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96)

 #23

 바닥을 뒹굴던 민철의 멱살이 우악스럽게 붙들렸다. 커다란 사내의 몸이 더욱 커다란 사내에게 대롱 매달리는가 싶더니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퍼졌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퍽! 강주의 묵직한 주먹질에 민철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

 재희 역시 고개 돌려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자 끔찍한 소리가 더욱 생생했다. 민철의 앓는 애원과 거친 타격음이 골목을 채웠다.

 재희는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벌벌 떨며 벽에 몸을 기댔다. 얼마나 눈을 감고 오한에 힘겨워했을까. 이내 주변이 조용해졌다. 재희는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툭. 강주가 힘을 풀자 민철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얀 입김 틈으로 움직임을 멈춘 강주가 보였다. 재희는 눈물을 문질러 닦고는 흐느끼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히끅거리는 울음소리가 차가운 적막을 갈랐다.

 강주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날카롭게 저며진 초승달이 그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새파랗게 얼어붙은 눈동자 아래 붉은 피가 튀어 있다.

 그는 낡은 벽에 달라붙어 절 무너질 듯 바라보는 재희를 응시했다. 눈물로 젖은 그녀의 뺨과 흔들리는 시선까지, 표정을 지운 얼굴로 가만히.

 재희는 차가운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내렸다. 피에 젖은 그의 손이 보였다.

 강주 역시 재희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제 주먹을 뒤로 감추며 긴 숨을 느릿하게 뱉었다.

“아, 너 이런 거 무서워하지.”

“…….”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깃들지 않은 것 같은 음색이 메마르게 이어 물었다.

“내가 이래서 싫어? …지금도?”

 7장. 차강주

“강주야, 엄마 마음 알지? 엄마 사랑해?”

 어린 시절. 엄마는 늘 흐릿하게 묻고는 했다. 그녀가 원하는 답은 하나였다.

“네, 사랑해요, 엄마.”

 그리고 그녀가 원하던 습관 같은 대답 뒤엔 필연적으로 포옹이 따라붙었다.

 절 어색하게 끌어안던 여리여리한 몸. 마주 안아도 될지 고민할 때마다 옅게 밀려오던 향수 내음.

“우리 강주, 엄마도 강주 많이 사랑해.”

 엄마의 허술한 사랑 고백은, 늘 그녀 본인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인 차강주, 절 향한 애정을 세뇌해 간신히 이어 붙이고 있는 것처럼.

 ***

 제주도.

 꽃이 많은 미술관에는 방문객이 달에 열도 없었다. 재벌 마님이 명목상 만들어 놓은 비밀의 화원. 제 치부를 숨겨 놓은 방치된 신줏단지.

 언제부터 그곳에 살았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강주는 꽃과 함께였고, 혼자였으며, 엄마는 이따금 찾아왔고, 아빠는 없었다. 절 매일 찾아오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왜 아빠가 없어요?’

 그런 건 애초에 묻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없었으니 의문조차 없었다. 어미란 존재가 자주 보이지 않으니 그것에 대한 의문 또한 없었다. 제 맘속에 자그맣게 애정을 품고 누군지 모를 존재를 그냥 그리워만 했을 뿐이다.

 제 곁을 지켜 주시던 할머니 한 분을 기억한다. 강주처럼 나직하고 느긋한 목소리를 가졌던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주름, 동화책을 넘겨 주시던 느릿한 손길.

 어느 날, 동화책을 보다가 문득 물었었다.

“할머니, 저는 할머니 가족이에요?”

 그가 보던 동화책에는 함께 손을 맞잡고 놀이공원으로 향하는 가족 그림이 있었다. 여자아이가 들고 있었던 풍선 색이 아주 새파랬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네모난 미술관. 그 자그맣고 유일한 세상 위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처럼.

 아이의 질문에 늘 나긋했던 할머니 표정 위에 약간의 고민이 담겼었다.

