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랩 매지션즈-81화 (81/114)

〈 81화 〉 가족 회의 ­ 1

* * *

점심 즈음에 일어난 나는, 간신히 평정을 유지한 채 계단을 내려와 거실로 향했다.

주방 쪽을 보니 테사와 메이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게 보였고

마침 내가 내려오는 걸 보았는지 테사는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앗! 좋은 아침, 크리스! 엉덩이는 무사해? 키킥..."

...

젠장!!!

어떻게든 테사에게 숨겨볼 순 없을까 해서 시나리오를 몇 개 준비해봤는데...

수를 쓰기도 전에 이미 눈치를 채 버린 것 같다.

다만 말하는 투를 보아하니 자세한 전말은 모르나 보다.

그 과정에서 저지른 '부끄러운 짓들'을 알고 있다면, 이 정도 선에서 놀리는 것으로 그칠 테사가 절대 아니니까.

...

덕분에 뒤쪽이 아파 죽겠는 걸 애써 숨길 필요도 없어졌고.

"으응... 솔직히 괜찮진 않아. 그보다 라이디는?"

"몰라. 아직도 자고 있나봐."

다시 올라가서 라이디를 깨울까 싶었지만, 피곤할 만하니 그냥 두기로 했다.

...

당장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기엔 조금...

아주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 크리스 님, 필리아 이제 나가도 되는 걸까요? 약속대로 귀를 틀어막은 채 구석에서 잠만 자고 있었어요! ]

"응, 어서 나와 필리아. 기다려 줘서 고마워."

"야호! 끄으~ 얼마만의 바깥 공기인지!"

너스레를 떨며 목걸이에서 튀어나온 필리아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늘어진 잠옷 사이로 보이는 막대한 크기의 가슴, 쇄골, 잘록한 허리, 배꼽...

시야에 들어오는 필리아의 모습들에 크리스 주니어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흑...

드디어 다시 남자가 되었구나 크리스!

너무 행복해!!!

"점심 먹으면서 어제 일을 자세히, 아주 자세히 얘기해 주라구?"

"주인님의 성생활이라면 메이도 궁금한 부분입니다."

"절! 대! 절대 알려주지 않을 거야! 관심 끄시고 어서 밥이나 주세요."

"쳇, 배고프면 식기라도 준비하던가."

"네네~ 테사 님의 명령에 따르도록 합죠."

오늘은 괜히 기분이 좋다.

그래서 테사에게 말장난을 치며 식당으로 향하...

똑똑­

다가,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마중을 나갔다.

"누구세요?"

덜컥!

"스승! 로ㄹ... 알자스의 저주를 풀었다는 게 사실이야?"

"......벨마?"

그곳에는 다짜고짜 아래쪽에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연보라색 머리를 들이미는 '제자님'이 서 있었다.

"응. 사실이긴 한데... 어떻게 알았어?"

"후후, 벨은 루이스 내의 소식이라면 누구보다도 빨리 받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구?"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다는 듯이 말하는 벨마.

그런 대단한 능력으로 진짜 내 동태나 살피고 있는 건지 조금 궁금했지만, 현관에 죽치고 서서 대화할 계제는 아니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거야?"

"응? 아... 아니... 으응... 으... 그게..."

...

뭐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벨마는 당황한 채로 이래저래 시선을 돌리고 있다.

"마... 맞아! 알자스는 이제 스승을 쫓아다니지 않겠지만, 대신 다른 인퀴지터들이 추격해 올테고 그러니 따돌릴 방법도 찾아야 하잖아? 그래서 특별히 벨님이 애프터서비스를 해주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니까 감사히 여기라구?"

"그래... 일단 들어와."

"스승, 벨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거야. 벨 같은 유명인사가 이런 깡촌까지 직접 찾아왔는데 그대로 돌려보내는 게 이상한 거고!"

"네네, 미천한 스승을 신경써 주신 것도 모자라 직접 방문까지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부디 들어와 주시지요, 벨마님."

"응!"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별다른 태클을 걸지 않고 그냥 벨마의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덕분에 순수한 함박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 낑낑대며 신발을 벗는 벨마의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도 했다.

* * *

벨마을 더하여 모두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식사를 마쳤더니, 라이디도 일어나 식당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나중에 알아서 챙겨 먹을테니 어서 회의를 하자고 했고

결국 테사의 주재 하에 '가족회의'가 개최되었다.

"꼬맹아, 이제부터 우린 어른들의 이야길 해야한단다. 그러니 잠깐 마을에 나가서 놀다 올래?"

"싫어. 어리다는 핑계로 벨을 따돌리지 마, 안타까운 빈유!"

테사는 미간을 한껏 찡그렸지만, 반박을 하진 않고 그저 날 쳐다보고 있다.

...

나라고 딱히 별다른 수가 있는 건 아닌데...

아무튼 시도는 해 볼 수밖에.

"벨마, 미안하지만 네가 듣기엔 내용이 조금..."

"싫다고!! 한 번만 더 나가라고 하면 벨을 괴롭힌다고 고발할 거야!!!"

"...그럼 회의를 미루면 안 될까?"

"나도 싫어. 빨리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안건이잖아? 그냥 회의에 끼라 그래."

그렇게까지 '중요한 안건'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둘 다 물러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다들 침묵하고 있지만, 테사와 같은 의견이라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었다.

"하아... 그래. 나도 모르겠다. 벨마, 언제든 듣기 싫으면 나가도 돼. 알았지?"

"응!"

자리가 없어서 잠시 고민한 벨마는 내게 다가와 무릎 위에 앉았다.

오늘따라 벨마답지 않게 유달리 응석을 부리는 것 같은데...

뭐, 나이다운 행동이니 크게 신경쓸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저 넘어지지 않도록 손으로 얌전히 벨마의 허리를 감싸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자, 회의를 시작하자. 일단 각자 의견을 주장하고, 그 후에 의논하는 걸로 할 거고, 우선 라이디부터 얘기해봐."

"크리스... 어젯밤의 일, 기억하고 있나요?"

"...으응, 그다지 기억이 나진 않아."

...

사실 전부 기억하고 있다.

라이디가 찾아올 때 까지만 해도 약기운이 돌고 있어서 몽롱한 상태였다.

그러나 기다리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었고, 그래서 중간 즈음부턴 약기운이 다 떨어졌었다.

"그런가요... 혹시나 했는데, 조금은 아쉽네요."

고대하던 라이디와의 평범한 섹스를 거부하고 2차전까지 치른 것 또한 온전히 내 의지였다.

분위기를 타기도 했고, 정말 가버리기 직전인 것 같아서 왠지 아쉬워서...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온, 암컷으로서 느낄 수 있는 극상의 쾌감...

한 번 그것을 맛보고 났더니... 자꾸 뒤로 하고싶다는 생각이 나니까...

무섭다.

이대론 정말 타락해서 낭자애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그러니 한동안 뒤쪽을 쓰는 건 반드시 자제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굳이 라이디에게 기억하고 있다는 걸 숨길 필요는 없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크리스가 저와 함께한 기억이 없다고 하니, 어제의 일은 노 카운트라고 칠 수밖에 없네요. 그러니... 크리스와의 첫 섹스는 제가 가져가야겠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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