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검술 훈련? 1
* * *
식사 후 방에 올라가 조금 더 눈을 붙였다가 깊은 밤에 길을 나섰다.
아침에 가까운 새벽인데도 아직 우리를 찾고 있는 듯한 무장한 녀석들이 간간이 보였다.
그래도 슬슬 포기했는지 여기저기에 허점이 많아서 무난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음 마을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다. 서두르면 조금 무리하면 저녁 식사는 식당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라아이이이디이이이이—"
"하아... 테사, 이리 오세요. 업어 줄게요."
아침부터 내내 발 아프다고 성화인 테사만 없으면 말이다.
정말 많이 쉬었다. 걸은 시간보다 쉰 시간이 훨씬 길다.
하지만 테사는 출발만 하면 얼마 못 가 힘들다고 주저앉아 버렸다.
결국 어떻게든 가 보려고 라이디가 업어준 게 벌써 다섯 번째.
아니, 이젠 여섯 번째다.
"크리스, 많이 힘들어요?"
나에게 가방을 건네며 라이디가 묻는다.
"아, 아니. 괜찮아."
당연히 힘들다. 라이디가 테사를 업느라 일행의 짐을 내가 다 들고 가니까!
신나서 마을 구경 한다고 뛰쳐나가더니, 대체 얼마나 뽈뽈 돌아다녔길래 다리가 아프다는 거야?
하지만 라이디에게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니까 오기로 버티고 있다.
테사랑 달리 듬직하고 믿음직한 남자라고 생각하겠지?
다만 나도 라이디에게 업혀 볼 수 있다면 좋긴 하겠는데...
"라이디, 크리스 표정 봐. 정줄 놓은거 아님?"
"아니에요. 남자답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맞아, 약골 흰머리."
오랜만에 라이디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테사를 공격해 보지만, 내 말에는 반응도 하질 않는다.
얄미운 녀석.
"그보다 배고파. 맛있는 거 먹고 싶어."
"크리스, 테사에게 육포 하나 건네줄래요?"
"싫어. 하루 내내 먹어서 질린단 말야. 어제저녁에 그런 호화로운 거 먹었는데, 이제 와서 마른 육포에 빵만 씹고 있긴 싫어!"
"하아...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한숨을 푹 쉬는 라이디.
어제 귀여운 동생이라느니 먹여주겠다느니 한 거 다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그 마음 잘 안다.
"이미 시간도 늦었잖아. 자고 가면 안 돼?"
아직 네 시 정도로, 늦은 건 아니다.
하지만 테사 때문에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오늘 내에 도착할 것 같진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요. 차라리 테사를 푹 쉬게 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싸!"
라이디의 등에서 내려 바닥에 드러눕는 테사.
눈치를 보다가, 나도 가방을 내려놓고 따라 누워버렸다.
미칠 듯이 힘들어. 그래도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아!
라이디가 수프를 준비하고, 난 고기를 구워서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단출한 구성이지만 어제 구한 식자재라 신선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고기를 굽는 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굽다 보니 느낌이 오는 것 같다.
조금만 더 해보면 익숙해지겠는데?
게다가 바삭하고 맛있게 잘 구웠다고 라이디에게 칭찬받아서 기분도 좋다.
아아 행복이란 건 정말 가까이 있구나!
물론, 한입 먹어보곤 조용히 수프만 퍼먹은 낭자애는 행복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 포함되지 않는다.
밥을 다 먹고 라이디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라이디. 테사 업고 오느라 힘들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그, 괜찮으면... 호신술을 배워 보고 싶은데."
"호신술?"
"응."
쓸만한 마법을 언제쯤 익힐 수 있을지 모르겠고, 당장 라이디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다.
그래서 호신술을 배우고 싶다. 내 몸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면, 라이디가 한결 편해지지 않을까?
"좋아요. 알려드릴게요. 혹시 테사도 관심 있어요?"
