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폐하의 밤-31화 (31/146)

31화

실은 아직도 아란은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눈앞에선 배우들이 혼신을 다한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관객들은 전부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오로지 그녀만 쾌락에 달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 상황이 은근히 야릇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걸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게 틀림없었다. 아란은 어느새 제가 스스로 대공의 성기를 문지르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갑자기 대공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란은 이제 그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했다. 기다란 손가락이 질구 깊숙이 박혔다. 동시에 엄지가 클리토리스를 꽉 눌렀다.

“흐으응……!”

애액이 왈칵 쏟아지고, 동시에 아란이 대공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 옷을 입었다 해도 꽤 아팠을 텐데,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하아, 하아…….”

절정이 끝나고도 아란은 한동안 대공에게 기대 있었다. 뒤늦게 몰려온 자괴감으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기껏 한 단장이 쓸모없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아란이 다시 이성을 되찾자, 대공이 옷차림을 정리해준 후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어디 가려고……?”

아란은 영문도 모르고 그의 손에 끌려 일어났다. 대공은 그녀를 커튼 뒤로 데려갔다. 그리곤 손수건으로 흥건히 젖은 비부를 닦아주었다.

한껏 예민해진 곳이 부드럽게 쓸리는 느낌에 아란이 반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많이 깨물었는지 입술이 온통 부풀어 있었다. 그 입술을 대공이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어깨를 눌렀다. 이미 힘이 빠진 다리가 맥없이 꺾였다. 아란은 졸지에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다행히 카펫이 푹신해 무릎을 다치는 일은 없었다.

일어나려 하자 대공이 어깨를 더 세게 눌렀다. 그제야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란은 제발 자신이 잘못 이해했길 바라며 간절히 대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냉혹한 얼굴로 말없이 제 뜻을 강요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자, 그가 격려하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정한 손길이었으나 자세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아란은 그의 허리띠를 풀고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굵고 흉측한 성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목이 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완전히 단단해진 성기 끝엔 투명하고 조금은 비릿한 냄새가 나는 액체가 고여 있었다.

각오했어도 그것을 입에 담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마침내 아란이 눈을 질끈 감고 귀두 앞부분을 조금 머금었다.

대공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인내심이 강한 편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치미는 충동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혀가 민감한 곳을 감싸는 기분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쑤시기엔 그의 것을 물고 있는 입술과 턱은 너무 작고 연약했다. 내키는 대로 굴었다간 저 입술과 목구멍 안쪽이 어떻게 되는지, 그는 재회하던 날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땐 쌓인 분노를 참기 힘들어서, 또 그녀에게 제 처지를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더 잔인하게 행동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란이 다시 눈을 떠 그의 표정을 살폈다. 젖은 눈동자가 애처로우면서도 묘하게 가학성을 자극했다.

대공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뺨과 귓불을 문질렀다. 아란이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은 작은 움직임에도 후드득 굴러떨어졌다.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그가 선심 쓰듯 말했다. 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두 부분만 겨우 깔짝이던 그녀가 서둘러 입안에 든 걸 뱉었다. 대신 한 손으로 다 감싸지지 않는 성기를 두 손으로 잡곤 귀두부터 뿌리까지 훑었다. 성기 끝에 다시 맑은 방울이 맺혔다. 그걸 본 아란은 혀를 뾰족하게 세워 선단의 구멍을 자극했다. 전부 그가 가르친 것이었다. 아직 서툴긴 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크나큰 발전이었다.

대공의 입에서 한숨 같은 신음이 샜다. 그게 재촉처럼 느껴져 다시 귀두를 물자 대공이 인상을 쓰며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읏.”

아프긴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와 재회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엔 지금과 같은 행위를 곧잘 요구받곤 했었다. 그때 그가 어떻게 굴었는지 떠올린다면 지금은 차라리 신사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성기는 곧 그녀의 타액으로 축축해졌다. 대공이 스스로 제 물건을 잡고 그녀의 입술에 비볐다. 그가 더 큰 자극을 원한다는 걸 안 그녀는 그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입을 한껏 벌려 성기를 더 깊이 물었다. 귀두와 그 아랫부분이 완전히 그녀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이는 세우지 말고.”

그 말에 아란은 입을 더 크게 벌리고 혀를 내밀어 아랫니가 그의 것에 닿지 않게 했다.

“하아.”

뜨겁고 질척한 느낌에 대공이 눈을 감고 목을 뒤로 젖혔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고작 반을 삼켰을 뿐인데 한계까지 벌어진 턱이 뻐근했다. 입을 가득 채운 성기는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찌를 것 같았다.

아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망설였다. 삼키지 못한 타액이 넘쳐 입술과 턱을 적셨다.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자 대공이 느리게 허리를 움직여 성기를 밀어 넣었다.

