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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매지션즈-33화 (33/114)

〈 33화 〉 필리아 버스트 ­ 2

* * *

"야, 갑자기 왜 서서 졸고 있는 거야?"

쳇, 하필 테사의 핀잔을 들으며 잠에서 깨고 말았다.

"자, 어떻게 하는지 알려드렸으니 직접 해보세요."

그건 진짜 꿈이었구나...

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 다들 무사해서 안심하게 되면서도, 그런 엄청난 마법을 시전한 게 꿈이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

그래도 목표가 보이는 것 같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고, 최대한 먼 곳에 피규어를 만들었다.

꿈에서 사용한 그 마법은 엄청 위험한 수준이었다. 확실히 컨트롤 할 수 있을 때까진 안전에 유의해야 할 것 같다.

"몇 번을 봐도 부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퀄리티네요."

"후, 그보다도 다들 조심해. 파편이 엄청 튈 테니까!"

자세를 다잡고 피규어를 조준했다. 그리고...

...

"...저기 필리아, 그... 어떻게 하는 거였지?"

"파괴하고 싶은 부위로 마나를 모으고, 손을 꽉 쥐어서 폭파. 간단하죠?"

"고마워, 까먹은 게 아니라 확실히 하고 싶었던 거야. 진짜로!"

애써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며,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피규어의 가슴께에 마나를 응축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터져라!"

크게 외치며 오른손을 강하게 쥐어, 모인 마나를 터트렸다!

팟... 파삭...

...

맹렬하게 폭발한 꿈에서와는 달리, 피규어는 바스러지듯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어우, 정말 위험했어. 하마터면 다칠 뻔했네!"

"놀리지 말아요 테사. 그래도 피규어 만드는 걸 연습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목표가 생겼잖아요? 기운 내요, 크리스!"

"그건 맞아. 크리스 주제에 처음부터 완벽하길 바라지 말라구."

전혀 위로가 되질 않는다.

있는 대로 폼을 잡았는데, 이런 결과라니!

젠장... 너무 부끄럽다! 왜 이렇게나 차이가 난거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꼭 성공시키고 말겠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해요. 좋은 스승이 있다면 더 나은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필리아가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필리아에게도 뾰족한 답은 없나 보다.

결국, 그녀가 보여준 건 마법의 가능성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무수한 노력 끝에 언제나 괜찮은 퀄리티로 뽑아낼 수 있게 된 피규어처럼, 이 마법도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강력한 모습을 보일 터.

게다가 답도 없는 바위 던지는 마법보단 훨씬 가치가 있으니까.

조금 부끄러웠던 걸 빼고 보자면, 단 한 번의 시도 만에 마법이 발현하긴 했다는 점이 고무적이기도 하고.

"하아... 알았어. 노력해 볼게. 그보다, 이 마법 뭐라고 불러야 해?"

"마법의 이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게 필요한가요? 흠... 이건 오리지널 마법이니까, 크리스 님이 정해 주세요."

"음..."

후보군이 몇 개 떠오르긴 하지만...

그게...

그러니까...

직접 말하기엔 매우 부끄러운 것들뿐이라...

먼저 '부끄러운 것들'을 꺼내 부담을 덜어주길 바라며 라이디와 테사를 바라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필리아, 생각나는 거 없어?"

"그럼 필리아의 이름을 넣을래요. 이름하야 필리아 버스트!"

팔짱을 낀 채, 가슴을 강조하며 말하는 필리아.

"그거, 이상한 뜻이지? 이상한 뜻 맞지?"

"폭발이라는 단어에 제 이름을 넣은 것뿐인데, 이상하다뇨? 필리아가 손수 이름도 정해드렸으니까,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꼭 외쳐야 해요!"

"싫어. 입 밖에 꺼내기 부끄럽단 말야."

"설마, 제 이름이 이상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흑... 필리아 충격이에요..."

필리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으앗! 갑자기 왜 우는 거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필리아 버스트, 이상하지 않아요? 부끄럽지 않아요?"

"응. 이상하다거나 부끄럽다거나 그러지 않으니까, 울지 마."

"...마법 쓸 때마다 '필리아 버스트!'라고 외칠 거에요?"

"......"

잠깐 망설였더니, 다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알았어, 외칠게. 외칠 테니까!"

"...그럼 지금 시범 삼아 해주세요."

"......필리아 버스트! ...됐어?"

"헤헤, 좋아요!"

언제 울었냐는 듯 해맑게 웃으며 내 주변을 맴도는 필리아.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니 기쁘면서도, 한 편으론 후회가 밀려온다.

이럴 땐 남자답게, 강하게 나가야 하는데...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마음이 약해져 버려서 응석을 받아주게 되어버린다.

유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데... 이거 반드시 고쳐야 할 것 같은데...

흐음... 아닌가?

오히려 응석을 부려도 대범하게 받아줌으로써, 남자다운 포용력을 어필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필리아, 크리스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나도, 나도 마법 알려줘. 라이디에게서 한 발 더 뽑아가도 되니까!"

"안 돼요."

이번엔 돌연 테사가 마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고 나섰다.

그러나 라이디는 단호히 거절했다.

"쳇, 크리스. 날 위해 네가 희생해라."

"당연히 그것도 안 돼요!"

