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언제나 짊어지기만 했다. 아주 아기였을 때엔 엄마에게 어리광도 많이 피웠던 것 같은데. 집이 망해 어린 동생의 육아가 제 차지가 된 뒤로는, 늘 언니 역할이었다. 홀로 꿋꿋하게 견디며,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자신이 힘들어하면 엄마는 더 힘들어하리라는 사실을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현실을 버티기만 했다. 엄마가 의식을 잃은 이후엔 더욱 그랬다. 그래서 민철에게 흔들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기대고 싶어서. 그 안락한 거짓에 속아 버렸던 것일지도.
“엄마가 안아 줬던 것처럼. 절 꽉 안아 주면 좋겠어요……. 마치 아빠처럼…….”
열 오른 재희의 몸이 강주의 품 안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때, 귓가에 딱 자른 목소리가 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재희 씨.”
재희가 살짝 굳었다. 강주는 픽 웃으며 재희의 손을 제 앞섶에 갖다 붙였다. 터질 듯 발기한 성기가 브리프 천을 마구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어느 아빠가 딸을 보고 이걸 세워요.”
재희의 목 아래 침이 꼴깍 넘어갔다. 바르작거리는 손 아래, 묵직하게 들어찬 감각이 새삼 낯설었다. 뜨겁다. 차마 움켜쥘 수 없어 손가락만 바르작거렸다. 두툼한 성기가 꺼덕, 흔들리며 손바닥에 감겼다. 줄기처럼 엉긴 핏줄의 굴곡이 느껴졌다.
“아…….”
재희는 눈을 감았다. 꽉 다물린 입술 위로 그의 입술이 닿았다. 강주는 경직된 재희의 입술을 벌리고 알코올 내음이 남은 입 안을 헤집으며 혀를 밀어 넣었다.
재희는 그와 입술을 붙인 채, 절 느릿하게 헤집는 그에게 몸을 기댔다. 절 따라붙으며 빨아 당기는 그의 혀를 밀어내다가 벅찬 숨을 흘리며 혀를 애써 움직였다. 혀를 굴리며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단단한 기둥이 꿈틀거리는 감각이 선명하다. 입술 사이로 그의 신음이 작게 들려왔다.
재희는 숨결을 그에게 뱉어 내며 몸을 늘어뜨렸다. 몸에 흥분이 돌자 취기가 새삼 밀려오기 시작했다. 공기가 부족하여 그런지 머리까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건 술기운 탓이리라.
“으응…….”
이내 재희의 몸이 온전히 늘어졌다. 그를 벅차게 따라가다가 정신을 놓은 것이다.
젖은 입 안을 헤집던 강주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재희의 말캉한 혀에 힘이 빠지자 천천히 입술을 떨어뜨린다. 달라붙어 있던 속살이 떨어지자 나지막하게 촉촉한 소리가 울렸다.
재희의 고개가 온전히 떨어졌다. 강주는 재희의 고개를 따라 저 역시 시선을 내렸다. 재희가 얹듯 붙들고 있는 성기가 보였다. 브리프 아래, 아프도록 곧추선 채 쿠퍼액을 질금질금 흘리고 있었다.
“…….”
툭. 그의 성기를 쥐고 있던 재희의 손마저 시트 위로 떨어졌다. 강주는 늘어진 재희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등을 받쳐 침대에 눕혔다. 마치 아이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부드럽게 흩어져 있다. 순결한 천사처럼, 재희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브래지어로 반쯤 가린 뽀얀 가슴팍만 드러낸 채.
강주는 흉흉하게 발기한 제 아래와, 홀로 잠이 든 재희를 번갈아 주시하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답답한지 속옷 끈을 잡아끄는 그녀를 대신해 브래지어를 풀어 주고는 목 아래까지 이불을 꼼꼼히 덮어 주었다.
“후우…….”
강주의 낮은 한숨이 울린다. 그는 재희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떼고는 욕실로 곧장 걸어갔다.
그리고 샤워기 아래 몸을 밀어 넣자마자 찬물을 틀었다. 홀로 타오르는 제 열기를 억지로 식히듯.
