공을 배웅했다. 코델리아는 나오지 않았다. 아란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코델리아가 대공에게 했던 고백과 그 직후 자신이 대공과 나눈 행위를 생각하면 죄책감에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코델리아는 몸살이 심해 배웅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괜찮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그리고 덕분에 다음 장마는 걱정 없이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사히 순행 마치시길 빌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작이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올렸다. 아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마차에 올랐다. 제방이 다 보수되면 다시 오고 싶었다. 물론 코델리아가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코델리아는 비록 대공을 유혹하는 데 실패했지만, 아란에게는 한 가지 힌트를 주었다. 지금까지 아란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대공에게 짝을 찾아주면 어떻게 될까?
의외로 고지식한 그이니 혼인을 하고 나면 아란을 괴롭히지 않을지도 몰랐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혼인 후에도 그가 계속 자신을 괴롭히거나, 가치가 사라졌다며 그녀를 죽이려 들 수도 있었다. 그런 건 원치 않았다.
* * *
그 후로도 아란의 순행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어느덧 순행이 거의 마무리되어 마지막 목적지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 순행길로 선택된 곳은 사일러스 공작령이었다. 아란이 힐끔 대공의 눈치를 살폈다. 사일러스 공작령엔 제국의 제 2도시라 불리는 다나르가 있기 때문에 순행길에 그곳을 배제하기는 어려웠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그녀의 시선을 느낀 대공이 물었다. 이럴 때면 그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정말 조금이라도 쳐다보려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그녀를 돌아보곤 했다.
“아니.”
그날 밤, 마차에서 그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 그는 묘하게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순행 내내 그는 충실한 신하처럼 수발만을 들었을 뿐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아란은 자신이 잘못이라도 했나 떠올려 보았지만 어쩐지 그날 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정신없이 그에게 매달렸다는 것만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