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재희는 숨을 꼴깍 삼켰다. 순간 어린 시절 그가 스쳐 지났다. 차강주 상무가 아닌, 강주 씨가 아닌, 그때의 그, 다가설 수 없어 초조했던, 탐낼 수 없던, 기어코 자신을 잔인하게 내쳤었던 그 강주 오빠.
그 강주 오빠가 손을 뻗어 이름을 불러 오고 있었다. 재희는 홀린 듯 다가가 그를 안았다.
제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 그가 뜨거웠다. 아니, 뜨거운 건 그의 얼굴이 아닐 터다. 두근거리는 제 심장이, 제 몸이 뜨거웠다.
아까 마신 석 잔의 알코올 탓을 하고 싶었지만, 이 묘한 두근거림의 원인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은 재희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믿을 수 없는 거다. 그 강주 오빠가 제 남편이라는 사실과 그 사람이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해 주는 현실을.
“옷이 크네.”
재희의 티 안에 손을 넣은 그가 맨 살갗을 쓸어 왔다. 허리를 타고 오른 뜨거운 손이 브래지어를 자연스럽게 풀었다.
“읏.”
재희는 허리를 움츠렸다. 압박에서 풀린 맨가슴이 셔츠 아래 봉긋 솟았다. 강주가 그녀 품에 얼굴을 묻어 체취를 들이마셨다.
재희는 그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었다. 살짝 젖어 있는 머리카락은 서늘하고 촉촉했다. 시원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헤집던 재희가 이내 손을 툭 떨어뜨렸다. 셔츠 안쪽에 머리를 밀어 넣은 강주가 가슴을 찾아 입술을 붙였기 때문이다.
“아..”
강주가 휘청이는 재희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이젠 익숙해진 감각인데도 재희의 몸은 금세 달아올랐다.
혀끝이 달라붙는 느낌에 고개를 내리자 셔츠 안에 움직이는 강주의 형체가 보였다.
재희가 셔츠를 걷어 냈다.
제 가슴에 얼굴을 붙이고 지분거리는 그가 보였다. 강주에게 젖을 물리며 재희가 신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강주 오빠.”
“......”
쪽, 하고 강주 입에 물려 있던 젖꼭지가 떨어졌다. 둘 사이에 화석이 된 호칭이 나오자 강주는 적잖이 놀란 듯했다.
재희는 옅게 웃었다.
절 올려다보는 얼굴은 학창 시절의 강주 오빠와 지독히 닮아 있었다. 그가 그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얼굴의, 같은 머리 모양의,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강주라 더욱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말갛고 청초했던 어린 시절의 차강주. 야한 행동을 하는 것만 빼면 그때의 그가 시간을 넘어와 제 앞에 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재희가 그의 무릎에 앉으며 이어 물었다.
“그때 내 선물 왜 안 받았어요? 나 왜 그렇게 밀어냈어?”
상처받았던 고등학생 재희가 강주 오빠에게 묻고 있었다. 그때 날 두고 간 이유를 알고 싶노라고, 그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궁금증은 늘 마음속에 도사렸다.
전혀 유추할 수 없기에 더욱 애타게 궁금했다.
이전에도 그에게 물어본 적 있었다. 술에 취해 효정이의 장갑을 억지로 끼워 주었을 때 용기 내어 물어봤었다.
그때 선물을 왜 안 받은 건지. 왜 그리 차가웠던 건지. 왜 그리 야박하게 밀어내고 떠날 수밖에 없던 건지.
하지만 왜인지 상황을 회피해 버리는 그에게서 결국 답을 얻지 못했었다. 케케묵은 의문은 그렇게 제 맘속에 다시 묻어 놨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강주 오빠가 아닌, 제 남편 차강주는 늘 진실하고 솔직한 사람이었으니까.
“오빠도 나 좋아했다며. 응?”
고개를 기울여 집요하게 물었다. 강주는 느릿하게 턱을 쓸어내렸다. 고민하는 그의 눈빛에 동요가 일었다.
재희는 잠자코 기다렸다.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가만히 그를 기다리면 그는 늘 제게 먼저 다가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가 도통 열릴 것 같지 않던 입을 열었다.
