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재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효정아… 아니, 그게…….”
“언니, 나 성인이야. 알 거 다 알아. 우리 언니 이렇게 혼자 순진해서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았나?”
“…….”
픽 웃으며 건네는 직접적인 말에 재희는 입을 딱 다물었다. 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지금은 마치 불난 것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그 이후 침묵이 계속됐다. 효정은 평소와 같은 얼굴로 콧노래를 부르며 책을 읽었고, 재희는 효정의 옆을 장승같이 지키며 애만 태웠다.
뭐라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변명할 게 없어 더 당혹스러웠다. 모든 게 사실이지 않은가. 게다가 변명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났다. 하려면 아까 해야 했는데. 낭패였다.
우리 막내가 언제 저렇게 큰 걸까.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재희의 당황을 가르고 저 멀리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복도 너머에 있을 현관 밖을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이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바로 집주인, 차강주.
효정이 몸을 일으켜 거실 복도 끝에서 모습을 삐죽 드러내는 강주를 향해 달려갔다.
“치킨 왔다!”
강주는 절 치킨 취급하는 효정을 향해 눈으로 인사하고는 치킨 박스와 고급 도시락을 주방 상판 위에 차례차례 올려놓았다. 그런 뒤, 마치 퇴근한 큰오빠라도 된 것 같은 말투로 효정을 향해 말했다.
“잘 놀고 있었어? 씻고 나올게, 둘이 먼저 먹고 있어.”
“아뇨! 오빠 나오면 그때 같이 먹어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강주가 넥타이를 풀며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호오? 역시 다 벗기 전에 넥타이부터 푸는군. 당연한 건가? 호텔에서 발견했던 강주의 넥타이를 떠올리며, 효정이 주책바가지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강주가 씻을 동안 먹을 준비를 할 요량으로 치킨 꾸러미를 냅다 풀었다.
“언니! 얼른 와!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왔어! 오빠가 도시락도 사 왔어! 완전 맛있어 보여!”
“…….”
그 순간, 재희는 살짝 고민에 빠져 있었다.
효정이의 저 붙임성과 과감함은 누구를 닮은 걸까…….
잠시 후, 커다란 식탁 위에 치킨 한 마리와 고급 도시락 세 개가 올라왔다.
재희는 반찬을 우물거리며 새삼스럽게 강주를 응시했다. 아까부터 효정이가 대학 얘기니 기숙사 얘기니, 강주가 요만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주제를 종알거렸는데, 강주는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모두 받아 주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랬구나’ 하는 다정한 대꾸와 함께.
‘꼭 옛날 같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강주와 자신, 그리고 효정이가 아주 어렸던 그때로.
초등학생 효정이가 종알종알 떠들면, 강주는 저렇게 상냥한 얼굴로 차근차근 들어 주고는 했다. 마치 백 년 전 일처럼 뿌옇게 흐려진 따뜻한 기억이다.
문득 마음이 시렸다. 그의 저 상냥한 태도도 모두 계약에 기인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 서로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현실.
재희는 습관처럼 콜라를 마셨다. 효정의 말을 들어 주던 강주가 재희의 잔이 비자 자연스레 콜라를 채워 주고는 접시 위에도 치킨을 툭 올려 주었다. 재희는 강주가 준 치킨을 아무 생각 없이 집어 오물거렸다.
흐음, 하고 효정의 눈썹이 올라갔다.
“오빠, 전요, 재벌은 이런 거 안 먹을 줄 알았어요. 치킨, 피자 같은 거.”
“내 어머니와 동생은 잘 안 먹기는 해.”
“오빠는요?”
“난 미국에서 더한 것도 많이 먹어서.”
강주가 웃는 얼굴로 가볍게 답했다. 효정이 입술을 오, 하고 움츠렸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말을 고르다가 강주의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더한 거도? 그럼 혹시 마약 막 그런 것도 해 봤어요? 뉴스 보면 재벌 3세들 그런 거 많이 하던데? 막 코카인, 헤로인 같은 거.”
“효정아, 뭘 그런 걸 물어봐.”
재희는 효정을 타박했지만, 강주는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난 몸에 안 좋은 건 안 해.”
“아, 다행이다. 이제 애기 가지려면 씨가 건강해야 하니까.”
효정아! 깜짝 놀란 재희가 하마터면 포크를 떨어뜨릴 뻔했다. 기우뚱 급하게 기울어진 재희의 포크를 똑바로 세워 주며, 강주가 픽 웃었다.
