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정원을 벗어나자 울상이 되어 황제를 찾아다니는 시종장과 근위대가 보였다. 대공의 품에 안긴 아란을 본 그가 금방이라도 졸도할 듯한 얼굴을 했다.
“어디 계셨습니까, 폐하! 갑자기 사라지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란은 눈을 깜박여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물론 그를 애태우게 한 원흉은 대공이었지만 그 사실을 솔직히 밝힐 수는 없었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본 시종장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디 편찮으신 겁니까?”
“정원에서 길을 잃고 놀라신 듯하네.”
“……주위를 살피지 않은 제 잘못입니다. 곧바로 침실로 모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뻔뻔스레 고개를 끄덕인 대공이 그녀를 안고 침실로 향했다. 아란은 멍청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온화한 얼굴은 평소 연기하던 그대로였지만 눈빛이 싸늘한 게 화가 난 것 같았다. 이제 희미해진 뺨의 손톱자국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는 침실에 도착할 때까지 아란에게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맞추지도 않았다.
침실에 도착하자 시녀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어째서 대공이 황제를 안고 왔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육중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아란이 버릇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그제야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 앞에서 쓰고 있던 정중한 가면은 이미 벗겨져 있었다.
아란은 차마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대공이 그녀를 그대로 침대에 눕히려 했다. 아란이 고개를 저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해.”
짙은 색이라 얼핏 보기엔 티가 나지 않았지만 풀물이 들고 흙이 잔뜩 묻어있을 게 분명했다. 그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눕고 싶지는 않았다.
“시트는 아침에 갈면 됩니다.”
“속이 좋지 않아. 불편하기도 하고.”
아란이 약하게 항의했다. 대공이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시녀를 부를 테니 이만 돌아, 아!”
조심스럽게 그에게서 떨어지려 했을 때, 갑자기 대공이 그녀를 거칠게 잡아당기더니 드레스를 벗기기 시작했다. 성급한 손길에 얇은 드레스가 거의 찢기다시피 했다.
“시녀를 부르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폐하의 시중은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으니까요.”
“잠깐, 그만…….”
“역겨워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는 기어이 아란을 속옷 차림으로 만들고 욕실로 데려가 손발, 그리고 더러워진 얼굴을 씻겨주었다. 평소보다 난폭한 태도에 두려움을 느낀 아란은 그가 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공이 막무가내로 구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진심으로 화가 난 것 같았다.
다시 아란을 데리고 침실로 돌아온 대공은 반쯤 젖은 속옷마저 벗겨버렸다. 순식간에 나신이 된 그녀가 몸을 떨자 그가 사납게 웃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떠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다 풀리지 못한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침의를 입혀드리는 건 조금 미뤄도 되겠지요.”
희게 드러난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가 속삭였다. 허락을 구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 통보와 다를 게 없었다.
“겁먹고 떠는 것만 잘하시는 줄 알았더니 사내에게 제법 새살댈 줄도 아시더군요.”
“내가, 언제 새살댔다고 그래.”
아란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어째서 화가 났는지 떠올리려 했으나 아무것도 짐작되는 바가 없었다.
자꾸 사일러스 공작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그와 춤을 추었던 게 못마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일반적인 연회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일일 뿐이다. 무엇보다 그와 나누었던 대화는 결코 새살대었다고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집중하지 못하는 그녀를 질책하듯 대공이 유두를 꼬집었다.
“흑……!”
순식간에 아란은 침대 위에 처박혔다. 커다란 손이 말캉한 가슴을 터뜨릴 듯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파…….”
정말로 터질 것 같아 겁에 질린 아란이 애원했다.
대공은 무심한 척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사실은 분노로 눈앞이 새하얬다. 황제의 몸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이대로 아무 준비 없이 그녀의 몸을 파고들어 아프도록 괴롭히고 싶었다. 벌을 내리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전부 그만이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의 생각을 알아챈 듯 아란은 아까부터 떨고 있었다. 그녀는 눈치는 별로 없지만 그의 감정엔 예민하게 반응했다. 어릴 때부터 그의 기분을 살피던 버릇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손에서 힘을 풀고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유두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가 황제의 몸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 중 하나였다. 분홍색 유두는 아주 예민해서 조금만 만져도 금세 단단하게 일어섰다.
“흐음…….”
쭙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빨아들였다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이를 세우자 아란이 비음을 흘렸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수치로 얼굴을 붉혔다. 수줍게 눈꺼풀을 내리깔며 몸을 떠는 모습이 꼭 사랑하는 남자를 처음 받아들이는 가련한 연인 같았다.
본인이 떠올린 생각에 대공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황제의 연인이 아니고, 황제 역시 겁에 질려 저항할 의지를 잃은 것뿐이다.
