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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매지션즈-51화 (51/114)

〈 51화 〉 '필리아 버스트'를 외치지 않은 죄 ­ 1

* * *

"흐... 하암... 바깥세상은... 너무 밝네요... 다시 구석으로 가야겠어요..."

"필리아, 드디어 일어난 거야?"

벨마와의 마법 사사를 끝내고, 그녀와 선물을 주고받은 후 저택을 떠났다.

그리고, 루이스를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우선 테사를 데리러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걸이에서 필리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며칠이나 잔 건지 모르겠네요..."

"그렇게나 목걸이 속에서 뒹굴뒹굴하는 게 좋아?"

"그럼요! 구석에 박혀서 가만히 있는 거 너무 좋아요... 크리스 님도 들어와 보실래요?"

"하하, 정중히 사양할게."

매지션즈의 동굴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좁고 어둡고 답답한 곳은 이젠 질색이다.

"그보다, 그동안 크리스 님은 벨마 님에게서 마법을 열심히 배우셨나요?"

"응. 실력이 꽤 는 것 같아."

"어떤 일이 있었나요? 역시 강력하고 멋진 필리아 버스트를 열심히 연습하셨겠죠?"

"맞아. 꿈에서 봤던, 엄청나게 파괴적인 위력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제법 쓸만한 정도까진 올라온 것 같아."

"흐응~ 그렇군요..."

...

뭐지?

필리아 자신이 알려준 마법을 연습했다고 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미적지근한 반응이 돌아왔다.

마치 불만이 있다는 듯한 미묘한 말투여서, 그녀에게 되물었다.

"왜 그래?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거야?"

"크리스 님, 솔직하게 말하셔야 해요."

"뭔데?"

"벨마 님의 앞에서 '필리아 버스트!!!' 하고 외치지 않았죠?"

"응? 어... 아니, 아니야."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튀어나와서, 당황해서 말을 더듬고 말았다!

"흠... 역시 수상하네요. 라이디 님, 크리스 님이 필리아 버스트를 외치시던가요?"

"그... 그게... 말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작게 말했던 걸까요?"

"하아..."

라이디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필리아의 한숨 소리만 들려온다.

들킨 것 같은데, 어떡하지?

기분이 많이 상했나?

"저기... 필리아...?"

"흑... 필리아도 눈치가 있어요... 크리스 님이 필리아가 알려 준 마법을... 필리아를 부끄러워하신다니... 너무 슬퍼요."

"아냐아냐, 절대 그런 게 아니야. 다만 표현이 조금..."

"변명은 필요 없어요. 이미 필리아의 마음엔 커다란 상처만이 남았을 뿐이에요. 선의로 알려드렸던 건데, 돌아온 건 멸시뿐이라니... 앞으로 필리아는 그 누구에게도 마법을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

후...

솔직히, 별것도 아닌 거로 나한테 뭐라 하는 게 억울하다.

'필리아 버스트'라고 외치라는 건 그저 장난으로 얘기하고 넘어간 거였잖아?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외치지 않았다고 불같이 화를 낼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물론 필리아는 사람이 아니지만, 거기에 더해 '필리아 가슴!'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아서 부끄러운 건데...

그건 앞으로도 외치기 싫으니, 마음 같아선 여기서 강경하게 나서고 싶지만...

이런 사소한 거로 필리아에게서 마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면 너무 아쉽다.

특히 테사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나서 필리아한테 싹싹 빌며 사과해야 할 게 뻔하다.

그리고, 그녀는 미셸에게서 날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니까...

그냥 한 번 정도는 져주기로 마음먹었다.

"미안해. 간만에 필리아 버스트를 사용해서 깜빡했어. 앞으로는 조심할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필리아의 화를 풀 수 있을까?"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겠죠?"

"......벌?"

"흐응~ 크리스 님에게 어떤 벌을 내리면 좋을까요? 음... 흠... 좋아요. 결정했어요! 우선 여관으로 가죠!"

"잠깐, 벌을 받겠다고 하진 않았는데?"

"수감된 범죄자가 벌을 받는 걸 선택할 수 있던가요? 그러니 크리스 님을 어서 여관으로 연행하도록 하세요, 라이디님!"

필리아의 외침을 들은 라이디는 잠깐 망설였다.