거실에서 한참이나 수다를 떨다가 뒤늦게 방으로 들어왔다. 재희는 제 방에서 효정이를 재우려 했지만, 강주는 효정에게 거실 침대를 양보하고 재희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우리 효정이 성격이 좀 많이 솔직하고… 아직 어리니까… 애가 뭘 잘 몰라서…….”
창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강주의 뒷모습을 향해 재희가 말했다. 아까 효정이 불쑥 내민 말을 대신 사과하는 것이었다.
‘씨가 건강해야 하니까.’
직접적이고도 몹시 노골적인 제 동생의 말. 대학 갓 입학한 애가 재희 본인도 하지 않을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다니.
요새 젊은 애들은 뭐가 달라도 정말 다른가 보다, 아니, 오히려 어려서 가능한 일인가? 크고 나면 아마 오늘 일을 회상하며 이불 속에서 발차기할지도 몰라. 재희는 민망한 속을 애써 달랬다.
그와의 계약 결혼은 현실이라지만 아이를 갖는 건 현실이 아니었다. 꿈에서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다. 강주 역시 몸서리칠 일 아닌가. 임신으로 공연히 강주의 발목을 붙드는 건 싫었다.
임신.
그 단어는, 제 삿된 욕망을 내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한 주제다.
재희는 널찍한 강주의 등을 응시하다가 조심스레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정작 제 방이었으나 잠을 청해 본 적은 없는 공간. 침대의 서늘함이 새삼 낯설었다.
“괜찮아요. 틀린 말도 아니고.”
강주는 블라인드를 치고는 문으로 걸어갔다. 차락, 잠금 쇠 걸리는 금속 소리가 울렸다. 침대로 걸어오며 강주는 셔츠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오도카니 앉아 있는 재희에게 다가와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쥐더니 다짜고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음, 잠깐- 밖에 효정이…….”
깜짝 놀란 재희가 그를 밀어냈으나 바위처럼 묵직한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달아나는 재희의 얼굴을 따라 강주는 입술을 붙였다. 여린 몸을 침대 위로 쓰러뜨려 누르며, 당황하여 벌어진 입술 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재희는 미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목덜미가 싸늘해졌다. 지금의 키스가 키스로만 끝날 리 없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침대 밖에서의 강주는 신사답고 침착했지만, 침대 위에서 강주는 달랐다. 욕망에 충실한, 격렬하고도 격정적인 짐승이었다.
문 뒤에 바로 효정이가 있는데 소리라도 들리면. 물론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 만큼 부실하게 지어진 곳은 아니었으나 심적인 부담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아까도 호텔에서 발견한 넥타이 운운, 건강한 씨 운운하던 효정이였는데.
“잠시만… 읏…….”
그를 밀어내야 했는데 부드럽게 겹쳐지는 입술이 그녀의 시도를 속수무책으로 녹였다. 재희는 밀어내려던 시도를 거두고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손바닥 아래 닿는 열기 어린 피부가 매끄럽고도 뜨거웠다.
아랫배에 열기가 고였다. 그가 자신을 육중하게 짓누를 때, 어떤 쾌감이 들이닥치는지 이미 알기에.
재희의 귓불을 물며 강주가 속삭였다.
“팔 들어요.”
홀린 것처럼 팔을 들자 머리 위로 셔츠가 쑥 벗겨졌다. 잠옷 하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신에 가까운 속옷 차림이 되고 나서야 재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잠깐, 앗, 강주 씨……!”
“괜찮겠어요? 크게 말하면 효정이가 들을 텐데.”
상체를 일으키는 재희의 가슴팍을 눌러 다시 부드럽게 눕히며, 강주가 옅게 웃었다.
기어코 브래지어마저 풀려 침대 밑으로 툭 떨어졌다. 자유를 얻은 살덩이가 출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살갗 위에 와 닿는 차가운 공기에 재희의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솜털이 돋아난 어깨 위로 그의 입술이 닿았다. 무른 젖가슴을 커다란 손으로 주무르며 팔뚝 위에 혀를 미끄러뜨린다.
“아……!”
재희는 그를 밀어내려는 행동을 멈췄다.
어깨 위로 강주의 웃음기 어린 호흡이 흩어졌다. 뜨겁고 오싹한 숨결이 살갗을 어루만지자 젖꼭지가 뾰족하게 섰다. 강주는 그녀의 가슴만 감질나게 매만지며 팬티마저 가볍게 벗겼다.
