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96)

 #46

 이내 강주는 주방 대리석에 기댔던 몸을 떼고 주방을 나갔다.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던 건 아나 보네요. 이따 밤에 보죠.”

 싸늘한 목소리만 뒤에 남긴 채.

 ***

“다시 보니 더 반갑다, 재희야. 잘 지냈니?”

“네, 안녕하셨어요?”

 의자에서 일어난 재희가 오은진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강주와의 식사가 끝난 후, 은진을 만나러 온 참이었다.

 이곳은 집 근처에 있는 한정식 식당이었다. 은진은 맨션 안 커뮤니티 룸에서 보자고 했으나 재희는 고개를 저었다. 혹여 집 근처에서 만나다가 강주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찌하는가.

 강주는 자신이 누구를 만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게 분명했으나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엄마와 관계된 일이다 보니 모든 게 조심스러워졌다.

 음식 주문 후,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날, 네 엄마를 본 거지. 얼마나 예뻤는지 이모가 처음 보자마자 반했잖니?”

 은진을 만나면 엄마의 과거부터 물어보려 했는데. 굳이 묻지 않아도 됐다. 은진은 아까부터 묻지도 않은 얘기를 술술 먼저 늘어놓는 참이었다.

“저희 엄마는 아홉 살에 처음 보육원으로 가신 거예요?”

“맞아, 할머니랑 둘이 살았는데 할머니 돌아가시니까 오게 된 거라고 하더라.”

“아아…….”

 재희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는 미처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엄마의 과거를. 엄마도 어릴 때가 있었고 엄마의 사정이 있었을 텐데. 늘 저와 효정이를 지켜 주는 엄마만 생각했지 엄마의 삶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한번은 입양도 갔었는데, 그 집 딸이 괴롭혀서 다시 돌아왔었어. 울어 빨개진 눈가가 얼마나 불쌍해 보였는지.”

“…….”

 어린 엄마의 축 처진 어깨가 떠오를 것 같아, 재희의 표정 역시 탁하게 흐려졌다.

“이런 말은 좀 그렇니? 미안해, 이모가 주책이야.”

“아뇨, 좋아요. 계속해 주세요. 알고 싶어요, 우리 엄마.”

 재희는 은진을 절실하게 응시했다. 아직 차 회장의 차, 도 나오지 않았는데 여기서 끊기면 어찌하나.

 고개를 끄덕인 은진이 말을 이었다. 그 뒤로는 일상적인 내용이었다. 엄마가 리코더를 잘 불었다는 것. 머리를 양 갈래로 예쁘게 땋고 다녔다는 것.

 엄마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재희는 한참이나 은진의 얘기를 듣고만 있다가, 음식이 나오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기, 이모.”

“응?”

“저번에 차 회장님하고 엄마가 인연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 얘기는 뭔가요?”

“아아, 그거.”

 은진은 씹고 있던 은행을 꿀꺽 삼키더니 눈을 반짝였다. 그녀에게는 퍽 흥미로운 주제의 대화거리인 듯싶었다.

“우리 보육원으로 달마다 봉사 활동 오는 기업이 하나 있었거든. 해외에서 식품 수입해서 유통하는 회사였는데 사료 팔며 급성장한. 그 기업이 차병준 씨 부친이 하던 데야. 병준 씨도 어릴 적부터 따라왔었어. 그래서 알게 된 거야.”

“그랬군요…….”

 재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있었던 보육원. 그 보육원에 봉사 활동 오는 기업의 사장 아들 차병준. 고아와 부잣집 아들 사이의 연이란 게 도대체 뭘까. 왜인지 가슴이 불안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저희 엄마와 차 회장님이 만나는 사이였나요?”

“응? 아냐 아냐. 어린애들이 뭘 안다고. …그런 건 아니고.”

 아무도 없는 룸을 두리번거리던 은진이 재희를 향해 상체를 살짝 숙였다.

“병준 씨가 혼자 미령이 좋아했었지. 네 엄마가 좀 예쁘니? 그런데 미령이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거든. 그 어린 소년이 혼자 발만 동동 굴렀지, 뭐.”

“아, 네.”

 재희는 꿈결처럼 답했다. 은진이 잡채를 휘적거리며 쯧쯧 혀를 찼다.

“어쨌든, 미령이가 보육원 나가고 나서 공장 들어간 뒤로도 나랑 연락 몇 번 했었거든. 듣기로는 차병준 씨가 여전히 관심 보였다던데.”

“그럼 혹시 성인이 되어 교제라도…….”

“그건 아닐 거야, 아마.”

 은진이 젓가락을 딱 놓더니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이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미령이도 참 대쪽 같지. 부잣집 아들이 좋다고 따라다니면 모른 척 홀랑 넘어갈 것이지. 평생 거절하다가 다른 남자랑 결혼해 버릴 건 뭐니?”

 재희는 은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다른 남자. 그건 아마 아빠를 말하는 것이리라. 자신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릴 적 차 사고로 돌아가셨다던 아빠.

“아무리 상대가 잘나도,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못 만나니까요.”

 그리 답하며 문득 민철을 떠올렸다. 잘생긴 외모. 빛나던 집안. 한번 수틀려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몇 년간 재희 본인만 따라다녔던 일편단심.

 능력으로 보나, 배경으로 보나, 솔직히 몹시 과분했던 상대였다. 좋아하고 싶었고 마음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민철을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차 회장의 배경이 아무리 빛난다 한들 마음을 줄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테지. 그런 면에서 볼 때, 자신은 엄마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하기야, 미령이가 마음을 못 여는 것도 당연하기는 해. 병준 씨가 네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그 표현을 가끔 과격하게 하기도 했었거든.”

“과격이요?”

