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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의 밤-13화 (13/146)

13화

몇 번의 절정으로 완전히 지친 그녀를 껴안고 욕심을 채운 그가 길게 몸을 떨며 다시 사정했다. 정액이 애액과 뒤섞여 아란의 엉덩이를 적셨다.

그녀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대공이 문을 열었다. 잔뜩 겁을 먹은 아란이 황망히 침실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아란은 그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걸 깨달았다. 긴장이 풀리는 동시에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대공은 분노와 수치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느리게 자신을 빼냈다.

“또 뺨을 때리실 겁니까?”

아란은 대꾸하지 않았다. 어설픈 분노는 그를 즐겁게 할 뿐이다. 대공은 자꾸만 미끄러지려는 그녀를 고쳐 안고 침대까지 걸어갔다.

등에 푹신한 시트가 닿았다. 시트가 젖어들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대공이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설마 또 하려는 걸까, 경악한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가 어깨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만…….”

아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얼핏 다정하게 느껴졌다.

“주군을 위해 고생한 종에게 상을 주셔야지요.”

“원하는 걸 말하면 뭐든 줄 테니까, 오늘은 이만…….”

“폐하께서 가진 것은 모두 제가 드린 것인데, 무엇을 하사하려 하십니까?”

그가 느리게 아란의 다리를 벌리며 말했다. 아란은 다리를 오므리려 했으나 그가 체중을 실어 누르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굵은 선단이 질척한 아래를 파고들었다.

“흣!”

“당신께서, 후……. 제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이 몸뚱이뿐입니다.”

아란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커다랗게 부푼 성기가 뿌리 끝까지 들어왔다. 예민해진 내벽이 애액을 뱉으며 그의 성기를 한껏 물었다.

“아아!”

아란이 저도 모르게 대공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날카로운 손톱에 상처가 나는데도 대공은 개의치 않았다. 성기가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가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아란이 할 수 있는 건 그의 아래 깔려 목이 쉬도록 교성을 내지르는 것뿐이었다.

* * *

씻은 보람도 없이, 아란의 몸은 두 사람의 체액으로 엉망이 되었다. 끈적한 몸이 불쾌할 만도 한데 대공은 아랑곳없이 그녀를 끌어안고 후희를 즐겼다. 아란은 집요하게 성감대를 쓰다듬는 손길을 애써 무시하며 테이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테이블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분명 클레어드 변경백의 서신을 그곳에 놓아두었던 기억이 있는데.

“클레어드의 서신을 찾으십니까?”

대공이 아직 흥분으로 솟아오른 유두를 누르며 물었다. 아란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벽난로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뭐? 왜?”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아란이 물었다. 대공은 대답 대신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 침대를 나섰다.

“그가 조만간 황궁에 방문한다고 했어.”

“만날 일 없을 겁니다.”

빈 잔에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아란은 심한 갈증을 느꼈다.

그가 물이 가득 찬 잔을 가지고 침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잔을 들 힘조차 없었다. 대공은 진작 그걸 알고는 잔을 건네지도 않았다. 대신 아란의 등을 받쳐 상체를 일으켜 세우곤 직접 입술에 잔을 대어 주었다.

미리 데워둔 것이 분명한 물은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적당히 식어 있었다. 아란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내밀어 물을 마시려 했으나 삼키지 못하고 대부분 흘려버렸다. 대공이 작게 혀를 차더니, 자신의 입에 물을 머금은 채로 입을 맞췄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혀와 함께 물이 넘어왔다. 아란은 얌전히 그가 건네주는 물을 삼켰다. 몇 번이나 그 행동을 반복하고 나자 갈증이 가셨다.

아란이 해명을 요구하는 것처럼 젖은 눈으로 대공을 올려다보았다. 대공은 냉정한 낯으로 연한 초록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렇게 치욕을 당하고도 황제의 눈동자는 여전히 무구하게 빛났다. 늘 한결같은 올곧음은 대체로 흥미로웠지만 때로는 짜증스러웠다. 바로 지금처럼.

“그는 영향력이 강한 대귀족이야. 그를 설득하지 못하면 내 뜻에 반대하는 이들이 더욱 기세등등해질 거야.”

“무슨 수로 그를 설득시키려 하십니까?”

무력한 당신이.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란은 따끔거리는 마음을 모르는 체했다.

“그렇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클레어드는 천성이 다정하니까, 잘 타이르면 이해해 줄 거야. 이렇게 나를 보러 와준다고 하는 걸 보면 분명해.”

아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제 말이 얼마나 순진하고 멍청하게 들릴지 잘 알고 있었다. 클레어드 변경백은 어린 시절 친구이기 전에 남부의 국경을 수호하는 대영주였다. 그를 포섭하려면 적지 않은 대가를 내어주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대공의 말대로 그녀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그가 어떤 눈으로 당신을 보는지 아신다면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실 텐데요.”

대공이 아란을 비웃으며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톡톡 쳤다. 아란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깜박였다.