거칠게 사고를 지워버린 그는 그녀의 정점을 집요하게 희롱했다. 가볍게, 그러다 깊이 빨아올리고 핥듯이 혀 전체로 굴렸다가 지그시 깨물며 꼬집었다.
연이은 자극에 아란이 몸을 살짝씩 뒤틀었다. 억지로 참고는 있지만 간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신음이 튀어나왔다. 그럴 때마다 조그만 얼굴이 애처롭게 일그러졌다.
대공은 그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피의 결혼식 이후 그녀는 여간해선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늘 입술을 깨물고 감정을 삭였다. 밀랍인형 같던 낯이 극적으로 변하는 건 오직 정사를 나눌 때뿐이었다.
대공은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찌푸려진 미간, 그리고 가쁜 숨을 내뱉는 입술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눈에 담았다. 아란은 그의 시선을 느낄 때면 더욱 수치스러워했다.
점점 달아오르는 여체를 알면서도 그는 모르는 척 유두만 희롱했다. 마음 같아선 진작 쑤셔 넣고 싶었으나, 하고 싶은 대로 굴었다간 상처를 낼 게 분명했다. 우습게도,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그게 늘 그의 신경을 거슬렸다.
그러면서도 사일러스 공작과 얼굴을 맞대고 다정하게 춤을 추던 황제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그는 간신히 화를 눌러 참으며 가슴을 크게 베어 물었다.
“하읏!”
아란이 아픔과 쾌락으로 경련하며 목을 젖혔다.
“얼른 박히고 싶어 몸이 달뜨십니까?”
“그, 그런 말을…….”
대공이 그런 천박한 소리를 지껄일 때마다 아란은 귀를 막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을 보였다간 더 심한 말을 듣게 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한참이나 가슴을 애무하던 그가 오므려진 다리를 크게 벌렸다. 갑자기 아래가 드러나는 바람에 아란은 몹시 당황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대공이 다리 사이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들어오면서 등불을 환히 밝혀둔 터라 흠뻑 젖은 아래가 고스란히 보였다. 본능적으로 아래를 가리려던 아란이 한순간 멈칫했다. 집무실에서 어떻게 당했는지 기억이 난 탓이다. 그와 동시에 대공 역시 같은 장면을 생각했다.
그날을 떠올리자 반쯤 발기해 있던 성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일어섰다. 대공은 어쩔 줄 모르는 아란을 엎드리게 한 후 엉덩이를 높게 쳐들었다. 굳게 다물린 항문과 그 아래 붉은 속살이 더 자세히 보였다. 손가락을 갖다 대자 근육이 긴장하며 두 구멍이 움찔거렸다.
“안 돼…….”
아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고여 있던 애액이 주룩 흘렀다. 대공이 스스럼없이 그것을 핥았다. 뜨거운 입술이 허벅지부터 입구까지 쓸어올렸다.
“아……!”
음탕하게 질척이는 소리를 듣다 못한 아란이 결국 귀를 막았다. 그러나 아래의 감각까지 차단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게걸스럽게 흐른 애액을 전부 핥고도 모자랐는지 질구 안까지 혀가 들어왔다.
화들짝 놀란 아란은 앞으로 기어가려 했지만 그가 단단히 허리를 감고 있어서 불가능했다.
외부의 침입을 허용한 내벽이 저절로 꽉 조여들며 그의 혀를 감쌌다. 뜨거운 숨결과 그보다 더 뜨거운 혀 때문에 아래가 녹아내릴 것 같았다.
“아, 아…… 그만…….”
그 감각에 진저리를 치면 집요하게 희롱당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유두가 이불에 쓸렸다. 그럴 때마다 질벽 안쪽에 뜨겁고 간지러운 감각이 고였다.
아란은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려는 허리와 엉덩이를 간신히 억눌렀다. 그러나 어서 넣어달라는 듯 안달하는 내벽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혀가 성기처럼 안쪽을 쑤실 때마다 조금씩 쾌감이 쌓이며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흣, 으응…….”
아란이 절정을 맞이하기 직전, 갑자기 대공의 혀가 쑥 빠져나갔다. 갈 곳을 잃은 쾌락이 온몸을 마구잡이로 타고 흘렀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흐느낌 비슷한 소리가 났다. 대공이 귀를 막은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폐하.”
아란이 흐려진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순수한 갈망으로 가득 찬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대공은 마음이 크게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어서 그녀를 절정에 오르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화가 풀린 게 아니어서, 그녀가 원하는 걸 내주고 싶지 않았다.
“저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말하며 대공이 아란의 손을 제 성기로 가져다 댔다. 아란은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겨우 이성의 끈을 다잡은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공작의 것을 원하시나요?”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공작 때문에 저를 그리 격렬히 거부하신 게 아닙니까. 구토까지 할 만큼 제가 역겨우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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