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메이 1
* * *
루트의 병원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되는 대로 이것저것 해봤지만, 죄다 단기 알바라서 그다지 돈이 되진 않았다.
그래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오늘도 마찬가지로 필리아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아... 이젠 서큐버스의 능력을 활용해서 풍속점이나 차리고 싶네요. 몸도 편하고 돈도 많이 벌릴텐데..."
"그건 좀 그렇지 않아?"
"왜요?"
"그야 필리아의 능력을 쓴다면 클린하고 편하고 떼돈 버는 길이긴 하겠지만, 뭐랄까... 괜히 마음에 걸려. 게다가 다른... 그... 그러니까, 필리아랑 비슷한..."
"악마요?"
"응. 다른 악마들에게 들킬 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우선 최선을 다해 보고 난 뒤에 생각해 보자."
"흐응... 알겠어요. 필리아는 크리스 님의 뜻을 따를게요."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필리아인데도, 의외로 순순히 납득해줬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우연히 그 풍만한 가슴 너머에 시선이 갔다.
눈에 들어온 건 빛이 들어오지 않는 좁은 골목 한켠에 걸터앉은, 누더기를 뒤집어쓴 사람.
그럼에도 왜소해 보이는 게 끽해봐야 10대 초중반 정도의 청소년일 것 같다.
...
저대로 노숙을 한 걸까? 분명 배고프고 추울 터...
저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반면 나는 라이디, 테사, 필리아를 만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주제에...
그깟 돈이 뭐라고...
"응? 크리스 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필리아의 물음엔 답하지 않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자... 많진 않지만, 이거라도 쓰고 힘내세요."
"아앗!? 크리스 님의 소중한 첫 주급인데..."
"작은 돈에 집착할 필요 없어. 먹고 사는덴 지장 없잖아? 게다가 큰 물에서 놀아야 더 큰 기회가 찾아오는 법이니까, 이 정도는 신경쓰지 않을래."
"역시 착하고 사려 깊은 분이예요! 필리아도 본받고 싶지만... 하지만 필리아가 노력해서 받은... 난생 처음 번 소중한 돈이라서..."
"하하, 그럴 수 있지. 괜찮아."
필리아와 대화하고 있었더니, 누더기를 입은 자가 천천히 손을 뻗어 내가 건네준 돈을 집어갔다.
...
후드에 가려져서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왠지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아니,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데...
"저기요, 우리 크리스 님이 당신을 불쌍히 여기셔서 오늘 일당을 기꺼이 드렸는데, 최소한 고맙다고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아냐, 괜찮아요.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드린 건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필리아도 어서 가자."
"아... 알겠어요. 크리스 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못마땅해하는 필리아를 데리고 다시 메인 스트리트로 돌아왔다.
막상 건네주고 나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저 돈으로 해야할 일이 많았는데...
하지만, 내일 또 벌면 되니까.
"저기, 크리스 님..."
"왜 그래? 돈을 줘버린 게 신경쓰이는 거야?"
"아뇨아뇨! 그보다... 따라오는 것 같아서..."
필리아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봤더니, 누더기를 입은 사람이 멀찍이서부터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차... 착각 아닐까? 우연히 여길 지나가야 되는 걸지도 모르잖아. 돈을 쓰려고 어딘가로 향하는 거겠지."
"그런걸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수상한데..."
"그럼 빨리 가자."
필리아와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테레즈의 시내를 벗어나서도, 성문 앞에서도, 심지어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서도
그는 여전히 우리 뒤에 있었고, 명백히 따라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조금 위험한 것 같죠?"
"그러게... 필리아, 달리자!"
"흐앗!?"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필리아의 팔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내달렸다.
...
5분 정도를 격하게 뛰었을까...
"헉... 학... 필리아, 이젠 없지?"
"아뇨! 따라오고 있어요! 그러니까 수상한 사람에게 호의 배풀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니 언제? 으으...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필리아, 날아서 도망가자!"
말을 마치자 마자, 몸이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집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아아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필리아가 몸을 180도 틀어, 나는 뒤쪽의 상황을 볼 수 있었고...
"저... 저게 뭐야!?"
눈 앞에 보이는 건
공중에 뜬 채 빠르게 날아오는 누더기였다.
* * *
"멈추세요! 당신은 누구죠? 왜 크리스를 따라온 건가요?"
누더기를 쓴 채 따라오는 사람이 위험할 지도 모르니, 함께 맞서는 게 낫겠다는 필리아의 뜻을 따라 곧장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마중나와 있던 라이디는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검을 꼬나들고 나섰다.
그러나 누더기를 쓴 자는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가까이 오면 공격하겠어요!"
라이디가 목을 향해 검을 겨누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어쩔 수 없네요. 조금 아플 거예요! 하앗!!!"
라이디는 칼을 다시 검집에 넣고, 검집을 빠르게 내질렀다.
깡!
"무... 무슨!?"
그러나, 명치를 얻어맞았았음에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당황한 라이디는, 이번엔 검을 뽑아 다시 한번 공격했다.
깡!
"크윽!?"
라이디가 검으로 그의 복부를 찔렀지만, 검집으로 때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분명 플레이트는 아닌데, 마치 방패를 때린 것 같은... 하, 이젠 봐주지 않아요. 전력으로 갈 거예요!!"
"잠깐! 라이디!"
"네?"
"이번엔 내가 나서볼게."
"하지만..."
"나를 공격하려는 것 같진 않잖아?"
"후... 알았어요. 조금이라도 위협하는 것 같으면 바로 나설테니까요."
꿀꺽
라이디가 그의 옆으로 물러났고, 누더기는 계속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속으론 잔뜩 긴장한 채였지만, 혹여 위험해지면 라이디와 필리아가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내가 딱히 잘못한 건 없다! 굳이 공격하려는 생각이었다면 저렇게 천천히 다가올 것 같지도 않고!
온갖 상념으로 긴장을 떨쳐내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는 내게 다가와...
...
팔을 끌어안았다!
"응?"
그리고, 내 어깨에 닿은 그의 후드가 자연스럽게 벗겨졌다.
"으악!? 이건...?"
거기에는
머리의 1/4정도가 날아간,
그 속은 금속제의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밝은 연두색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