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불행히도 너무 몸을 떠는 바람에 그녀는 잠들지 않았다는 걸 들키고 말았다.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리고, 이불이 단번에 걷혔다.
“대답은 왜 안 하셨습니까.”
“……몸이 안 좋아서 못 들었어.”
아란은 거짓말에도 소질이 없었다. 대공은 약간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앉은 부분이 쑥 꺼졌다. 아란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아픈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만큼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저 몸이 많이 안 좋으신지 확인하러 온 것뿐입니다.”
그는 어제도 저 말을 했었다. 아란이 불신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대공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을 향했다.
“책을 읽고 계셨습니까?”
더 거짓말하면 그가 화를 낼까 봐, 그녀는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날은 그냥 쉬십시오. 안 그래도 약하신 분이.”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 격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한 번 더 할 걸 그랬나요. 종일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하게.”
무서운 소리를 하며 대공이 빙그레 웃었다. 그에겐 이 상황이 우스운 모양이었다.
그가 손을 뻗어 아란의 이마를 짚었다. 어제는 그렇게 뜨겁던 그의 손이 지금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그녀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갑자기 덮고 있던 담요가 훅 벗겨졌다.
“왜……!”
놀란 아란이 이불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열이 날 때는 몸을 감싸면 안 됩니다.”
대공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곤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던져버렸다.
“……알겠어.”
실랑이할 힘도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언제 그가 자신을 쓰러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아직은 별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대공과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불편한데, 하물며 같은 침대 위라니. 아란은 몸을 꼼질거리며 그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려 했다. 그러나 한 뼘도 가기 전에 거세게 끌어당겨졌다.
“계속 도망치려 하시면 제가 나쁜 놈이 된 것 같지 않습니까.”
“도망치지 않았어.”
용케 말은 더듬지 않았으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는 바람에 그녀는 또 거짓말에 실패하고 말았다. 또다시 식은땀이 맺혔다. 열 때문이 아니라 눈앞의 남자가 두려워서였다.
“땀이 나는군요. 시녀가 약을 갖다 드리지 않았습니까?”
“응. 아까 전에.”
“다시 한번 드셔야겠습니다.”
제 침실인 양 자연스럽게 시녀를 부른 대공이 간단한 음식과 약을 가져올 것을 명했다. 시녀가 조금 전처럼 묽은 수프를 가져다주었다. 아란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 대공의 눈치를 살폈다.
“드세요.”
그래도 그녀가 여전히 망설이자 그가 말했다.
“먹여드리길 원하십니까?”
그 말에 깜짝 놀란 아란은 서둘러 수저를 들었다. 꾸역꾸역 반 정도 먹고 수저를 내려놓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더 드세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간신히 수프를 다 먹었다. 약그릇까지 깨끗하게 비운 걸 보고서야 그는 만족한 얼굴을 했다.
정말로 오늘은 아무 짓도 안 하려는 걸까.
평소라면 다짜고짜 관계하려 들었을 텐데 아직 얌전한 걸 보니 어쩌면 정말 얌전히 돌아갈 생각일지도 몰랐다.
아란이 안심하고 있을 때 대공이 드레스 뒤에 달린 끈을 잡아당겼다. 리본이 풀어지며 드레스가 흘러내렸다. 갑자기 가슴이 드러나자 놀란 아란이 버둥거렸다.
대공은 그녀의 움직임을 무시하며 나머지 리본도 차례로 풀었다.
“하지 마……! 오늘은 아무 짓도 안 한다고 했잖아!”
아란이 발버둥 치자 그는 성가신 얼굴로 아란의 두 손목을 한 번에 잡고 그녀의 몸을 시트 위에 내리눌렀다. 그의 손 아래서 알몸이 될 때까지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변덕스럽게 굴었던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멍청한 기대나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한심해 눈물이 나왔다.
“열이 내릴 때까지 그러고 계세요.”
옷을 다 벗긴 대공이 그녀에게서 손을 떼며 말했다. 갑자기 그가 떨어지자 아란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 짓도 안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약간 불쾌한 듯 말했다. 아란은 팔로 몸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만 옷을 벗고 있는 건 몹시 수치스러웠지만 관계를 가지는 것보단 나았다. 다만 샅샅이 몸을 훑는 대공의 시선은 몹시 불편했다. 특히 그는 추위로 일어선 유두를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아란은 잔뜩 몸을 옹송그린 채 덜덜 떨었다. 대공은 이불도 덮지 못하게 했다.
“많이 추우신가 봅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돌연 아란을 들어 올리더니 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등에 닿은 얇은 셔츠 너머로 그의 체온이 전해졌다. 추운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한결 나았다.
그녀는 어정쩡하게 그의 가슴팍에 등을 기댔다. 온기를 찾아 더 가까이 붙고 싶었지만 엉덩이에 닿는 딱딱한 것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란은 그것을 피하려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렇게 움직이시면 더 참기 힘듭니다.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신 건가요?”
