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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매지션즈-40화 (40/114)

〈 40화 〉 벨마 (상) ­ 1

* * *

다사다난했던 올리비에를 떠나, 우리는 드디어 루이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즉시 가르침을 부탁할 수 있는 마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마법사라는 걸 들킬 수 있는 우려가 있었기에 마녀가 아닌 숨어 지내는 마법사를 찾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당장인퀴지터미셸이 쫓아오는 상황인데다, 언제까지나테사가날 위해 계속 마법을 쓰고 있는 고생을 시킬 순 없었다.

물론 필리아가 마법을 알려줄 수 있다곤 하지만, 잘 사용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여긴 루이스연합공국의수도니 그만큼 마녀도 많이 살고 있을 터.

그래서 빨리 마법 실력을 기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마녀 스승을 구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수소문해본 결과,7속성의마법을 전부 다루는 천재 마녀가 있다고하는데...

"난 맘에 안 들어.싸가지없게생겼잖아."

초상화만으로 냉정한 평을 내리는테사.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동의할 만한 구석은 있었다.

되도록현실보다 이쁘고좋아 보이게그려주는 게 보통인 초상화를, 비웃으면서 깔보는 듯한 느낌으로 그려주기도 쉽지않을 텐데...

게다가 어린애라서 `싸가지 없게생긴` 면모가 더욱두드러진다. 마법 잘한다고 철없이 나댈 것 같은 이미지가 절실히 느껴진다.

...

하지만, 난 마음에 든다.

정확히는테사가질색하며 싫어하는 게 마음에 든다!

"그래? 그럼이 사람을찾아가 보자."

"...크리스,정신줄놨어? 이런 꼬맹이한테 고개를 숙이겠다고?"

"누굴 찾아가든 비슷할 것 같고, 너랑 죽이 맞는 사람을 고르면피곤해질 게 뻔하니이 사람으로 할래."

"라이디, 크리스 좀 말려봐!"

"저는 마법에 있어서는문외한이라... 크리스가말은 저렇게 해도 깊은 생각이 있어서 선택한 게 아닐까요?"

"필리아!"

"낮잠 잔다고 했잖아. 깨우지 마."

"쳇, 그래. 크리스 맘대로 해."

...

뭐야?

무슨 수모를 당하든간에 내가 감내하겠다는데, 왜테사가난리지?

그보다 처음으로테사의의견을 꺾은 것 같은데, 왠지 기분이 좋다.

반면 이유 없이 괴롭힌 것 같아 찝찝하기도 하다. 이따맛있는 거라도사줘서 풀어줘야지.

­­­

암튼, 우리는 곧바로 천재 마녀라고 불리는벨마의집에 찾아갔다.

마당이 없이 길에 바짝붙여 지어진거대한 건물.

이 근방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순 없겠지만, 상당한 크기의대저택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이내 단발의 청순하게 생긴메이드가나와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에...저...그......"

"벨마가이 녀석을 수제자로 받아줬으면 해서 왔어."

"알겠습니다.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테사의말을 들은메이드는다시 들어가 버렸다.

"뭐하냐?"

"무... 뭐가?"

"어휴, 저 안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뻔하다 뻔해."

"..."

괜히 여기서테사와말씨름하기 싫어서 조용히넘겼지만...

말이안 나올수도 있지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잖아?

라이디나필리아 외의여자 사람과대화하는 게너무 오랜만이라 잠시 당황했을 뿐이다.

...

솔직히, 아직도 성인 여성은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

특히 미셸에게 괴롭힘을 당한 게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청순하고 착하게 생긴 사람을 마주치면 왠지 움츠러들게 된다.

젠장!

미셸, 다음에 만나면 꼭 복수하고말 거야!!!

"들어와서 기다려 주십시오."

"앗!...아, 넵!"

"어휴..."

크게 한숨을 쉬는테사를뒤로한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얌전히 따라오고 있는라이디 만을생각하며벨마의집에 들어갔다.

­­­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접객실에서 기다리던 도중,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계단을 내려오면서 말하는꼬마아이가있었다.

이마를 기준으로양옆으로가른 살짝 웨이브 진 긴 연보라색 생머리.

특히 가느다란 눈이 인상적으로, 내려다보는 모습이 초상화와 똑같이싸가지없게생겨서그녀가 벨마라고확신할 수 있었다.

"넵! 크리스라고 합니다."

"흐응..."

내 주변을 돌며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작은 입을 열어­

"벨이 금세기 최고의 천재 마녀이고, 그러니 벨을 찾아오고 싶었을 게당연하지만... 고작8살이라구? 정말 마법을 배우고 싶어서 찾아온 거 맞아? 언니는 자존심이라는 게 없어? 벨이 언니와 같은 처지였다면, 당장 혀 깨물고 죽었을 거 같은데? 한 번으론 부족하고, 대략 열여덟 번 정도 죽고 싶을 것 같아. 동의하지?"

독설을 쏟아냈다.

"......네,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미천한 몸이지만 부디 제자로 삼아주세요!"

다행히도 어린애는 한결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벨마가나를 깔보든 말든그런 건관심 없었다.

얼른 마법을 익혀매지션즈나인퀴지터를물리치고, 상남자로 돌아가라이디와행복하게 여생을 보내겠다는 굉장한 꿈에 비하면 지금의굴욕 따윈하찮은 거니까.