“그땐 내가 좀 유치했었어."
나직나직하게 답하는 음색조차 그때의 그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제 선물을 기어이 받지 않았던 그때의 그.
'재희야, 우리가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잖아.'
문득 서늘했던 그의 눈빛이 떠올라 재희는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눈앞의 그는 그때의 그가 아님에도.
씁쓸히 웃은 강주가 재희의 뺨에 입을 맞췄다. 훤히 드러난 젖가슴을 찬찬히 주무르며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재희야, 그때의 난 아주 어렸어."
“아웃.......”
“어린애처럼 치졸하고 유치했어."
그가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가슴을 야하게 만지는 손길 탓에 집중이 힘들었다.
그의 어깨에 팔을 둘러 눈을 들여다보려 했지만, 젖꼭지를 비틀어 쥐는 그 때문에 실패했다.
"난 너밖에 없었는데, 네가 날 무서워하니까.”
“내 전부인 네가 날 부정하니까, 그게 싫었어. 아니, 무서웠어.”
혀끝으로 목덜미를 핥으며 그가 속삭였다. 가슴 위에서 움직이는 손은 집요하게 예민한 정점을 괴롭혔다.
"너무 무서웠어. 너무 무섭고 두려웠어, 재희야.”
가슴을 움켜쥔 손길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도망쳤어. 내가 널 결국 상처 입힐까 봐 무서워서."
기어코 그가 목덜미를 아프게 깨물어 왔다.
"아!”
이따금 제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때마다 강주는 그녀를 아프게 물어 오고는 했다. 제 표식을 남기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짐승처럼 핥고 깨물어 기어이 붉은 자국을 남겼다.
"난 오빠를 무섭다고 한 적이 ... 흐읏...."
"알아. 모두 내 오해였으니까, 네가 미령 아주머니와 하던 말을 듣고 혼자 오해해서, 등신처럼."
재희는 문득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강주 오빠가 절 협박하던 남자를 때린 직후, 엄마에게 울면서 무섭다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귀신에게 홀린 사람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었다.
'엄마,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
강주 오빠가 차 회장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그 나쁜 놈이 강주 오빠를 결국 어떻게 할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그런 오해가 있었다니 꿈에도 몰랐다. 목덜미의 붉은 자국을 핥으며 강주가 속삭였다.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려 물은 게 아니야.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나도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 그리 대답하고 싶었는데 할 수 없었다.
그가 벗긴 셔츠가 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몸을 덮기 전 그의 뜨거운 몸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미안해, 재희야. 그때 네게 아픈 말 했던 거, 정말 미안해.”
강주는 속삭이며 재희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마치 과거의 그녀에게 사과하듯 이마를 문질렀다.
재희는 꼼짝없이 그에게 갇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를 전해 오는 과거의 그에게 괜찮다며 대답을 넘겨 보냈다.
“괜찮아............ 오히려 내가... 웃...."
그리고 그의 어깨를 밀어 얼굴을 마주했다. 달라진 거라곤 남자답게 변한 골격밖에 없는 강주 오빠가 눈앞에 있었다. 재희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내 몸이 예뻐서 다가왔다는 말은?"
강주의 눈동자에 다시 동요가 일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무언지 유추해 보려 하지만, 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워낙 뱉어 놓은 말이 많아 파악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언젠가 회사 옥외 정원에서 그가 말했었다.
'저번에 키스해 보니까, 생각보다 좋더라고, 몸도 예쁘고.'
정 팀장을 옥외 정원에서 내보낸 뒤 둘만 남았던 장소.
제게 몸을 붙이는 그에게 물어봤었다. 상무님은 자꾸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저것이었다.
바로, 네 몸.. 그때의 무너지던 마음을 재희는 아직 기억한다. 뜨겁게 타오르던 마음도, 애타게 갈망하던 마음도 아프게 식어 버렸던 날.
집에 가서 이불에 누워 홀로 눈물만 방울방울 흘렸었다.
생각해 보건대, 분명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토록 크고 따뜻한 사랑을 퍼부어 주는 그가 진심으로 그랬을 리가 없다.
하지만 숨겨진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정말 그의 속마음은 무어였는지 제대로 듣고 싶어졌다.
