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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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분주한 아침을 마지한건 민혁뿐이였다. 모처럼 식구들이 모두 각자의 방에서 꿈나라를 허우적대고 있다.

‘이런 날은 좀 쉬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는 투덜거리며 아침 준비를 했다.

지은도 어제 완쾌되어 퇴원했다. 근 한달만의 귀가였다. 그녀의 귀가에 가장 반겼던 사람은 바로 준형이였다. 준형은 엄마가 퇴원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문밖에 나가 기다렸다가 점심때 쯤에나 엄마를 태운 차가 골목 어귀에 들어서는 걸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은은 골목 어귀에서부터 준형이와 함께 집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병원에 있는 동안 형규는 매일 민혁을 핑계 삼아 그녀를 보러 왔고 별 말 없이 한동안 머무르다 돌아가곤 했다.

혜령은 가족 중에 가장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사건 다음날 치러진 선거는 당연 혜령의 당선이였다. 그리고 이후 당선사례를 위해 구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과의 시간을 갖느라 꼭두새벽부터 자정까지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정한수에 대한 후보납치 사주 사건도 이동철의 자수와 결정적인 녹취록까지 확보된 상태여서 처음에는 언론과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는 그리 빠르게 진행되지 못해 아직 정한수의 행방조차도 찾아내지 못했고 경찰의 지리멸렬한 수사결과발표로 지루함마저 느끼게 했다. 그러다 결국 국민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자 이동철의 단독범행으로 마무지 짓고 서둘러 수사팀을 해체했다.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 사건이란 바로 얼마 전 총리에 오른 박대표에 대한 섹스 동영상 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돌 가수 권치용의 자살로 박대표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박대표가 여러명의 남자에게 애무를 받는 장면이나 고급 향락 서비스를 받은 그 모습이 그대로 동영상 속에 담겨 있었고 권치용의 자살 직전에 작성된 유서에 박대표에 대한 언급과 그로 인해 자신이 괴로웠던 일 등이 적혀 있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박대표와의 스캔들 때문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박대표는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 움직이며 여러 방면으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여론의 목소리는 더욱 그녀를 압박했다. 그 여론의 배후에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지지 않도록 연일 그녀의 섹스 동영상, 권치용의 자살을 특집으로 다루며 국민들에게 세뇌하듯 어디를 보아도 박대표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보수 언론이던 조선, 동아, 중앙신문도 이번에는 여당의 수장에 대한 비판에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 대었고 오히려 그것을 주도하는 듯한 인상도 풍겼다.

경찰의 입장도 어떤 사건보다도 빠르고 강력하게 박대표를 압박하였다. 곧이어 국회에서 특별 검사 안이 통과 되자 사건은 검찰로 이전되고 그녀를 더욱 압박해갔다. 과거 경찰과 검찰이 여당의 정치인에게 이렇게 강력하게 대응했던 적은 없었다. 한국당도 거의 대부분의 의원들이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여론의 중심선 것도 보수 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실제 단체가 아닌 가상의 단체이오니 오해 없으시길)이었다. 그들은 한술 더 떠 그녀의 치부를 하나씩 하나씩 폭로하며 국민들의 관심을 박대표에게 고정되도록 유도하였다.

구수한 된장찌개의 향기가 온 집안에 퍼지며 꿈속을 헤매던 이들을 하나 둘 주방으로 모이게 했다.

“아웅~~ 냄새 너무 좋다.”

“아침부터 구수한게 입맛 당기는데...”

“오빠 아니었으면 우린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저마다 주방에 들어오면서 한마디씩 내뱉었다. 싱크대에 붙어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민혁은 심통이 났다. 그녀들의 말에 대꾸도 없이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음식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오빠... 심통난거야? 심통난 모습도 왜케 귀여워?”

혜원이 그의 등뒤에서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를 위로해 주었다. 감싸 안은 손이 허리에 있을 때만해도 그런 행동은 위로였다. 그러나 거침없이 바지춤을 파고드는 그녀의 손이 민혁의 자지를 잡자 더 이상 위로가 아닌 에로였다.

“이모... 뭐해?”

