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바닷가에서의 일화 1
* * *
"우와~!"
언덕을 보고 앞서 내달리던 테사가 나직이 탄식했다.
그의 반응을 보고, 나와 라이디도 서둘러 언덕을 올랐다.
부채꼴로 펼쳐진 도시,
넓게 펼쳐진 백사장,
끝이 없는 것 같은 수평선...
이게...
바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이쪽으로 오길 잘한 것 같아요."
"그러게. 게다가 이렇게 물이 많은 건 처음 봐. 그런데... 위험하진 않을까?"
"발도 담그기 전에 걱정부터 하냐? 위험한지 아닌지 빨리 가서 확인해 보자!"
"우앗!?"
돌연 테사가 내 팔을 잡고 끌어서 넘어질 뻔했다!
"아... 알았어, 갈 테니까!"
벨마와 수련을 하고, 알자스를 만나 고생했던 도시 루이스.
바로 위에 우리가 목적지로 삼고 있는 루트 공화국이 있지만, 거대하고 험준한 산이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루이스에서 양 갈래로 나뉘어 어디로 가든 루트 공화국에 도착할 수 있었고, 빠른 길은 오른쪽 길이었지만...
문득 테사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거기에 다들 바다에 가본 적이 없어서...
아니, 필리아는 이쪽 세계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조금 돌아가더라도 구경하고 쉬다 가는 왼쪽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루이스 연합 공국 최서단의 항구도시 테레즈에 도착한 것이다.
여관에 짐을 푼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필리아도 목걸이에서 나와, 후드를 뒤집어쓰고 합류했다.
목적지는...
"이제 바다를 보러 가는 거지?"
"아니. 당연히 수영복부터 사러 가야지!"
"수영복?"
"수영복도 몰라? 물놀이용으로 나온 신상이야. 얼마 전에 에누트 쪽 사람들이 전파했다고 하는데, 요즘 핫한 아이템이래. 덕분에 바닷가를 찾는 사람도 부쩍 늘었대.”
"그... 그래?"
사막 끝자락의,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대륙 한가운데서 물놀이용 옷을 퍼트렸다고...?
테사의 말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전후사정이 딱히 궁금하진 않으니 그러려니 했다.
"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네? 어서 들어가자."
왜인지 들떠 있는 테사를 따라, 얌전히 수영복 매장에 따라 들어갔다.
...
흠...
흐음...
대충 봐도 좌측은 여성복, 우측은 남성복으로 나누어져 있는 구성인 것 같다.
라이디와 필리아는 자연스럽게 좌측으로 향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우측으로 가려고 했는데...
"어디 가?"
"옷 보러 가는데?"
"그 모습으로 남성용 수영복을 입으려고?"
"당연하지. 문제없ㅇ..."
별 생각 없이 '문제없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마침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말았다.
옆의 테사보다야 크지만, 성인 남성을 기준으론 평균치를 아득히 하회하는 체구,
길게 기른, 윤기가 흐르는 검은 생머리,
미드가 매우 빈약하지만, 그것 또한 슬렌더해서 어울리지 싶은...
어딜 보더라도 완연한 여성의 모습으로만 비쳤다.
"...테사, 마법으로 날 남자처럼 보이게 해줄 수 있어?"
"가능이야 하겠지만, 손봐야 할 곳이 꽤 많을 것 같은데? 그리고 남성복은 웃옷이 없는 거, 알고 있는 거지?"
"윽... 그건..."
남자가 상체를 노출하는 것이 무슨 대수겠냐마는...
아무리 마법을 걸어준다고 해도,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다.
게다가 키가 작다고 괜히 무시 받을 것 같기도 하고...
"여... 여성스럽게 보이도록... 모쪼록 아래쪽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아쉽네... 생각해 보니 그냥 까고 다니게 할 걸 그랬어. 그편이 훨씬 재밌었을 것 같은데... 그보다, 크리스는 이미 남자로선 글러 먹은 거 아냐?"
"..."
젠장! 낭자애 주제에!!!
하지만, 내게 마법을 걸면서 살살 놀리는 테사에게 어떠한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답게 당당해지기엔...
조금 부끄러워... 흑...
"자, 다 됐어. 이제 여성복 고르러 가자?"
"오... 호오... 몇 번을 봐도 신기하네."
안타까움은 길지 않았고...
어느새 나는 그가 펼친 마법의 엄청난 효과에 경탄하게 되었다.
다리 사이에 슬쩍 손을 가져가 봤는데...
정말 여자가 된 것처럼, 있어야 할 게 전혀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치? 테사 님의 마법 대단하지? 이제 여성복 보러 가자. 여성 수영복... 여.성.용 브래지어와 여.성.용 팬티 입어보러 가자!"
"......하아, 알았어."