"됐어. 체력 좋아지면 크리스가 나 업어줘."
어느새 침낭 안에 들어가서 흐느적대고 있는 테사.
저 녀석은 마법사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굶어 죽지 않았을까?
"그럼, 알려주기 전에..."
"응?"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라이디.
"공짜로 알려주는 건 조금 그렇죠, 크리스?"
"그...렇지?"
"작은 보상 정도는 원해도 괜찮겠죠?"
"돈은 없는데..."
"설마 크리스에게 돈을 요구하겠어요? 그런 건 아니고..."
"뭔데, 빨리 얘기해!"
보다못한 테사가 재촉한다.
"그러니까 크리스를 안... 안..."
"안?"
"그러니까... 하아, 후우..."
라이디가 숨을 고르고
"안고 있고 싶어요!"
말했다.
...
안고 있고 싶다고? 나를?
오히려 내가 포상을 받는 거 같은데?
"그런 거야, 얼마든지."
"그럼 5분 훈련에 1분 안고 있기. 괜찮죠?"
언제든 얼마든지 안고 있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안돼. 30초."
"히잉... 알았어요. 30초."
라이디의 반응을 보니 조금 튕겨주는 게 나을 것 같다.
저번의 스튜처럼, 맛있는 것도 계속 먹다 보면 질리는 법.
연인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밀당이 매우 중요하다.
... 는 내용을 우연히 소설책에서 봤다.
흥미롭게 보다가, 베드신 직전에 남녀 둘 다 사실 낭자애였다는 말도 안 되는 막장 드리프트를 해서 바로 덮어 버렸지만.
그 책은 대체 왜 내 방에 떨어져 있던 걸까?
"그럼, 검술과 체술 중에 어떤 걸 원해요? 추천하는 건 체술이긴 하지만..."
라이디의 말에 빌어먹을 곳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검술, 그리고 체술이라...
체술도 좋지만, 생각해 둔 게 있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하는 것이 있다.
적에게 근접하여 검과 마법으로 휩쓸고 다니는 마검사.
이건 멋있을 수밖에 없잖아!
"검술로 부탁할게."
"알겠어요. 오늘은 짐 들고 오느라 피곤할 테니, 기본자세 정도만 알려주도록 할게요."
라이디가 검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어 그녀는 검집을 들고 자세를 보여주었고, 나는 포즈를 보고 따라 했다.
그리곤 조금씩 엇나가는 부분을 지적하고,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그저 보이는 대로 똑같이 하면 되는 것뿐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게다가 조금씩 움직이긴 했지만, 사실상 계속 검을 들고 가만히 서 있던 거나 마찬가지라서 슬슬 힘든데...
"저기, 크리스..."
자세를 봐주다 말고 쭈뼛쭈뼛 서 있는 라이디.
"무슨 일 있어?"
"5분......"
"아아..."
벌써 그렇게 됐나?
자세를 풀고 라이디에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라이디는 나를 백허그로 껴안았다.
"크리스에겐 실전 검술을 약식으로 알려줄 거에요. 마법사니까 몸을 지키는 수준만 익히면 될 것 같으니까 방어 위주로 연습해 봐요."
뭔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얼굴 양쪽의 가슴이 포근하게 감싸 오는 게 너무 아늑하다.
반면 그녀의 가슴팍에서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농후한 체취가 풍겨와 정신을 아찔하게 한다!
아아...
"30초 지났어, 변태 듀오."
"벌써?"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
굳이 돌아보진 않았지만, 라이디도 마찬가지겠지?
다음을 기약한다고 말하듯이 그녀의 몸이 멀어져 간다.
"그보다 왜 변태 듀오인 건데?"
"모르겠어? 하나하나 상세히 알려줄까?"
그렇게 나오신다면...
...
할 말이 없지.
"크리스, 얼른 다음 자세로 넘어가도록 해요. 이번엔 아까의 자세에서 가볍게 휘둘러 보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