“어느 날엔 네 엄마가 울면서 전화했던 적이 있었어. 병준 씨가 밤에 불러내더니 결혼하자며 끌어안고……. 뭐, 그랬다고. 그 딱한 게 말할 데가 없으니 나한테까지 연락한 거지.”

“아…….”

“위로해 주고 전화 끊긴 했는데, 제대로 설명을 못 들어 모르겠지만. 뭐 그래.”

“…….”

 은진이 재희의 굳은 표정을 보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별일은 아니었을 거야. 그렇게 해코지 될 일이야 했겠니? 그랬으면 네 아빠 죽고 난 후 병준 씨 집에 안 들어갔겠지. 미령이 자존심이 얼마나 세고 꼿꼿한데.”

 재희의 낯이 파리하게 식었다. 뒤죽박죽으로 들은 엄마의 과거가, 그녀의 머릿속을 마구 돌아다니고 있었다.

‘결혼하자며 끌어안고 그랬었다고.’

‘네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그 표현을 가끔 과격하게 하기도 했었거든.’

 은진의 목소리가 갈고리처럼 박혀 들었다. 안을 헤집으며 미약하게 피어오르던 의구심을 마구 파헤친다.

 그날. 엄마가 사고를 당했던 날.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갔다던 그곳에 차 회장님이 계셨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엄마는 늘 아무도 없을 때 저택에 들어갔잖아. 가정부였으니까. 그건 특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는데.

 늘 올곧았던 엄마가 왜 하필 그날 물건을 훔치려 했을까. 상황도 이상해. 귀중품 있는 자릴 엄마가 어찌 안다고.

 애초에 엄마의 죄는 차 회장의 증언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오로지 차 회장의 증언으로만.

 그의 증언…….

 쿵. 쿵. 쿵. 심장이 묵직하게 뛰었다. 아직 갈피가 잡히지 않아 테이블의 문양만 눈으로 좇고 있는데 쯧쯧 은진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딱하기도 하지. 그 예쁜 얼굴로 인생이 그렇게 꼬이기도 힘든데.”

 재희의 시선이 몽롱하게 올라왔다.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혀를 차는 은진이 보였다.

“저렇게 움직이지도 못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박복한 팔자는 어디 안 간다는 게 딱 맞지.”

 은진의 말을 듣는데, 문득 숱하게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아빠는 죽었고 엄마는 아픈데 부양해야 할 동생도 있다고? 너도 참 불쌍하다. 인생이 왜 이리 굴곡졌냐며 절 바라보는 눈빛 위로 동정을 올렸었다.

 아마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너같이 재수 없는 애도 있는데, 난 행복한 거지.’

 다른 이의 불행에서 제 행복을 찾는 것. 그들이 찾는 불행은 오롯이 제 몫이었고, 그들이 느끼는 삶의 행복은 제 불행에서 파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재희가 은진을 향해 힘주어 말했다.

“우리 엄마 안 불쌍해요.”

“응?”

“아빠 만나서 행복했다고 하셨고, 저랑 효정이 같은 예쁜 딸 낳아 너무 좋다고 하셨었어요. 엄마 그렇게 불행하지 않아요. 언젠간 꼭 일어나실 거고, 그럼 제가 평생 호강시켜 드릴 거예요.”

“…….”

“저, 그 정도 능력 있어요. 엄마가 그렇게 잘 키웠으니까.”

 물론 아직 가진 건 없다. 하지만 자신감은 있었다. 능력 인정받아 회사에 계속 붙어 있을 생각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승장구하며, 엄마가 깨어나면 어떻게든 행복하게 해 줄 참이었다.

 타인이 보낼 동정 따위, 엄마에게 쏟아질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은진이 값비싼 팔찌를 만지작거리다가 머쓱하게 웃었다.

“미령이는 좋겠네, 딱 부러지는 딸 있어서. 내 딸내미는 아직 철이 없어. 너무 귀하게만 키웠더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니까?”

 ***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복도를 걷는다. 햇살이 저문 시간. 재희는 휘청휘청 집으로 돌아왔다. 실내조명이 다 켜져 있는 걸 보니 강주가 먼저 와 있는 모양이다.

 드레스 룸에 옷을 걸어 놓은 후 오도카니 소파 위에 앉았다. 드레스 룸 안에 있는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었다. 강주가 샤워 중인 것 같았다.

“…차강주.”

 비밀스럽고도 모호한 사내.

 그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그렇게 떠나 놓고 왜 먼저 키스해 왔던 건지. 그의 마음도, 행동도,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엄마의 사고에 대해 무얼 알고 있기라도 한 건지. 혹시 다른 속내가 있던 건 아닐까.

 엄마의 사고 이후. 갑자기 출국 일정을 한 달이나 당겨 떠났던 차강주. 왜였을까.

 숨이 가빠졌다. 답답했다.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만 같다. 재희는 가쁘게 호흡하다가 유령처럼 욕실로 들어갔다. 복잡한 생각을 물과 함께 흘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샤워를 하면서 이번에는 차 회장을 떠올렸다.

“분명 뭔가 있어.”

 분명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증거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음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막막했다. 만약 엄마 사고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면? 차 회장이 혹시 무언가를 은폐한 것이라면?

‘하지만 그렇다 한들 내가 뭘 어떻게 파헤칠 수 있는 거지?’

 우선 차 회장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차 회장은 대기업 회장. 자신은 그 회사의 사원. 한때는 그의 집 한쪽에 산 적 있었지만, 지금은 접점이라고는 무엇도 없는 타인일 뿐.

 쏟아지는 물줄기를 한참이나 맞던 재희가 문득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있다. 접점이 있기는 했다.

 차강주.

“…….”

 저와 몸을 섞는 이. 앞으로도 함께 밤을 보낼 사람.

 엄마의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남자. 그리고 모든 사건의 중심인 차 회장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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