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전격 하렘 선언 2
* * *
"..."
"그렇지 않아? 나랑은 전혀 관계없는 일이잖아.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
테사의 싸늘한 반응에, 모두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내 하렘 선언을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겠다곤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자자, 일단 크리스 님, 테사 님과 따로 대화를 나누고 오실래요? 필리아는 라이디님과 저녁을 주문해 두고 있을 테니, 상황이 정리되면 식당으로 내려와 주세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선 건 필리아였다.
그녀는 라이디의 팔을 부여잡고,
"잠깐, 필리아! 전 이 자리에서 꼭 확답을 받고 싶은데..."
"라이디님, 이따 밥 먹으면서 얘기하면 되니까요. 우린 먼저 가 있죠!"
저항하는 그녀를 날개까지 동원해 억지로 끌고 나갔다.
...
필리아와 라이디가 투덕대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고,
이내 테사와 둘만이 남겨져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를 하는 게 맞겠지?
"저기... 테사, 기분 나빴다면 미안... 읍!"
나를 급습한 부드러운 감촉에 순간 당황했다.
...
상황을 파악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테사가 돌연 내게 입을 맞춘 것이었으니까!
"무... 무슨..."
"짜증 나! 내 걸 왜 갑자기 치고 들어온 도둑년이랑 공유해야 한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단 말야! 크리스가 날 낭자애라고 오해하지만 않았어도... 그러니까 적어도 첫 키스는 내가 가져가야겠어!"
"......"
"설마... 벌써 라이디랑 키스도 한 거야? ...뺏긴 거야?"
안타깝고 속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테사.
"...아니."
나 때문에 토라져 있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 너머 문짝을 짚고, 이번엔 내가 테사에게 키스를 했다.
"읍...! 으흣!? 으응..."
갈라진 틈 사이로 혀를 밀어 넣자, 깜짝 놀란 그녀의 입술은 굳게 닫혔다.
그러나 그녀에겐 저항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었고, 혀끝으로 톡톡 쳐대는 것만으로도 결국 쉽게 함락되었다.
"헤르... 하으으..."
다들 딥키스가 달콤하다고 표현하는 것 같지만, 딱히 특별한 맛이 느껴지진 않고 있다.
다만 숨겨져 있던 것들이 뒤엉킨다는 것, 서로의 타액을 교환한다는 그 상황이 달콤하고 황홀한 분위기를 충분히 이끌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눈을 감은 채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는 테사의 표정이 너무나 야릇했다.
새빨갛게 달아올라 첫 키스의 수줍음을 내비치면서도, 우리가 키스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언제나 내게 모든 걸 허락했다는 듯 짐짓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반된 반응이 좋았다.
"후, 남자로서의 키스는 네가 처음이야."
"그래? 나쁘지 않네."
이번엔 테사의 두 팔이 내 목 주변을 부드럽게 감쌌다.
"나도... 여자로서의 키스도 처음이야. 내 첫 키스를 꼭 기억해 줘, 크리스. 응... 츄릅... 헤르릅..."
마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녀의 혀는 열심히 내 입안 구석구석을 정성스레 핥아갔다.
그래서, 혓바닥을 아래에 숨긴 채 맘껏 즐기라고 받아줬다. 가끔은 그녀의 혀를 툭툭 건드리며 응원하기도 했다.
잇몸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작은 간지러움이 즐거웠다.
혓바닥의 감촉에 집중하고 있음에도 전혀 감출 수 없는 입술의 보드라움은 마치 영원과도 같았다.
"후우, 하아... 스읍... 이거... 엄청나네..."
충분히 즐긴 테사는 혀를 거두고, 자연스레 입술도 멀어져갔지만,
아쉽다는 듯, 더 원한다는 듯 끈적한 침이 길게 늘어지며 우리 사이를 간신히 이어주고 있었다.
"하... 하아... 있잖아, 여성의 아름다운 알몸을 본 것도 테사가 처음이었어. 그러니까... 괜찮은 거지?"
낭자애라고 생각할 때도 항상 신경 쓰여서 흘깃흘깃 쳐다봤던,
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아담하게 솟아 있는 가슴에 시선을 보냈다.
슬렌더한 테사의 여성스러움의 대부분을 이끌어내는 건 단연 가는 허리, 그에 대비되는 커다란 골반이었지만,
테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여성스러움을 완성하는 건 분명 가슴이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보고 싶은 그것과 재회하기 위해
나는 망설이지 않고 테사의 하얀 원피스를, 그 가슴께를 까내렸다.
아니, 까내리려 했지만...
