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필리아의 고민 2
* * *
덕분에 머릿속이 한층 더 복잡해지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냥 섹스하고 싶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자위를 하고 있는거지?
들키면 부끄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보니, 너무 혼란스럽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을 계제도 아니니
...모르겠다. 그냥 말을 어거지로 쥐어짜내 보았다.
“필리아... 왜 자위를 하고 있는 거야...?”
“음... 하고 싶어서... 일까요...?”
...인생 최악의 선택지를 고른 것 같다.
“크리스 님, 계속 거기에서 서있으실 건가요?”
“...그럼 실례할게.”
별다른 수가 없는 것 같아서 침대 머릿맡에 앉았다.
“저... 역시 불쾌하죠?”
“응? 뭐가?”
“먹을거라고 해놓고 이러고 있는 거...”
“아니, 불쾌할 이유는 없잖아? 단지...”
“단지?”
“조금 부끄러워서 당황했을 뿐이야.”
그리고...
조금 기뻤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럴 터다.
여성이 날 떠올리며 자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역시 내게 매력이 있는 건가 싶어서 조금은 우쭐해지게 되는 법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웃으면 안 되는 상황임에도 괜스레 실소가 나와서 곤란...
“저... 그럼 크리스 님도 보여주세요.”
“으응?”
“필리아가 자위하는 모습을 봐서 부끄러운 거라면, 크리스 님이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로 상쇄하면 되는 거잖아요?”
“무... 무슨...!?”
“풉, 장난이에요. 장난...... 역시 필리아에게 보여주긴 싫으시겠죠...”
“...뭐? 그럴 리가 없잖아!”
이미 필리아가 자위하는 걸 목도한 순간부터 준비만전 상태였기에 문제될 건 없었지만... 왠지 얼굴이 화악 하고 달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애써 스스로를 달래며
나는 속바지와 팬티를 벗어버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필리아에게 풀발기 상태의 자지를 들이밀었다.
“어머나... 꺄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크리스 주니어는 여전히 귀엽네요! 그보다 자위하는 거라면, 그거 문질러야 되는 거 아닌가요?”
“으으... 할 거야... 하면 되잖아...”
...
......
자신 있게 시작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손이 쉬이 나가진 않았다.
누군가 보고 있는데 딸 친다는 거, 생각보다 무진장 부끄럽잖아!? 차라리 섹스를 하는 게 덜 부끄러울 정도다!!
...
그래도, 무엇이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리아가 마음에 걸려 하는 그런 것을 없애기 위해, 지금 이걸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녀가 보는 앞에서 손으로 페니스를 꾸욱 쥔 채 왕복을 시작했다.
뭐, 막상 시작하고 나니 눈 앞에 나신의 필리아라는 딸감이 있는 지라 심리적인 부분만 제한다면 딱히 별다른 문제는...
“크리스 님, 방법이 잘못되었어요.”
“...에?”
“너무 세게 문질러 사정하는 버릇을 들였다간 자칫하면 지루가 될 수도 있어요. 여성의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랑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좋아요. 질압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젠 어렴풋이 알고 계시죠?”
“...”
정말 상황에 걸맞지 않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
그것을 듣자 마자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저기, 필리아.”
“네?”
“섹스하고 싶어.”
“아... 안돼요오...”
“...싫은 거야?”
“절대 아니에요!”
“그럼 왜...”
“......”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도 나는 분명히 필리아는 말해줄 거라고 믿고 차분히 기다려 주었고, 한참 뒤 그녀의 앙다문 입술이 드디어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리스 님 주변엔 매력적인 여성들이 많잖아요?”
“어... 그렇지...?”
“그래요...”
“...”
“......”
“...필리아?”
“피부색도 이질적이고, 라이디 님보다 몸매도 부족하고, 테사 님처럼 스타일이 좋지도, 메이처럼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성행위에 대한 지식은 많아도 처음이라 다른 분들보다 잘 해드릴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도 없고... 막상 하려니까 왠지 무섭고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을 정도여서... 딱히 필리아가 없어도 크리스 님은 충분히 행복하니까,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감정을 토해내는 필리아.
정말 바보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줄 걸...
그런 착잡하고 미안한 감정들을 다 가슴 속에 잔뜩 모아, 그녀에게 다가가서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랬구나...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정말요?”
“피부색이 문제가 될 게 있어? 보랏빛이긴 하지만, 생기가 넘쳐서 좋은 느낌인걸? 의외로 나쁘지 않다고 할까... 아니, 오히려 좋아. 확실히 장점이야.”
“그치만...”
“몸매로 따지자면 라이디가 조금 더 빵빵하긴 하지. 하지만 라이디는 가슴을 빼곤 탄탄한 느낌이 꽤 있는 편인데, 필리아는 여러모로 말랑해 보여서 좋아. 게다가 살랑거리는 꼬리, 엄청 귀여워.”
