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96)

 #06

 서울을 아래 둔 최상층은 크리스마스임에도 상대적으로 적막했다. 강주는 낮게 깔린 구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다.

“오빠.”

 한참이나 먹구름을 응시하던 그는, 제 이름이 불리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오빠, 내 말 들었어?”

“아니.”

“안 들었으면 미안해해야지, 왜 그렇게 당당해?”

 강주가 그제야 꾸민 것같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시은을 향해 묻는다.

“그래, 그래서……. 뭐라고?”

“정말! 제대로 좀 들어. 내년 초에 캐나다로 스키 타러 가자고.”

“재미있겠네, 잘 다녀와.”

 고저 없는 답을 던지며 강주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시은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콩콩 두드렸다.

“같이 가자니까? 이번에 엄마 귀국하면 아빠랑 엄마랑 나랑 오빠랑 다 같이-”

“회장님께서 늦으시네.”

 그녀의 말을 끊으며 강주가 턱을 괴고 창밖을 응시했다.

 시은은 멀거니 제 오빠 강주의 옆모습만 바라봤다. 그가 고개 돌려 절 마주하지 않는 것, 아빠를 ‘회장님’이라 칭하며 거리를 두는 것. 행동으로 보이는 그의 딱 자른 거절이다.

 그래도 가족인데. 그가 견고하게 쳐 놓은 벽을 뛰어넘을 수 없어 시은은 늘 서운했다. 물론 서운해하는 것조차 염치가 없는 것이라 차마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강주는 창밖을, 시은은 강주를 좇는 시간이 계속됐다. 그리고 십여 분이 지난 후, 그가 왔다.

“아빠, 지각이에요!”

“오셨어요.”

 의자에서 일어난 시은과 강주가, 머리를 말끔히 넘긴 중년 사내에게 인사했다. 상대는 선강 그룹의 회장 차병준이었다. 병준은 제 팔뚝에 시은을 단 채, 강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래간만이다. 애비가 아들 얼굴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죄송합니다.”

“죄송한 줄 알면 본가로 자주 좀 오고.”

 강주는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자리에 앉은 세 가족이 자리에서 화기애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주 역시 대충 듣는 척을 했다. 하지만 메뉴 몇 개가 나오고 차 회장과 시은의 다정한 대화가 계속되자 가만히 고개를 돌려 다시 밖을 응시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세상은 온통 행복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아마, 제 가족도 그리 보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함께 식사하며 웃고 떠드는 로열패밀리, 그 얼마나 화목한 한때인가.

 일순 강주의 입꼬리에 조소가 어렸다. 그는 다시 고개 돌려 차 회장과 시은의 말에 적당히 대꾸했다. 이 지겨운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며.

 하지만,

“그래서 아빠, 엄마 오시면 다 같이 캐나다 가기로 했잖아요. 정말 가실 수 있는 거 맞죠?”

 시은에게서 여행 얘기가 나오자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시간을 대충 확인하는 척하던 그가 화기애애한 대화 틈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회장님, 갑자기 일이 생겨서 먼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뭐야, 오빠? 무슨 일인데?”

 강주는 정확한 사유를 말하는 대신 차 회장을 향해 예의 바르게 미소 지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차 회장은 굳이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강주 역시 무슨 일인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암묵적인 대화가 끝난 것 같았다.

 강주가 곧 미련 없이 룸을 나갔다. 시은은 아쉬움이 묻어난 표정으로 입을 삐죽였다.

“또 도망가네, 오빠.”

“네 엄마, 언제 들어온다고 말하더냐.”

 차 회장은 그녀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다른 얘기부터 꺼냈다.

“엄마랑 통화 안 했어요? 30일 비행기로 오신대요.”

“유 관장이 내게 말할 시간이나 있겠냐, 나보다 바쁜 사람이니.”

 강주가 차 회장이라며 아비인 그에게 벽을 쳤듯, 차 회장 역시 유 관장이라며 제 아내에게 벽을 쳤다.