***
재희는 창가에 앉아 모친 미령의 손을 젖은 수건으로 닦았다. 애처로운 눈으로 손등을 닦고 아쉬운 듯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삭삭 로션을 발랐다. 병실을 나가기 전, 의례 행사처럼 항상 해 오는 일이었다.
“우리 엄마 손은 아직 뽀야네. 나 이제 가야 하는데, 아쉬워서 어쩌지.”
주말을 맞이해 엄마를 방문했다가 이제 떠나려는 참이었다. 차 시간을 생각하면 일어서야 했는데 그러기가 힘들었다. 몇 분 정도 더 미령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재희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 올게, 엄마. 사랑해.”
재희는 미령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온전히 병실을 떠난 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남자가 미령의 병실에 뱀처럼 들어섰다.
“아, 내 정신 어떡하면 좋아.”
재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시멘트 길을 걸었다. 40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버스 정류장까지 부리나케 걸어갔는데, 휴대 전화를 놓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놓고 온 김에 엄마 얼굴 좀 더 보지, 뭐.”
하지만 이내 가뿐하게 웃었다.
병원으로 들어와 동그란 로비를 지난 후, 계단을 올랐다. 엄마의 병실로 가기 위해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복도 끄트머리 소파에 앉은 누군가가 보였다.
재희는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서려다가 멈칫 발걸음을 굳혔다. 상대의 얼굴이 낯익었기 때문이다.
재희의 눈이 가느다랗게 좁아 들었다. 멀리서 보이는 낯선 이의 형체를 가만히 주시한다.
‘기석 씨네.’
차 회장의 경호원인 권기석이 있었다. 선망받는 유도 선수였다가 교통사고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 약 십 년 전부터 차 회장의 충실한 심복이 된 젊은 경호 실장. 엄마와 차 회장 집에 살 때, 자주 만나고는 했던 이.
저 사람이 저기 왜 있을까.
의아해하며 눈만 끔뻑이는데 기석의 휴대 전화벨이 울렸다. 기석은 전화를 받기 위해 일어서더니 뒤돌아 창가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우연히 여기에 온 건가.
재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엄마의 병실 앞으로 걸어갔다. 뒤돌아선 기석을 알은척하거나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평소라면 거리낌 없이 열었을 문 앞에 서서 잠시 고민했다. 손잡이를 쥔 채 문에 난 자그마한 창문부터 들여다본다. 이내 그녀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화들짝 놀란 재희가 뒤로 한발 물러섰다.
‘차 회장님?’
뒷모습 실루엣만 보였지만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자주 마주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따금 멀리서 스치듯 보았던 적이 있지 않은가.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멍하니 그를 응시했다. 차 회장의 손이 슬금슬금 올라가, 미령의 하얀 손을 움켜쥐었다. 탐나는 보석을 좇듯 내려 보며 음습하게 매만진다.
불쾌함에 재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드르륵. 문을 거침없이 열었다.
“누구세요?”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우선 한 번 물었다. 차 회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시냐며 조아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흠칫 놀란 차 회장이 미령의 손을 놓았다. 이내 뒤를 돈 그의 낯엔 어느새 당황은 사라지고 여유만 남았다.
차 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병실로 들어온 이가 재희임을 확인한 모양이다.
“오래간만이구나, 재희야.”
“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회장님?”
재희 역시 담담하게 손을 내밀었다. 거친 풀처럼 딱딱하게 메마른 손이 재희의 손을 붙들었다.
“네 엄마 이렇게 된 이후로는 처음이지? 많이 컸구나.”
차 회장의 눈이 뱀같이 번뜩였다. 같은 저택 담 안에 살았어도 아주 간혹, 재희를 마주했을 뿐이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를 몇 번, 중고등학생이었던 재희를 몇 번, 성인이 된 재희는 처음 마주하는 지금.
묘한 감정이 차 회장의 눈동자 위를 스쳤다. 재희의 보드라운 손을 꽉 움켜쥐며 느릿하게 훑는다.