“에... 에헤헤...”
후...
눈물을 찔끔 흘리며 실실 웃는 필리아를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진심을 다한 평가였다. 그녀는 매력적인 사람... 아니, 서큐버스다. 항상 나를 도와주었고, 나를 아껴주었던 존재다. 그렇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필리아를 안아도 되는 거지? 사랑하는 필리아를 당장 안고 싶어.”
“칭찬은 고맙지만, 그래도 안 돼요.”
“...필리아도 마법에 걸렸어?”
“마법...? 외출할 때 마다 테사 님이 가끔 걸어주시기는 하죠?”
“아니, 그게 아니라... 워... 월경...”
“아하! 서큐버스는 생리를 하지 않는답니다? 애액도 마찬가지지만, 의지에 따라 배란할 수 있어요.”
“그래? 신기하네.”
서큐버스라는 거, 테사가 들으면... 아니 이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분들이 들으면 너무나 부러워할 만한 종족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어느정도는 남성을 유혹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종족이니, 그들에게 있어 여성기는 마치 입과도 같은 부위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꿈에서 착정해 가는 주제에 필요한 능력인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지만, 신기한 종족이긴 하네...
잠깐, 그럼 월경 때문이 아니라는 건...
......?
“그럼 왜...?”
“내일이면 라이디 님이 돌아오시잖아요? 크리스 님도 여러모로 기대하고 있으실 게 분명한 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내일 일인데.”
“매일매일 야한 짓을 하면 아무래도 둔감해지기 마련이에요. 솔직히 전력으로 라이디 님을 대하고 싶으시죠? 앞으로도 시간은 많은데, 굳이 오늘 크리스 님을 독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어요.”
“그런...”
맞는 말이긴 해서 쉬이 반박을 못하겠다.
요새 연속으로 쥐어짜여서 조금 쉬고 싶긴 했으니까. 어제만 하더라도 반드시 쉬겠다! 고 마음먹었는데 메이로 인해 계획이 틀어져버렸던 거였을 정도다.
“필리아는 라이디 님이 만족하신 다음 차례여도 상관없답니다? 오늘은 그냥, 조금 더 먹고 싶어서 아쉬움에... 음... 으음... 아!!”
“응???”
“크리스 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들어보실래요?”
“...뭔데?”
필리아는 한동안 내 상황에 대해,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위대한 계획에 대해 열변을 펼쳤고
흥미로운 내용에 끝까지 귀기울여 준 후, 계획에 동의했다.
...그녀로부터 가끔씩 살짝살짝 풍겨 오는 비릿한 내 정액 냄새를 참아 가면서 말이다.
***
그날 새벽, 나는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갑옷을 벗고 있던 라이디와 마주쳤다.
“크... 크리스!?”
“라이디이~!!!”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전력으로 달려가 안겨... 안기...
지 못했다. 라이디는 사력을 다해 날 밀쳐냈다.
“흑... 라이디... 못 본 사이에 내가 싫... 싫어진 거야!?”
“아니에요!!! 지금은 조금... 테스트를 받는 동안 씻질 못해서 냄새 나니까...”
“아, 그건 괜찮아. 더 좋은데? 또 밀쳐지면 한동안 옆에 안 갈 거니까.”
“크리스!! 정말!!!”
우물쭈물하는 틈을 타, 라이디의 품에 꼬옥 안겼다.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자 마자 엄청 부드럽고 따뜻한 공기가 화악 하고 나를 반겨 주었다. 평소보다도 진한 여성의 냄새는 덤으로, 마약이라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마성의 매력이 있었다.
“어서와, 라이디. 고생 많았어.”
이번엔 겨드랑이에 코를 박으며, 마저 인사를 나누었다.
“미안해요, 크리스. 제대로 말도 못하고 다녀와서. 어머님께서 급히 오라고 하셔서... 그러니 일단 씻고 오면 안 될까요?”
“싫어. 이런 진한 거 평생 못 맡게 할 것 같으니까 지금 머릿속에 박제해 놔야겠어.”
가슴골 사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농축된 향....
변태같다고 놀려도 좋다. 이거, 너무 좋아!!! 참을 수 없어!!!
“그럼 힘으로라도 제압하겠ㅇ... 어... 어라...?”
“후후... 오늘의 난 쉽게 물러나지 않아.”
씻지 못하고 온다는 건 필리아로부터 들었고, 그렇기에 완강히 거부할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거근이 달리게 되는 부작용이 있지만, 라이디에게 바위도 부숴버릴 수 있는 괴력을 부여해 주는 틸라의 창.
테사가 돌아오자마자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배워서, 내 몸에 달아 둔 상태였다.
그러니, 단순히 힘으로만 따지자면 지금은 라이디와 동등한 수준이다. 오늘은 이대로 내가 우위에 서서...
“흑...”
그러나, 파르르 떨리는 라이디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올려다본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