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재희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늘 강주의 의중을 짚기가 힘들었다. 어떤 생각으로 말을 하는 건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 모든 게 모호하고 비밀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 가는 안개같이 잡히지 않는 이. 항상 연기처럼 사라지는 신기루 같던 사람.
파스타만 돌돌 돌리던 재희가 뒤늦게 물었다.
“왜요?”
강주는 담담한 목소리로 쉽게 답했다.
“외로워서.”
고민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깔끔한 목소리였다.
아아, 재희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몸이 외로워서. 그 커다란 곳에서 홀로 보내는 밤이 외로워서. 그래서.
그가 항상 말하지 않았나. 몸이 마음에 든다고.
애초에 알고 있는데. 눈앞의 상무님이 어린 시절 알던 강주 오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거칠게 절 몰아붙이던 그와 밤을 보내며 절실히 느끼지 않았나.
그럼에도 새삼 그가 낯설어 재희는 생각에 잠겼다.
많은 고민이 오갔다. 사고처럼 들이밀어진 제안이지만 솔직히 끌렸다.
차강주. 그는 늘 자신이 선망해 온 사람이었다. 아마 지금 거절한다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 잠깐이라도 곁에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친 거라며.
‘하지만 다시 내쳐지면.’
오싹한 초조함이 일었다.
그를 잃었던 이유는, 자신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키스한 후 밀쳐졌고, 선물을 건넨 후 내쳐졌으며, 그에게 헤어짐의 슬픔을 표현하자 커다란 벽이 생겼었다.
‘그러니까 욕심내면 안 돼.’
차강주. 어려운 남자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하지만, 몸이 좋다던 그에게 제 몸을 모조리 던져 버리고 싶은 자신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미 그라는 수렁에 빠진 뒤였다. 벗어나려 몸부림칠수록 더욱 진득하게 빠져드는 수렁으로.
그래서 그냥 빠져 버리기로 했다. 달콤한 독 뒤에 올 아픔을 외면해 보기로 했다. 현실만 생각하며 기회를 잡아 보고 싶었다.
재희가 머뭇머뭇 포크를 매만지며 물었다.
“…만약……. 효정이가 방학에 올라오면……. 효정이도 거기서 함께 지낼 수 있나요?”
“물론, 방은 많으니까.”
강주의 답은 깔끔했다. 재희는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을 애써 무시했다. 현실적인 고민을 입에 올리자, 그의 집으로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재희는 허세 부리듯 미소 지으며 다시 말했다.
“제 방은 한강 보이는 곳으로 주셨으면 좋겠어요. 거실 옆에 있는 제일 큰 방요.”
강주는 이번에도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해요. 하지만 아마 재희 씨가 그 방에서 잘 일은 없을 거예요.”
“왜요?”
턱을 괸 강주가 고개를 기울이며 다정히 웃었다.
“난 내 침대 위에서만 재희 씨와 뒹굴 거고, 그 후엔 재희 씨 끌어안고 잘 생각이거든.”
“…….”
“매일 섹스할 거란 뜻이에요. 날마다 재희 씨 안에 처박고 쌀 거라고. 그러니 재희 씨가 그 방에서 잘 일은 없어요.”
야한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더없이 깨끗하고 단정했다. 재희는 차마 대꾸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고 바보 같은 단어만 잠꼬대같이 뱉으며.
***
“실례하겠습니다.”
그의 집으로 들어오는 건 간단했다. 커다란 가방 하나만 들고 오니 끝이었다.
재희는 가방끈을 두 손으로 바짝 쥐었다. 이걸 내려놓아도 될까. 냉장고에 반찬이나 쌓으러 왔지, 이런 식으로 온 건 처음이다. 물론 비 오던 밤에도 오긴 했었으나 그땐 명확한 목적이 있던 날 아니었나.
가까이 다가온 강주가 재희의 손에서 가방을 잡아 뺐다.
“짐 풀어요.”
그러고는 거실 옆방에 가방을 대충 던져 놓았다.
“재희 씨 방은 여기. 재희 씨가 여기서 잘 일은 별로 없을 테지만, 우선은 그래요.”
그가 방문을 텅, 밀어 닫았다. 짐 정리할 새도 없이 그녀의 방이 밀실이 됐다. 재희는 괜히 불안해 여기저기를 서성이며 집을 구경했다.
앞으로 자신이 자게 될 그의 침대 근처도 한번. 질리도록 보았던 주방 대리석 상판도 손으로 한번 쓸어 보고, 강주의 화분도 괜히 기웃거렸다.
강주가 재희 곁에 가만히 섰다. 재희는 도자기에 박힌 푸른 나뭇잎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저기, 월세는 안 받으실 거죠?”
그가 픽 웃었다.
“받는다면 줄 거예요?”
재희는 그의 물음에 짐짓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런 집에서 그와 함께 사는 호사를 누리려면 얼마를 주어야 하는 걸까. 제 월급을 다 털어 넣어도 부족하다. 오히려 빚까지 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얼마 전만 해도 ‘차강주 상무님’과는 말 하나 제대로 섞지 못할 만큼 데면데면했었는데, 고등학생 강주 오빠를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지. 강주 오빠는 야한 말도, 야한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 날 향해 흑심을 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사람인걸.’
재희는 고개를 내젓고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러니까, 보증금도, 월세도 필요 없다는 말씀이시죠?”
“맞아요, 오히려 내가 재희 씨에게 주고 싶을 지경인데.”
