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96)

 #68

 몇 년 전.

 저택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의 온기가 지워진 대저택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미령은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지나 주방 안으로 들어섰다. 앞치마를 매고 소매를 걷어붙인다. 사모인 영현은 여지없이 해외에 있었고, 시은은 친구들과 여행을, 강주는 출국 준비로 오늘 집을 비웠으며 차 회장은 선약이 있어 들어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아무도 없으니까 왠지 춥네…….”

 미령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차 회장의 부재가 확실했으나 우선은 저녁거리를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차 회장은 늘 변덕스러운 사내였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저녁을 차리라고 하는 일도 부지기수. 심지어 여행을 갔다가도 새벽에 돌아와 간식거리를 대령하라고 한 적도 있었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모르니 늘 준비하라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그것이 지금 아무도 없는 집에서 미령이 반찬을 만드는 이유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쌀을 씻던 미령이 문득 뒤를 돌았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빈 공간만이 시선에 닿았다. 왠지 목덜미가 선득해 어깨를 한 번 움츠렸다.

 주방 한구석에 놓인 자그마한 테이블과 책꽂이가 보였다. 차 회장이 앉아 기다리던 자리였다. 주방 바깥에 커다란 룸이 있는데도, 굳이 그곳에 앉아 감시하듯 지켜보고는 했다.

 미령은 늘 그의 묘한 시선 아래 몸을 움직이며 요리를 했었다. 냉장고로 향하며 곁눈질을 하면 차 회장은 늘 자신이 아닌 책을 보고 있었는데, 다시 고개를 돌리면 묘한 시선이 따라붙는 기분이 치밀었었다.

 사뭇 불쾌한 감각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집주인이자 제 고용주이지 않은가.

 남편과 사별 후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생겼고 덕분에 신용 불량자 처지가 되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재희와 효정, 두 아이를 데리고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리 만무. 두 시간씩 쪽잠만 자며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었었다.

 그쯤 되자 미령은 재희와 효정을 위해 제 자존심을 모두 구겼다. 그토록 피했던 차 회장의 도움을 받아 이곳으로 온 것이다.

‘내 딸 위해서는 다 해. 내 새끼 위해서라면 내 자존심 같은 거, 시궁창 굴러도 상관없는 거야.’

 미령은 홀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제 맘처럼 뿌옇게 흐려진 쌀뜨물을 버렸다.

“재희는 학원 갔다가 왔으려나…….”

 조개를 씻다 말고 손을 멈췄다. 고개를 드니 주방 창문 밖 정원 위에 어둠이 내려 있었다. 오늘따라 그 어둠이 음습하게만 느껴졌다. 미령은 조개를 냄비 안에 쏟아부은 후 뚜껑을 치웠다.

‘효정이는 자고 있을까?’

 혼자 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뒤를 도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달라붙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어떻게 그리 잘 알고.”

“꺄악!”

 화들짝 놀라 떨어뜨린 뚜껑이 뎅그렁, 거리며 싱크대에 처박혔다. 미령은 가쁜 숨을 들이켜며 싱크대를 더듬었다.

 남몰래 다가온 이는 차 회장이었다.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역시 오늘도 마음이 바뀌어 귀가했던 모양이다. 언제 그림자처럼 미끄러져 들어왔는지, 미령의 뒤에 서서 상판 위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숨결에서 미약한 술 내음이 났다.

“오셨어요, 회장님. 오늘 안 온다고 하시더니…….”

 미령은 어색한 표정으로 그를 피해 물러섰다. 주방 쪽으로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테이블에만 앉아 있던 사람이 어째서 이렇게 가까이 왔는지 모를 일이다. 거리가 좁아 들자 불쾌한 긴장감이 일었다.

“안 온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저녁거리를 준비해 주는 걸 보면, 미령이가 언제나 날 신경 쓴다는 게 느껴져.”

“제가 할 일인걸요.”

 차 회장을 외면하며 미령은 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시장하시죠? 식사 준비할까요?”

“아니, 오늘은 괜찮아.”

 미령은 접시를 꺼내려던 손길을 거뒀다. 등 뒤에 아직 차 회장이 있었다. 심장이 작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 과거, 철모를 젊은 시절. 차 회장은 자신에게 청혼했었다. 일하던 공장 기숙사까지 찾아와 다짜고짜 덮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젊은 공장장이었던 제 남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벌어졌을 거다.

 그 이후 얽힐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죽음 후 얄궂게 다시 얽혔다. 과거 일은 사과한다며, 절 용서해 달라고. 사죄의 표시로 빚도 탕감해 주고 재희와 효정의 교육도 해결해 주겠다고 손을 뻗은 것이다.

 미령은, 두 아이를 위해 눈 딱 감고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가 마련해 준 저택 방에 기거하며 결국 이렇게 그의 집 가정부가 되어.

 차 회장과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은 이미 케케묵은 과거가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음에도 차 회장과 둘만 있는 시간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미령은 차 회장의 시선을 피해 주방을 벗어나려 했다.

“식사하지 않으시면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

“유 관장은 너무 차가워. 냉혹한 여자야. 미령이 너도 알지?”

“…….”

“너처럼 내 마음을 신경 써 주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차 회장이 말꼬리를 끊었다. 미령은 대답을 쉬었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가정부가, 모시는 회장님의 변덕스러움을 고려하여 저녁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정성이 다 네 마음이란 거 이제 아니까. 늘 고맙지.”

 그 말을 끝으로 차 회장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드리우자 미령은 화들짝 놀라 그의 어깨를 팍 밀쳐 버렸다. 그녀의 거부에 차 회장의 몸이 비틀 흔들렸다. 그녀가 이토록 강경하게 거부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동자 위에 언뜻 당혹과 분노가 스친다.

