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96)

 #35

“재희 씨.”

 그의 침착한 목소리가 재희를 불렀다. 흉흉한 성기는 아직 흥분으로 꺼떡거리는데 목소리만은 차분하고 정중했다.

 재희가 간신히 눈을 떴다. 눈앞이 흐릿했다.

 강주는 발갛게 물든 재희의 눈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눈가에서 또륵 눈물이 떨어져 내리자 얼굴을 내려 눈가를 핥았다.

“재희 씨, 혹시-”

“네……?”

 도중에 말을 멈춘 그를 향해, 까끌거리는 목소리로 재희가 겨우 답했다. 강주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추고 그녀의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녀를 마구 몰아붙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여운을 즐기는 다정한 사내만이 남았다.

 묘한 의문이 치밀었으나 강주는 제 속의 질문을 묵살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얼마 전만 해도 민철과 사귀고 있던 재희다.

 그는 나직이 그녀 뺨에 제 뺨을 비볐다. 열기가 남아 있는 그녀의 살갗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보드라웠다. 그 감각만으로도 다시 그녀 안에 마구 처박고픈 욕구가 머리를 들었다. 강주는 제 충동을 무시하고는 재희를 두 팔 가득 감싸 안았다.

 휘감기는 작은 몸을 끌어당기고 또 끌어당겼다. 모조리 품고 틈 하나 없이 꽉 맞붙었다. 그럼에도 부족했다. 제 속을 긁는 갈증이 풀릴 줄을 몰랐다.

 그는 늘어진 그녀 몸을 안고, 질구 대신 부드러운 허벅지 사이에 성기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끈적하게 젖은 두 다리 사이에 성기를 문지르며 제 본능을 애써 억눌렀다.

 늘 갈망했으나 억눌렀고 원했으나 참아 냈다. 그 욕구가 이 정도 행위로 잦아들 리가. 하지만 작은 새처럼 헐떡거리는 재희를 더 몰아붙일 수 없어 그녀의 하체에 절 비비며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일 따름이었다. 선단 끄트머리에서 쿠퍼액이 질금질금 샜다.

“으응…….”

 재희는 그의 품에서 바르작거렸다.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를 통과하는 뜨거운 불덩이가 낯설다. 하지만 쑥쑥 오가는 그 감각이 싫지만은 않아 얌전히 안겨 있었다.

 나른한 한숨이 힘겹게 샌다. 그와 맞붙은 이 시간이, 그가 절 보며 욕정하고 있는 이 순간이 꿈같이 느껴지기만 했다.

 제 첫 경험 상대가 그라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제 모든 걸 모조리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첫 마음도 주고 첫 키스도 주고 첫 경험도 주었다. 그는 제게 늘 처음 내리는 새하얀 눈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손을 뻗어 만지면 손끝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져 버리는.

 ***

“으응…….”

 재희는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그녀는 방금 선잠에서 깨어 눈을 감은 채 앓는 중이었다.

 둔탁한 흉기로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 같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둔탁하고 흉흉한 흉기. 그것이 인정사정없이 마구잡이로 처박혔으니까.

 몸이 끈적거리지 않아 쾌적했다. 그의 정액으로 질펀하게 젖어 누웠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지금은 보송한 걸 보아 아마 그가 닦아 준 것 같았다.

 한계를 모르고 벌어졌던 입구가 쓰라리다. 문득 밤에 보았던 그가 떠올랐다. 절 한가득 덮었던 넓고 단단한 어깨. 그 아래 보기 좋게 자리 잡은 두터운 근육. 팽팽히 긴장한 복근과 그 아래…….

 몸이 뜨거워졌다. 아래가 간지러워 허벅지를 움츠리며 심호흡했다. 재희는 고개를 내저으며 절 감싼 온기에 뺨을 비볐다. 몽롱한 와중에도, 어제 보았던 그의 외설스러운 모습이 떠올라 심장이 간지러웠다.

 제 가슴에 매달려 있던 그를 내려다보았을 때 보이던 너른 등. 움직일 때마다 자잘한 근육들이 도드라지며 유려하게 움직였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의 남성.

 공들여 빚은 조각같이 생긴 사내가 갖고 있을 법하지 않은, 거대하고 흉흉했던 것. 성기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는데도 불쾌하지 않았다. 배꼽 위까지 한계를 모르고 치솟은 성기 기둥에 흉흉히 선 핏대. 꺼떡거리며 끈적한 액체를 뚝뚝 떨구던 선단.

“하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제 일이 생각나 재희는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었다. 섹스가 이런 거라면, 모두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이렇게 좋은 거면. 몸이 달아 모두 일상생활은 어떻게 하는 거지. 내가 유독 음란한 걸까.

 그때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꾸 그러면 서요. 그럼 재희 씨만 곤란해질 텐데.”

 재희가 움찔 어깨를 굳혔다. 찬찬히 눈을 떠 환상에 젖어 있던 정신을 현실로 끌고 온다.

“재희 씨 힘들잖아요, 지금.”

 다시 부드러운 음성이 속삭여졌을 때, 그제야 현실을 온전히 파악했다.

 아……! 재희는 비로소 자신이 그의 가슴팍에 코를 박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품에 안긴 채, 야한 그를 상상하고 있던 것이다.

 목덜미를 확 붉히고는 그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돌덩이처럼 묵직한 몸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밀려나는 대신 재희의 가느다란 몸을 한 팔로 안고 흘러내린 이불을 덮어 주었다. 커다란 손으로 등을 쓸며 마치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래듯 다독거린다.

“피곤할 텐데, 더 자요.”

