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랩 매지션즈-32화 (32/114)

〈 32화 〉 필리아 버스트 ­ 1

* * *

미셸을 돌려보낸 후 조금 뒤 라이디가 일어났다.

그래서 즉시 올리비에를 떠나, 다음 목적지였던 루이스로 향했다.

루이스.

루이스 연합 공국의 수도로, 그 자체로 공국의 이름이기도 했다.

제국 시절의 루이스는 변변찮은 작은 도시였지만, 제국이 붕괴한 이후 크게 발전했다.

독립한 뒤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루트 공화국으로부터 가깝기도 하고, 그곳으로 향하는 두 갈래의 길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마녀들도, 숨어서 살아가는 마법사들도 많을 터였다.

게다가 그쪽이 페르낭드의 정 반대편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빠르면 하루 만에도 도착할 수 있는 거리.

그러나 테사의 인식저해 마법 덕분에 급할 건 없었기에, 저녁 식사 전에 일찍 야영지를 꾸렸다.

그리고 라이디와의 검술 훈련을 마쳤고, 지금은 홀로 마법을 연습하고 있다.

"하앗!"

처음 검술 훈련을 할 때 무심코 사용해서 라이디의 그... 다리 사이를 공격한 마법을 사용해 본다.

슈웅­ 탁! 타다다다...

주먹만 한 바윗덩어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금새 땅에 떨어졌다.

전혀 발전이 없는 수준이다. 마법은 고사하고, 손으로 적당히 던지는 정도라고 할까?

그러나, 마법의 위력에 비해 마력 소모량이 극심했다.

피규어를 다섯 개는 만들 수준의 마력이 한 번에 빠져나가니까, 이게 정말 쓸모가 있나 싶긴 하다.

하지만, 언젠간 빛을 보는 날이 오겠지.

그저 끈기와 인내로 연습을 반복할 뿐이다.

"흡... 하아아!"

이번에는 피규어도 만들어 본다.

연습할 때마다 테사가 놀려대는지라 만들기 싫긴 하지만,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흠... 흐음... 나쁘지 않네."

쭉쭉빵빵한 미녀를 생각하며 마법을 시전했는데, 결과물의 조형미가 상당하다.

매지션즈에서 피규어 공장장으로 살아갈 때도 좋은 평을 들었던 마법이지만,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하다 보니 피규어에서 여성스러움이 더욱더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퀄리티는 정말 괜찮다. 하지만 쓸모가 없...

"크리스 님, 마법이 이게 다예요? 수준은 높지만, 필리아의 눈에는 쓸모없는 것들로 보이는데..."

"......"

저녁 식사 전이라 밖에 나와 놀고 있던 필리아의 팩트폭력이 날아와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하아...

맞는 말이긴 해. 어디에 보여주기도 민망하고 쓸모없긴 하지.

어디 가서 내가 마법사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니까...

멍청하게 미셸에게 납치나 당하고, 나란 놈은 정말 아무 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흐음... 필리아가 마법 하나 알려드릴까요?"

"...진짜? 바위 마법 아는 거 있어? 가르쳐 줄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마법을 알려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거라고 치죠. 대신 공짜로 알려 줄 순 없고, 필리아가 원하는 날 라이디 님의 정기 한 번 받아 갈래요."

그게 목적이었냐! 이 에로 색마!

하지만 내가 을의 입장이다. 최대한 정중하게 돌려 말한다.

"라이디가 하기 싫어하는데 괴롭히지 마. 대신 나한테서 두 번 받아 가. 어때?"

야한 짓, 내가 당하고 싶다고.

"오호, 두 번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 없어요."

"응?"

라이디의 목소리가 들려서 뒤돌아봤다.

"저는 상관없어요. 크리스에게만 짐을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크리스를 위해선 뭐든 할 수 있어요."

"나 때문에 라이디가 나서는 건 미안한데..."

"아니에요. 정말 괜찮으니까... 필리아...?"

필리아가 날아올라, 라이디의 주변을 맴돌았다.

여기저기를 감상하듯 쳐다보다가 짐짓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쥐어 짜일지 상상하고 있어요? 부끄러워요? 아아~ 너무 좋아! 필리아는 라이디 님의 걸로 할래요!"

"하으... 이상한 상상 그만두세요!"

필리아를 밀쳐 내는 라이디.

'이상한 상상'을 한 건 맞는 것 같다. 그녀의 뺨이 붉게 물들어 있으니까.

라이디도 야한 짓 하고 싶은 건가?

나도 라이디와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남자다운 모습을 되찾을 때까진 기다려 달라고 한 주제에 발정 난 모습을 보여주긴 좀 그렇잖아?

...

솔직히...

라이디가 먼저 요구하면 응할 용의는 있는데...

아니, 그러면 참 좋을 텐데...

"그... 꿈에서... 처리하는 거 맞죠?"

"물론이에요. 건전하지 않은 꿈에서 건전하지 않은 짓을 할 뿐이니까요. 필리아는 어떤 요구사항이든 다 들어드릴 수 있어요!"