“그럴 리가…….”
아란이 얼른 부인했다. 점점 단단해지는 것을 무시하며 그녀는 애써 얌전히 앉아있었다. 그가 마음을 바꾼다면 꼼짝없이 다리를 벌려야 하므로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 대공의 성기는 금방이라도 옷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슬금슬금 대공의 손이 그녀의 알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아란은 몸을 작게 틀어 그 손을 피했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엉덩이가 그의 성기를 스쳤다. 대공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뒤에서 귀를 가볍게 물며 속삭였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었는데 의지가 흔들리는군요.”
“이러지 마…….”
아란은 흐느끼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팽팽하게 부푼 아래와 달리 목소리는 느긋했다. 그에게 아란은 언제나 손쉬운 사냥감이었다.
그가 가슴을 그러쥐었다. 다른 한 손은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파고들어 갈라진 곳을 매만졌다. 아란은 잔뜩 몸을 굳혔다. 신음을 흘리는 추태는 간신히 막았지만, 쓰라린 통증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여기로는 무리실 테고.”
입을 열면 꺽꺽거리는 울음소리가 튀어나올까 봐 아란은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당장이라도 굵은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아픈 분께 입으로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대공의 혀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란은 눈을 질끈 감고 질척한 감촉을 참아냈다.
“말을 잘 들으신다면 적당히 즐기는 선에서 끝내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응…….”
사실은 몰랐지만, 무슨 행위든 삽입하는 것보단 낫겠다는 생각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내려가서 제 허리띠를 푸십시오.”
아란은 시키는 대로 그의 다리 사이로 내려가 무릎을 꿇고 허리띠를 풀었다. 그 뒤는 지시받지 않았으므로 가만히 있자, 대공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순진한 척은 그만두세요. 저를 다른 식으로 자극할 생각이 아니라면.”
필사적으로 뭘 해야 할지 생각하던 아란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바지 단추를 풀었다. 바지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벌어진 틈으로 기다렸다는 듯 흉악한 모양의 성기가 튀어나왔다. 대공이 칭찬하듯 그녀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었다.
“이러고 있으니 폐하와 재회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대공이 꾹 다문 아란의 입술에 선단을 문지르며 웃었다. 비릿한 남자의 냄새가 났다.
아란은 토기가 밀려드는 걸 참았다. 냄새가 역겨워서가 아니라,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피가 낭자한 그곳에서, 그녀는 살기 위해 입으로 대공의 성기를 애무해야 했다.
대공은 남자 경험이 없던 그녀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성기를 찔러댔다. 그리고 피와 눈물, 정액으로 더러워진 그녀를 보며 즐거운 듯이 웃었다. 원래부터 심약하던 아란이 피를 극적으로 무서워하게 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제법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여전히 성기가 그녀의 입술을 뭉개고 있어 아란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공이 침대 옆에 놓인 작은 병을 들었다. 그 안에서 향유를 덜어 그녀의 가슴과 배에 치덕치덕 발랐다. 가냘픈 몸이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무릎을 세워 일어나세요.”
아란이 시키는 대로 하자 그가 그녀의 몸을 끌어당겼다. 물컹하고 부드러운 가슴이 성기에 닿는 순간, 대공의 입에서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전부 감싸요.”
아란은 가슴을 모아 성기를 감싸려고 했다. 그러나 향유 때문에 자꾸만 손이 미끄러졌다. 당황해 대공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딱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어설펐지만, 뭉그러진 가슴 사이에 우뚝 솟은 성기를 보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특히 울음을 참는 얼굴로 그의 요구를 맞춰주려 노력하는 황제의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녀의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굴욕으로 파르르 떨렸다.
“잘 안 되는데…….”
결국 아란이 도움을 청하듯 입을 열었다. 대공이 과장되게 혀를 찼다.
“못하시겠으면 관두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만두는 순간 그가 어떻게 나올지 뻔했다. 아란은 부지런히 상체를 움직여 그의 성기에 가슴을 비볐다.
그동안 관계는 많이 가졌지만 이런 행위는 처음이었다. 성에 무지한 그녀도 이런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퉁퉁 부은 아래를 생각하면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말랑한 가슴과 빳빳하게 선 유두가 그의 성기와 치골을 스쳤다. 대공은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 입에 거칠게 성기를 처박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그랬다간 황제는 며칠 동안 침대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
아무리 허수아비라도 황제의 존재가 필요한 순간은 있었다. 아란은 믿지 않겠지만, 대공은 유리 인형을 다루듯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를 대하는 중이었다.
대공이 저를 보며 무슨 상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르는 아란은, 어서 그를 만족시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다행히 서툰 몸짓에도 대공은 착실히 반응하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이 욕망으로 일그러졌다.
예고도 없이 커다란 손이 그녀의 등을 세게 눌러 당기는 바람에 가슴이 그의 하체에 완전히 밀착되었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계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