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둘 만의 데이트 2
* * *
"응?"
"날 낭자애로 생각하고 있었냐고!!!"
"그... 런데..."
"그럼 지금까지 날 피한 게... 바보!! 멍청이!! 으아!!! 난 왜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거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테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자라고?
"실화야? 내가 할 짓이 없어서 하루 내내 가슴에 마법을 걸고 있다고 생각했어? 정말 이걸 마법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테사는 간신히 내린 옷을 살짝 올려 가슴을 드러내더니,
돌연 내 몸에 비벼대기 시작했다!
"하으, 테사... 잠깐! 내 얘기를 들어..."
"그럼 지금은 어떻게 생각해? 반쪽짜리가 아닌, 진짜 여자아이의 몸은 어때? 예쁘지? 부드럽지? 만지고 싶지? 마치 마법을 쓴 것처럼 완벽하지???"
"응...! 예쁘고 부드럽고 만지고 싶고 완벽해! 그러니까 조금만..."
"쿡... 이래도 서지는 않네. 섰으면 저질러버리고 싶었... 아니, 그보다 오히려 낭자애 가슴이었으면 더 좋아했으려나? 이거, 반응했으려나?"
"테사!"
"쿡... 알았어. 장난은 그만할게. 음... 이제 뒤쪽의 후크를 걸어줘."
어느새 옷을 다시 내리고 뒤돌아선 테사.
그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며, 나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니...
그녀인가...?
테사가...
정말...
여자아이라고...?
줄곧 예쁘게 생긴 외모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낭자애라는...
사실상 같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애써 무시해 오고 있었는데...
"이 옷, 어때? 잘 어울려?"
찰랑거리는 은발, 금빛이 도는 커다란 갈색 눈동자, 슬렌더하고 새하얀 피부, 반짝거리는 입술...
때론 발랄하지만, 평상시엔 차분하고 고운 목소리까지...
그의...
그녀의 모든 것들이, 지금까지 느끼던 것과는 판이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까지 부정하고 있던 테사의 모든 여성스러움이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예뻐."
"옷이 예쁜 거야, 아니면 내가 예쁜 거야?"
"그러니까... 옷 말고..."
"후후, 부끄러워? 내가 여자아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새삼스레 부끄러운 거지? 맞지? 그렇지??"
"...아니거든?"
"그래그래, 예쁘다고 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이거 사야겠다. 입고 갈래."
거울 앞에서 한 바퀴 돌아보고 난 테사는 탈의실의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문고리를 잡고 선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난 크리스에게 거짓말을... 아직까진 한 적 없어. 그러니까, 제대로... 여자아이로... 한 명의 여성으로 봐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분명 매지션즈에서 나왔다고, 내게 피규어를 주문한 적이 있다고 했었는데..."
"거긴 내 마법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몰래 들어갔던 거야. 인식저해 마법의 위력, 알고 있잖아?"
아아...!
여자처럼 보이고 싶어서 우리에게 마법을 건 게 아니라,
매지션즈에 들어갈 때 여자인 걸 들키지 않았던 건가!
마치 망치로 머리를 세게 내리치는 것만 같은 깊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럼 아까 본 건... 어제 만진 건...
마법이 아닌, 진짜 여자아이의...
여성인 테사의 것...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얼굴에 화악 하고 열기가 올라왔고,
한없이 부끄러워서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훗, 반응을 보니까 보여준 보람이 있는 것 같네! 크리스, 귀한 거 봤으니 이건 네가 사줘. 그리고 배고프니까 밥도 사줘."
"그린 샐러드에 안심 스테이크, 그리고 알리오 올리오 에 페퍼론치노 주세요. 크리스는 뭐 먹을 거야?"
"나는... 물 한잔..."
"이쪽엔 볼로네즈로, 그리고 스테이크를 저랑 같은 거로 하나 더 주세요."
"알겠습니다."
"저기, 그러니까..."
"왜?"
"아냐... 아무것도 아냐."
여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데다가, 그만큼이나 많이 시키면...
지갑 사정이 정말 위험하다!
하지만, 아까의 일이 있었다 보니 말을 꺼내기가 애매했다.