주고 싶다니. 재희가 화초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내렸다. 강주가 그녀를 당겨 안아 아랫배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리자 옷 아래로 손이 들어와 살갗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뭘 어떻게 하면 안에 그냥 싸게 해 줄 수 있어요?”
귓가에 입을 맞추며 그가 물었다.
“…네?”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바보처럼 반문했다. 손끝으로 피부를 약하게 훑다가 손바닥으로 느릿하게 쓸어 온다.
“나는 콘돔 쓸 생각 없어요.”
강주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제게 맞붙였다. 접붙인 줄기처럼, 둘의 몸이 틈 없이 맞물렸다. 강주가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잡고 제게 붙였다.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 성기가 묵직하게 문질러졌다.
애태우듯 귓가를 슬쩍슬쩍 지분거리다가 재희에게서 솜털이 자르르 돋아나자 혀끝으로 핥았다.
젖은 감촉과 함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늘 맨좆으로 넣을 거고, 이 안에 곧바로 쌀 거예요. 그게 내 더럽고 못된 취향이거든.”
아, 재희는 숨을 꼴깍 삼켰다. 그의 난잡한 언사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들을 때마다 당황스럽다. 달아나고 싶어 몸을 바르작거렸으나 더욱 단단히 갇혔다.
꼴깍. 침이 넘어가는 그녀의 목울대 위에 그가 고개 숙여 키스했다. 부드러운 살갗을 이로 살짝 물며 빨아 당겼다.
마치 아이를 달래듯 친절하고 다정한 음성이 이어졌다.
“재희 씨가 무슨 생각으로 내 집으로 들어오고, 어떤 마음으로 내 제안을 수락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원하는 건 다 뽑아 먹을 생각이거든.”
속삭이는 숨결이 간지러워 견딜 수 없었다. 재희는 휘청이며 다리에 힘을 줬다. 흔들리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제 허벅지를 넣어 지탱한 후, 강주는 브래지어를 움켜쥐었다. 손을 넣어 만지는 대신 천 위를 부드럽게 맴돌며 달래듯 주무른다.
재희는 달뜬 숨을 삼키며 그를 올려 보았다.
“…그러니까……. 콘돔 없이 하는 대신 제게 화대를 준다는 말씀이에요? 집세가 화대예요?”
그의 품 안에서 몸을 떨며 물었다. 이상한 일이지. 수치스러운 발언을 하는데, 수치스럽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 쏟아지고 무너지는 건 이제 익숙하니까.
재희의 목에 입을 맞추며 강주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화대? 화대를 줄 생각이었다면 제가 지금 억지로 재희 씨 벗겨 먹어야죠.”
부드러운 입술이 재희의 쇄골을 훑었다. 목 아래 닿는 그의 숨결이 사뭇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양탄자 위에 눕히며, 강주가 말을 이었다.
“당장 발가벗겨 그대로 처박고 싶은데, 신사적으로 참고 있잖아요. 발정 난 개처럼 핥기만 하면서. 이게 어떻게 화대예요.”
“아읏, 그럼 이건, 으응…….”
“그냥 서로가 원하는 걸 주고받는 상호 교환이라고 생각해요. 재희 씨가 바라는 건 뭐라도 줄게요.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니까. 이 안에 싸는 거.”
재희의 아랫배를 꾹 누르며 강주가 웃었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가 유독 어둡다. 사라락 쏟아지는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짙은 눈빛만이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선이 예쁜 그의 입술을 바라보며 재희가 힘겹게 물었다.
“그러다가 일이라도 생기면 상무님이 곤란하실 텐데요.”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어찌하겠는가. 자신보다는 그에게 실이 많을 건 확실했다. 애초에 피임약을 먹고 있으니 임신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에게 이런 위험한 취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늘 계획적이고 정갈한 삶을 사는 것 같은 그에게. 하기야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런 일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절 들인 이유부터 비밀스럽지 않은가.
강주의 손끝이 그녀의 배를 느릿하게 훑었다. 아랫배를 문지르다가 슬슬 올라와 위로 향한다.
“그런 걱정은 재희 씨가 할 필요 없어요.”
뜨거운 손길이 지날 때마다 솜털이 쭈뼛 섰다.
생각에 잠긴 재희의 몸 위로 강주가 얼굴을 내렸다. 셔츠를 억지로 끌어 내려 살짝 드러난 가슴골에 입술을 비볐다. 뜨거워진 그의 숨결이 짙은 흥분을 안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흠칫흠칫 떨리는 재희의 피부를 쓰다듬고 간지럽혔다.
“재희 씨는 깊이 생각하지 말아요.”
“읏, 어떻게 깊이 생각을 안, 아……!”
그녀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강주는 능숙하게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 재희는 깜짝 놀라 말을 멈췄다.
그녀의 허벅지를 억세게 누른 후, 강주는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바지를 벗겨 뒤로 던졌다. 농익은 공기 사이로, 툭 하고 바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신호였다. 강주의 손이 속옷 위를 문지르며 그녀의 흥분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자극에 하얀 허벅지가 파르르 떨린다. 움츠러든 다리 사이로 진득함이 고이기 시작했다.
움찔거리는 질구를 천 위로 문지르고 가르며 강주가 속삭였다.
“뭘 원하는지 말해 봐요. 재희 씨가 원하는 건 내가 다 줄 수 있어요.”
손길 아래 클리토리스가 야하게 몸집을 불렸다.
“읏, 아응…….”
재희는 몸을 뒤틀며 제 흥분을 부정했다. 그가 했던 말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뭉개졌다. 내가 원하는 건 다 줄 수 있다고. 내가 원하는 건 늘 단 하나였는데. 차강주, 당신.
그것도 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