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으응, 음…….”
그녀의 신음마저 모조리 핥아 삼키며, 강주는 급하게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러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멀어지자 다시 얼굴을 부여잡고 혀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재희의 혀를 마구 휘감고 입술을 깨물며 아프도록 빨고 핥았다. 마치 그녀의 입술이 그의 구명줄이라도 된 것처럼 절박하게.
재희는 정신이 없었다. 마구잡이로 몰아치는 키스가 낯설면서도 오싹했다. 거칠게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던져진 것만 같았다.
하체를 붙이는 그의 몸짓에, 묵직하게 부피를 키운 것이 절 험하게 찌른다. 남자와 밤을 보내기는커녕 키스조차 한 적 없었지만, 그것이 무언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몸이 달았다.
처음 보는 이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늘 정적이고 차분했던 그가, 제 흥분을 모조리 드러내며 밀어붙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의 속에 이런 뜨거움이 있을 줄이야.
고작 키스일 뿐인데, 아찔함에 젖은 몸이 어쩔 줄 모르게 뒤틀렸다. 바르르 떨리는 손을 올리자, 반쯤 풀어진 그의 셔츠 아래, 단단한 어깨가 만져졌다. 손바닥에 닿는 몸은 단단하고 뜨거웠다. 매끄러운 피부 위에 열기가 고여 있다.
그의 셔츠가, 재희의 치마가 난잡하게 흐트러졌다. 그녀의 다리를 벌리며, 강주가 치마 속으로 손을 넣었다. 휘말려 올라간 치마 아래, 얇은 스타킹이 그대로 드러났다. 금방이라도 끌어 내릴 듯 억센 손아귀 힘이 스타킹 허리 밴드를 움켜쥔다.
곧 스타킹과 속옷이 한 번에 줄줄 끌려 내려갔다.
“으읏……!”
재희는 강주 가슴팍에 올렸던 손을 급히 내렸다. 단단한 팔뚝을 붙들며 손짓으로 만류한다. 그의 혀가 입 속을 거칠게 유린하는 탓에 입 열어 소리 낼 수 없던 탓이다.
거부의 표시보다는 본능적인 회피에 가까웠다. 처음 느끼는 이 아찔한 감각으로부터 마구 달아나고 싶은 초조함.
달달 떨리는 손끝이 그의 손목을 더듬자 강주의 움직임 역시 멎었다. 파헤칠 듯 휘감기던 혀가 부드럽게 감기고 스타킹과 속옷 역시 허벅지에 아슬아슬하게 걸렸다.
“으응…….”
녹아들 것 같은 키스가 따라붙었다. 언제 격렬했냐는 듯, 그는 위로하듯 다정하게 입 안을 핥고 혀를 빨아 당겼다. 다리 사이를 파고들던 손길 역시 어느새 멀어졌다.
이윽고 두 입술이 천천히 멀어졌다. 촉촉한 소리와 함께 엉긴 혀가 풀렸다. 재희는 찬찬히 눈을 떠 절 올라탄 사내를 마주했다.
달뜨게 흐르는 숨결을 사이에 두고, 둘의 눈동자가 맞닿았다. 새까맣게 침전된 그의 눈동자는 방금의 열기를 모두 지워 내지 못했다. 재희는 다시 눈을 감았다. 강주의 눈동자를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강주가 그녀의 눈꺼풀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아직도 그 사람 생각나요?”
따뜻한 입술이 꽃잎처럼 달라붙는다. 그녀의 뺨을 타고 입술을 흘리듯 누르며 강주가 속삭였다.
“눈물은 멎었네요.”
재희는 답을 쉬었다. 그사이 그는 이미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후였다.
강주의 손이 재희의 여린 턱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턱을 슬쩍 비껴 올린 후 드러난 목덜미에 입을 맞춘다. 여린 살갗을 부드럽게 빨아 당기던 감촉이 일순 거칠어졌다.
“아……! 읏.”
아릿한 감각에 재희가 턱을 들었다. 강주가 목덜미를 씹고 물며 달라붙고 있었다. 그녀의 신음에도 한참이나 자국을 만들던 강주는 곧 얼굴을 떨어뜨려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그의 손아귀 힘에 재희의 몸이 쑥 올라갔다. 강주가 그대로 치마 아래로 얼굴을 밀어 넣었다. 허벅지에 걸린 스타킹은, 이미 강주의 손아귀 힘에 반쯤 찢어진 채였다.