 그가 놀란 것보다 미령은 더욱 놀랐다. 고개 숙인 그녀가 불쑥 사과를 외쳤다.

“갑자기 가까이 오셔서 놀랐어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 쫓기는 사람처럼 뒤돌아 허둥지둥 주방을 벗어났다. 문간을 짚은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의 그림자가 드리운 이곳을 어서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다.

 그녀의 등 뒤로 차 회장의 눈동자가 따라붙었다. 어금니가 아득 맞물렸다. 차 회장은 미령에게 밀쳐졌던 어깨를 툭툭 털며 눈동자에 악의를 담았다.

“강미령!”

 현관을 향해 정신없이 걸어가는 미령의 등 뒤로 차 회장의 고함이 꽂혔다. 미령은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았다. 어느새 나온 차 회장의 굳어진 얼굴이 보였다.

“부르셨어요, 회장님.”

 의아하게 답하자 차 회장이 2층을 향해 고갯짓했다.

“며칠 뒤에 손님 오기로 한 거 알아 몰라.”

“압니다.”

“그런데 2층 손님방 상태가 왜 그 모양이야? 아까 혹시나 해서 봤더니 엉망이야.”

 쯧, 하고 차 회장이 혀를 찼다. 미령은 머뭇 고민했다. 본디 청소는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필요에 따라 걸레를 들고 장식품을 닦거나 간단한 침구 정리는 했으나 그 외에는 다른 이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차 회장이 저리 말하는 이상 들어가 보기는 해야 했다. 특히나 그의 심기가 저토록 불편해 보이니 더욱.

 미령은 별다른 반박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이 저택에 가정부로 왔을 때부터 그에게 숙이기로 작정했던 일이다.

“네, 지금 가서 살펴볼게요.”

 그 뒤 곧장 2층으로 올라와 손님방을 살폈다. 주인 없는 침대가 있는 유일한 손님방을 훑으며 두리번거렸다.

“뭐가 어떻다는 거야……?”

 침구도 깨끗했고 청소도 잘 되어 있었다. 깨끗한 커튼이 드리운 창틀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까. 혹시 머리카락이라도 떨어진 게 있나 싶어 허리 숙여 방바닥을 훑는데 뒤에서 달칵 소리가 들렸다. 방 잠금 쇠 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차 회장이 모래 위를 지나는 뱀처럼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

“회장님? 여기는 제가 봐도 되는데…….”

 이유 없는 초조함으로 말끝이 떨렸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차 회장이 그녀를 번쩍 붙들어 침대 위에 밀쳤다.

 미령은 소리 지르며 버둥거렸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차 회장의 눈이 코앞에 있었다.

 ***

 재희는 권 실장이 넘겨준 영상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투명한 눈동자 위로 화면이 잔상처럼 지나갔다.

 첫 번째 영상은 주방을 비추는 것이었다.

“엄마…….”

 그리운 혼잣말이 나왔다. 낯선 영상 속에 익숙한 엄마가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엄마가 부지런히 주방을 오가며 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쌀도 씻고 국도 끓이고 미역도 데치며 분주하게.

 화질이 선명하지 않아 잔상처럼 보였으나 늘 보아 오던 엄마가 맞았다. 왠지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 엄마가 원래 저랬지. 침대 위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는 모습만 보아 떠올리지조차 못했다. 엄마는 늘 저렇게 생기 있었는데.

 하지만 화면을 보던 재희의 얼굴은 곧 싸늘히 굳었다. 화면 안쪽으로 타인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차 회장이 왜.’

 차 회장이 엄마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재희는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숨을 죽였다. 별다른 일은 없었다. 엄마에게 다가선 차 회장이 무어라 몇 마디를 건넸고, 엄마는 고개 숙여 몇 마디 답했다.

“아!”

 하지만 이내 입에서 놀란 소리가 나왔다. 가까이 다가선 차 회장을 엄마가 확 밀쳤기 때문이다. 재희는 모니터를 향해 고개까지 처박고 영상을 더욱 주의 깊게 응시했다. 분에 찬 얼굴로 제 어깨를 툭툭 터는 차 회장이 잡혔다.

 그 장면이 영상의 끝이었다. 아무래도 권 실장이 필요한 부분만 잘라 놓은 것 같았다. 재희는 그대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다가 이내 두 번째 영상을 클릭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찍은 영상이었다. CCTV가 비추는 곳은 평온해 보였다. 은은한 조명만 너울거릴 뿐 별다른 일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영상 끄트머리에 누군가 잡혔다.

 재희는 모니터에 바짝 다가섰다.

“엄마…….”

 울 것 같은 표정의 미령이 급하게 달리고 있었다. 블라우스 앞섶을 움켜잡고 누군가에게 쫓기듯 계단을 마구 내려갔다. 비틀, 미령의 발이 한 번 꺾이자 재희의 입에서도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엄마!”

 눈을 크게 뜬 재희가 길 잃은 아이처럼 소리쳤다. 재희의 두근거림이 멎기도 전 화면 끄트머리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차 회장이었다. 무어라 소리를 지르는지 입을 벙긋거리며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마구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령을 쫓아 계단을 마구 내려가는 차 회장의 모습을 끝으로, 화면은 끝났다.

 재희는 떨리는 숨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보았던 영상이 머릿속에서 느릿하게 재생됐다. 흐트러진 엄마의 옷. 동시에 흐트러져 있던 차 회장의 매무새. 도망가던 엄마. 뒤쫓던 차 회장.

“…….”

 몇 년 동안 오래된 화석처럼 숨어 있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심장이 무겁고 세차게 뛴다. 재희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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