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랩 매지션즈-58화 (58/114)

〈 58화 〉 되고 싶었던 것 ­ 3

* * *

"필리아, 필리아!!"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나는 급히 필리아를 불렀다.

"아침부터 왜 급하게 깨우시는 거예요... 미셸 님에게 붙잡힌 것도 아닌데..."

"필리아, 확인 좀 해줘."

"확인... 요?"

결국 목걸이에서 튀어나와 고개를 갸웃하는 필리아.

그런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필리아는 내게 손을 뻗었고...

...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어때?"

"이... 이건..."

...

하아...

끝까지 듣지도 않았지만, 필리아의 심각한 표정이 이미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야한 꿈을 꾸게 해도... 크리스 님의 귀여운 거, 서질 않는걸요?"

­­­

급히 옷을 차려입고, 알자스를 찾기 위해 방에서 나섰는데...

여관 내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있는 파란 머리가 보였다.

"느...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빨리 되돌려 놓지 못해!?"

"... 긴 세월 동안 살아가면서 즐거운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지. 그러나 이제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질릴 정도가 되었으니... 나는 그저 부러워서 시샘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이상하게 말 돌리지 말고, 당장 해독제를 내놓거나 마법을 풀던가 하란 말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본 적이 있는가?"

"뭐?"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생을 즐기거라. 그러면 네게 걸린 마법은 자연스레 풀릴 테니."

알자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만 약간의 힌트를 주도록 하지."

돌연 나를 껴안았다!

"미쳤어? 이거 놔! 놓으란 말... 야... 아..."

화들짝 놀라 격렬하게 저항하려 했지만,

순간 나는 갑작스러운 신체적 변화를 느꼈고...

이내 알자스가 놓아주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매지션즈로 끌고 가지 않는 대신 시련을 남긴다. 이 정도면 인퀴지터와 마법사 사이의 균형 잡힌 거래라고 할 수 있겠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천천히 지켜보도록 하겠다."

그렇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나갔고...

"흑... 나... 나는... 분명 남잔데... 흐윽..."

어느새 내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이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라이디의 가슴을 봐도, 내 머리에 테사의 마법을 걸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밤이 되었고...

나는 편지와 목걸이를 방에 남기고 여관을 나섰다.

­­­

정신을 차려보니, 매지션즈의 내 방 앞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미셸에게 잡혀 왔던가?

내 발로 걸어온 건가?

기억이 흐릿하다.

그만큼 '서질 않는다'는 것 때문에 줄곧 머릿속이 복잡했었으니까.

그렇다면 매지션즈에 찾아온 이유...

...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아서?

인퀴지터가 되겠다고, 날 그만 괴롭히라고 사정하기 위해서?

여성으론 발기가 되지 않는 걸 해결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내 사념을 떨쳐버렸다.

이미 저질러 버린 이상 해답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침을 한 번 삼키고, 마음을 가다듬고,

방 문을 열었다.

"읍... 헤릅... 하으... 미이..."

"하아... 으응... 피이... 좋아해...!"

"으악!"

침대에 나란히 앉은 두 여인이...

여인...

일 리가 없잖아!?

거기엔 낭자애 둘이 입술을 부비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보기 좋은 바람직한 광경이지만...

속은 남자들이라고 생각하니, 헛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구신지...?"

"나 알 것 같아. 요즘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 피규어 만들어 주던 녀석이네."

"아...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던 그 녀석?"

게다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례하기까지 하다!

"저기... 내가 혐오를 했다니, 그런 적 없거든?"

"진짜?"

"..."

쏘아붙이는 그에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속으로는 남자이기를 포기한... 게이새끼들이라고 혐오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널 좋아하는 애도 있었는데, 항상 모른척했잖아?"

"...뭐?"

나를 좋아하는 낭자애가 있었다고??

금시초문이다. 좋기는커녕 오히려 역겹기까지 하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 애, 싫었어?"

"아니. 누굴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누군지 알고 있더라도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아. 난 남자니까 여자가 좋아. 그것뿐이야."

"성별이 그렇게 중요해?"

"당연하지. 남녀가 왜 있는데?"

"그럼 네가 좋아하는 사람도 당연히 여자겠지?"

"응!... 어... 그러니까..."

...

생각해보니 라이디는 후타나리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여자라고 할 순 없다.