“읏, 상무님……!”
재희가 만류할 틈도 없었다. 흐트러진 치마를 젖혀 올리고, 스타킹과 속옷을 찢어 낼 듯 벗겨 낸 강주가 허벅지 안쪽에 입술을 붙였다.
“아……!”
재희는 다리 사이의 강주를 밀어냈다. 단단한 어깨는 그녀의 만류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예민한 살갗을 부드럽게 핥는다. 혀가 피부 위에 미끄러질 때마다 재희의 허벅지가 달달 떨렸다. 젖은 틈 위로 그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혀가 허벅지를 타고 천천히 내려왔다. 뭉개진 애액을 핥고 빨아 당겼다.
아마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뻐끔거리는 붉은 속살이 보일 것이다. 재희는 그게 부끄러워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사내에게 처음 다리를 벌린 채 누워 있는데, 흥분으로 젖은 은밀한 치부를 낱낱이 드러낸 상대가 바로 그 차강주라니.
그의 입술이 질구와 너무도 가까웠다. 조금만 얼굴을 움직여도 닿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돌리는 대신 허벅지의 말캉한 살을 부드럽게 핥을 뿐이었다.
“아, 상무님, 잠깐-”
허벅지를 움츠리려 힘을 주었지만, 허벅지를 아프도록 움켜쥔 손아귀 힘에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축축한 혀가 허벅지 안쪽 살을 핥아 올렸다.
“아!”
부드럽고 뜨거운 것이 피부 위로 미끄러질 때마다, 재희의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그가 소리 내어 빨아 당길 때는 턱을 젖혔고, 아프도록 물며 자국을 새길 땐 아랫배를 움츠렸다.
“간지러워, 읏……. 응.”
제 은밀한 곳이 축축하게 젖어 드는 감각이 느껴진다. 그의 입술이 직접 닿지 않았는데도, 질구는 초조하게 움찔거리며 속을 조였다. 아찔함으로 전기가 튄다.
강주가 고개 돌려 제 음란함을 눈으로 마주할까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 두려움만큼 아쉬움 역시 같은 크기로 치밀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마치 목이 마른 것처럼 안달 나는 기분.
“아읏!”
따끔, 하고 고통 어린 쾌감이 치밀었다. 강주는 재희의 여린 살갗을 쭉쭉 빨아 키스 마크를 만든 후 자국을 질척하게 문지르고는 천천히 입술을 떨어뜨렸다.
재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차마 그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축 늘어진 몸으로 아래는 훤해 내놓은 채 하아, 하아, 가쁜 숨소리만 뱉을 뿐. 뜨거운 숨결이 손바닥 틈으로 흩어졌다.
강주의 시선이 난잡하게 흐트러진 재희에게 닿았다. 그는 흥분으로 도톰하게 달아오른 질구가 뻐끔거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재희의 손등을 응시했다. 가녀린 손가락까지 흥분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그 틈 사이를 핥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강주는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재희 씨.”
“…….”
“나 보기 싫어요?”
강주의 말끝이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곧 그는 얼굴을 가린 재희의 손을 억지로 떨어뜨렸다. 감춰진 그녀의 민낯이 훤히 드러났다. 흥분과 초조함, 당황과 부끄러움이 범벅 된, 복숭아처럼 달아오른 두 뺨이.
울먹거리는 그녀의 말간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강주는 평온하게 속삭였다.
“앞으로 지나간 일은 신경 쓰지 말아요. 재희 씨와 섹스하는 것도, 재희 씨 아래 빠는 것도 이제 그 새끼는 아닐 테니까.”
3장. 젖어 드는
재희의 멍한 시선이 티브이를 의미 없이 훑었다. 크리스마스 영화가 한창 상영되고 있지만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팝콘을 씹던 효정이 재희를 툭 쳤다.
“언니, 룸서비스 시켜 먹어도 돼? 나 이거 꼭 해 보고 싶었어.”
“…….”
“강주 오빠가 수능 보느라 수고했다고 돈도 주고 갔는데. …안 돼?”
“…….”
“근데 강주 오빠는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거래?”
“…….”
“언니, 언니?”
대답 없는 재희를 향해, 효정은 끊임없이 종알거렸다. 그 목소리 역시, 재희의 귓가를 무의미하게 통과했다.
