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3-5화 (95/96)

 #05 외전3

“다녀와요.”

 재희는 현관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강주의 출근을 배웅하는 것이었다. 식탁 앞에서 우유 안에 시리얼을 들이붓던 효정 도 크게 외쳤다.

"다녀오세요, 형부!"

 그래, 하고 담담히 답한 강주가 재희의 뺨에 입을 맞췄다.

“다녀올게. 장모님께도 안부 인사 전해 줘요."

 아직 얼굴에 졸음이 떨어지지 않은 재희의 눈가 위에도 입을 맞춘 강주가 곧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재희는 그제야 기지개를 켰다. 아직 새벽이라 그런지 몸이 뻐근했다. 강주가 출근했으니 이제 슬슬 준비해서 효정과 나갈 차례였다.

“언니 시리얼도 말까?”

“아니, 난 밥 먹을래.”

 팬에 불을 올리며 재희는 어깨를 두드렸다. 몸은 뻐근한데 기분은 좋았다. 푸르스름하게 가라앉은 창밖 풍경까지 청량해 보일 정도다.

그건 아마 마음이 몹시 가볍기 때문이리라.

 최근 재희와 효정은 자유인이 됐다. 효정은 1학기 휴학계를 내어 재희와 강주의 집에 들어왔으며, 재희는 잠시 휴직계를 제출했다.

이유는 아주 거창했다.

 엄마를 위하여.

오랜 시간 병상에 있던 엄마의 병세가 최근 눈에 띄게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몇 달 전에는 손가락이 움찔, 눈꺼풀이 살짝 움직였던 게 다였는데 언젠가부터 눈을 뜨시더니 이제는 재활 운동까지 할 정도로 호전됐다.

그리되자 두 자매는 모든 삶을 뒤로 밀어 넣었다. 엄마의 회복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바치기로 작정한 것이다. 누구보다 엄마의 회복을 바라고 있던 차기에 당연한 행보였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를 찾아갔다. 두 사람이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고작 해 봐야 엄마 옆에서 수다나 늘어놓고 화이팅을 외치는 것밖에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매일 가서 엄마를 매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자매는 흡족했다.

 재희는 노릇하게 익은 계란을 접시에 담아 효정 앞에 앉았다. 효정은 다 먹은 그릇 안에 다시 우유를 붓고 시리얼을 말아 넣고 있었다.

재희가 접시에 계란을 덜어 효정에게 밀었다. 방금 한 음식에서 먹음직스럽게 김이 났다.

“이것도 먹어. 어린애가 단백질 먹어야 쑥쑥 크지.”

 시리얼 통을 내려놓은 효정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어린애라니. 세상에 이렇게 큰 어린애를 봤나.

이제는 언니와 키도 비슷해졌는데, 언니는 아직 자신을 볼 때마다 제 가슴팍에 오던 어린애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쑥쑥 크긴. 나 대학생인데 다 컸지. 더 클 수도 없어."

“크긴 뭘 커. 스물하나면 아직 애지. 더 커야 해."

“엄마도 아니고 잔소리는."

 효정은 툴툴거리면서도 흰자부터 잘라 입 안에 쏙 넣었다. 군소리는 많아도 효정은 늘 언니 말을 착하게 따르는 편이었다.

언니 말을 들어 안 좋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턱을 괸 재희가 효정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응시했다. 제 배로 낳은 새끼도 아닌데 보면 볼수록 참 예쁘고 짠하다.

어쩌다 저런 이쁜 것이 내 동생이 되어서는. 새삼스럽게 고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효정이 아니었다면 엄마의 사고 직후 이렇게 꿋꿋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 슬픔에 빠져 좌절하며 홀로 허우적댔겠지.

 제 옆에서 언니, 하고 손을 붙들어 주는 저 아이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다.

“효정아, 너 그거 알아?”

“응? 뭐?”

“언니보다 엄마 잔소리가 더 심할걸? 엄마 재활 마치신 후에 집에 오시면 우리 효정이 잔소리 엄청 들을 건데 어떡하지?”

 재희의 농담에 효정은 치, 하고 입을 내밀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언니."

 재희는 손을 뻗어 효정의 삐죽 나온 앞머리를 넘겨 주었다. 요즘같이 행복한 날이 있나 싶었다. 재희는 아직도 그날의 희열을 잊지 못했다.

효정과 엄마를 방문하러 갔던 날. 엄마를 앞에 두고 한참이나 둘이 수다를 떨었는데 갑자기 효정이가 소리를 꽥 질렀다.

재희 등 뒤에 있는 엄마의 손가락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재희는 빙글 뒤를 돌았고 자매는 그로부터 한 시간 동안 엄마의 손가락만 쳐다봤었다.

 그러다 결국 동시에 보고 말았다. 움찔, 하고 움직이던 새하얀 손가락을. 그 뒤로는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엄마 위에 무너지듯 엎드려 엉엉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효정과 부둥켜안고 오열했던 것 같기도 하다. 종교도 없는데 신에게 감사하다며 기도도 했었다.