“…….”

 강주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동화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어린 나이였지만 할머니에게서 비친 표정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

 평화롭고 조용하던 시간은 찬찬히 흘렀다.

 차강주의 어미 유영현. 그녀를 미혼모로 만들 뻔한 게 저라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건, 아주 오랜 뒤였다. 고상하고 교양 있던 재벌가 외동딸의 유일한 오점. 늘 제 어머니를 음습하게 따라붙을 그림자, 수치스러운 사생아가 저라는 사실을.

 외로운 아이는 늘 의아했었다. 왜 어머니라는 사람은 저와 함께 살지 않는 걸까. 나는 왜 가족이 없을까.

 하지만 이따금 찾아오던 제 어미에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없는 건, 그녀가 ‘날 사랑하느냐’는 질문마저 하지 않을까 봐. 유일하게 절 찾아오던 그녀가 발길을 끊을까 봐. 그게 무서워서.

“엄마 사랑해요.”

 하고, 그녀가 원하는 답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을 뿐이다.

 아이답지 않게 똑똑하고 차분하다며 강주의 모친은 못내 기뻐했으나, 그녀는 몰랐다. 그녀를 사랑하는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해, 어린아이가 억지로 버려야 했던 어리광을.

 그러던 어느 날 일상이 변했다. 매일 방문하던 할머니가 사라진 것이다. 강주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짧은 통조림처럼, 차가운 철 곽에 갇혀 닳아 없어질 애정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가게 된 날. 덩그러니 남은 미술관을 돌아보며, 강주는 슬픈 눈으로 손을 흔들었다.

 안녕, 하고.

 ***

 서울은 제주보다 추웠다. 차갑게 몰아치던 바닷바람은 사라졌지만, 따뜻한 집안 공기가 제게는 겨울 공기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일곱 살, 12월. 처음 본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주 커다랬다. 우아한 샹들리에 아래 태산같이 우뚝 서서는 웃는 얼굴로 절 내려 보았었다.

“강주야, 아빠는 처음 보지? 앞으로 잘 지내보자.”

 호적상 아버지, 차병준 회장을 보며, 강주는 사실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모친인 유영현은 드디어 가족이 모였다며, 배다른 동생 시은을 안고 눈꼬리에 눈물을 달았지만, 글쎄. 그녀가 말하는 가족 안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는 건 진작에 알아차렸다.

 강주는 곧 선강 그룹 저택에 그림자처럼 자리 잡았다. 달마저 모습을 숨긴 밤처럼, 어둡고 비밀스럽게.

 엄마는 늘 부재중이었다. 제주도에 있을 때보다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미술관 관장이라 작품 수집을 위해 해외를 자주 오간다고, 김 아저씨가 말해 주었다.

 사실은 차강주 절 피했던 거라고, 오래지 않아 스스로 눈치챘다. 젊은 날 실수로 태어난 치부. 애정과 사랑을 주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음에 기인한 죄책감. 그녀는 회피하며 달아난 것이다.

 절 볼 때마다 무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던 엄마의 눈을 기억한다. 수치심. 미안함. 그리고 약간의 애정. 강주는 그 약간의 애정에 매달려 커다랗고 삭막한 저택 안에서 간신히 버텨 냈다.

 ***

 차강주의 여덟 살, 봄.

“강주야, 왜 시은이를 밀쳤지?”

 차 회장의 어조는 나긋했다. 강주는 소파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차 회장의 팔에 매달린 시은을 응시했다. 울음을 간신히 누른 동생의 눈가가 새빨갰다.

 강주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

“제 동화책에 손대서요.”

 차 회장의 눈가가 가느다래졌다.

“시은이는 네 동생이잖아. 동화책보다 동생을 소중히 여겨 주어야지. 그런 행동은 옳지 않다.”

“…….”

