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가족 회의 2
* * *
"하, 라이디... 진심 그게 말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에? 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라이디를 바라보는 테사와, 생각지도 못한 주제가 나오자 당황해서 소리지르곤 바닥만 쳐다보는 벨마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다.
흠...
구해 주곤 싶지만, 벨마를 데리고 쉬이 자리를 뜰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특히 테사는 꽤나 험악한 표정으로 라이디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괜히 나섰다가 그녀의 화살이 날 향하게 하고 싶진 않다.
"테사, 지금은 각자 의견을 주장하는 단계였잖아요?"
"...알았어. 그럼 메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얘기해볼래?"
"메이는 왜...? ...아무것도 아냐."
이의제기를 하려다가, 다들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길래 황급히 수습했다.
메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하는 짓은 어른스럽지만 이제 겨우 십대 초중반인 것 같은 외모라서...
아직은 불법 같아서 조금 그런데...
"주인님께 봉사하는 것이 메이의 사명이며, 밤시중을 드는 것도 당연한 봉사 중 하나입니다. 다행히도 얼마 전 메이가 부재중일 때, 전 주인님께서 생식 모듈을 가져다주셨기에 언제든 봉사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주인님, 외견상의 하자가 없는지 직접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응!? 자... 잠깐, 메이! 멈춰!!!"
치마를 걷고 팬티를 내리려는 메이를 보고 깜짝 놀라 저지하려 했지만...
메이는 전혀 멈추질 않았다!
"메이! 나중에, 나중에 확인할테니까! 지금은 회의를 해야 하니까 얌전히 앉아 있어!!!"
"알겠습니다."
그제서야 메이는 반쯤 내린 팬티를 주섬주섬 올리곤 양 손을 맞잡고 조신하게 앉았다.
...
휴...
평소엔 얌전하고 성실한 아이가 왜 가끔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를 하는지 모르겠다니깐?
"회의 주제로 돌아와서, 주인님의 첫 경험에 대해 메이는 당연히 주인님의 의사를 따르겠습니다."
"헤에, 포기하는 거야?"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그거 같지만, 알았어. 다음으로 필리아?"
"......"
"...필리아?"
"아... 순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였죠? 필리아는 괜찮아요. 나중에 해도 상관없어요..."
항상 활달하고 야한 짓을 하는 데 있어 무수한 관심을 표하는 필리아가 의외로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흐음... 무언가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나중에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빠져준다면 나야 좋지. 크리스의 뒤쪽 처녀를 가져가 놓고 앞쪽까지 가져가고 싶다고 졸라 대는 라이디보다는 훨씬 양심적이네."
빠르게 기회를 잡은 테사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알다시피 크리스와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건 나야. 게다가 다들 내 마법에 대해 알고 있잖아? 솔직히 언제든 크리스를 따먹을 수 있었지만 여지껏 꾹 참았어. 그러니까... 첫 섹스라는 거 어찌 보자면 사실 별거 아니긴 하지만, 오랫동안 염원했던 일이고... 그래서 마음 한 켠에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는 건 사실이야."
열변을 토한 테사는 벨마를 바라보더니
"'안타까운 빈유'의 차례는 이것으로 마칠려고 하는데, 대단하신 벨마 님도 의견을 내보시지 그래?"
순식간에 쏘아붙였다.
"...나? 으으... 그게... 그러니까... 흑..."
이도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앉아 있던 벨마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다가 점점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만! 벨마는 장차 엄청난 미인이 될 테니까 관심이 없는 건 아니고, 원한다면 언제든 이야기에 껴도 되는 위치에 있지만 그건 벨마가 스스로 판단할 일이야. 그러니까 괴롭히지 마."
"스... 스승..."
"쳇, 그럼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 음... 으음... 동시에... 라던가 안되겠지?"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어떤 식으로든 처음은 있을 수밖에 없잖아."
"논의를 해야 할 일이 아니잖아요. 처음은 무조건 제가 가져가는 걸로 다들 동의했었잖아요?"
"어쨌든 이미 크리스의 처음을 가져간 건 맞잖아. 그러니까 앞으로의 일은 크리스가 결정해야 하는 거 아냐?"
"그렇다고 치더라도, 크리스는 저로 결정할거잖아요. 그렇죠? 크리스??"
하아...
라이디의 심정도 이해한다. 테사의 말도 맞다.
하렘을 차리겠다! 라고 선언한 이상 공평하게 대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어떤 답을 내려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은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하지도 못할 것 같아. 게다가 내가 선택할 일이라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해. 빨리 결론을 내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내일까진 정해 줄게. 어때?"
"하지만..."
라이디는 반발하려고 했지만, 내가 벨마와 그녀를 번갈아보며 눈치를 주자 일단은 물러났다.
그렇게 오늘의 회의는 마무리되는 분위기가 되어갔고 다들 할 일을 하러 흩어지기 시작했다.
"스승...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어떻게든 회의에 끼지 못하게 배려해 줘야 됐는데...”
"아니아니, 고마워... 그보다 벨이 스승의 방해가 되는 것 같으니까... 벨은 돌아갈래."
"방해라니 당치도 않아. 벨마가 나에 대해서 여러모로 신경써 줘서 너무 기쁜걸? 게다가 돌아가기엔 시간도 너무 늦었으니까 하룻밤 자고 가."
"으응... 그래? ...좋아! 어차피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돌아가려 했어서 시간은 상관없지만, 스승이 이렇게까지나 사정하니까 특별히 자고 가줄게!"
"...뭐? 설마 너... 올때도 그걸 타고...?"
"당연하지! 그럼 벨이 여기까지 혼자 걸어왔겠어?"
허어... 텔레포트 마법진이라니...
주요 도시마다 설치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 번 이용하는 데 평범한 가정의 1년치 생활비가 들어가는 그걸...
물론 마녀들의 경우 직접 마력을 사용하여 기동할 경우 조금 할인해준다곤 하지만,
걸어서 이틀이면 닿을 거리인 데다가... 돌아가는 것까지 치면 돈이 배로 드는 거잖아?!
지금까진 그다지 체감이 되지 않았는데,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려고 하다 보니 어마어마한 부자들의 세상은 차원이 다르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보다 내 방은 어디야? 빨리 안내해줘! 스승의 옆방이면 좋겠는데... 헤헤..."
"알았어. 같이 올라가자."
"응!"
벨마의 손을 잡고 2층으로 향했다.
별것도 아니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느라 방금전까진 머릿속이 복잡했었는데
다시 활기를 되찾은 벨마를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 같다.
* * *
그날 밤, 나는 얌전히 방에 누워 있었다.
오늘은 평온하고 즐거운 하루였지만...
뒤쪽의 아픔이 거의 사라졌더니 점점 아쉬움이 커져갔다.
오후의 회의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렸으면 지금쯤 농밀한 섹스를 하고 있을 텐데...
...
천장만 바라보며 계속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테사에게 옆에서 자도 되냐고 물어보러 가야겠다.
순수하게 그녀의 곁에서 잠들고 싶은 거지만, 언제나 사고는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
뭣하면 저지르고 나서 테사와 입을 맞춰도 되고...
진짜 입을 맞춰도 되고...
흐흐...
그렇게 결심을 한 나는 침대를 벗어나 문을 향해 걸어...
"스승, 어디 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