“읍……!”

한순간 중심을 잃을 뻔한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의 허벅지를 잡았다. 그 순간 입안을 채운 성기가 크게 꺼떡였고, 그 바람에 그의 성기를 아주 살짝 깨물고 말았다.

제 실수를 깨달은 그녀는 대공이 화를 낼까 봐 잔뜩 긴장했다. 다행히 그는 짧게 신음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란이 안도했을 때, 대공이 머리채를 세게 잡았다. 고통에 주춤하는 사이 갑자기 성기가 목구멍 깊이 박혔다.

“큭!”

아란은 질식할 것 같은 고통에 버둥거렸다. 겨우 그쳤던 눈물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선단이 입술 근처까지 빠져나갔다가 다시 목구멍 안쪽에 꽂힐 때마다 고통에 찬 신음이 튀어나왔다.

다행히 괴로운 순간은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까 아란이 옷 위로 그의 것을 문질렀을 때부터 그는 이미 한계에 가까워져 있었다.

몇 번 왕복하지 않아 대공이 사정했다. 목구멍 깊숙이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뿜어졌다. 아란은 비릿한 냄새에 몸서리를 쳤지만, 그가 머리채를 놔주지 않는 바람에 전부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삼킨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성기가 입안에서 빠져나가고, 공기가 한꺼번에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아란은 입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대공이 제 아래를 닦아내고 옷차림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 것을 정리한 그가 아란을 일으켜주었다. 엉망이 된 그녀와 달리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했다.

“괜찮으시지요?”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아란은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술을 닦아주려던 대공이 멈칫했다. 이미 손수건은 아란의 체액으로 엉망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수건을 버리고 정액과 타액으로 범벅된 입술을 제 소매로 꼼꼼히 닦아주었다. 그 손길이 몹시 부드러웠다. 그러나 표정은 냉정해서, 아란은 아직 그의 기분이 언짢다는 걸 눈치챘다.

그가 또 다른 것을 요구할까 봐 잠시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는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장소가 난감하긴 했으나 이 정도면 참을 만했다. 많이 아프지도 않았고, 행위도 평소보다 빨리 끝났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대공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란을 힐끗 쳐다보았다. 평소엔 저렇게 울리고 나면 마음이 흡족해졌다. 그 얼굴을 보면 그녀가 자신만의 소유물이라는 걸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아란은 그의 앞에서만 딱 지금처럼 울었다.

웃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웃는 얼굴은 이미 질리게 보았다. 그보다는 우는 얼굴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성욕은 얼추 수그러들었지만 분노는 여전했다. 보고 있을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아, 대공은 다시 무대로 눈을 돌렸다.

그곳의 황제는 아란과 달리 행복에 겨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랑에 빠진 눈빛과 풍부한 표정이 꼭 어린 날의 황제를 떠올리게 했다. 멍청하고 분별없는 것마저 닮았다.

―그가 없다면 황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만이 짐의 삶을 빛나게 할 수 있다.

아란 역을 맡은 배우가 외쳤다.

기사를 국서로 맞으려 했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실패한 그녀는, 종래엔 황위를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귀족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그마저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두 사람은 영영 이별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래도 대공은 그것이 나름대로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극 중의 황제에겐 복수심을 불태우며 돌아올 옛 연인이 없을 테니 말이다.

*

새로 받은 영지에 도착하자마자 에녹은 자신이 서쪽 국경의 한 부대로 징집되었다는 걸 알았다. 쉽사리 그 말을 믿지 못하는 그에게, 징집 소식을 알린 기사는 황녀의 인장이 찍힌 동의서를 보여주었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분명 아란의 인장이었다. 그녀는 늘 그 인장을 손가락에 끼고 다녔으므로 모를 수가 없었다.

기사는 넋이 나간 그를 비웃으며 황녀가 곧 혼인할지도 모른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거짓말이라 믿고 싶은 현실이었다.

서쪽 국경으로 간 후에도 그는 한동안 아란의 연락을 기다렸다. 정말로 아란이 자신을 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황자들이 중간에 작당질한 게 틀림없었다. 에녹은 언젠가는 그녀가 자신을 다시 불러줄 거라고 믿으며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록 황녀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에녹은 그것도 황자들의 방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의 추측은 맞았다.

그사이 그와 비슷한 시기에 서쪽 국경에 왔던 이들은 전부 죽었다. 아무리 무심한 그라도 주변에서 이어지는 죽음엔 정신이 피폐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해가 지났을 때, 그 기다림은 분노가 되었다. 아란이 정말로 자신을 버렸는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그녀는 그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차라리 부모와 함께 죽었더라면 이런 비참함은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결과적으로 그를 더 깊은 나락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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