'너도 남자로서 글러 먹었다'느니 하는 반격을 해볼까 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테사에게는 나에게 쓰는 '낭자애'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 녀석은 대놓고 자기가 여자라고 밝힐 정도로 이미 남자의 모습을 전부 버린 지 오래니까...
놀려봤자 '난 여잔데? 부끄러울 게 있어?'라는 답이 돌아올 게 뻔하다.
결국 테사를 따라 쭐레쭐레 여성복 매대 쪽으로 향했다.
필리아는 보이지 않는 게 벌써 옷을 고르고 탈의실에 들어간 것 같고...
라이디는 수영복 진열대 앞에서 쭈뼛쭈뼛 서 있었다.
"라이디?"
"아, 크리스. 파레오가 있는 걸 입어도 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입으면 되잖아?"
"크리스! 당연히 뭐든 입을 수야 있죠! 하지만... 그... 그게..."
아...
어떤 옷이라도, 라이디의...
그것을 가릴 수 없는 작은 천 쪼가리 뿐이라서 당황할 만했다.
파레오를 입으면 가려지긴 하겠지만, 만일에 발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곤란해지겠지.
"너도 마법 걸어줄게. 편하게 놀아."
"정말요?"
답을 듣기도 전에 손을 뻗어 라이디에게 마법을 거는 테사.
조금 뒤, 나처럼 아래쪽을 만지작거려보던 라이디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내 흥흥거리며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좋아,
모처럼이니 기분을 내서, 나도 예쁜 옷으로 골라볼까?
"하아..."
탈의실에서 나온 나는, 작게 한탄했다.
결국 '래시가드'라고 불리는 속옷 일체형의, 상체를 전부 감싸는 옷에 반바지를 골랐으니까.
눈 딱 감고 비키니 같은 걸 입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실낱만큼은 남아 있는 남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보기만 해도 남사스러운 탑을 입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이럴 거면 남자 옷을 입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한데...
"크리스, 제 옷 어때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라이디가 비키니를 입고 나왔다.
아무 문양이 없는, 심플한 베이지색의 투피스.
거기엔 오롯이 몸매로만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보였고... 확실히 먹혀들어갔다.
아름답고 고혹적인 자태에 한참을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답을 했다.
"정말 예쁘고 잘 어울려! 역시 몸매가 완벽하니까 어떤 옷이든 잘 받네! ...그런데, 공공장소에서 입기엔 너무 노출이 심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에이, 크리스는 노출이 많은 게 좋잖아요?"
"하하... 그렇긴 한데..."
"게다가 필리아보다는 훨씬 얌전한 편이니까요."
"...응? 필리아? ...으악!? 필리아! 그걸 옷이라고 입은 거야?"
뒤에서 기다리던 필리아를 바라봤다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입고 있는 건 두 개의 선만이 V자 형태로 주요 부위만을 가리고 있는...
그마저도 가슴살이나 다리 사이에 묻혀서 천 쪼가리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하얀 옷이었다!
"후후, 필리아 아름답죠? 슬링샷이라고 한답니다? 필리아의 선배들이 일할 때 이걸 입곤 한다고 들었어요. 어때요? 굉장하죠?"
"그걸 입고 다니겠다고??"
"그럼요! 게다가 크리스 님이 원한다면... 아주 살짝 젖히면 된답니다?"
그렇게 말하고, 필리아는 가슴 쪽의 옷을 슬쩍 밀었다.
이미 대부분이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봉긋하게 솟아오른 하얀 가슴과 분홍색 유두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저... 저도 살짝 젖히면 된다구요!"
이번엔 필리아의 옆으로 달려온 라이디가 양쪽 가슴을 까보였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커다란 가슴이 출렁거리며, 자신이 필리아의 것보다 크다고 열심히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도합 네 개의 가슴이 눈앞에 펼쳐져서...
후아... 행복해...
아아...!?
"우앗!? 공공장소에서 뭐 하는 거야! 둘 다 가려!"
계속 까고 있을 생각은 없었는지, 그녀들은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피부가 새하얗잖아? 어떻게 된 거야, 필리아?"
"테사 님이 마법을 걸어주셨어요."
"우리 때문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려나?"
"괜찮아. 조금만 바꾸는 건 생각 보다 마나가 적게 들더라. 연습도 되고 좋아. 그보다 넌 그런 거 입고 싶었던 거야?"
마침 탈의실에서 나오며 답하는 테사.
분홍색에 상·하의 모두 프릴이 잔뜩 달린 데다 살짝 배꼽이 보이는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
음...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응... 너도 테사 치고는 평범한 옷으로 골랐구나."
"흐응~ 크리스는 이런 건 취향이 아닌가 보네? 역시 이런 게 좋아?"
그가 손을 아래로 쫙 펼치자...
테사가 입고 있던 옷이 순식간에 슬링샷으로 바뀌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