 강주의 침묵에, 시은은 다시 저택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었다. 평소처럼 제주도에서 할머니와 함께 보던 동화책을 읽고 있었을 뿐이다. 글자가 커다란 동화책을 볼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냥 그리워서.

 어느새 제 방에 들어와 기웃거리는 시은을 잠깐 무시했었다. 강주의 관심을 받지 못한 시은은 곁에 다가와 동화책을 제게 달라며 떼를 썼고, 강주는 잠시 후에 놀자며 그녀를 달랬다.

 하지만 심통이 난 시은이 결국 강주 손에서 동화책을 낚아챘다.

‘나랑 안 놀아 주면 이거 찢을 거야!’

 그리고 다짜고짜 중간 페이지를 부욱 찢었다.

‘하지 마!’

 늘 침착했던 강주가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강주가 동화책을 다시 낚아채는 과정에 시은이 넘어졌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터져 나온 울음소리. 뒤에 지금의 시간이 따라온 것이다.

“동생한테 사과해.”

“…….”

“밀쳐서 미안하다고, 어서!”

 차 회장의 어조는 강경했고 눈빛은 차가웠다. 삭막한 차 회장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담담하게 답했다.

“싫어요.”

“왜지?”

“전 잘못한 게 없어요.”

“내가 네게 잘못했다고 말해도?”

“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차 회장이 마음속에 그를 향한 가시를 품었던 것이.

 내 동화책을 먼저 찢은 쟤 잘못이라며, 시은처럼 눈물 콧물 흘리며 엉엉 울기에 강주는 너무나 철이 들었고, 차 회장을 상대로 몸을 사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엔 너무나 어렸다.

 차 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주의 동화책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놀란 강주를 내려다보며, 그것을 반으로 천천히 찢었다.

“이제 이런 동화책을 볼 나이는 지난 것 같구나, 강주야.”

 ***

 어머니의 그림자가 사라진 저택 안. 강주는 홀로 차 회장과 치열하게 마주했다.

 차병준 회장. 강주를 호적상 친아들로 올려 침묵하는 대신, 선강 그룹 데릴사위로 들어와 자리를 꿰찬 인물.

 차 회장의 학대는 교묘했다. 그는 강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강주를 때리거나 윽박지르는 대신, 아이를 가뒀다. 겉으로 보기에는 퍽 교양 있는 형벌이었다.

 처음에는 강주의 방 안에. 다음에는, 외딴 방에. 결국엔 저택 안에 마련된 자그마한 창고 안에. 그 새까맣고 어두운 공간에.

 처음 창고에 갇혔을 때, 강주는 꺼내 달라며 울며 매달리다가 끝내 열리지 않자 곧 현실에 순응했다. 웅크리고 누워 두려움에 떨며 홀로 견뎌 낸 것이다.

 강주는 엄마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 늘 집을 비우는 그녀가, 자신을 지켜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절 구해 줄 거라는 기대조차 없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삭여 낸 공포는 눈처럼 쌓였다. 굳건하고 단단한 지층이 됐다. 강주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성인이 된 후에도, 방이 아닌 거실에 침대를 놓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좁고 어두운 곳을 견디기 힘들었기에. 어린 시절의 공포가 늘 기저에 깔려 있어서.

 작은 아이가 갇히는 이유는 다양했다. 시은과 싸워서. 학교 앞에서 운전기사를 기다리게 해서. 성적이 완벽하지 않아서. 그럴 때마다 강주는 벌을 받았다. 차 회장의 권력 아래, 저택은 아이의 학대에 침묵했다.

 불빛 하나 없는 창고에 누워 강주는 홀로 울음을 참았다. 절 짓누르는 어둠을 견디며 입술만 꾹 깨물었다. 입술에 새겨진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그렇게 홀로 곪아 가던 어느 날.

 차강주의 열두 살, 여름.

“누구야? 진짜 귀신이야?”

 누군가 창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귀신을 쫓는다는 이유로, 소금을 한 움큼 소금을 쥐고 온 여자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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