그저 엄마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았다. 마음이 벅차 참을 수가 없었다.

 일단 새싹 하나가 돈으면, 그 뒤로 푸른 봄이 시작된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지만 그 손가락을 시작으로 다시 엄마의 봄이 시작됨을 알기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었다.

병원에서도 기적 같은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시간이 지나 엄마는 정말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그 뒤 재활 전문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음 같아서야 집으로 모시고 싶었지만 병원에 있는 편이 재활에 도움이 된다기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대신 효정과 매일 찾아갔다. 매일 찾아가 엄마를 하염없이 구경했다. 엄마는 가만히 누워 주먹을 쥐었다 펴고 발목을 느릿하게 돌렸다.

가볍게 운동하는 엄마를 보니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 괜히 창밖만 바라봤었다.

'왜 자꾸 울어. 다 커서 어린애처럼.'

 그 모습을 보던 엄마가 느릿하게 위로하면, 참을 수 없이 와앙 울음을 터뜨리고는 했다. 울면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이 충만했었다.

 밥을 다 먹자마자 효정과 병원으로 향했다. 회색 묵직한 세단은 시어머니인 영현이 사 준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쓸 일이 없었지만 요새는 병원을 올 때 요긴하게 쓰는 터라 새삼 감사하는 바였다.

재희는 버드나무 아래 차를 세웠다. 아래로 길게 드리운 가지가 바람결에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었다.

 병원에 들어서자 기분부터 좋아졌다. 예전에는 병원 입구에서부터 발치가 잡아끌리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서 시무룩하게 땅만 바라보며 걷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 두 자매는 입구에서부터 뛰었다.

밝은 얼굴로 급히 안으로 들어서서는 단숨에 2층으로 올라갔다. 일인실 안에 들어서자 창가 의자에 앉아 머리를 빗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 우리 왔어."

“엄마! 잘 잤어?”

 와다다 뛰어간 효정이 다짜고짜 미령의 허벅지 위에 뺨부터 댔다. 미령은 머리를 빗던 손을 느릿하게 내려 효정의 귓가 를 매만졌다.

“딸들 왔어?”

 다정한 목소리에 재희는 다시 와락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진짜야. 진짜 우리 엄마. 꿈이 아니야. 늘 마주하는 엄마인데도 새삼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우리 엄마, 이제 머리 잘 빗네?”

 재희가 미령의 머리카락을 스치듯 매만졌다. 마음 같아서야 자신이 삭삭 빗긴 후 곱게 묶어 드리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빗으로 머리를 빗는 것도 재활 활동의 하나였다.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머리를 빗고, 생활 습관을 처음 배우는 세살 아이처럼 엄마는 하나하나 다시 삶을 배워 나갔다.

 촘촘한 나무 빗이 엄마의 머리카락 근처를 서투르게 스쳤다. 빗 끝에 걸렸던 머리카락이 톡 떨어져 바람에 한들한들 휘날린다.

 재희는 머리 빗는 미령을 가만히 응시했다. 우리 엄마, 여전히 예쁜 내 엄마, 내 눈앞에서 움직이는 내 엄마.

언젠가 수다쟁이 요양 보호사 아주머니가 그리 말했던 적이 있다.

'딸들도 예쁜데 엄마가 가장 미인이시네!”

 그 말이 얼마나 뿌듯한지...... 우리 엄마 진짜 예쁘죠, 라며 재희는 요양 보호사 아주머니 손을 잡고 또 엉엉 울었다.

'아니, 엄마가 제일 미인이라는 소리가 그렇게 서운했어?'

 절 장난스럽게 위로하는 그녀의 손길에 허물어지며.

“엄마, 엄마도 내가 혼자 양말 신었을 때 이렇게 기뻤어?"

 재희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찬찬히 양말을 신는 엄마를 향해 물었다. 엄마도 분명 절 이렇게 바라보았던 순간이 있었을 거다.

어린 윤재희가 꼬물거리며 양말을 신는 모습을 보며 환히 웃어 주었을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앞코가 휙 돌아간 양말을 바로 돌려 주며 뽀뽀해 주셨겠지.

그때 엄마 마음이 내 마음보다 더 요동쳤을까? 이렇게 행복했을까?

 미령은 숙였던 허리를 찬찬히 펴며 긴 숨을 내쉬었다.

양말을 신었을 뿐인데 마치 오래달리기를 한 것처럼 식은땀이 맺혔다.

 하지만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언젠가는 두 딸과 산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령의 입가가 곱게 끌어 올라갔다.

"그럼, 우리 재희가 양말 혼자 신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

"엄마, 난? 내가 양말 혼자 신었을 때는?"

 미령의 발치에 매달린 효정이 이어 물었다. 미령이 효정의 머리카락을 슬슬 쓸어 올렸다.