이번에도 내가 아니고, 라이디가 단호히 거절했다.

"지금 크리스가 편하고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건 다 내 마법 덕분인데... 게다가 실시간으로 마력을 뽑히느라 꽤 힘든데... 아아­ 그냥 관둘까?"

"하아..."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는 듯한 표정의 라이디.

흐흐...

아무래도 이번엔 내가 '희생'해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그러니까, 합법적으로 필리아를 통해 진하게 한 발 뺄 수 있는 기회다!

"그럼 내가..."

"왠지 이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긴 했지만... 알았어요. 어쩔 수 없네요."

...

타이밍을 놓쳤다...

"아싸! 자, 어서 나한테도 알려줘 필리아!"

"잠깐, 누구 마음대로 결정하시는 거예요? 당연히 조건이 올라갔어요. 필리아에게 10분간 크리스 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세요."

"그건 절대 절대 절대 안 돼요!!!"

"크리스만 배우는 건 치사해! 나도 새로운 마법 배우고 싶단 말야... 라이디, 제발 허락해줘!"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테사.

하지만 라이디는 꿈쩍도 하질 않는다.

"그럼, 라이디 님이 크리스 님의 처음을 가져갈 때까지 필리아는 권리를 사용하지 않을게요. 어때요?"

"라아­이이­디이이~! 이렇게 부탁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거야?"

"하... 알았어요."

"예에~ 필리아, 당장 시작하자!"

결국 필리아가 조건을 낮춰서 라이디가 승낙했지만...

아니, 누구 맘대로 날 10분간 사용할 권리를 주고받는다는 거야?

"저기, 내 의견..."

"크리스는 왜 인기가 많아서 매번 절 곤란하게 하는 건가요?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귀여웠으면 온전히 내 거일 수 있었을 텐데!"

"그... 미안해..."

솔직히 내가 잘못한 건 없잖아!

야한 거에 대해선 매번 라이디 마음대로 하는 건 불만이다.

하지만, 대놓고 따지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내 고집으로 라이디와 야한 짓을 하지 않고 있기도 하고, 바로 직전에 날 위해 그녀가 '희생' 했으니까...

그것도 내가 '희생'하고 싶었던 거였긴 한데...

"그럼 테사 님, 어떤 마법을 알려드리면 될까요?"

"아무래도 인식저해 마법이랑 비슷해야 쉽게 익히겠지? 아예 인식을 바꾸는 건 안 될까? 남들이 보는 것을 다르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 말야."

"인식개변이라... 못할 건 없을 것 같아요. 바로 시작할게요."

필리아가 말을 마치자마자 테사는 선 채로 잠에 들었다.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니 보기 좋다. 낭자애라는 점을 애써 무시하면 예쁘게 생기기도 했고.

그냥 이대로 계속 재워둘 순 없으려나?

야속하게도 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흐릿해지더니...

라이디가 되었다!

"나 라이디처럼 보여?"

"응. 완전 똑같은데?"

"신기하긴 하네요. 테사, 대단한 능력인데요?"

나와 마찬가지로 라이디도 짐짓 놀란 눈치였다.

"이거 본 적 없는 건 어떻게 되는 거지?"

"와앗! 흐아앗!!! 제 몸으로 무슨 짓을 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라이디'가 자기 치마를 들쳤고, 당황한 라이디가 '라이디'의 앞을 막아섰다.

"궁금하지 않아? 라이디, 자세히 봐봐. 여긴 비슷해?"

라이디에게 가려서 보이진 않지만, 이번엔 '라이디'가 팬티를 내리는 것 같다.

"똑같이 생... 겼을 리가 없겠네. 별거 없잖아?"

"빨리 입으세요!!!"

‘라이디’의 팬티를 다시 입히려고 안간힘을 쓰는 라이디였지만, ‘라이디’는 완강히 버텨냈다.

"시전자가 확신을 가지지 못해 불확정요소로 남은 부분들은 시전자가 아닌 보는 사람의 기억과 상상이 반영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라이디 님의 정체를 모르거나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매끈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응, 그런 거 같아 필리아. 내 눈에는 그게 안 보이거든."

"감상하지 말고 어서 마법 풀어요!!!"

­­­

그렇게 필리아의 마법교습이 끝나고, 모닥불에 둘러앉아 쉬었다.

라이디는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날 끌어안은 채다.

덕분에 그녀의 감미로운 향기와 푹신한 감촉을 맘껏 즐기고 있지만...

꼭 해결하고 싶은 궁금한 점이 있었다.

"필리아, 정말 마법 쓸 줄 모르는 거지?"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마법을 알려준 거야?"

"그건 마법의 비밀과 연관이 있는 거니까, 저번에 필리아가 천천히 알려드리기로 했었죠? 그러니까 점차 아시게 될 거예요."

마법의 비밀이라...

필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정기를 가져가는 것의 반대급부로 알려주기로 했었다.

이쯤 되니 테사만큼이나 그 비밀이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그보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어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어떨까요? 푹 쉬는 것만큼 좋은 건 없잖아요. 빨리 주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럴까? 라이디, 같이 요리할래?"

"좋아요!"

라이디와 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좋아, 마법 실패해서 깎인 내 이미지, 멋진 요리로 뒤집어 보이겠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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