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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매지션즈-28화 (28/114)

〈 28화 〉 그녀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 1

* * *

어제는 바쁜 하루였다.

산을 오르다가 필리아를 만나 쥐어짜이고, 테사의 팬티를 봤다가 악마라는 걸 만나고, 테사의 마법에 대해 알게 되고...

다들 피곤했기에 올리비에로 돌아가자마자 각자의 방에 들어가 푹 쉬었다.

...

사실, 바로 쉬진 않았다.

필리아를 만나 오랜만에 성욕을 풀었지만, 중간에 그녀가 울어버려서 완전히 풀진 못했었다.

그러다가 테사의 팬티를 보고 너무 꼴려서, 결국 그걸 떠올리며 나만의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처음으로 낭자애를 딸감으로 써서 자괴감이 장난 아니었지만...

마법으로 여자애처럼 보이게 했으니까, 사실상 여자애 팬티라고 봐도 무방하잖아?

절대 낭자애를 수비범위에 포함한 게 아니다!

아무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후 뒤처리를 하고 잠자리에 든 것 같다.

분명히 그랬다.

하지만, 깨어난 곳은 마차 안이었다.

손발은 결박되어 있고, 입에도 테이프가 붙어 있다.

눈앞에 보이는 건, 짙은 분홍 머리의 미녀...

"읍... 으읍!"

"이제야 일어났느냐."

"읍읍! 읍으읍!"

"떼 줄 테니 가만히 있거라."

찌익­

그녀가 내 입에 붙은 테이프를 뜯었다.

아플 것 같아서 잔뜩 찡그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하아..."

"혹시 아팠어요?"

"아니, 아프진 않은데요."

"다행... 큼... 크흠,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그녀가 애써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투를 정정한다.

평상시의 말투가 목소리도 예쁘고 외모와 잘 어울리는데, 굳이 저런 어색한 말투를 쓰는 이유가 있나?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매지션즈를 탈출한 이후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봉착해 있었으니까.

왜냐하면 이 여인은...

"당신은 분명, 페르낭드에 있는 라이디의 집에서 만난 인퀴지터..."

"그러하다."

"......"

"...본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많지 않은데, 특이한 아이구나. 상황이 이러하니 어느 정도의 무례는 용서해주도록 하겠노라."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하는 여인.

유약하고 청순해 보이는 외모로 위엄 있다는 듯이 말해도, 그다지 와닿진 않는다.

"본인은 인퀴지터 미셸이다. 앞으로도 함께 할 것 같으니 원한다면 편하게 부르거라."

"이건 어떻게..."

"너는 마법사고, 나는 인퀴지터니까. 당연히 매지션즈에 끌고 가고 있는 거란다."

보아하니 자세히 설명해 줄 것 같진 않다.

날 어떻게 찾아낸 건진 모르겠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아마 여관에서 납치당한 것 같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노라. 매지션즈에서 어떻게 탈출했던 것이더냐?"

"..."

"이대로 사흘은 더 가야 하는데, 계속 그러고 있을 게냐?"

"......"

굳이 답을 할 의무는 없다.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왜 나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지? 고작 매지션즈의 행동 강령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고 내 인생을 옥죄는 거야!

"...저를 싫어하게 될 거라는 걸, 증오하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게 제 일이에요, 크리스."

갑자기 말투를 바꿔 가엾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진정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짓는 미셸.

보면 볼수록 정말 예쁜 사람이다. 외모도, 마음씨도.

매지션즈는 왜 이런 사람과 척을 지게 만드는 걸까?

"크... 크흠... 방금 한 말은 잊어버리거라. 그리고 정 밖에 나오고 싶은 거라면, 인퀴지터로 추천해 주겠노라."

인퀴지터.

요약하자면 매지션즈의 의뢰를 받아 마법사를 잡아 집어넣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매지션즈 내에선 별다른 기록도 없고, 주변인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인퀴지터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죠?"

그래서 침묵으로 일관하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마침 미셸이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이참에 적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놔야 할 것 같다.

"호오, 관심이 생겼느냐?"

자세를 바로잡는 미셸은,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너도 알다시피 마법사를 발견하면 매지션즈로 데려가는 일을 하느니라. 또한 평소엔 마법사임을 포기한 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지. 월급도 높고 일이 없을 땐 자기 시간도 많으니, 매지션즈 내에서 호의호식하는 작자들보다 훨씬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노라."

"인퀴지터는 마법을 써도 되는 건가요?"

"당연하도다. 본인도 종종 마법을 사용하곤 할 정도니라."

미셸은 마녀였구나.

그녀의 말대로 마법사들도 인퀴지터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법사들은 매지션즈 안에서 편하게 살고 싶어 하지, 밖에 나와서 고생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러다보니 지원자가 없어서 명망 높은 용병이나 마녀들이 의뢰를 받아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실상 매지션즈 밖에서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마법사네요?"

