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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매지션즈-24화 (24/114)

〈 24화 〉 서큐버스 필리아 ­ 6

* * *

늦은 밤, 필리아의 오두막을 떠나 올리비에로 돌아가는 길.

다들 지칠 대로 지쳐서 아무 말 없이 그저 걷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빨리 숙소에 가서 푹 쉬고 싶었다.

다만, 내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필리아, 뭐 하고 있어?"

"...... 하암... 무슨 일 있어요?"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얘기했는데도 잘 들리나 보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왜 테사를 여자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야, 어딜 봐도 여자아이잖아요...?"

"나는?"

"크리스 님은 귀엽고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죠. 아, 혹시 남자아이라는 표현은 실례인가요?"

"그건 서큐버스의 '성별을 알 수 있는 능력'으로 확인한 거야?"

"그럼요!"

"그래? 하지만 테사는..."

"야, 크리스! 나 여자 맞다니까? 거유들 사이에서 가슴 작다고 놀리는 거냐?"

대화가 들렸는지, 앞서가던 라이디와 테사가 이쪽을 바라본 채 서 있다.

직접 물어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너 나랑 같이 매지션즈에서 탈출했잖아. 그러니까 그... 그거 아니야?"

"하아, 보여줘야 믿어?"

근처의 바위 위로 올라가는 테사는, 돌연 치마를 들쳤다.

팔랑거리는 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순백의 팬티.

"이제 믿겠어? 아예 팬티도 벗어서 보여줄까?"

"어... 그, 그게..."

남자라면 응당 튀어나와 있어야 하는 부분이 매끈했다.

오히려 다리 사이로 삐져나온 달빛이 가운데 부분이 살짝 갈라져 있는 걸 선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눈을 피하지도 못했다.

"너무 나갔어요 크리스. 아무리 당신을 사랑하더라도 이건 편들어줄 수 없어요."

"크리스 님, 필리아의 생각으론 테사 님에게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앗!"

"...필리아?"

말을 하다 말고, 필리아는 갑자기 목걸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불현듯 앞쪽에서 푸른 타원형의 물결이 솟구쳤다.

이내 그 속에서 검은 피부의 남성이 나타났다.

엄청난 근육질에, 필리아처럼 뿔과 날개, 꼬리가 달렸다.

하지만 모양이 조금 다르다. 전체적으로 더 거대하고 강인해 보이는 인상을 풍긴다.

검을 꼬나들고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하는 라이디.

그러나 상대방은 전투 의지가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들고 있던 삼지창을 내려놓았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다툴 의도는 없습니다. 부디 칼을 거두어주십시오."

"당신은 누군가요? 무슨 일이신가요?"

"누군지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동족을 데려가야 하는데, 여러분에게서 그녀의 기운이 느껴져 부득이하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하늘색 머리에 보라색 피부의 그거 말하는 거야?"

이번엔 도망가지 않고 앞으로 나서는 테사.

기특한 녀석, 많이 컸구나!

"그렇습니다."

"자길 서큐버스라고 지칭하는 그 녀석에게서 크리스를 구출해 오는 길이야. 여기 크리스가 서큐버스랑 접촉해서 기운이 남아 있던 게 아닐까?"

그렇게 말하면서, 내 가슴 중앙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대는 테사.

무언가 마법을 쓴 건지, 마력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를 지켜보며 한동안 가만히 서 있던 검은 사내는 이내 입을 열었다.

"확실히 더는 마족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뭐 하는 녀석들이야?"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평화?"

"그렇습니다. 그 이상 알려드리는 건 곤란합니다."

검은 사내의 결의에 찬 표정에서 간절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무섭게 생긴 외모보다는, 진심 어린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나뿐만 아니라 라이디나 테사에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라이디는 이미 검을 거뒀을 정도니까.

"전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 우리의 존재에 대해 발설하거나 기록을 남기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리지만, 소문이 퍼지면 이 세상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푸른 빛이 일렁이며,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는 사내.

"아, 그리고 혹시 서큐버스를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주변에 폐 끼치지 말고 어서 돌아오라고 전언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전언을 부탁하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무서운 인상에 비해선 별거 아니었네요."

"맞아... 그보다 테사, 어떻게 한 거야?"

"마법으로 해결했어. 자, 어서 가자."

쿨하게 말하곤 앞장서서 걷는 테사.