멍청한 황제는 아직도 클레어드 변경백을 친구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 얄팍한 우정은 변질된 지 오래였다. 대공이 기억하는 변경백은, 늘 열띤 눈으로 아란의 목덜미나 언뜻언뜻 보이는 발목 따위를 훑던 얼빠진 놈이었다. 대공이 아란의 시종이었을 때 열등감에 찬 그가 어떻게 대공을 괴롭혔는지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었다.

시간이 지났다 해도 그 음습한 욕망이 사그라들지는 않았을 터였다. 눈치라곤 없는 황제가 그의 앞에 앉아 옛 추억 따위나 꺼내며 방긋방긋 웃음을 흘릴 생각을 하니 속이 뒤틀렸다.

“클레어드 변경백의 마음을 돌리고 싶다면 그를 직접 만나 설득하는 것보다 제게 부탁하시는 편이 빠를 겁니다.”

대공은 속내를 감추며 힘없이 늘어진 아란의 손을 들어 그 끝에 입 맞췄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절 어떻게 대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침대 위에서 귀엽게 아양 떨고 예쁜 목소리로 울어주신다면, 폐하의 성군 놀이에 언제든 장단을 맞춰드릴 용의가 있으니까요. 참 쉬운 일이 아닙니까?”

아란의 얼굴이 모멸로 떨렸다. 느리게 눈을 깜박이자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표정을 보니 또다시 아래에 피가 몰렸다. 대공은 주저 없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연약한 여체가 저항 없이 그의 품에 밀착되었다.

가슴을 주무르고 젖은 틈을 더듬어도 얌전했다. 그가 말한 대로 아양을 떨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저항할 힘조차 없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황제의 다리 사이에 그동안 참았던 욕구를 마음껏 배출했다.

* * *

아란은 굳은 얼굴로 가만히 앉아 시선을 내리깔았다. 싫어도 황제라, 어쩔 수 없이 연회에 참석해야 할 때가 있다. 아란은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연회는 그녀의 즉위 1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것이었다. 건국제 때 열린 연회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녀가 주인공인 만큼 중간에 빠져나가는 건 힘들었다.

그리 큰 규모가 아님에도 연회장엔 상당히 많은 귀족이 모였다. 그들은 황제에게 거짓으로 축하의 말을 늘어놓으며, 한편으로는 연회장 어딘가에 있을 로아크 대공을 찾아 헤맸다.

아란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들의 축하를 받으며 와인으로 입술을 축였다. 술은 잘 마시지 못하지만, 취기가 오르면 이 시간을 조금 수월하게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머리만 어지러워질 뿐이었다. 아란은 결국 반도 비우지 못한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철이 없던 시절엔 연회에 참석하고 싶어 몇 번이나 부황을 조르기도 했는데, 이제 이런 자리는 고역으로밖엔 느껴지지 않았다. 연회 내내 드레스를 몇 벌이나 갈아입고서 즐겁게 춤추던 지난날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지금 그녀가 입은 건 칙칙한 녹색에 깃이 높아 목을 전부 감싸는, 한물간 디자인의 드레스였다. 손에는 장갑을 껴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꽁꽁 감췄다. 날씨는 이제 늦봄으로, 그런 드레스를 입기엔 조금 더운 감이 있었으나 온몸에 대공이 순흔을 남긴 탓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란은 검은 망사 장갑을 잡아당겨 아주 조금 드러난 손목을 가렸다.

“폐하.”

시종장의 목소리에 아란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모든 귀족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첫 춤은 폐하께서 추셔야 합니다.”

시종장이 고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폐하께서 춤을 추셔야 다른 이들도 춤을 출 수 있습니다.”

“아…….”

아란은 난처한 얼굴로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국서가 없으니 저들 중 한 명과 춤을 추어야 할 텐데, 누구와 함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귀족들 역시 그를 알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지금 그녀의 위치는 아주 애매했다. 세금 감사 건으로 귀족들 사이에서 황제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러나 국서의 자리가 공석인 만큼 그녀를 노리는 자들도 많았다. 어느 쪽이든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대만 괜찮다면 나와 춤을 추지 않겠는가.”

“예?”

여간해선 감정을 드러내는 일 없는 시종장이 드물게 당황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농일세.”

아란은 실소를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누가 파트너가 되어도 불편한 건 한결같으니 가장 가까이 있는 자를 붙잡아 춤을 추고 이 난처한 상황을 끝낼 생각이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사일러스 공작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반대파의 의견을 처리한 건 대공이었으나, 공작은 그저 호의로 그녀를 도우려 했었다. 이 기회에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란이 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어디 가십니까, 폐하.”

로아크 대공이 묘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파트너를 정하신 게 아니라면, 저와 춤춰 주시지 않겠습니까.”

로아크 대공이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며 무릎을 꿇었다. 손등에 뜨거운 입술이 닿고, 손가락이 은근히 손목 안쪽을 스쳤다. 아란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구부렸다. 속내를 읽을 수 없는 붉은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했다.

미혼인 황제를 노리던 젊은 귀족들은 로아크 대공이 나타남과 동시에 의욕을 잃었다. 대공이 나선 이상 누구도 그녀와 춤을 추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그를 알고 있는 아란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에 이상한 조합은 아니었다. 아란은 제국의 주인이었고, 대공은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남자였다. 게다가 그는 거의 유일한 황제의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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