"그러하도다."

"하지만, 다른 마법사들을 잡아넣어야 하구요."

"...맞느니라."

마법을 쓸 줄 아는 남자라면, 어떤 식으로든 매지션즈의 소굴에 가둔다.

그건 용납할 수 없다. 인퀴지터가 된다는 건, 나와 같은 희생자를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다.

"미셸은, 그래도 괜찮은 건가요?"

"그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아... 그..."

갑자기 미셸의 말투가 바뀌어서 조금 당황해 버렸다.

"...매지션즈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끌고 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와 달리 요즘 대부분의 마녀들은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반면 마법사들은 매지션즈에서 먹여 살려준다는 엄청난 혜택이 주어지죠. 게다가 낭자애가 되는 것이 불만일 수 있겠지만, 그것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에요. 예쁜 외모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마법사들이 훨씬 많아요. 오히려 크리스처럼 거부하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죠. 크리스는 모르는 것 같지만, 남들에게는 간절히 원해도 얻을 수 없는, 여생을 편하게 살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려고 하는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예요!"

말을 한꺼번에 쏟아낸 미셸은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크리스는 왜 매지션즈를 거부하는 거죠?"

"마법을 배우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전 낭자애가 아닌, 상남자가 되고 싶었어요."

"상남자가 되어서?"

"..."

"예쁜 여자 꼬시고 싶었다?"

"......"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걸 '예쁜 여자' 앞에서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건 낭자애로서도, 인퀴지터로 나와서도 가능한 일이에요. 매지션즈의 행동 강령에 여자를 만나지 말라는 건 없으니까. 이미 당신도 미녀들과 함께 다니고 있지 않았나요? 거기엔 낭자애의 예쁜 외모가 도움이 된 건 아니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나요?"

"그렇긴 한데..."

"저도 거부하는 사람을 끌고 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이건 제 일이니 계속 당신을 괴롭혀야만 해요. 그러니 제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면, 인퀴지터로라도 나오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다시 당신의 여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데, 그런 소중한 기회를 차버릴 건가요?"

...

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구나.

미셸의 열변을 듣고 있자니, 그녀에 대한 증오가 눈이 녹아내리듯 사라져 버렸다.

"미셸, 첫인상에 비해 의외로 진지한 면도 있었네요."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거에요? 너무해요! ...크흠, 본인은 인퀴지터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중이니라. 무례한 언행은 삼가거라."

"푸훗... 흡... 하하핫!"

"우... 웃지 말거라!"

당황해하는 미셸의 모습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러고 나서, 진지하게 미셸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놀려서 미안해요. 미셸의 말을 듣고 깨달았어요. 저, 인퀴지터가 될게요."

"오오! 그게 정말인 게냐? 아니, 정말인가요? 당신과는 이제 같은 인퀴지터가 될 테니 편하게 얘기할게요. 크리스와는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계기가 마련된 것 같아서 너무 기쁘네요!"

"저도 기뻐요. 미셸은 평소의 말투가 훨씬 예뻐서, 잔뜩 듣고 싶었거든요."

"어머나...!"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감싸는 미셸.

이대로 인퀴지터가 돼서, 그녀를 공략해 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저, 그보다도 죄송하지만... 오랫동안 참고 있었는데..."

"앗! 알았어요. 큼... 흠... 여봐라, 마차를 세우거라!"

미셸이 소리치자, 마차가 멈춰 섰다.

갑자기 이상한 말투로 돌아가니 위화감이 장난 아니다.

"고마워요. 금방 다녀올게요!"

"네. 내릴 때 위험하니, 부디 조심하세요."

살갑게 웃어 주는 미셸을 뒤로한 채, 마차에서 빠르게 내렸다. 그리고,

"하압!"

마차의 입구를 피규어를 소환해 막아버리고, 산기슭 아래로 냅다 달려갔다.

남의 의중을 묻지도 않고 납치해 가는 인퀴지터 따위, 절대 되고 싶지 않아!

피규어는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부서지지 않는다. 미셸이 어떤 마법을 쓰는 진 모르지만, 웬만하면 비좁은 마차 안에서 스스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빠져나오긴 어려울 것이다.

사병들이 따라붙겠지만, 지금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나면 승산이...

"큭!"

하필 발이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아니, 걸려 넘어진 게 아니었다.

순식간에 자라난 넝쿨이 양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젠장, 이게 무슨...!"

"크리스."

옆구리가 뻥 뚫린 마차와, 무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미셸.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저기... 그러니까... 여기엔 사정이..."

"당신을 믿었는데, 절 배신하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인퀴지터가 될 테니까..."

"...따끔한 벌을 내려야겠네요."

"히익!"

미셸이 양손을 꾹 쥐자, 넝쿨이 내 팔을 휘감아 오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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