"풉... 한심해! 마녀라는 이름을 대기엔 본인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도 지렁이발톱만 한강단은 남아있는 것 같네. 좋아, 따라와서 마법을 시연해 봐. 특별히 벨의 소중한 시간을너 같은하찮은 녀석한테써줄 테니까, 감사히여기라고?"

앞장서서 가는벨마를보고 몸을 일으켰다.

"아, 맞아. 넌 제자로 삼아주라고 얘기 안 해도 돼?"

"저런 말을 듣고도 꿇고 싶냐? 난 절대 싫어. 열여덟 번 죽어도 저 빌어먹을 꼬맹이한테는 고갤 숙이지 않겠어!"

쳇... 굳이신경 써 줬더니냉랭하네...

본인이 당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테사는하루 종일투덜대고있다.

­­­

벨마를따라 저택의 뒷문으로 나갔다.

큰 건물인데도 마당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뒤뜰에 넓은 정원이 있었다.

다만 중앙에는 큰 공터가자리 잡고있는데, 그다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걸 보니 아마 마법 연습을 위해 과감하게 밀어버린 것 같았다.

"자, 마법 써봐. 딱 봐도 변변찮을 게 뻔해 보이지만, 벨의 발끝이라도 따라오고 싶어서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니 조금은 감상해 줄게!"

말을 참 곱게 하는벨마.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애써 무시하고 마법 시연을 준비한다.

뭐, 한 귀로 듣고 적당히 다른 귀로 흘리는 건매지션즈에서지겨워지도록 했던일이기도하고...

아무튼, 우선은라이디의,그... 다리 사이를때렸던 바위를 쏘는마법을...

그러니까 어렸을 때 처음 익혔던 ‘장난감’을 만드는 마법을 시연했다.

슈우욱­툭...

손에서주먹만 한바위가 생겨나, 포물선을 그리며 조금 날아가다 떨어졌다.

"저기... 마법쓴 거 맞아?오리지널마법이래도 너무 허접하잖아!별 볼 일 없는재능으로 혼자 열심히 연습했나 보네? 하지만 설마 이걸로 끝? 정말끝인 거야?? 처음부터 너 따위한테 대단한 걸 바라진 않았으니까, 이런 하찮은 것보다는 쓸만한 걸 보여주면 좋겠는데? 벨이 널가엾게여겨 내준 소중한 시간을 쓰레기통 속에처박지말아줘."

...

......

하아...

마음 같아선한 대쥐어패고싶지만, 속으로라이디를생각하며 꾹 참고 다음 마법으로 넘어갔다.

필리아는 자고 있겠지?

왠지 모르게부끄러운 마법 이름은 건너뛰고, 아까 날린 바위에 필리아 버스트를 바로시전했다.

파삭­

힘 없이 바스라지는 바위.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익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보니 여전히 위력이 약한 건 어쩔 수 없다.

"......이게... 마법? 보통 가장 잘하는 걸 처음에 보여주는 거 아니야? 아는 마법 대부분 이딴거뿐이야?"

"아니거든? 그냥 입 다물고 마저 봐."

"안타까운 발육상태의 언니는 성격도 안타까운 것 같네. 하지만 벨은 착하니까 관용을 베풀어 줄게."

"......"

대꾸는안 하고그저 참는테사.

뻔히 폭발 직전인 게 보이는데도 용케 참고 있다.

내가 저런 말을 했다면 불같이 화냈을 것같은데... 꼬맹이상대로 화내기에는테사에게도자존심이 있다는 걸까?

그나저나 이쯤에서 그만두려고 했는데,테사가끝이 아니라고못박아버려서부득이하게피규어소환까지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수준 낮다고 열심히 까이고 있는데, 거기에변태 같다는소리까지 들어야하나...

정말 자존심이박살 날것만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다라이디와의행복을 위한 거니까참아야지...

굳은 각오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번처럼 실수하지 않기 위해, 여성형피규어를만들 것이다.

대상은온종일꽁해 있는테사. 기분이라도 풀라는 의미에서 그를 골랐다.

예전에 봤던 활짝 웃으며 춤추는 모습을 떠올린다.

발랄하고 예쁜모습... 낭자애만아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예쁜여자애라면 성격이 조금 나쁜 것 정도는 얼마든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아무튼, 지금은테사를여자애라고 생각해야 한다.

정신을 집중하고 바위로 '그녀'를 빚어낸다.

"으... 하앗!"

드드드득...!

이내 공터 한가운데에테사의피규어가솟아났다.

몇 년이고 했던 일이니 어려울 건 없었다.

게다가 옆에 있는테사를보고 만들었더니,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 있었다.

"테사의피규어네요?몇 번을봐도 대단히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놀라워요."

"내가 더 예쁘게 생겼잖아. 시력이나빠진 거야라이디?"

"어머,피규어에질투하는 건가요?"

"저게 어디가 부족한지 하나하나 알려줄게. 자세히 봐봐."

같은포즈를취하며 설명하는테사, 그리고 적당히맞장구쳐주는라이디.

저 둘은 이상하게 죽이 잘 맞는 것 같아 부럽다.

테사의뻔뻔함 덕분인가?

나도라이디와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으면, 더욱연인 같은분위기를 낼수 있을 텐데!

...

그나저나,벨마가반응이없다.

"저기... 벨마님?"

"벼...별거없네. 잠깐 방에 다녀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잽싸게 말을 쏟아낸벨마는급히 저택으로 들어가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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