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96)

 #11

 그간 머릿속으로 되새기고, 떠올리고, 돌아봤던 기억이다. 무겁게 겹쳐지던 뜨거운 몸과 젖은 혀, 제 허벅지 위에 닿던 단단한 손바닥의 감각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래서, 오늘 뭐 합니까.”

 달뜬 재희의 정신을 그가 다시 움켜쥐었다. 재희가 붉어진 뺨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엄마 보러 가려고요. 새해니까 인사해야죠.”

“거기까지 가는 차편이 있던가?”

“몇 번 갈아타야 해요.”

 공기 좋은 곳에 있는 요양 병원은, 직행버스가 없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두 시간 넘게 가야만 했다. 자차를 타면 금방이지만 아쉽게도 재희는 차가 없었다.

“기다려요.”

“네? 왜요?”

“데려다줄게요.”

 강주는 재희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버렸다. 재희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가 들어간 드레스 룸 문만 쳐다보다가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그를 졸졸 쫓아 나와 지하 주차장까지 왔다. 강주 차 조수석 앞에서 선 재희는 어쩔 줄 몰라 서성였다. 그의 집은 질릴 만큼 드나들었는데 차는 타 본 적이 없다.

 뼈대가 곧고 단단한 손이 뒤에서 불쑥 나왔다. 조수석 문이 활짝 열린다.

“뭐 해요, 타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마음껏 실례하세요.”

 덤덤히 말하며 문까지 닫아 준 그는 곧 운전석에 앉았다. 재희는 가시방석에 앉은 얼굴로 괜히 손잡이만 긁었다. 신발 속 발이 꿈지럭꿈지럭 어색하게 움직였다.

 지금 그러니까 상무님이 내 운전기사가 되어 준 건가.

 그와 단둘이었던 집이나, 그때의 호텔 방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이곳은 사방이 막혀 있는 둘만의 공간이다. 그 묘한 은밀함에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두 손을 무릎에 모은 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으려니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재희는 눈동자만 돌려 눈치를 살폈다.

‘왜 출발하지 않지?’

 그러다 이내 생각해 냈다. 아, 내가 병원 주소를 알려 주지 않았구나. 허둥지둥 주소를 말하려는데 그가 재희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몸을 덮어 오는 은은한 샴푸 내음. 재희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의 옆얼굴이 지척에 있었다. 우아한 턱선과 쭉 뻗은 콧날, 깨끗한 피부가 바로 눈앞에.

 재희는 눈을 꼭 감았다. 호텔 방에서 있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도 이렇게 다가와 입을 맞췄었지. 긴장으로 주먹만 꽉 쥐었다.

 잠시 후 달칵, 낯선 소음이 들렸다. 그의 향기가 멀어졌다. 재희는 다시 눈을 떴다. 안전띠가 제 몸을 대각선으로 가르고 있는 게 보였다. 그가 안전띠를 채워 주고는 깔끔히 물러난 것이다.

‘아, 안전띠.’

 괜히 민망해졌다.

 그래서 날 계속 쳐다봤던 거구나. 안전띠 하라고. 그것도 모르고 빳빳이 굳어서 거드름 피우는 사장님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지.

“고맙습니다. 제가 했어도 되는데. 아, 병원 주소 알려 드릴게요. 경기도-”

“주소 알아요.”

 주소 나열이 간단히 끊겼다. 곧 차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주차장을 떠나 밝고 환한 밖을 향하여.

 엄마는 여전했다. 볕을 잘 보지 못해 하얀 얼굴에 조용히 감은 눈.

 곱고 고운 우리 엄마. 언제 저 예쁜 얼굴로 다시 내 이름을 불러 줄까. 재희는 창가에 앉아 엄마가 좋아하시던 사과를 깎으며 말을 걸었다.

“엄마, 밖에 눈이 많이 쌓였더라. 첫눈 왔을 때 효정이랑 같이 눈사람 만들었는데……. 아, 이거 내가 저번에 말한 얘긴가? …아무튼, 요새 간장을 바꿨거든. 근데 예전 간장이 더 맛있는 거 같아.”

 이 주에 한 번은 찾아오는데도 할 말이 항상 넘쳤다. 엄마가 온전했을 적, 저녁에 함께 앉아 재잘재잘 수다를 늘어놓던 그때처럼 재희는 말을 늘어놓았다.

 접시에 사과를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재희가, 모친의 등 아래 손을 넣어 찬찬히 쓰다듬었다. 욕창이 생기지는 않은 것 같다. 다행이었다.

“울 엄마 언제 일어나 나 안아 주나.”

 희게 부은 엄마의 손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누워 있는데 시간은 자꾸 흐르고 새해는 다가온다. 엄마만 남겨 둔 채 자꾸 앞으로, 앞으로.

 울적해지려는데 뒤에서 아삭,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창가에 기대어 선 강주가 아무렇지 않게 사과를 집어 먹고 있었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자연스러운 균열이 생겼다. 그는 포크로 사과를 찍어 재희에게 내밀었다.

“먹어요, 아주머니가 좋아하시던 거니까 재희 씨가 대신.”

 꼭 자기가 깎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비집어 나오려던 슬픔이 게 눈처럼 쏙 들어갔다.

 그의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석양빛 비치는 작은 호수 앞에 차가 섰다. 여기까지 왔으니 좋은 공기라도 마시고 가자는 것이었다.

 재희는 물가에 가만히 섰다. 산책로 하나 없는 호수는 날것의 생생함을 담고 있다. 한들거리는 풀이 사그락거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이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나도 저번에 처음 알았어요.”