재희는 모친 미령과 무섭도록 닮아 있었다. 어릴 적에는 마냥 헤헤거리며 다녔던 재희였지만, 학생 티를 벗자 꽃이 만개하듯 선연한 아름다움을 피워 냈다.
새하얗고 가녀린 꽃잎같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힘주어 짓뭉개고 싶은 충동이 이는 묘한 분위기.
재희는 차 회장의 손아귀에서 제 손을 빼냈다. 절 훑는 시선에 왠지 모를 한기가 돋았기 때문이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회장님?”
“아아……. 오랜만에 네 엄마가 생각나더구나. 걱정돼 한번 와 보았지.”
“미리 말씀하셨으면 제가 맞이해 드렸을 텐데요.”
“괜히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지 않으냐.”
“아, 네.”
무언가 속에서 까끌까끌하게 일어났지만 재희는 우선 고개를 숙였다.
차 회장이 여길 진짜 왜 온 걸까. 그의 저택에서 일어났던 사고이니 정말 신경 쓰이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이미 몇 년 전 일인 데다, 엄마의 사고는 애초에 절도 미수로 발생한 일이었다. 그가 죄책감이나 동정심에 이곳으로 찾아올 일이 없다는 뜻이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는 예전과 같아요. 매해 일정 부분 지원해 주시는 병원비는 아껴서 잘 쓰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네 어미가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서 오래 일해 온 정이 있는데, 이 정도는 신경 써 줄 수 있지.”
재희는 네, 하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에 걸린 시계를 올려 본 차 회장이 이내 옷깃을 툭툭 털었다.
“이만 가야겠다. 재희, 네가 더 엄마께 신경 쓰고.”
“네.”
이내 차 회장은 재희의 어깨를 위로하듯 두드리고는 병실을 나갔다.
재희는 그가 사라진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의자에 앉아 엄마의 손을 물수건으로 박박 닦았다. 차 회장이 매만졌던 곳이었다.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불쾌함에 가까운 감정이 치민다. 엄마를 우두커니 내려다보던 그의 뒷모습. 그러다 엄마의 손을 붙들었던 음습한 손길.
‘아무리 걱정되었다고 한들, 차 회장 같은 사람이 가정부였던 엄마를 걱정해서 찾아왔다고? 손은 왜 만진 거야, 기분 나쁘게.’
차 회장은 약자를 향한 다정함을 보인 적이 없었다. 늘 턱을 꼿꼿이 들고, 저보다 못한 인간은 버러지 취급하는 부류였다.
‘자기 친아들인 상무님까지 그렇게 험하게 대했는걸.’
한데 그런 사람이 왜? 알 수 없는 의문이 치민다. 창밖으로 붉게 타오르는 해가 점점 몸을 눕혔다. 재희는 병실이 어두워지는 것도 잊고 엄마를 붙든 채 앉아만 있었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무언가 몹시 이상하다고.
***
몇 시간 뒤. 재희는 맨션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1층 로비 샹들리에 아래 멍하니 앉았다. 의미 없는 시선으로 양탄자를 훑는다. 머리가 복잡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어렴풋하게 보일 것 같기도 한데 그것을 들여다보면 다시 뿌옇게 흐려졌다.
늦은 저녁. 인적은 드물었다.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텅 빈 로비가 오늘따라 춥게만 느껴졌다.
재희는 한참이나 차 회장을 떠올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이 답답했기에 화단을 거닐며 바람이라도 쐴 생각이었다. 유령처럼 걸어 로비를 지나려 하는데, 전화 통화를 하며 걸어오던 한 중년 여인과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재희는 고개를 꾸벅 숙여 사과했다. 그리고 상대방을 느릿하게 지나쳐 지나가려 했다. 상대 여자가 재희를 따라 뒤돈 건 그 순간이었다.
“어?”
휴대 전화를 쥔 채, 여자는 고개까지 돌려 가며 재희를 좇았다. 주름진 눈가가 더욱 좁다랗게 가늘어진다. 방금 마주했던 재희의 얼굴이 스치는지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미령이?”
마치 혼잣말을 하듯, 그녀가 재희 모친의 이름을 불렀다.
걸음을 멈춘 재희가 찬찬히 뒤를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