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96)

 #26

“싫어? …왜 싫으냐.”

“가고 싶지 않습니다.”

“…….”

 강주의 반항에 차 회장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차강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탐탁지 않았지만 성장하자 더욱 눈엣가시였다. 기실 아비가 아들을 향해 드러내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사내가 사내에게 가지는 근거 없는 적의에 가까웠다.

 차 회장과 강주 사이에 적대적인 침묵이 흘렀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어린놈이 제멋대로만 하려고…….”

“가지 않겠습니다.”

“아비가 시키면 네, 네 하고 받아들여! 때 되면 무조건 나가는 거니 그리 알아!”

 차 회장은 강주를 설득시키는 대신 명령했다. 사내에서나, 집안에서나 제 뜻에 거스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강주의 반항을 더욱 참아 내기가 힘들었다.

 큰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강주가 성큼성큼 멀어지는 차 회장의 등 뒤로 분노 깔린 목소리를 쏘았다.

“아비가 시키면, 이라니요. 어차피 진짜 아버지도 아니지 않습니까.”

 차 회장의 등이 새카맣게 굳었다.

“너……!”

 화를 참지 못하는지 차 회장의 핏대가 푸르게 도드라졌다. 차 회장이, 강주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아챘다.

“여기까지 키워 줬으면 내가 하라는 말에 네, 네 하고 납작 엎드려야지. 네 말대로 진짜 아버지도 아닌데 그렇게 반항하면 내가 어찌 나올 줄 알고.”

“그러면 차라리 쫓아내지 그러셨어요. 아, 보는 눈이 무서워서 못 그러셨나.”

“…이놈이!”

“차라리 그냥 말끔하게 쫓아내세요. 숨죽이고 없는 듯 잘 테니. 미국은 가지 않습니다.”

 그쯤 되자 차 회장의 마음에 악랄한 오기가 솟았다. 제 말에 거스르는 저 단단한 줄기를 꺾고 싶어 안달이 났다.

 늘 그랬다. 저 아이가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마다 묘한 충동이 일었다. 어떻게든 짓뭉개고 싶은 저열한 욕망.

“내 뜻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잔말 말고 가라면 가.”

“어머니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간 회장님이 제게 하셨던 모든 일들. 다 말씀드리고 도움 요청할 겁니다.”

 그것이 강주가 가진 유일한 무기이자 마지막 보루였다.

 분을 이기지 못한 차 회장이 찻잔을 집어 던졌다. 쨍그랑! 강주 옆에 부딪힌 찻잔이 산산조각 났다. 강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히 차 회장의 흥분을 들여다봤다.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끓어올랐다. 쉭쉭, 쉭쉭 가쁜 숨을 내뱉던 차 회장은 이윽고 마음을 추슬렀다. 강주를 노려보며 히죽 웃는 얼굴이 뱀같이 교활하다.

“강주야, 네 엄마가 왜 나와 결혼했을까? 응?”

 다시 느긋해진 차 회장의 목소리가 음습하게 깔렸다.

“너 때문에. 남이 알면 안 되는 사생아 애새끼 때문에. 입 꽉 닫고 널 친아들로 호적에 올릴 사람 물색하다가 내가 얻어걸린 거야.”

 담담했던 강주의 눈동자가 조용히 굳었다. 강주의 동요에 차 회장은 희열이 차오름을 느꼈다.

“너 아비 있는 자식 만들겠다고, 개 사료나 팔던 회사 아들하고 결혼했는데 말이야.”

“…….”

“그런 엄마 눈에서 피눈물 낼 거냐? 엄마가 절 방치하는 동안 학대당했습니다, 하고 말해서 네 엄마 마음에 못을 박을 거냔 말이야.”

 음험한 목소리가 강주를 압박했다.

 강주는 가만히 차 회장을 노려보았다. 차 회장의 학대. 그의 모친이 죄책감으로 떠나 있는 벌어진 일이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아마 그녀는 스스로를 향한 질타로 힘들어하겠지. 자신이 다시 아들을 버려뒀노라고. 아들을 상처 입혔노라고.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강주는 차마 제 어머니를 스스로 구렁텅이에 밀어 넣을 수 없었다. 제게 사랑을 주지 못했던 어미라 하더라도 어미는 어미였다.