그때 준형이가 주방에 들어오면서 혜원의 행동에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주방 안의 어른들은 화들짝 놀랐고 혜원은 얼른 손을 뺐다. 다행인건 민혁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허리를 파고든 손의 위치가 준형의 입장에선 전혀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당해이었다.

“아이구... 내가 못살아. 준형이 교육에 자꾸 저해하는 요소를 만들거야? 내가 준형이랑 나가서 따로 살든지 해야지...”

지은은 준형을 안고 못 볼 것이라도 되는 양 아이의 눈을 가리고 일부러 멀리 돌아 식탁에 앉았다.

“그래... 집에 준형이가 있다는 걸 항상 잊지 마. 특히 혜원이는 더 조심하고.”

혜령이 마지못해 한마디 거들었다. 혀를 삐쭉 내밀고 무안한 듯 준형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혜원도 자리에 앉았다.

“이모하고 삼촌하고 너무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너두 이담에 커서 니 색시한테 사랑 많이 줘야 돼.”

“웅! 이모... 난 맨날 안고 다닐 꺼야. 쭈쭈도 만져 주구.”

마지막 말에 지은이 깜짝 놀라며 준형의 입을 막았다.

“하하하”

“호호호호”

혜령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달라진 것이 있었다. 바로 주방 식탁 벽면에 벽걸이형 LED TV가 설치된 것이다. 그들이 즐겁게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TV에선 긴급 속보가 방송됐다.

[뉴스 속봅니다. EU가 그동안의 협조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파원을 호출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방성호 특파원!]

[네! 제가 있는 이곳은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EU본붑니다.]

[오늘 전격적으로 프랑스와 영국이 EU를 공식적으로 탈퇴의사를 밝혔는데요. 자세한 소식 부탁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프랑스와 영국은 대 정부 발표를 통해 EU연합에서 공식적으로 탈퇴의사를 발표했습니다. 탈퇴의 배경으로는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인한 경제파탄과 자국의 이익에 치명적인 위기라고 밝혔습니다. 2년전부터 시작된 세계 경기 침체는 여러 나라들이 연합된 EU연합에 그동안 불안한 요소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독일과 헝가리 등의 중소국가 들의 경기 파탄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많은 제정을 그들 나라에 쏟아 부었는데요. 그것에 한계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프랑스와 영국의 탈퇴로 다른 주변국까지 탈퇴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가운데 EU연합은 그에 대처하기 위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와 특파원의 소식은 혜령의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충분했다. EU연합의 동맹관계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의 경제 잠식을 경계하기 위한 그들의 동맹은 처음 시작될 당시에는 경제 강대국에 맞설 만큼 위력적이었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며 자국의 이익 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다 결국 최근의 장기 경기 침체는 그들의 갈등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결국 분열이 되는 건가? 앞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하겠는 걸?”

“언니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글세... 지켜봐야 알겠지만, 탈퇴 국가들이 더 늘어나겠지... 그리고 현재 경제침체에 대해서 자국의 이익에 최우선되는 정책을 추진하게 될 거야.”

“뭐 그렇다구 별로 달라질 것도 없을 거 같은데?”

“아니지. 그동안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가 떨어져 나간다면 그들 국가 간의 사이가 나빠질 꺼야. 그러다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심한 경쟁을 시작하겠지. 너 혹시 알고 있니... 그동안 2차례 있었던 세계 전쟁이 모두 유럽에서 시작됐다는 걸...”

[끝으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그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동안 EU연합과의 FTA가 전체적으로 탈퇴한 국가와의 재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MBC 뉴스 방성호였습니다.]

특파원의 마지막 멘트로 아나운서는 뉴스 속보를 마쳤다.

“아무래도 나가봐야 겠다. 지은아 넌 집에서 좀 더 쉬고 있어.”

“아니야. 언니. 나도 나갈게. 그동안 병원에서 지내느라 실무 감각이 무뎌진 것 같아서 말야..”

“괜찮겠어?”

“응..”

지은이 대답에 준형의 표정이 굳어졌다.

“엄마... 꼭 나가야해? 오늘은 나하고 놀아준다고 했잖아.”

“그래 지은아... 너 한 달 만에 집에 온 거잖니. 병원에서 준형이와 같이 있었다지만 그게 집에서 있는거랑 같니? 오늘은 준형이랑 놀아줘. 일이야 내일부터 해도 되잖아.”