 담담히 그가 답했다. 재희는 그제야 아까부터 품었던 의문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상무님은 여기 어떻게 알아요? 전에 오셨었어요?”

“네, 이따금 왔었어요.”

“왜요?”

 가만히 호수를 주시하던 강주의 두 눈이 재희를 향했다. 그의 눈동자 안에 가느다란 석양빛이 녹아 있었다.

“우리 집에서 난 사고니까.”

“…….”

 아.

 재희는 두 입술을 꾹 맞물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무표정한 그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우리 집에서 난 사고. 그가 말해 온 일을 떠올리자 필연적으로 속이 쿡 찔려 왔다. 제 것이 아닌 죄책감도 함께 딸려 온다.

 엄마는 그날, 회장님의 집에서 물건을 훔치려다가 사고를 당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빈 저택에 들어갔다가, 회장님을 마주했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달아나다가 현관 돌계단을 굴렀다고 했다.

 이유를 모르겠다. 늘 곧고 선량했던 엄마가 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했었는지. 엄마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 진실은 영영 묻혀 버렸다.

 어쩌면 자신의 대학 등록금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으로 재희는 늘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나만 아니었다면. 그 등록금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엄마는…….

 몇 년이나 함께 해 온 가정부의 배신이었기에, 차 회장의 분노는 대단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식물인간 상태가 되자 결국 용서해 주었다. 그간 함께 해 온 정이 있다며 병원비까지 지원해 주며. 모두 그의 관대함에 칭송을 보냈다.

 그렇게 잘못은 덮이고 진실은 묻혔다. 엄마의 의식과 함께 꼭꼭 숨어 버렸다. 그래서 더욱 강주가 어려운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의 집의 것을 훔치려던 도둑의 딸, 그게 재희 본인이라서.

“왜 왔었냐고 물어봐서 답한 것뿐이에요.”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닿았다.

 재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강주가 특유의 담담한 표정으로 절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바람결에 그의 앞머리가 부드럽게 이마를 스친다. 머리카락을 귀찮다는 듯 대충 쓸어 올린 후, 강주는 느슨하게 팔짱을 꼈다.

“나 아주머니 좋아했어요. 나 많이 챙겨 주시기도 했고. 그래서 왔던 거니까, 내 답에서 더 깊게 들어가지 말아요. 괜한 생각할 필요 없다는 뜻이에요.”

 그의 침착한 목소리가 다정하게 절 어루만진다.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인데, 눈빛 안에 절 향한 걱정이 들어 있는 것만 같다.

 수면 위 석양빛이 금비늘처럼 반짝거렸다. 재희는 눈매를 가느다랗게 좁혔다. 눈가가 시큰거린다. 눈이 부신 게 그 빛 때문인지, 강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

 서울에 도착했을 땐 해가 져 있었다.

 재희가 사는 곳은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 골목 어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기왕 데려다주는 것, 어두워졌으니 집 앞까지 함께 가 준다는 강주의 제안을 거절하고.

 지잉 내려가는 창문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상무님. 사례는 꼭 해야 할 텐데, 돈을 드리는 게 어쩐지 더 실례일 것 같네요.”

“…….”

 강주는 차창에 팔꿈치를 댄 채 재희를 빤히 바라만 봤다. 그러다가 혼잣말처럼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언제부터 재희 씨에게 상무님이었죠?”

“네?”

“돈은 얼마나 주고 싶었는데요.”

 재희는 저도 모르게 손을 꼽았다. 기름값 5만 원에 수고비 5만 원. 정말 돈으로 주고픈 생각 같은 건 없었지만 그가 물어 오자 본능적으로 머리가 돌아간 것이다.

“10만 원 정도? …너무 적죠?”

 강주의 입꼬리가 날카롭게 웃었다.

“아뇨, 그 정도면 되겠네요. 난 재희 씨에게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재희가 눈만 끔뻑이는 사이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재희는 멀어지는 차체 꽁무니만 바라보다가 찬 바람이 느껴지자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

 노란 가로등 아래를 걷는다. 언제부터 상무님이었냐니. 입사했을 때부터 상무님이었지. 어쩌면 계속 ‘강주 오빠’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 귀국해서 먼저 제게 딱딱 벽을 세우고 존댓말을 건넸던 건 차강주 본인 아닌가.

 그의 언동은 늘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흐릿한 연기처럼 모호하기만 했다. 움켜쥐고 싶어 손을 휘저을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환영처럼.

 차박차박, 습관처럼 걸음을 옮겼다.

“재희야!”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꽂혀 왔다. 반쯤 불이 나간 가로등 밑에 민철이 초조하게 서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민철이 주인 발견한 개처럼 마구 달려왔다.

“재희야, 너 진짜 나랑 끝낼 거야? 정말 이런 오해로 어이없이?”

“난 오해한 적 없어. 직접 봤을 뿐이지.”

“나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 억울해!”

“거기서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했을 거잖아.”

 민철이 입을 벙긋거렸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네가 억울할 게 뭐 있어. 내게 거짓말했던 것도 너고, 날 속이고 다른 약속 잡았던 것도 너인데. 도대체 뭐가 억울해?”

 그가 재희를 향해 화살을 돌렸다.

“야! 난 네가 하도 나한테 벽을 치니까 애가 달아서! 솔직히 남자는 그래. 육 개월 사귀면서 손도 제대로 못 잡는 내 마음, 넌 생각이나 해 봤어? 막말로 내가 오죽하면 그랬겠냐! 넌 이해해 줘야 해!”

“민철아, 왜 날 탓해? 착각하지 마, 너 피해자 아니야.”

 재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젓고는 그를 피해 몸을 돌렸다.

“이제 찾아오지 마. 우리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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