 차병준 회장의 부인이자 강주의 엄마인 유영현은 미술관 관장이었다. 선강 그룹 선대 회장의 딸로, 금줄을 쥐고 태어나 고고하게만 살아온 우아한 핏줄.

 그녀는 젊어서부터 미술품 수집을 핑계로 국내보다 해외에 더 오래 체류하고는 했는데, 이번 귀국은 삼 개월 만의 일이었다.

“오빠는 안 갈 것 같아요, 아빠.”

“강주가 안 가다니, 어디를.”

“어디긴, 우리 이번에 여행 가는 거요.”

“시은아, 가족 여행이라고 했잖아.”

“네?”

 차 회장이 눈을 들어 제 딸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아들을 입에 올리며 짓는 표정이라기엔 몹시 메마른 얼굴로.

“가족 여행이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선을 긋는 것이었다.

 제 아비의 말에, 시은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늘 강주를 향한 미약한 죄책감과 부채감이 있었다. 저런 아버지의 태도를 볼 때면 더욱 그랬다.

“그래도 엄마 오는데.”

“네 엄마도 그놈 보면 신경 써서 안 돼. 엄마 생각하면 이대로 지내는 게 나은 거야.”

 시은의 말을 딱 자른 차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차 회장이 말하는 가족 안에 강주는 늘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시은은 괜히 창밖만 응시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이 유달리 흐리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오빠, 괜찮을까.’

 강주가 비 오는 날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걸 알기에 괜히 신경이 쓰였다. 특히 밤에 내리는 비는 더욱. 비와 어둠을 꺼리는 건 어린 시절부터 이어 온 트라우마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오빠 앞에서 저는 늘 죄인이었다.

 방관도 죄라면 죄이기에.

 ***

 재희는 입 안으로 촌스러운 문장을 삼켰다.

‘더럽게 비싸네.’

 호텔 레스토랑 예약 시간이 오후 7시였다. 민철도 만나지 못하고, 시간을 홀로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던 재희는 무작정 호텔로 왔다. 카페에서 몇 시간 앉아 있을 요량이었다.

 비록 커피와 케이크값은 비쌌지만, 분위기는 좋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는 건 즐거웠다.

‘이런 여유도 괜찮네.’

 분명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호텔 안을 지나치는 누군가를 보기 전까지는.

 7시가 되기만을 기다리며 거의 다 먹은 케이크 접시를 밀어냈을 때였다. 저 멀리, 민철이 보였다. 홀로 로비에 서서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재희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민철이 맞았다. 분명 일이 있다고 했는데 여긴 무슨 일인 걸까. 반쯤 마신 커피를 두고 짐을 챙겨 일어났다.

“민철아.”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톡 쳤다. 민철은 반사적으로 절 만진 상대를 돌아봤다가,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뭐 해?”

 아무런 사심 없이, 재희가 물었다.

 일이 끝나 식사라도 하러 온 걸까. 그래도 연락 좀 하지.

“재희야, 넌 여기 왜…….”

“나? 크리스마스니까 기분 내서 비싼 밥 먹으러.”

 원래 너랑 오려고 예약했는데 네가 시간 안 된대서 혼자 왔거든, 그런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

“일 끝나고 온 거야? 아니면 여기서 미팅 있어?”

“끝났어, 미팅 끝났어. 재희야, 우리 우선 나갈까? 우선 나가자. 밖에 눈 올 것 같더라. 조명도 엄청 예쁘고. 이러다 눈 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겠다, 그치?”

 민철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과하게 높다래진 목소리가 횡설수설했다. 재희는 그에게 붙들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끌려갔다. 아직 레스토랑 예약 시간도 남았겠다, 나가는 건 상관없었으나 아직 외투조차 입지 못했다. 밖은 한겨울인데.

“잠깐만, 나 옷 좀 입고.”

“밖에 별로 안 추워. 나가서, 나가서 입어, 응?”