“착한 아들이 되어야지. 날 때부터 엄마 발목 잡은 놈이 뭘 하겠다고.”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강주가 말했다.

“…쓰레기 새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차 회장이 팔을 휘둘렀다. 철썩! 폭력적으로 스친 손에, 강주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 이래야 맞지. 강주는 붉어진 뺨으로 픽 웃었다.

 이제는 키도, 몸집도 차 회장보다 크다. 성장한 지금, 힘 역시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차 회장을 향해 폭력을 되돌리지 않은 건, 자신이 차 회장만큼 쓰레기가 아니었기에.

 분을 이기지 못한 차 회장이 소리를 꽥 내질렀다.

“강미령! 경호원들 불러와! 불러와서 저 새끼 창고에 넣으라고 해!”

 불안한 얼굴로 뒤를 서성이던 재희의 모친, 미령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달려왔다.

“차 회장님, 왜 그러세요. 말로 하시지-”

“얼른 못 불러와!”

 미령은 경호원을 불러오는 대신 강주의 달아오른 뺨에 손바닥을 댔다. 지금까지 그녀는 몰랐다. 차 회장이 그녀 앞에서만큼은 보이지 않았던 음산한 본성을.

 강주는, 덜덜 떨며 제 뺨을 매만져 주는 미령의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스스로 벨을 울려 경호원을 불러들였다. 미령은 이 상황이 무언지 알 수 없어 두려움에 찬 얼굴로 두 부자를 번갈아 살필 따름이었다.

 곧 커다란 덩치 두 명이 황급히 뛰어들어 왔다. 강주는 그들을 향해 스스로 팔을 내밀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또 절 가두시라네요.”

“…….”

 경호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차 회장을 살폈다.

“쟤, 내일까지 꺼내 주지 마.”

 그러다가 차 회장이 짓씹듯 말하자 그제야 강주를 조심스레 안내하기 시작했다. 돌아서는 강주의 등 뒤로 차 회장의 비웃음이 꽂혔다.

“좁은 데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병신 새끼가, 어디서 감히.”

 강주는 크게 웃고 싶어졌다.

 날 그 병신으로 만든 게 누군데.

 ***

 저녁을 먹고 난 뒤. 효정의 숙제를 봐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낯선 소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적막해졌다. 그 비밀스러운 인기척이 무언지 안다. 돌아온 엄마의 불안함을 달랜 재희는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가 효정이 잠들자마자 밖으로 나섰다.

“…오빠.”

 재희는 잠금을 풀고 조심스럽게 철문을 열었다. 끼익, 거친 소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달빛만 들어찬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놓인 값비싼 가구들. 아마 저 사이에 오빠가 있겠지. 이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처럼 고아하게 앉아서.

 어릴 땐 몰랐다. 그저 조금 특이한 벌이려니, 그렇게 생각했을 따름이다. 강주 오빠가 무서워하니까 내가 있어 줘야지. 그냥 그렇게. 가끔 화가 난 엄마가 제 손바닥을 자로 한두 대 때리듯 그런 종류의 벌이노라고.

 어린 시절, 그가 흘렸던 눈물. 이따금 발작처럼 나타나던 공황 증세가 어떤 의미인지 성장해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욱신거렸다. 나도 방관자야. 무지도 죄야.

 강주는 고풍스러운 서랍장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제게 다가오는 재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긴장으로 차게 굳었던 눈동자가 찬찬히 풀리기 시작했다. 단지 재희가 왔을 뿐인데.

“왔어?”

 강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배었다.

 재희는 한숨인지 안도인지 모를 것을 내뱉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재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내가 확 신고해 버릴까? 응? 아동 학대, 이런 거로.”

 이제 아동이라기엔 너무나 커 버렸지만.

 강주가 옅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를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답했다.

“괜찮아, 그냥 벌이야.”

 재희가 신고해 보았자 차 회장에게는 타격 하나 없을 게 분명했다. 무릇 부와 권력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진실을 왜곡하고 뭉개는 것쯤이야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게다가 그 악랄한 인간이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데 재희에게 그런 위험한 짓을 시킬 리가.

“여기 왜 그래?”

 재희가 달빛에 비친 강주의 얼굴을 살폈다. 차 회장에게 맞아 살짝 부어오른 뺨과, 생채기 난 입꼬리를 더듬는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강주는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가만히 재희를 내려 보기만 했다.

