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96)

 #24

“옹니, 창고에 귀신 이써. 저기 귀신 진짜 이써?”

 열한 살 윤재희의 여름.

 재희는 동생 효정의 말에 힐끔 창문을 넘겨봤다.

 이제 네 살이 된 동생은 늘 호기심이 많았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재희는 아이의 질문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환한 볕이 내리쬐는 후원. 돌담 근처에 자그마한 창고가 보였다. 날이 밝아 귀신이란 말에도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왜? 우리 효정이 귀신 봤어?”

 기차를 만지던 효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번에 밤에 귀신 소리 들었어.”

“진짜? 귀신이 막 울었어? 영화에서처럼?”

“응. 옹니, 진짜 귀신 이써?”

“아냐, 없어. 우리 효정이 무서워하지 마. 진짜 없어.”

 진짜 귀신인가? 재희는 목덜미가 오싹해 창문에서 고개를 돌렸다. 저택이 비상식적일 만큼 커서 그런 걸까. 밤이 되면 후원 구석구석에 어둠이 한가득 내려앉고는 했는데, 침묵에 싸인 잔디밭을 볼 때면 왜인지 무서워졌다.

 재희가 이곳 선강 그룹 본가에서 살게 된 지도 벌써 삼 개월이나 지났다. 어쩌다 보니 이곳에 가정부로 오게 된 엄마를 따라온 것이었다.

 이곳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택 안으로 들어서는 후문도 따로 있었고 방 자체가 본채 뒤쪽에 자그맣게 붙은 곳이라 선강 그룹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은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빚더미에 앉은 집은 그야말로 폭삭 무너졌었다. 집 안에서 화초처럼 있던 예쁘고 고운 엄마는 낮이고 밤이고 여기저기 나가 일을 했다. 어떤 날에는 밥을 굶었고, 어떤 날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씻지 못했다.

 엄마 대신 효정이를 돌보며 힘들게 삶을 이어 가던 그때. 이곳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것도 이 커다랗고 멋진 저택의 자그마한 별채 방까지 얻어.

 엄마 말로는, ‘예전부터 알던 회장님’의 도움 덕분에 들어올 수 있던 것이라고 했다. 빚도 갚아 주고, 저택에 딸린 방도 하나 주고, 아무튼 여러모로 도와주었다고 했다.

 재희는 힐끗 눈동자만 들어 후원을 넘겨보았다. 벽돌로 지어진 창고가 오도카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늦은 밤이었다. 재희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갔다가 창밖을 응시했다. 풀벌레 소리 틈으로 낯선 소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진짜 귀신인가?’

 몇 초간이나 빤히 후원을 바라보다가 쿵쿵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방으로 돌아왔다. 곤히 잠들어 있는 효정이와 엄마가 보였다. 효정이 옆에 잠시 누워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귀신인지 확인해 봐야겠어.’

 아이의 호기심은 두려움을 이겼다.

 주방도 없는 자그마한 방. 휴대용 가스레인지 옆에서 소금을 찾아 한 움큼 쥐었다. 그러고는 발꿈치를 들어 살금살금 빠져나왔다.

 여름밤은 선선했다. 잔디밭을 지나 돌담 아래 박혀 있는 창고로 향했다. 용기가 나지 않아 주위를 빙빙 돌다가 힘을 내 문으로 다가섰다.

 차가운 철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는 이상한 잠금 쇠로 잠겨 있었다. 달칵. 녹슨 잠금 쇠를 풀고 문틈으로 발부터 비집어 넣었다.

 귀신이 있는 게 맞을까. 안은 고요했다. 재희는 문틈에 서서 가만히 안을 응시하다가,

“아…….”

 탄식처럼 입을 벌렸다.

 쏟아지는 달빛. 새하얀 얼굴 위로, 억지로 참아 냈던 눈물이 흐릿하게 번져 있는 어린 소년이 보였다. 달빛이 반사된 눈물 조각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너무 예뻐. 정말 귀신인가. 귀신이니까 저렇게 예쁘겠지? 재희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두 아이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

“…누구야? 진짜 귀신이야?”

 재희는 소금을 꽉 쥐고는 강주에게 물었다. 강주는 느릿하게 눈만 깜빡였다. 눈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져 뺨을 타고 흘렀다. 그제야 낯선 이가 제 외로운 공간에 들어섰음을 깨달았다.

 강주는 손등으로 눈가를 거칠게 비비며 고개를 돌렸다. 남모를 눈물을 들켰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홀로 아픔을 깎고 견뎌도 아이는 아이였다.

 재희가 조심스럽게 그의 곁에 다가갔다. 그리고 알 굵은 소금 몇 알갱이를 톡톡 던졌다. 강주의 옷에 맞고 떨어진 조각이 바닥을 굴렀다.

 그제야 강주가 느릿하게 물었다.

“…뭐 해?”

“소금 뿌려. 귀신이면 물러가라고.”

“…….”

 황당하다는 얼굴로 재희를 바라보다가 강주는 뒤늦게 소금을 털어 냈다.

“귀신 아니야.”

 눈물기 감겼던 강주의 목소리가 어느새 차분해졌다.

 아마, 평소라면 상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일상이 된 감금이지만 이따금 두려움이 폭풍처럼 몰려올 때가 있다. 창고를 가득 채운 어둠이 절 집어삼킬 것만 같아 숨이 막혔었다.

 그렇게 눈물을 삼키던 오늘 밤. 저 애가 찾아왔다. 마치 비밀스러운 선물처럼. 그래서 차마 밀어낼 수가 없었다.

 재희는 아예 강주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여기서 뭐 해?”

“혼나고 있어.”

“혼나? 무슨 소리야?”