처음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신은 여자라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혼자서 남자라고 오해하고 단정 짓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화를 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었다.
"그... 테사..."
"음,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 건지 알고 있어. 내가 처음 매지션즈에 들어갔을 땐..."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테사는 매지션즈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별 볼 일 없는 낭자애 마법사들,
제대로 된 마법사를 만나려면 수십 년은 걸릴 것으로 보이는 마법사 양성 과정,
그리고 매지션즈의 명물, 피규어 장인...
나.
호기심에 피규어를 주문했다가 내게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몰래 따라다니다가...
마침 탈출을 준비하고 있던 날 보고, 테사 자신도 슬슬 매지션즈를 떠날 생각이었기에 겸사겸사 내 탈출을 도와줬다고 했다.
결국,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이중 삼중으로 살벌하게 감시하고 있었던,
매지션즈라는 이름의 마법사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내가 우연히 절묘한 타이밍을 잡은 게 아니라...
"그럼, 내가 매지션즈를 탈출할 수 있었던 게..."
"사실 당신의 불친절한 가이드, 테사 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성심성의껏 에스코트해드리고 있었답니다?"
"그랬구나... 말로 표현하는 것 만으론 한참 부족하겠지만, 정말 고마워. 이제야 눈치챈 거 미안하고... 은혜는 꼭 갚도록 할게."
"아냐, 오히려 내가 고맙지. 같이 여행하면서 라이디, 필리아 같은 좋은 친구들도 생겼고, 여러모로 즐거운 일이 많았으니까. 물론... 그 무엇보다도..."
말을 하다 말고, 테사는 추가 주문한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뒤적이다가...
"크리스도... 아니, 크리스가 좋아."
새빨개진 얼굴을 내리깔며 아주 작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 장난이야. 슬슬 라이디도 일어났을 것 같은데, 걱정하기 전에 얼른 먹고 돌아가자?"
"..."
...
비록 여자애라는 걸 알아채는 게 느렸다곤 하지만, 나도 눈치가 있다.
테사가 하는 말들이, 행동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저렇게 대놓고 표현하고 있는데, 장난일 리가 없다.
하지만, 테사는 내 시선을 피한 채 묵묵히 음식만 먹고 있다.
이 건에 대해서, 이 자리에서는 더 얘기하고 싶진 않은 것 같아서, 나도 캐묻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 후, 계산을 위해 쭈뼛대며 점원을 불렀는데...
기분이 좋으니까 자신이 내겠다며, 테사는 나 대신 식사비를 내줬다.
그래서 만류하는 척...
...
하진 않았다.
'내가 내겠다'가 목젖 근처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혹시라도 '그럼 네가 내'라고 하면...
부끄럽게도...
막상 낼 돈은 없으니까...
그리고,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여관에서 나설 때와 마찬가지로, 나와 테사는 조금 떨어져서 걷고 있었지만...
...
왠지 어색하다.
가끔 투정을 부리곤 하지만 항상 날 위해 주는,
낭자애지만 좋은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낭자애가 아닌 여자애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나를 향한 마음마저 확인하고 나니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이제 와서 테사의 행동을 돌이켜보면,
내게 툴툴대던 건 내 관심을 끌고 싶어서였고,
내게 화를 내던 건 라이디가 아닌 자신을 봐줬으면 한다는 신호인 게 분명했다.
그녀는 나를 좋아하고 있고,
나는...
나도 그녀를 좋아하지만...
하지만, 내겐 라이디가 있는데...
"그래도 오늘 데이트, 즐거웠지? 오... 오..."
"...오?"
"오빠...? ...으으, 역시 이건 나랑 어울리진 않네. 게다가 크리스가 오빠 소리 들을 정도로 듬직해지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테사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평소에는 기겁하며 어떻게든 테사를 떼어내려 하던 나였지만, 오늘은 밀어내지 않았다.
"그래, 테사를 위해 듬직해지려고 노력할게."
"그럼 잔뜩 기대하면서... 지금처럼 쭈욱 곁에서 지켜볼게!"
복잡한 관계를 생각하는 건 잠시 멈추고, 오히려 살갑게 다가오는 그의...
그녀의 팔을 꼬옥 붙잡아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