이번엔 필리아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자! 라이디 님의 것으로 결정됐으니까, 필리아가 어떤 마법을 알려드릴까요?"

"뭐든 가능한 거야?"

"그럼요! 다만 필리아는 딱 하나만 알려드릴 테니, 신중하게 고르세요!"

"그럼 테사에게도 물어보고 정하죠."

"알았어. 데려올게."

결국 어떤 마법을 가르쳐주라고 할지 논의하기 위해, 책을 읽고 있던 테사를 불러왔다.

"원하는 마법을 알려주겠다라... 그런 게 가능하다고? 필리아가 약 파는 거 아니야?"

"나도 의문스럽지만, 시도해 봐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아. 아무래도 내가 라이디의 발목을 잡을 때가 많으니까, 방어 마법으로 몸을 지키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에요. 여럿을 상대할 땐 마법이 유리하니까, 제가 크리스를 지키고 크리스가 공격을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후후, 이런 반응은 예상하던 바다.

게이도 아니고 무슨 방어 마법이야? 남자는 무조건 공격이지!

하지만, 바로 공격 마법을 알려달라고 하기가 왠지 부끄러웠다.

속물 같다고 할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먼저 말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익히기 싫은 방어 마법을 먼저 언급했다.

이제 라이디의 의견에 자연스럽게 동의하면, 적들을 무참히 썰어버리는 마검사가 될 수...

"정말 아무거나 알려줄 수 있는 거면, 피규어 움직이게 해서 비싸게 팔아먹자."

"오오! 괜찮은 의견인 것 같아요. 전투에도 유용할 테고, 여러모로 다용도로 활용하기 좋을 것 같아요. 크리스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 에? 그... 좋긴 한데..."

젠장, 순간 당황해서 싫다고 말을 꺼내질 못했다!

"필리아, 크리스의 피규어를 움직이게 하는 마법이 있다면 전투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르쳐 드리는 거야 가능은 하겠지만, 전투에 써먹을 정도가 되려면 한참 걸리지 않을까요?"

"그럼 역시 공격 마법으로 부탁해."

"에~ 그건 재미없는데..."

"공격 마법으로!!!"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억지로 밀어붙였다.

마검사 깐지, 절대 포기할 수 없어!

"테사 님, 피규어를 움직이는 건 나중에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지금은 크리스 님의 마법이 너무 허접하니까, 필리아는 멋있는 걸 알려드리고 싶긴 해요."

"그렇긴 해. 저게 어딜 봐서 10년 차 마법사야?"

쳇, 자기도 인식저해 마법 원툴이면서...

할 말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새로운 마법을 배우는 중요한 순간이니 그냥 조용히 넘겼다.

"아무튼, 공격적인 마법이라... 크리스 님, 필리아에게 원하는 걸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음... 적당히 빠르면서도, 적당히 공격적이면서도, 완급조절이 가능한 게 있을까? 가급적이면 한 번에 여럿을 상대할 수 있었으면 해."

"흠, 바위를 부숴서 파편으로 공격하는 마법은 어때요?"

"좋아. 딱 적절한 것 같아. 그걸로 해줘!"

근거리에선 검으로, 원거리에선 바위 파편으로 공격하는 마검사라...

흐흐...

"그럼 필리아가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일단 부숴버릴 피규어를 하나 만들어 보세요."

"알았어. 음... 흐음... 하앗!"

마법을 사용해 미셸을 만들었다.

파괴할 피규어의 디자인은 그녀가 딱이다.

"이제 피규어를 잘 보세요. 어디서 폭발해야 예쁘게, 강렬하게 터져 나갈까요? 하아... 머리?"

필리아가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가슴?"

그녀의 손이 내 가슴팍을 부드럽게 쓸고 지나간다.

"허벅지?"

매끈한 다리가 내 허벅지를 붙잡고 옥죄여온다.

"아니면... 여기?"

이내 꼬리로 내 소중한 부분을...

"하으... 필리아...!"

"어디든 상관없어요. 파괴하고 싶은 부위로 마나를 모으고, 손을 꽉 쥐어서 폭파! 쉽죠?"

"말로만으론 모르겠어..."

"곧 알게 될 거예요. 그저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 것, 그리고 저걸 꼭 부숴버려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중요해요. 알겠어요?"

"응..."

"자, 따라 해 보세요. 파괴하고 싶은 부위로 마나를 모으고..."

필리아가 내 손을 잡고 앞으로 뻗었다.

그녀의 지시대로, 미셸의 머리 부근에 마나를 흘려보낸다.

"손을 꽉 쥐어서 폭파!"

"죽어!!!"

쿠콰콰쾅!

"으악!!!"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바위 파편이 무수히 흩날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크리스 님, 대성공이에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라이디, 테사! 괜찮아?"

다행히, 둘은 무사한지 그대로 서서...

아니, 괜찮은 건가?

조금 흐릿한데...

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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