 허둥지둥 나가는 몸짓이 무척 급했다. 민철의 호텔 탈출은 무리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등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꽂히기 전까지는.

“선배, 어디 가요!”

 재희의 손목을 붙든 민철의 팔뚝을, 한나가 붙들었다.

 정작 뒤를 돌아본 건 재희였다. 어깨를 움츠린 민철을 두고, 재희는 상대를 돌아봤다.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 재희의 표정 역시 민철의 어깨처럼 잔뜩 굳었다.

 이건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민철아, 아시는 분이야?”

 재희는 대충 눈치챘지만 어쨌든 물어는 보았다.

 우습게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게는 일이 있다고 핑계 대더니, 여기서 다른 여자와 약속을.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호텔에서.

 다물린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목덜미에 열기가 느껴진다. 분노보다 배신감이 컸다. 어쩌면 믿음이 무너져 내렸다는 표현이 옳다. 자기만 믿으라면서, 힘이 되어 준다면서. …다 괜찮다면서.

 그의 배려 없는 실언과 절 향한 수치스러운 동정조차 모두 이해했었다. 그는 자신을 불쌍한 애 취급하고, 효정이를 짐으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차마 내치지 못했던 건.

‘내가 네 곁에서 계속 힘이 되어 줄게.’

 민철이 건넸던 그 말 때문이었다.

 그날 귓가에 속삭여 준, 괜찮다는 그 말 한 마디로 너와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무슨 힘이야. 이게 무슨 힘이 돼. 이게 무슨…….

 허탈함과 실망으로 눈 아래가 뜨거워졌다. 재희는 절 붙든 민철의 손을 억지로 잡아 뺐다.

“나, 갈게.”

 이 시간 자체가 무의미한 낭비일 뿐이다. 변명을 들어 보았자 무얼 하겠는가. 너무도 확연한 진실을 들추어 상처 입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민철이 자리를 떠나려는 재희의 손을 다급히 움켜쥐었다.

“재희야!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것도 할 생각 없었어! 진짜야!”

“민철아, 놔줘.”

“쟤 그냥 후배야. 진짜 쟤랑 나 아무 사이 아니야. 이상한 오해 하지 마, 재희야. 응? 제발 내 말 좀 들어 봐…….”

 둘의 공방을 보는 한나의 얼굴이 모멸감으로 벌겋게 물들었다.

“선배, 여자 친구예요?”

 재희와 민철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한나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재희 씨. 윤재희 씨 맞죠? 맞는 것 같네. 선배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주 예쁜데, 아주 가난하시고. 가진 것도 없으면서 주제 모르고 도도하기만 한 철벽……. 맞는 것 같네.”

 민철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재희의 눈은 놀라 커졌다. 민철이 자신을 그렇게 얘기한 걸까, 가난하고 주제 모르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걸까, 민철이에게.

 눈을 한 번 꾹 감았다 뜬 재희가 찬찬히 눈꺼풀을 올렸다. 울 것같이 흔들리던 눈동자가 다시 침착해졌다.

“그쪽이 누구신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저랑 제 남자 친구 얘기 중이에요.”

“네?”

“그쪽이 참견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우리 문제 지금 여기서 깨끗이 해결하고 바로 넘겨줄 테니, 그때 둘이 얘기 나눠요.”

 차가운 눈으로 재희가 경고했다.

 한나의 목덜미에 핏대가 섰다.

“뭐? 거지 같은 게, 어디서…….”

 한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민철은 재희를 향해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재희야, 무슨 소리야. 넘겨주기는 누굴 누구한테 넘겨! 나 안 넘어가, 안 넘어간다고!”

 재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머리가 아팠다. 거지 같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자존심 상했고, 이런 사태를 만든 민철이 미웠으며, 민철을 믿었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때. 수렁같이 말려드는 초라한 상황 속으로,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던져졌다.

“재희 씨, 여기 있었네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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