 쪽. 이마 위에 다정한 입맞춤이 붙었다가 떨어졌다. 외설적인 흉기를 상상했을 때보다 속이 더욱 달아올랐다.

 이마에 닿았다 떨어지는 강주의 머리카락이 차갑다. 씻고 나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맞닿은 그의 몸에서 은은한 바디 워시 향이 피어올랐다.

 재희는 고개를 비껴 내려 침대 옆 창을 응시했다. 서울은 한밤이었다. 줄기처럼 뻗은 도로 위로 하얗고 붉은 빛줄기가 선을 그린다. 그 옆을 유유히 흐르는 한강, 아른거리는 조명 빛을 보며 재희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예쁘다.’

 이런 야경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가 밤마다 반지하 방에서 올려 보는 건 작은 창문 틈으로 보이는 새까만 땅뿐이었다.

 재희의 머리 위로, 나직한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서울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아요. 그래서 이 자리가 좋아요.”

 집 안의 조명은 모두 빛을 잃었다. 하지만 벽을 온통 채운 커다란 창에서 야경이 비쳐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강주가 굳이 방이 아닌 거실에 침대를 놓은 이유도 아마 그 이유 때문이리라.

 좁은 곳을 싫어하는 상무님. 어두운 곳도 싫어하는 상무님. 비를 싫어하는 상무님.

 재희는 자신이 아는 그를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몸이 다시 노곤노곤 잠기기 시작했다.

 절 끌어안은 차강주가 좋으면서도 낯설다. 분명 몇 년 전만 해도 누구보다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었는데. 그의 아픔과 고통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고 그리 믿었었는데.

 눈앞의 사내는 이제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이제 정말, 자신이 아는 강주 오빠는 없었다. 제 몸을 거칠게 유린하던, 젖은 호흡을 뱉으며 흥분에 물든 난폭한 눈빛을 보이던, 제 몸을 밀고 들어와 절 뜨겁게 새기던 낯선 사내. 첫 경험이었던 자신을 능숙하게 다루던 차강주 상무만이 남았을 뿐이다.

 자신이 그만을 그리며 누구도 만나지 못하는 사이 그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만났을까. 이 몸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녹이고 헤어 나올 수 없이 꽁꽁 감아올렸을까. 그에게 이끌려 부나방처럼 불길에 몸을 던지는 이들이 자신만은 아닐 테지.

 당연한 사실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없는 사내였으니. 그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그가 탐이 나, 재희는 입술을 감쳐물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건 탐내어서 안 되는 건데. 욕심내는 순간 다시 밀쳐지리라는 잔인한 사실을 알면서도.

 9장. 어떤 복수

 강주의 말대로 민철과의 일이 별다른 문제를 불러오지는 않았다.

 혹여 강주가 고소를 당하지는 않을지. ‘재벌 3세의 폭력적인 사생활!’ 같은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기사에 그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박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재희는 마우스를 쭉쭉 내리며 기사들을 검색했다. 검색어를 입력해 경쟁사 기사들도 살펴본 후, 선강 음료 기사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살폈다. 그리고 곧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렸다.

 TF 팀에서 진행한 프로모션은 성공적이었다. 테니스 여제와의 합작으로 시너지 효과를 본 데다, 바이럴을 목표로 했던 자잘한 이벤트들이 모두 제대로 물질을 하고 있었다. 선강의 고루한 이미지를 스타일리시하게 바꾸어 나가는 목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재희는 기사 수집을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등 뒤에서 김 과장의 불퉁한 목소리가 울렸다.

“야, 윤재희.”

 뒤를 돌자 구겨진 김 과장의 미간이 보인다. 정 팀장의 좌천 이후, 그는 늘 저 표정이었다. 비빌 언덕이 사라지니 속이 쓰리겠지.

 김 과장이 CSR 활동을 베이스로 한 이벤트 기획안을 툭 넘겼다.

“야, 이거 적용 대상 정해서 바로 올려.”

“야, 아니고 윤 주임이라고 불러 주세요.”

 재희는 무뚝뚝하게 대꾸하며 파일을 검토했다. 청소년 취약층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CSR 관련 기획안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적용 대상 정하는 것쯤이야 며칠 내로 될 것이다.

‘우선 여기저기 전화 넣어서 모집군 수집하고…….’

 입술을 달싹이며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옆에 서 있던 김 과장이 그녀의 의자 다리를 툭 찼다.

“야, 너 말투가 그게 뭐냐?”

“…….”

 또 시작이다. 재희는 파일을 천천히 책상 위에 올렸다. 고개를 올리니 붉으락푸르락한 김 과장이 절 노려보고 있었다.

“너 목소리 똑바로 안 해? 윤 주임이라고 불러 주세요? 이 새끼야, 내가 네 친구야? 지금 명령하냐?”

 그의 막무가내식 윽박지름에도 재희의 표정은 균열 하나 없었다. 재희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그러는 과장님이야말로 친구도 아닌데 왜 저한테 야라고 하시나요? 윤재희 주임, 이라는 명칭이 있는데.”

“…….”

 그의 목덜미에 핏대가 오르기 시작했다. 부아를 참지 못하는지 울룩불룩 핏대가 선다. 화를 참는지 허리에 손을 올려 천장을 올려 보던 그가, 고개 내려 어금니를 맞물었다.

“너 이제 내가 우습지? 어?”

 그 말에 재희는 옅게 웃었다.

“네.”

“…뭐?”

 김 과장은 짧게 반문했다. 마치 그녀의 대답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재희의 입꼬리가 더욱 위로 올라갔다.

“네, 과장님 우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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