재희는 아까의 야릇한 행위만 되새기고 또 되새기는 중이었다. 틈 없이 붙던 입술과, 흐트러지던 옷. 흥분에 찬 강주의 숨소리와, 절 묵직하게 누르던 뜨거운 몸. 지익, 찢어지던 스타킹과 제 허벅지를 게걸스럽게 빨며 자국을 만들던 소리까지.
“아으……!”
미치겠네……! 재희는 몸을 뒤틀며 두 손에 얼굴을 푹 묻었다. 아까 음란하게 젖어 있던 제 모습이 마치 꿈 같다.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제 몸을 젖게 만든 건 그였는데, 그 앞에 은밀한 치부를 훤히 드러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민망한 건지.
상대가 차강주라는 사실에 더욱 근질근질해졌다.
상무님과 내가? 어떻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 아닌가. 성욕 따위는 전혀 없을 것같이 늘 평온하고 침착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눈빛으로. 사람을 깊은 속까지 마구 헤집어 놓을 것 같은 그런 눈을.
재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이 뒤틀려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신난 얼굴로 룸서비스를 시키는 효정이 보였다.
“네, 굽기 종류는 그……. 빨간 거랑 갈색이랑 중간에 오게, 네 네, 미디엄 레어 맞아요. 네.”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효정을 뒤로하고 욕실로 들어와 찬물로 뺨을 착착 두드렸다. 그제야 열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강주와 뒹굴던 소파 위에 지금은 효정이 있다.
아까 전, 강주는 흐트러진 재희의 치마를 내려 주고는 욕실로 가더니 한참 후에야 나왔다. 그러곤 아무래도 자신이 계속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사라진 그 대신 효정이 이곳에 왔다. 강주가 불러 준 것이었다. 언제부터 효정이와 연락하고 지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불러 주니 좋기는 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야한 생각을 아주 약간은 지울 수 있었으니까.
“언니,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야? 강주 오빠는 갑자기 왜 우리를 이 방에 초대했대? 너무 좋기는 한데.”
“…몰라.”
나 울라고 이 방 빌렸어. 그리고 키스해 주고 스타킹을 찢더니 갑자기 돌아갔어. 그 말을 할 수 없어 침만 꼴깍 삼켰다.
“어? 이거 뭐지?”
허리 굽힌 효정이 무언가를 주웠다. 강주가 풀어 헤쳤던 넥타이였다. 재희는 화들짝 놀라 넥타이를 낚아채듯 빼앗아 갔다.
“상무님이 놓고 가셨나 보다.”
“강주 오빠가 이걸 여기서 갑자기 왜 풀어?”
“…몰라, 목이 답답했나 보지.”
“여기서? 굳이? 넥타이를?”
효정이 의아한 눈으로 반문했다.
재희는 손을 뒤로 돌려 소파를 더듬거렸다. 이 쿠션 뒤에 있을 것 같은데……. 찢어진 스타킹이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들키면 정말 큰일 나는 거다. 곧 성인이 된다지만 아직 어린 효정이 앞에서 언니의 민망한 사생활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찾았다.’
재희는 바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넥타이와 스타킹. 강주와 자신이 남긴 야릇한 흔적을 꼭 쥔 채.
“효정아, 나 사워 좀.”
도망치듯 욕실로 와 옷을 벗고 미지근한 물을 맞았다. 그럼에도 열기가 식지 않아 물 온도를 좀 더 차갑게 바꿨다. 밖은 찬 바람이 쌩쌩 부는데 몸만 이렇게 달아올라서는.
문득,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나간 일은 신경 쓰지 말아요.’
지나간 일을 신경 쓰지 말라…….
하지만 어찌 그러겠는가. 자신은 늘 지나간 일을 좇으며 살았던 사람이다. 학창 시절 잃은 ‘강주 오빠’를 좇으며 늘 마음 한쪽에 그를 이고 졌던 사람이다.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되새기며 계속 가슴 떨려 하는, 그런 사람.
그런데 강주 오빠, 아니 상무님은 왜 그런 걸까. 왜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한 걸까. 늘 날 밀어내기만 했으면서.
…그때, 마치 계급을 가르듯 자신과 저 사이에 벽을 치고.
‘재희야, 우리가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잖아.’
모질게 한국을 떠난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