"아닌가 보네. 그럼 넌 그 사람을 혐오해? 네 자신을 혐오하고 있어?"

"아니, 하지만..."

"무언가 사정이 있다, 그건 이거와 다르다...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표정이네."

다르다고 생각한다.

...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를 혐오하는 거,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맞아. 나도 미이를 만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어머나! 우연이네? 나도 피이를 만나면서부터 생각이 바뀌었는데..."

"정말?... 하아... 후우... 미이..."

"학... 하으... 피이..."

으악!!

미친놈들,

내가 있는데도 키스하려고 하잖아!?

"큼... 크흠... 저기요?"

"후... 피이, 조금만 기다려줘... 암튼, 아무리 여성스럽게 생겼다고 해도, 낭자애라고 부르고 있더라도... 남자들끼리잖아?"

"미이, 그거 완전 게이 아냐?"

"맞아, 피이. 하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야."

"매지션즈에서 탈출하고, 도망 생활을 도와줄 아름답고 능력 있는 여인들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생겼고..."

"누구나 그런 망상을, 자기만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

"그러나 그런 사람은... 크리스 같은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해.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매지션즈에서의 삶을, 여자 만나지 못하는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성욕 해소를 위해 낭자애가 되는 걸, 낭자애와 사랑에 빠지는 걸 택하게 되는 거고."

"오히려 이건 나은 경우야. 신분이나 돈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하거나, 밥을 굶거나... 극단적인 경우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 사람도 있겠지."

...

마법을 쓸 수 있는 희귀한 재능,

아무리 마법을 잘 다루더라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시대지만, 약간의 제약을 지키면 먹여 살려주는 매지션즈의 존재.

마법사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그 누구보다도, 심지어 마녀들보다도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게 보장된다.

그렇기에, 저들의 주장에는...

마법사들에겐 오히려 편한 현실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삶을 살도록 강요할 순 없어."

"맞아. 그러나 나쁜 사람의 사악한 술수로 인해 낭자애의 삶을 살도록 강요받게 되었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했어?"

"모든 걸 버리고 매지션즈에 틀어박혀야 할 정도로... 네 행복을 부숴버려야 할 정도로 중요했던 거야?"

"그... 그건..."

"크리스의 수많은 꿈들 중에 상남자가 되고 싶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고, 앞으로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걸 느끼고 있을 거야."

"그 꿈을 여전히 좇아야 할 정도로 현실이 암담한가? 아니면 순응할 만한가? 잃은 것이 있지만 얻은 것은 없는 건가?"

"매지션즈에 끌려온 건, 낭자애가 된 건 억울한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이루게 해 준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지. 평범한 남자로 살아갔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지도 몰라."

매지션즈에서의 10년.

피규어만 만들다 말 그대로 인생을 날려 먹었다.

그러나, 매지션즈를 탈출하고...

테사를 만나고, 라이디를 만나고, 필리아를 만나고, 벨마를 만나고...

미셸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알자스에게 희롱을 당하다가 참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힘들었지만,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것은 매지션즈에서 쫓기는 입장이었기에,

낭자애였기에 생겨난 만남이고 이벤트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낭자애로서의 삶을 받아들인거야.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이상과는 괴리가 있지만, 적어도 불행하진 않으니까."

"넌 어때? 과거나 이상에 얽매여 현재에 소홀해지는 것보다, 현재를 받아들이고 연인을 아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더 낫지 않아?"

"너도 지금의 자신은 낭자애라는 것을, 여성스러운 남성임을 받아들이는 게 어때?"

생각해보면...

내 목표는 아름다운 여인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지, 상남자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

그래...

라이디도, 필리아도,

비록 낭자애지만 좋은 동료라는 의미에서 테사도...

그리고 앞으로 마주칠 수많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날 기다리고 있는데...

낭자애로 살아야 한다는 운명 정도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잖아?

"너희 말이 맞는 것 같아. 내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이미 늦었어. 매지션즈를 탈출할 수 없을 테니까... 하아... 내가 왜 여기까지 온 거지?"

"그건 우리가 도와줄게."

"방법이 있는거야?"

"걱정 마. 테사가 있잖아?"

"뭐? 너희가 테사를 어떻게 아는..."

정말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점점 눈앞이...

정신이 암담해지기 시작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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