“우리 효정이가 혼자 양말 신었을 땐 달력에 별도 그렸어."

 세 모녀의 웃음소리가 병실을 채웠다. 창가 아래로 떨어지는 햇살이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언젠가, 미령이 제 딸아이를 위해 달력 위에 그렸을 별처럼.

 반년 뒤, 복직 후, 여느 때처럼 퇴근한 재희는 자신의 집으로 가는 대신 옆집 벨을 눌렀다. 강주와 현관 앞에 서서 마냥 기다리고 있으려니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누군가 문을 열어 주었다.

“딸, 왔어?”

 미령이었다. 재희는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며 엄마의 손부터 잡았다. 훈훈한 안쪽에 있어 그런지 따끈따끈해서 기 분이 대번 좋아졌다.

“응, 엄마. 아주머니께서 우리 저녁도 차려 주셨지? 아까 전화드렸었는데.”

“안 그래도 수저 세 개 올려놓고 가셨어.”

 미령이 재희의 손등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두 모녀를 따라 강주가 안에 들어와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사위 왔냐며 미령이 뒤를 돌며 묻자 강주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네, 그럼 저녁 좀 얻어먹고 가겠습니다.”

 부드럽게 웃는 얼굴이 다정했다. 세 사람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걸음이 느린 미령의 속도 멈춰 있다시피 걸었다. 엄마의 등 뒤에 흘러내린 솔을 올리며 재희가 말했다.

“버튼 눌러 열어 주지 왜 매일 직접 나와? 문 열려면 엄마 귀찮잖아.”

 재희가 옆집 엄마의 집에 놀러 와 벨을 누르면 미령은 늘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처음에는 벨을 누른 후에 영 소식이 없어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는데, 직접 걸어 나오느라 그런 것이라는 걸 알고 이제는 마음 편히 기다리는 편이었다.

“내 예쁜 딸하고 사위 보면서 직접 문 열어 주고 싶어 그러지.”

“치.”

 어깨를 으쓱인 재희가 미령의 팔에 팔짱을 꼈다. 재활 치료가 얼추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미령은 퇴원했다.

 그리고 재희와 강주의 신혼집 바로 옆으로 이사했다. 모녀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혹여 재희 마음이 불안할까 봐 강주가 직접 마련해 준 집이었다.

효정 역시 그 집으로 들어올 계획이었다. 한 학기 더 휴학하여 엄마 곁에 있겠다고 했으며 재희 역시 휴직을 유지하겠다고 한 참이었다. 하지만 미령은 단호히 거절했었다.

'엄마 이제 혼자 다 할 수 있어. 딸들은 딸 인생 살아. 엄마한테 매여 있지 말고.'

'그래도 우리가 옆에서 도와주면 좋잖아.'

'엄마가 언제 혼자 못 하는 거 봤니? 걱정하지 말고.'

 모친 미령은 늘 조용했지만 꼿꼿했다. 부드러웠지만 대쪽 같은 심지가 있었다. 그런 미령의 성격을 알기에 두 딸은 조용히 제 삶으로 돌아갔다.

자신들이 미령을 설득할 수 없음을 대번 깨달은 탓이다. 효정은 기숙사로 다시 내려갔지만, 대신 재희가 바로 옆집에 살아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늘은 뭐 했어, 엄마?”

“은진이 와서 온종일 수다 떨었어. 은진이 딸 결혼한다더라."

"이모 왔다 가셨어? 저녁도 먹고 가라고 하시지."

“남편하고 먹어야 한대.”

 최근 미령의 친구인 은진의 방문이 잦았다. 재판 당시, 차 회장의 과거 행적 증언에 큰 도움이 된 그녀는, 미령의 회복 소 식을 듣자마자 버선발로 병원에 뛰어왔었다.

'우리 미령이 인생 다 망한 줄 알았는데, 눈 떴네! 살았네, 살았어!'

 눈치 없는 문장으로 속을 긁고는 기뻐하며 울었다. 하지만 무신경한 은진의 말에도 미령과 재희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은진의 언동에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말을 생각 없이 내뱉기는 했지만, 미령의 회복을 축하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진심일 것이었다.

 그리고 미령이 이곳으로 오자마자 매일 발 도장을 찍었다. 손을 맞잡은 채 맨션 주위를 걷기도, 테라스에 오순도순 앉아 재활 치료라는 명목으로 한붓그리기 미술 활동도 했다.

어릴 때 친구가 동네 친구가 되어 무척 기쁘다며 발에 땀이 나도록 이곳을 드나들었다. 그래서 미령 역시 적적할 틈이 없었다.

“재희 씨, 장모님 모시고 와요.”

 강주가 식탁 앞에서 둘을 불렀다. 소파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모녀가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부엌에 들어서니 강주가 해물찜 접시를 내려놓고 있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 놓으신 것을 방금 데운 모양이었다.

주위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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