 강주의 입이 꼭 다물렸다. 재희는 쥐고 있던 소금을 바닥으로 쏟아 버리고는 손바닥을 톡톡 털었다.

 강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푸르스름한 달빛에 창백히 젖은 소년은 마치 매끄럽게 빚어진 도자기 같았다. 눈물을 다 닦아 낸 얼굴은 침착했고 정적인 눈빛은 아이답지 않게 깊었다.

“그런데 넌 누구야?”

“차강주.”

“차씨면 차 회장님 아들이야?”

“…응.”

 강주는 바닥을 응시하며 조용히 답했다. 어쨌든 아들은 아들이니까. 먼지 깔린 바닥 위. 재희가 털어 놓은 소금이 반짝거렸다. 한참이나 반짝임을 응시하던 강주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는 넌 누군데.”

“나? 나는 윤재희.”

“너야말로 귀신 아니야? 집에서 너 한 번도 본 적 없어.”

 사실 강주는 재희가 귀신이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누구라도 제 곁에 있어 줄 수만 있다면.

 배시시 웃은 재희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나 저기 살아. 우리 엄마가 여기 가정부야.”

 재희의 손가락이 반쯤 열린 문 뒤를 가리켰다. 본채 끄트머리, 후원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방. 강주 역시 그녀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들었다. 강주의 매끈한 콧대를 보며 재희가 덧붙여 물었다.

“혼자 안 무서워?”

“…….”

“여기 자주 와?”

“…응.”

“그럼 앞으로 귀신 소리 들리면 내가 와 줄게.”

 강주는 그 말에 가만히 침묵했다. 좋다, 싫다 말 한 마디 없었지만, 아주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

 일 년 후.

 재희는 귤을 들고 사박사박 걸음을 옮겼다.

 어둑한 밤. 창고에서 또 낯선 소음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소리가 들린다는 건 강주가 창고에 갇혔다는 뜻이었고, 더불어 재희 본인이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강주와 만난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알아보니 그는 저보다 한 살 많은 오빠였고, 엄마가 이따금 입에 올리는 ‘차 회장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이렇게 몰래 만날 때 빼고는 한 번도 밖에서 마주한 적 없는 비밀스러운 인연.

 재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밖에서만 열 수 있는 창고 문을 열었다. 강주가 웅크리고 앉아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있는 게 보였다. 어린 소년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재희가 강주에게 달려갔다.

“오빠! 괜찮아?”

 소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재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강주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재희는 강주의 뺨을 감싸 올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들여다보고 공포에 젖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초조함으로 강주의 입술이 파리했다.

“나 왔어.”

“…….”

 흔들리던 강주의 눈동자가 차츰차츰 가라앉았다. 강주는 숨을 낮고 깊게 몰아쉬었다. 재희가 강주의 손을 꼭 잡으며 소리 내어 천천히 호흡했다.

“나 따라 해. 후- 하.”

 강주는 고르지 못한 숨을 내쉬며 재희를 울 것같이 응시했다. 제 손을 붙든 재희의 손을 내려 보았다가 다시 재희를 바라봤다. 마치 환상을 좇듯 처연히.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감금은, 트라우마가 된 지 오래였다. 재희가 찾아와 준다고 한들 속에 도사리는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 억지로 눌러 놓은 공포가 올라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강주는 지금 같은 상황에 빠지고는 했다. 공기가 무거운 바위가 되어 절 짓누르고 온몸을 커다란 뱀이 옥죄는 것 같은 감각이 일었다. 숨쉬기가 힘들어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이제 좀 괜찮아? 오빠 심장 엄청 빨리 뛴다.”

 제 가슴팍에 손바닥을 댄 재희의 온기가 느껴졌다. 두려움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차분해지자 강주는 그제야 재희를 외면했다.

“이제 괜찮아.”

“괜찮아?”

“응. 그러니까, 이제 가.”

“가라고? 왜?”

 절 외면한 강주를 따라붙으며 재희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강주는 입술을 꾹 베어 물었다.

“…창피하니까.”

 이 여자애 앞에서는 왜 부끄러운 모습만 보여 주게 되는 걸까. 나약한 자신이 싫었다.

 어느 날 차 회장이 그랬다. 정신병인 거라고.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공황에 빠져 식은땀만 흘리는 강주를 보며 그리 말했었다. 주치의에게는 밖에 소문을 내지 말라 하며 ‘역시 피는 못 속인다.’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피는 못 속인다. 그 말이 무얼 의미하는 건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수치스러운 존재가 됐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재희에게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제 민낯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이는 재희밖에 없다는 걸 아는데도.

“뭐가 창피해. 세상에 어두운 거 안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도 무서워. 오빠는 더 특별히 무서워하는 거지, 뭐.”

 재희의 손이 강주의 이마에 닿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위로하며 차갑게 밴 식은땀을 닦는다.

 불안하게 젖어 있던 강주의 눈동자가 재희의 손길을 좇았다. 재희의 손이 닿은 이마가 불타는 것같이 뜨겁게 느껴졌다. 강주는 재희의 손을 끌어 내려 꽉 맞잡았다. 두 아이의 손이 얽혀 단단히 이어졌다.

 재희는 절 절박하게 붙든 강주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 보았다.

“오빠 손 차갑다.”

 그리고 곧 다른 손으로 강주의 손등을 덮었다. 따뜻함이 강주를 포근히 감쌌다. 강주는 그 온기에 왜인지 몹시 울고 싶어졌다.

“이렇게 하면 더 따뜻하지?”

“응.”

“숨은 이제 잘 쉬어져?”

“응.”

“다행이다. 또 무서우면 말해. 내가 안아 줄게.”

“…응.”

 강주는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에 엉기는 감정을 참아 내고 ‘응.’이라는 답만 되풀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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