자그마한 천 조각이 브래지어 옆에 이어 떨어졌다.
강주의 혀가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왔다. 커다란 손으로 두 젖가슴을 모아 쥐고는 바짝 닿은 유두를 동시에 물었다. 욕심이 많은 아이처럼 두 젖꼭지를 동시에 쭉쭉 빨아 당기다가 정점이 맞붙은 틈을 혀끝으로 문지르며 살살 씹었다.
“아……!”
재희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양쪽에서 느껴지는 자극에 헐떡거리는 쾌감이 인다. 재희는 문밖의 효정이가 의식됐는지 제 입을 손바닥으로 턱 막았다. 그럼에도 가슴 위에서 느껴지는 젖은 쾌감에 자꾸만 신음이 샜다.
강주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혀로 젖꼭지 끄트머리를 핥고 튕기다가 장난치듯 잘근거린다. 타액 묻은 정점이 마찰로 바짝 섰다.
“아무래도 소리가 들릴 것 같은데…….”
강주에게 꽉 붙들렸던 가슴이 그제야 풀렸다. 팽팽히 당겨졌던 살덩이가 아래로 툭 떨어져 출렁인다. 자극으로 팽팽히 솟은 꼭지가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재희는 밭은 호흡을 내쉬며 그를 올려 보았다. 소리가 들릴 것 같으니 그만해야겠다는 뜻일까. 이상하게도, 안도감보다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다. 몸 위로 그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꾸만 애가 탔다.
굳게 닫힌 문을 한 번 쳐다보고, 제 아래 깔린 재희도 한 번 바라본 강주가 재희를 불쑥 들었다. 아기처럼 쑥 들어 안고는 빙글 돌아 제 몸 위에 올렸다.
재희는 휘청거리며 그에게 달라붙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에 등을 대고 누운 강주 위에 올라탄 채였다.
“강주 씨?”
강주가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잡고 쑥 끌어 올려 각도를 맞췄다.
“직접 해 봐요.”
“네……?”
“내가 하면 재희 씨 소리 못 참잖아. 재희 씨가 직접 하면 나을 테니까.”
“…….”
재희는 숨을 삼켰다. 그를 깔고 앉은 엉덩이 위로, 뜨겁고 단단한 것이 당장이라도 불쑥 들어올 것처럼 자신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그 느낌이 선연해 괜스러운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재희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자, 강주가 허리를 슬쩍 움직였다. 아래가 은근히 마찰한다. 선액을 뚝뚝 흘리는 굵은 기둥과 재희의 젖은 틈새가 문질러져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흉흉하게 부푼 흉기가 재희의 틈을 파헤치는 것처럼 훑었다.
“아……!”
재희는 아랫배를 확 움츠렸다.
젖을 대로 젖어 있는 질구가 움찔거리며 조여들었다. 미약한 마찰일 뿐인데 은밀한 쾌감이 은근하게 번진다.
“뭐 해요. 넣지 않고.”
다정한 압박이 던져졌다.
재희는 결국 허벅지에 힘을 주며 엉덩이를 들었다. 바들바들 떨며, 제 아래 위험하게 곧추선 성기 위로 질구를 맞췄다. 하지만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자세인 탓일까. 쉽사리 그의 것을 품지 못했다. 조바심과 안타까움으로 움찔거리며 구멍을 열었다가 닫을 뿐이다.
재희는 어정쩡한 자세를 하고는 당황으로 입술만 깨물었다. 강주의 입꼬리에 느슨한 미소가 걸렸다. 제대로 삽입조차 하지 못했는데, 선단 끄트머리에서 흥분을 이기지 못한 선액이 질금질금 샜다.
“멈춰 봐요.”
강주는 재희의 움직임을 저지하고는 제 기둥을 직접 붙들었다. 이미 쿠퍼액으로 끈적해진 기둥을 몇 번 훑고는 그녀의 입구를 향해 천천히 갖다 댔다. 귀두로 재희의 두 살점 사이를 비비고 문지른다.
각도가 살짝 바뀐 것만으로 두 사람이 무리 없이 맞물릴 자세가 됐다. 강주가 허리를 쳐올리거나, 재희가 엉덩이를 살짝 내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안이 꿰뚫릴 것같이.
강주가 나른한 숨을 뱉으며 명령했다.
“이제 허리 내려요.”
재희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아……!”
뜨겁고 육중한 성기가 질구를 억지로 벌리며 벅차게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