"후후, 안 돼."
테사가 손으로 막아섰다.
"하으... 테사...! 여기까지 몰아세워 놓곤 왜 안된다는 거야? 제발..."
"나도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라이디한테 칼 맞아 죽고 싶진 않아. 일단 동정 떼고, 분위기를 잡으면 그때 생각해 볼게. 게다가..."
"흣!?"
갑자기 테사가 내 아랫도리를 붙잡았다!
아프진 않았지만 깜짝 놀랐고, 그리고...
잊고 있던 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크리스, 여자로는 서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빨리 라이디한테 따먹히고 오지 그래? 난 크리스가 여자아이가 되더라도, 암컷이 되더라도 사랑해 줄 수 있어."
"테... 테사!"
"그보다... 오빠? 자기야? 달링? 어느 쪽이 좋아? ...발기부전 해결되기 전까지 생각해 놔."
뒤돌아선 테사는 이쪽을 보고 씨익 웃어 보이더니,
"자, 밥 먹으러 가자."
다시 뚱한 표정으로 돌아선 채, 날 밖으로 이끌었다.
라이디나 필리아에겐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뭐 이런 건가?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
그보다, 남자로서의 첫 키스...
이건 절대,
절대로 라이디에겐 비밀로 해야겠다.
* * *
"크리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응? 다 얘기해 줬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슬슬 테레즈를 떠날 건가 싶어서."
"아아..."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 라이디가 향후 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슬슬 루트 공화국으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 얘기를 꺼낸 건, 여기서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여행을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니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지내는 것도 좋으니까..."
"맞아요! 필리아도 이곳의 경치에 반하고 말았어요. 평생 살고 싶다고 할까요?"
"나도 동의해. 걸어 다니는 거나 야영하는 거 피곤하기도 하고. 하지만..."
테사는 스테이크를 썰던 나이프를 라이디에게 겨누며 입을 열었다.
"라이디, 사실 속셈이 있는 거 아냐?"
"에? 테사, 속셈이라뇨?"
"예를 들어 크리스에게 걸린 발기부전 마법이 이대로 계속 풀리지 않는다면, 결국 크리스는 내 거가 되는 게 아닐까 라던가 말야."
"마... 말도 안 돼요! 제... 제가 그런 화... 황당한 상상을 할 리가!"
"흐응... 크리스는 어떻게 생각해?"
"응. 내가 보기에도 라이디가 수상해."
"크... 크리스까지!"
"풉...!"
나까지 동조하자 당황하는 라이디.
그 모습은 몇 번을 봐도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다.
역시, 그 누구도 포기하긴 싫다.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아깝고 탐나는 여인들이다.
하렘 선언하길 잘한 거 같아!
"뭐, 크리스의 발기부전이 지속되는 동안은 알자스가 잡아가진 않겠다고 했으니까, 급히 루트에 찾아갈 이유는 없긴 하지? 그럼 아예 한 달 정도 집을 빌리자. 어때? 내가 낼게."
"괜찮겠어? 매번 테사에게 신세를 지기엔 너무 미안한데..."
"괜찮아. 어차피 내 돈도 아니었고,"
테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입술을 검지손가락으로 쓱 훑더니,
"돈이야 벌어 오면 되니까."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그리곤 야릇한 표정으로, 마치 남자의 그것을 핥듯 정성스럽게 손가락을 빨아댔다.
"에릅... 흡... 낭군님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어? 그럼 물 좀 떠올게!"
두근두근...
테사의 혀놀림이, 낭군님이라는 단어가, 싱그러운 목소리가
내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아무도 못 본 건가? 못 들은 건가???
"그럼 내일 아침에 집을 보러 가야겠네요. 숙박비를 하루라도 아끼는 게 좋을 테니까요."
그런 엄청난 장면이 지나갔는데도, 라이디는 평온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마 테사가 마법을 쓴 거겠지.
그보다도...
내일, 절호의 기회인 것 같잖아!?
"셋이서 보고 와. 나는 내일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서..."
"응? 무슨 일인데요?"
"알자스를 만나서 조건을 재확인해보려구."
"위험할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같이 갈게요."
"아냐, 어차피 알자스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막을 수 없다는 거 알잖아? 딱히 위해를 가할 것 같지도 않으니까 혼자 다녀올게. 그러니까 테사를 도와서 좋은 집을 알아봐 줘, 라이디."
"...알겠어요."
의외로 라이디를 쉽게 설득할 수 있었기에 내심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내일...
어쩌면 이 빌어먹을 발기부전의 저주를 혼자 풀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를 얻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