 그의 호흡이 점점 느릿해졌다.

“뺨도 붓고……. 여기 입술도…….”

 걱정스레 살피던 그녀가 일순 숨을 멈췄다. 절 꿰뚫을 듯 바라보는 강주의 눈빛이 타오를 듯 뜨겁게만 느껴졌다. 강주가 걱정되어 인식하지 못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두 사람의 얼굴이 너무도 가까웠다.

 예전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그를 향한 제 마음이 너무도 변했기에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긴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 어떡해. 나 미쳤나 봐.’

 재희는 손을 황급히 내렸다. 주책바가지도 아니고, 다 큰 남자 얼굴을 막 만지는 사람이 어디 있어.

 침이 꼴깍 넘어간다. 긴장으로 손이 떨렸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적막을 가르고 강주에게 닿을 것만 같았다. 얼굴 위로 강주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차마 고개 돌려 마주할 수가 없었다.

 숨 막히는 침묵만이 창고를 가득 채웠을 때였다.

 문득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여기 문, 왜 열려 있어!”

 차 회장의 목소리였다. 재희는 깜짝 놀라 소리를 꽥 지를 뻔했다. 그녀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은 강주가 양탄자 위로 몸을 떨어뜨렸다.

“아까 제대로 안 닫힌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문밖에서 경호원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재희는 강주의 단단한 팔에 휘감겨 푹 누워 버렸다. 제 입을 틀어막은 손이 뜨겁다. 새까만 어둠 속에 겹친 몸 역시 뜨거웠다. 피어오르는 열기가 절 오롯이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커다란 몸이 절 한가득 가린다. 귓가에 들리는 심장 소리가, 내 것이 아니라 강주 오빠의 것이 맞는 걸까.

 귓가에 낮은 저음이 속삭여졌다.

“소리 내지 마. 여기 있는 거 알면 너 곤란해져.”

 어둠 속에, 그의 목소리가 저릿하게 감겼다. 순간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잔뜩 잠긴 목소리가 야하게만 느껴졌다.

 재희는 그의 품에 안겨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제 입을 틀어막았던 손이 떨어졌다. 재희는 강주의 가슴팍에 얹은 손만 움찔거렸다. 그에게 안겨 있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제 심장이 이렇게 터질 것같이 뛰는 것 역시 믿기 힘들었다.

 끼익. 창고 문이 열렸다. 떨리던 마음이 다른 의미로 떨리기 시작했다.

 경호원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던 차 회장이 입구에 서서 안쪽을 응시했다. 서랍장 뒤. 길게 누운 강주의 발목만 살짝 드러나 있었다. 강주에게 안겨 누운 재희의 발은 긴장으로 바짝 올라간 뒤였다.

 차 회장이 탐탁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기세 좋게 잠이나 자는 줄 알았으면……. 쯧.”

 차 회장은 철문을 쿵쿵 두드리고는 마치 소리를 지르듯 말했다.

“오늘 그 일은 내 실수니 잊어라. 나와서 잠은 네 방에서 자고.”

 마치 큰 선의를 베푸는 것처럼 던지는 말이었다. 차 회장은 강주의 답을 듣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 그러곤 문만 활짝 열어 놓은 채 경호원과 함께 돌아섰다.

 인기척이 모두 사라진 후. 창고 안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문밖에서 들이차는 바람 소리와 둘의 뜨거운 숨소리만이 울렸다.

 제 허리를 끌어안은 강주의 손을, 재희는 차마 밀어내지 못했다. 손가락 끝이 간질거린다. 입술만 잘근잘근 씹다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서로의 호흡이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그가 살짝 고개를 비껴 내리면 당장이라도 두 입술이 닿을 듯.

 긴장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재희가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아……. 지금 우리 둘 되게 웃기다……. 그치.”

 억지로 긴장을 깨뜨리려 애써 웃어 보았다. 강주의 가라앉은 얼굴은 미동조차 없었다. 어색한 재희의 표정을 응시하며, 강주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안 웃겨.”

“…응?”

“난 하나도 안 웃기다고.”

 일렁이는 눈빛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진다. 속삭이며 말하는 그의 숨결이 델 것같이 뜨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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