라이디를 바라보니, '여기선 크리스가 물어보세요!'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아...

그녀를 위해 내 한 몸을 바쳐야지, 별수 있나.

"저기... 테사?"

"왜, 팬티 한 번 더 보여줘?"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분명히 화낸다. 확실히 화낸다.

불구덩이에 스스로 몸을 들이미는 거나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겁이 나고, 괜스레 억울했다. 왜 나만 혼나야 해?

그래서 '나한테 떠넘기다니 너무해!'라는 표정으로 라이디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빨리 해치워버리세요!'라는 눈빛으로 응대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니, 기꺼이 희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라이디가 날 좋게 봐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용기가 생겼다.

"피곤하니까 빨리 말해."

"무... 무슨 마법으로 해결한 거야?"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해 버렸다.

...

......

"테사...?"

불러도 답이 없길래 담담하게 받아들였나 싶어, 살짝 눈을 떠 봤다.

"설마, 내 마법이 뭔지 모른다고? 피규어 받을 때 얘기해 줬잖아! 기억력에 문제 있어? 머릿속이 라이디만으로 가득 차서 공간이 없어? 안알려줄거야. 궁금하면 기억해 내던가!"

예상보다도 훨씬,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라이디, 제발 도와줘!

테사를 뒤로 한 채 열심히 신호를 보냈다.

"저기 테사, 저번에도 피규어 받을 때 얘기해 줬다고 화냈었잖아요?"

"그래. 그때도 알려줬잖아? 크리스 넌 나한텐 관심도 없지?"

"사실 테사의 마법에 대해선 당시에도 들은 바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네 녀석을 내가...... 그래? 흐음..."

기억을 되짚어보고 있는지, 머리를 긁는 테사.

"...라이디와 필리아를 위해서 특별히 알려줄게. 크리스, 넌 한 번만 더 까먹으면 진짜 내 손으로 죽인다."

"알았어, 미안해."

쳇...

그거 기억 못 했다고 죽이느니 마느니 하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 싶어 억울하다.

하지만, '다 된 밥에 물 끼얹지 말아요'라는 눈빛을 보내는 라이디 때문에 그저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레귤러야."

"이레귤러요?"

"아까 필리아가 얘기했던, 7속성에 포함되지 않는 마법을 쓰는 사람."

"......"

당황하는 라이디.

아까 마법에 대해 나눴던 대화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듣고 있지 않았었나 보다.

"그리고 분야는 인식저해 마법이고."

"인식저해 마법이라면?"

"크리스의 목걸이에 마법을 걸어서, 필리아를 인지하지 못하게 했어. 그게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

"아아..."

미묘하게 답하는 라이디.

이해한 거 맞나?

"테사 님, 오늘 처음 만났을 뿐인데... 필리아 감동이에요!"

"오해하지 마. 필리아한테는 아직 듣고 싶은 게 많은 것뿐이니까."

"덧붙이자면 이 세계에서는 우리 마족들의 힘이 약해져서 마법을 인지하기 쉽지 않아요. 특히 테사 님의 능력이 강한 덕분이기도 한 것 같지만요."

"보는 사람이 많으면, 특히 남에게 걸어 줄 땐 효과가 약해지긴 하는데... 아무튼, 졸리니까 얼른 가자."

"그래요, 수고했어요. 테사."

다들 피곤했는지라 '마족이 뭔가?'라던가 '테사의 마법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 건가?'같은 의문들은 무시한 채, 대충 대화를 마치고 군말 없이 출발했다.

나도 딱히 당장 거들 말이 없어서, 얌전히 뒤를 따랐다.

인식저해 마법이라...

꽤 쓸모가 있는 마법인 것 같다.

몰래 인퀴지터로 등록했다는 것도 이런 비상한 마법 덕분이었겠지. 그리고...

...

잠깐,

그렇다면 테사는...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도록 우리에게 마법을 건 게 아닐까?

확실하다. 금녀의 구역인 매지션즈에서 처음 만났으니, 낭자애인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한동안은 여자라고 믿어줘야겠다.

낭자애인 걸 컴플렉스로 느끼고 있거나,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

게다가 더 이상 캐물으면 맞는 말을 해도 나쁜 놈으로 몰릴 것만 같다.

그보다 검은 피부의 사내가 평화 어쩌고저쩌고 한 것 같은데...

뭐, 별거 아니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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