“그래라.. 지은언니야. 준형이가 엄마 퇴원날짜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지은은 가족들의 만류와 특히 준형의 울 것같은 표정을 보자 자신의 생각을 고쳤다.

“그럴게... 준형아 엄마 안갈게... 오늘 엄마랑 놀자.”

“정말이야... 안가고 나랑 놀아줄거야?”

“그러엄... 이제 밥 맛있게 마저 먹고 약속대로 놀이공원 가자.”

“와~아~”

준형은 다시 밝아진 표정으로 남아있는 밥을 한입에 털어 놓고 부리나케 2층으로 올라갔다.

“거봐... 좋아하잖아. 괜히 그런 말은 해서..”

“미안... 난 그저 언니를 돕고 싶어서...”

지은이 겸연쩍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나가봐야 겠어. 혹시 내가 조사하는 일과 관계가 있을지도 몰라서.”

“으잉... 그럼.. 나도 같이 가.”

“안돼. 지난 번일을 곰곰이 생각해봐.”

민혁이 혜원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지난 번 일이라니? 너희들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아니~~~ 무슨일은... 없었어..”

혜원이 손 사례를 치며 극구 부인하는 모습이 무슨 일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더욱 신빙성 있게 들렸다.

“미야옹~ 미야옹~”

갑자기 민혁이 고양이 소리를 내자 혜원의 얼굴이 삽시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으윽...”

혜원은 자리를 박차고 방으로 뛰어갔다. 물론 민혁을 째려보는 눈빛이 여지없이 그를 향해 비수가 되어 꽂혔다.

“뭔 일이야? 제가 저럴 때도 있고?”

“아니야.. 괜히 그러는 거야. 하하하.”

“칫... 아무튼 아침 잘 먹었어. 난 바로 가봐야 겠다.”

“아... 누나.. 잠깐만..”

민혁이 막 일어나려는 혜령을 잡았다.

“병규라고 알죠? 동철이 부하로 있던...”

“응.. 알고 있는데.. 왜?”

“그 친구가 꽤 사람이 쓸 만하더라고. 원래 조폭 같은데 있을 사람이 아니더라고. 보니까 전과기록이나 심지어 벌금 기록조차도 없었어. 그래서 말인데.”

“흠.. 그래.. 인상이 아주 다부지게 생겼긴 하던데. 그래서?”

“누나의 신변 보호를 위해 붙여 줄까 하고. 물론 비서나 수행원들이 있지만 그들이 위험한 상황일 때 누나를 보호할 수 있을지 걱정돼.”

“하긴... 그들이 정치는 9단일지 몰라도 무술은 0단일 테니까. 근데 전직이나 뭐 이런데 문제가 있지 않아.. 그 사람?”

“응... 동철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꽤 유명한 무도관 관장으로 있었어. 태권도며 합기도, 검도.... 또 뭐지.. 암튼 다 합치면 누나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될 거야.”

“아... 무도관 관장이었어?”

“그리고 동철씨의 부탁도 있었고 말야...”

“그럼 좋아.. 일단 면접을 봐야 하니까. 이따가 사무실로 오라고 해. 내가 만나볼게.”

“응 누나 고마워.”

혜령이 주방을 나가자 민혁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병규냐?]

[네. 형님]

[지금 바로 혜령누나 사무실로 출발해... 옷 좀 깔끔하게 입고..]

[아.. 그럼 허락을 하신 겁니까?]

[아니 그건 아냐.. 우선 널 만나보고 싶대. 그러니까 절대로 건달행세하지 말고.]

[네 형님.]

[면접 보는 거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가.]

[네 형님.]

[그래. 그럼...]

[아.. 잠시 만요 형님. 형규녀석이 바꿔달랍니다.]

[형규가? 바꿔봐.]

잠시 후 형규의 목소리가 들린다.

[형님. 형隻求?]

[응. 무슨 일이야?]

[지은누님께서는 퇴원하셨습니까?]

[어제 퇴원 이였잖아.]

[아..... 그럼 인제 집에만 계시는 겁니까?]

[글세. 아까 얘기로 봐선 내일부터 누나 사무실로 나간다던데.]

[아..... 아.. 저기... 아닙니다..... 저기... 그럼 오늘은 뭐하신다고........?]