그녀의 고민은 길지 않았고, 이내 내 팔을 와락 하고 붙잡았다.

"라이디?"

"그냥 여관으로 가보죠. 괜히 필리아가 꽁해 있게 하는 것보다, 얌전히 따라주는 게 낫겠다고 크리스도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치만, 테사 데리러 가는 길이었잖아? 걘 어쩌고?"

"그녀는 시간이 되면 알아서 여관으로 돌아올 거니까 걱정할 건 없어요. 일단 가서 생각해 봐요. 너무 심한 짓을 하면 제가 제지할게요."

"하..."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라이디에게 설득당해, 순순히 끌려가 줬다.

­­­

잠시 후, 라이디와 나는 여관에 도착했다.

곧바로 내 방에 들어갔고, 필리아는 목걸이에서 튀어나왔다.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그리고, 방문을 굳게 잠갔다.

"제가 결정한 형벌은, 한 발 뽑아낼 때까지 크리스 님을 괴롭히는 거랍니다?"

"필리아, 그건 2주에 한 번씩 크리스의 정기를 가져가는 계약에 포함되는 거겠죠?"

"후후..."

어깨를 쫙 펴고, 손으로 허리춤을 짚은 필리아는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아니죠!"

"그렇다면 절대 허락할 수 없어요!"

역시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라이디.

날 위하는 그 모습이 정말 멋지지만...

...

흠...

야한 짓을 하는 거라면 딱히 상관은 없는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하고 싶다고, 필리아의 벌을 달게 받겠다고 적극적으로 말하긴 애매하다.

그 경우엔 역으로 라이디가 토라질지도 모르니까.

"그럼, 필리아로선 조금 아쉬운 부분이지만... 집행은 라이디 님께 맡길게요."

"네?"

"어때요? 크리스 님에게 벌을 주는 거예요. 아니, 라이디님이 크리스 님과 야한 짓을 하는 거예요!"

"읏... 그건...!"

당황한 채 새빨개진 얼굴을 감싸는 라이디.

거절할 것 같은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

이렇게...

여기서...

지금...

그녀와 첫 경험을 한다고?

...

라이디와 섹스를 한다.

어느새 머릿속은 그 생각만으로 가득 차버렸다.

그녀처럼 내 얼굴 또한 벌겋게 달아올랐을 거라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점점 숨이 가빠져 온다.

터질 듯이 요동치기 시작한 심장이 너무나 괴롭다!

"결정이네요. 그럼 슬슬 형 집행을 시작할 거지만..."

눈 깜짝할 새에 필리아가 침대에 앉아 있던 내 뒤로 날아왔다.

"치마 아래에 조신하게 숨어 있는, 크리스 님의 귀여운 페니스에는 가급적이면 손을 대지 않았으면 해요. 대신 여기..."

"...흣! 필리아?!"

그리고, 그녀의 손이 순식간에 상의 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라이디님, 여기... 그러니까 크리스 님의 가슴, 괴롭혀 보고 싶지 않으세요?"

"하윽...!"

아파!

필리아의 손가락이 내 유두 끝을 살짝 훑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날카롭게 다듬어진 손톱 끝부분이 사정없이 긁고 지나갔는지라 분명 아픈데...

잠깐의 아픔이 가시자마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하고 가슴에 울려 퍼지는 느낌이 있었다.

"남성의 유두는 아무 쓸모 없는, 사실상의 흔적기관이에요. 그럼에도 꾸준히 노력해서 개발을 마치면, 강렬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답니다? 성감대로서는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부위라고 할 수 있어요. 하아..."

입맛을 다시고, 마저 말을 이어가는 필리아.

"그렇다면, 크리스 님은 유두 자극만으로 가버릴 수 있을까요? 처음 만지는 거라도, 낭자애니까 조금 더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크리스 님도, 라이디 님도 궁금하죠?"

"하으..."

라이디가 나직이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고 있을 때마다 보여주던, 너무나 야릇하게 바라보는...

마치 발정 난 암캐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자, 제 역할은 여기까지예요. 이제 라이디님이 직접 벗겨주세요."

"하아... 크리스..."

라이디가 내게 다가온다.

"크리스의 옷을 벗겨도 될까요? 제가... 크리스를 만져도 되는 걸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라이디.

나도, 파르르 떨리고 있는 눈을 살며시 감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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