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랩 매지션즈-66화 (66/114)

〈 66화 〉 전격 하렘 선언 ­ 1

* * *

"후우... 하아..."

여관에 도착해 테사와 헤어진 후, 내 방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숨을 내쉬었다.

덕분에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진정되었지만,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테사가...

여자라는 거, 사실이겠지?

물론 매지션즈에 마법을 쓰고 들어갔다는 게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증거가 테사가 여자라는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

"크리스 님, 뭐 하고 계신 거예요?"

"필리아? 목걸이 속에서 자던 거 아니었어?"

"크리스 님이 일어나기 전에 나왔어요. 그 후로 줄곧 라이디 님의 방에서 있었는데... 혹시 뭘 했는지 궁금하신가요?"

"아니."

"필리아, 너무 슬퍼요. 지금의 크리스 님의 안타까움을 풀어드리고 싶지만, 서큐버스인 필리아도 구제해 드릴 수 없으니... 물론, 오늘 폭식해서 크리스 님을 짜낼 생각도 없지만요?"

"..."

하아...

지금은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데...

그냥 목걸이에 들어가 있으라고 할까?

"크리스 님, 산책 다녀올까요?"

"...난 방금 다녀왔는데?"

"그럼, 안 다녀온 거면 되는 거죠?"

"우와악!?"

필리아는 갑자기 날 끌어안더니, 순식간에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

바닷가에 자리 잡은 도시 테레즈.

그를 감싸듯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의 양 끝에는 거친 절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필리아는 그 끝에 걸터앉도록 날 내려주고, 한동안 묵묵히 뒤에서 서 있다가...

내 옆으로 다가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찬 바닷바람 맞으니 좋지 않아요?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죠?"

"응..."

"이제 필리아에게 말해보세요."

"뭘?"

"크리스 님, 걱정거리가 있는 거잖아요?"

"..."

잠깐 혼자서 해결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필리아에게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오늘 오전에 있었던 테사와의 일화를 알려줬다.

"그랬어요? 저번에 필리아가 테사 님은 여성분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게..."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필리아의...

서큐버스라고 불리는 종족의 성별을 감지하는 본능도 있었지.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내 주변에는 테사가 여자애라는 신호가 가득했었는데...

처음에 낭자애일 거라고 선입견을 품었던 게 너무나도 큰 문제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하지만, 테사 님이 여자라는 객관적 사실을 고민하고 계신 건 아니잖아요?"

"맞아... 테사가 노출증이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아무 감정도 없이 그렇게까지 할 리가 없잖아?"

"그렇죠? 게다가 저번에 매지션즈의 꿈을 꾸게 해드렸을 때 느낀 건데, 테사 님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크리스 님의 곁을 지켰던 것 같아요."

"..."

테사로선 정말 억울할 만했다.

내가 그녀에게 전혀 시선을 주지 않고 라이디에게 푹 빠졌던 건, 그녀가 낭자애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만약 처음부터 테사를 완연한 여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면...

"크리스 님의 생각은 어떠신데요?"

"난 지금이 좋아. 모두와 함께 여행하고 생활하는 게 너무 좋은데... 내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상황이 무너져 내릴까 봐 두려워."

라이디를 선택해도, 테사를 선택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관계가 지속될 리가 없다.

"결국 크리스 님의 마음이 중요한 거예요. 언젠가는 선택의 시간이 올 거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요. 다만 이랬다저랬다 하며 모두를 상처입히지 말고, 확실하게 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 마음이라...... 그렇네. 답을 찾은 것 같아. 고마워, 필리아."

"그럼 슬슬 돌아갈까요?"

"응. 모두에게 할 말도 있으니까..."

­­­

"모두에게 할 말이 있어."

저녁 식사 전, 내 방에 모인 일행들을 침대에 앉혀두고, 나는 결연하게 내 뜻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내 목표는 상남자가 되는 것, 뛰어난 마법사가 되는 것, 이를 통해 인기를 얻어서... 크흠..."

말하기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꾹 참았다.

"예쁜 여자들을 꾀며 살아가는 거였어. 하지만 매지션즈에 끌려가면서, 저 목표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지. 그래서 이제는 되찾고 싶어. 상남자가 될 수 있을지,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우...

이제부터가 중요한 부분이니, 잠깐 숨을 골랐다.

"사실 그것들은 수단이고, 진정한 목표는 예쁜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 거였어. 그런데, 지금 상황은 너무나 위태로워. 라이디를 사랑하고, 테사를 좋아하고, 필리아와 잠들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은데... 이런 생활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 두려워."

다음에 오는 표현이 너무 부끄러워서...

몸으로라도 가려보려고, 짐짓 우아해 보일 것 같은 포즈를 취했다.

"생각해 봤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낭자애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내면의 매력이 넘쳐흘러서 주체할 수 없는 원죄를 지닌 나, 크리스에게 있잖아? 그러니까 이건 내가 전부 안고 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

"크리스...?"

"하,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크리스 님, 설마..."

"맞아. 난 하렘을 차리겠어!!!"

치밀어오르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

......

정적이 흐르니, 더욱더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말한 것 중에 거짓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마법사로서 대성하고 싶었던 것도, 다시 상남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결국, 하렘을 차리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하아...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어떻게 그렇게 넘어가는 건가요? 필리아 어지러워요..."

"안 돼요! 크리스는 제가 먼저 찜했는데!"

"내가 먼저였는데 너희가 너무 빠르게 진도를 뺐을 뿐이잖아? 게다가 멍청한 크리스가... 어휴, 말을 말자."

"생각해 보니까... 그럼 필리아도 하렘에 껴도 되는 건가요?"

"필리아! ...크리스, 저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아요? 전 크리스가 원하는 건 뭐든 해줄 수 있으니까... 부디 다시 생각해봤으면..."

돌연 라이디가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후...

그녀의 심정은 잘 안다.

나도 두 눈 꼭 감고, 그저 라이디만을 바라보고 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난 그녀만을 바라볼 수 없는, 죄 많은 몸이니까...

모쪼록 잘 설득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라이디는 내겐 과분한, 꽉 차고도 한참을 넘칠 정도의 존재야. 하지만 나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상처받는 건 싫어. 나도 두렵지만... 어떤 결말에 다다르더라도, 내 마음속의 첫 번째는 늘 라이디일 거야. 그러니까... 너무나도 과한 부탁인 건 알지만... 마지막까지 내 곁에 있어 줄 수 있을까?"

하아...

하고 한숨을 푹 내쉰 라이디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그리고, 다시금 한숨을 크게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고 선언했다.

"...알았어요. 절대 납득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크리스가 하렘을 차린다고 해서 크리스를 버릴 건 아니니까... 다만... 크리스의 처음은 꼭 저였으면 해요. 뺏기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요!"

...

이건...

나에게 말한다기보다는, 테사와 필리아에게 선언하는 느낌이...

그래서, 이번엔 테사에게 의중을 물어보았다.

"테사, 괜찮을까?"

"나한테 왜 물어보는 거야? 네 인생인데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그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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