재희가 강주의 입술을 찬찬히 더듬었다. 절 흔들리는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예뻤다.
“정 팀장 보내고 나서 옥외 정원에서 내게 했던 말, 키스하니 좋았고, 내 몸이 예뻐서 만난다고."
"......"
“나 그때 정말 상처받았어. 내가 알던 강주 오빠가 정말 아닌 것 같아서. 정말 내 몸만 원하는 것 같아서."
재희는 담담하게 말했으나 강주의 눈가는 일그러졌다.
“그랬을 리가 없잖아."
제 입술을 매만지는 재희의 손을 끌어당겨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말을 잇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날 밀어낼까 봐. 목적이라도 만들지 않으면 네 곁에 서성이는 날 무서워할까 봐. 네가 다시 날 떠날까 봐.”
“......”
“그렇게라도 얽히고 싶어서.”
재희는 침묵했다. 감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는, 오히려 그래서 더 절실하게 들렸다.
그건 아마 제 허리를 아프도록 부둥켜 안은 그의 힘이 무척 억세고 절박하기 때문이리라. 차마 놓을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있는 듯.
옅게 웃은 그녀가 제 가슴팍에 안긴 그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손길에 따라 긴장이 풀리는 몸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귓가를 매만지다가 다시 뺨에 손을 대 천천히 들어 올렸다.
다시 눈앞에 그가 있었다. 차강주, 제 사람.
“그런데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그때 강주 오빠랑 있는 것 같아. 되게 묘하다.”
“......”
“어린 강주 오빠는 분명 내게 이러지 않을 텐데. 엄청 매너 좋고, 엄청 순수했잖아.”
흐트러진 목소리로 옅게 웃었다. 분명 그때의 그는 이런 야한 짓을 하지 않을 타다. 재희 본인에게만큼은 누구보다 신사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늘 정숙한 소년이었다. 우연히 두 사람의 손이 맞닿으면 귓가를 발갛게 붉히던.
“내가?”
강주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더니 재희를 허리를 끌어당겨 얼굴을 숙였다. 냉큼 드러난 젖꼭지를 혀끝으로 툭 장난치듯 건드린다. 재희의 어깨가 다시 움찔거렸다.
“내가 순수했다고?”
그가 재희의 정점을 보란 듯 빨며 느긋하게 올려다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가가 붉게 달아올라 야해 보였다. 입술 끝에 걸려 타액으로 젖어 있는 정점도 야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늘 이런 상상만 했는데."
느릿하게 속삭인 강주가 유두를 꽉 물었다.
"읏, 아파.”
“이렇게 깨물고, 핥고, 빨고, 네 안에 처박아 넣고 싶었어.”
"아....”
“그런데 그럴 수 없어서 상상만 했어. 내가 매일 밤 널 떠올리며 혼자 얼마나 많이 했는-”
재희는 외설적으로 중얼거리는 그를 꽉 껴안았다. 가슴 위로 그의 얼굴을 뭉그러뜨리며 부끄러움도 없이 흘러나오는 말 도 함께 뭉겠다.
"그만, 말, 아..!”
그만 말해, 라며 낸 목소리가 부끄럽게 삭아 들었다. 품에 안긴 그가, 허리를 꾹 쳐올려 무서울 만큼 부푼 것을 갖다 붙였기 때문이다.
재희에게서 통과의례처럼 신음이 튀어나왔다. 재희는 그의 머리카락을 쭉 잡아당겼다. 제 반응이 민망하고 그의 유들거림이 괘씸했다.
가슴 위에서 쿡쿡 웃는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어 몸이 번쩍 들렸다. 강주는 재희를 코알라 새끼처럼 안고 침대로 걸어갔다.
그런 뒤 그녀를 조심스레 눕히고는 덮치듯 올라탔다.
“그때의 그놈은 꿈에도 모를 거야. 윤재희와 본인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녀를 덮은 그림자와 함께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아마 알면 행복해 죽겠지. 지옥 같은 날도 웃으며 견딜 수 있을 만큼.
강주는 나직이 웃으며 재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제 아래 깔려 바둥거리는 작은 몸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