형규가 말끝을 흐렸다. 민혁도 그동안 형규가 어떻게 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매일 빠지지 않고 그녀의 병실을 방문했다. 물론 민혁과 같이 다니다 보니 매일 방문한 건 그저 민혁을 따라 다닌 것이라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그냥 따라만 다녔다면 꽃다발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 병실에 들어가기 전 꽃다발을 손에 들고 있었다.

[놀이공원에 간다고 하던데... 준형이랑...]

[아.. 그렇습니까?]

[왜?]

[아닙니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일방적으로 형규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훗훗.. 이 녀석이...’

민혁은 그저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식탁을 치웠다.

‘아.. 이거.. 정말... 설거지까지 내가 해야 하나? 그냥 다들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그는 영락없이 가사 도우미가 돼버렸다.

분주하게 혜령은 출근 준비를 마쳤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6명의 비서관 및 보좌관을 둘 수 있다.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1명, 그리고 6급, 7급, 9급 비서관을 각 1명씩으로 구성된다. 대부분 초선 의원인 경우 정당 의원은 기존 확보된 보좌관급 인재 중에서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은 정당 차원에서 제공해 준다. 무소속 의원의 경우 국회의 국회의원실을 통해 공채로 선발하거나 낙선 의원들의 경력자들을 모집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머지 6,7,9급은 의원의 재량으로 선발한다. 따라서 4급, 5급은 정치적 경력이나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각 정당에서 별도의 인재DB를 구축하고 있기도 한다. 6,7,9급은 말 그대로 수행비서들이다. 그들 중에는 운전기사도 포함되며 지역구 의원의 경우 민심의 수습이라든가 현장 조사와 같이 발로 뛰어야하는 일을 맡게 된다.

혜령은 초선의원으로써 정당으로부터 4급 보좌관 2명을 배속 받고 5급 비서관으로 지은이를 채용했다. 그리고 국회의원실에서 제공해준 인력DB를 바탕으로 6급과 7급 비서관을 채용했다.

국회의원들은 의례 크고 고급의 국산 승용차를 많이 타고 다닌다. 국정 업무를 위해 이동이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에서 관용차와 기사가 제공되지만 대부분 자신의 차를 이용한다. 이유는 관용차는 SM5급 정도로 그들이 늘 타고 다니는 급하고는 차원이 틀리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은 별도의 차량 유지비, 유류비 등을 따로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혜령은 자신이 타던 1500CC급 준중형차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 기사를 따로 두지 않고 손수 운전을 하고 다녔다. 그리고 사무실 근처까지 차를 타고 가서는 5KM 떨어진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사무실까지 걸어서 출근했다. 그녀가 이러는 이유는 5KM를 걷는 동안 구민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얘기를 직접 듣기 위해서 였다. 이것은 주민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받는 요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일부러 그녀가 출근하는 시간에 그녀와 인사를 나누기위해 시간을 맞춰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이기 때문에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에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며 손을 흔들기도 하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 행동에 그녀는 일일이 답했다.

“안녕하세요.. 잘 되시죠? 아! 안녕하세요..... 병순이 할머니... 이제 감기는 다 나으셨어요? 어머! 돼지엄마. 몸 풀었다면서요... 축하해요. 몸조리 좀 더하고 나오시지... 네.. 네...”

그녀는 5KM를 걸어가는 동안 입을 한 번도 쉴 수 없었다.

그녀가 사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검은색 정장을 입은 한 사내가 부동자세로 서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 사내는 그녀를 향해 30도 정도의 정중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아.. 병규씨? 호호”

그녀가 웃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병규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기 위해 헤어고정용 스프레이를 거의 한 통을 다 소비하여 머리카락을 바짝 붙여 넘겼다. 올빽 머리에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머리카락이 그녀의 눈에는 작은 헬멧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에구.. 민혁이가 잔뜩 겁을 줬나보네.. 호호호 이건 근데 너무 웃긴다.’

그녀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그를 따라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미리 연락해 두었던 보좌관들이 출근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오셨어요. 의원님.”

“일찍 나오셨네.. 미안해요. 다들 일요일 날 불러내서... 아.. 그리고 전화로 얘기했던 자료는 흠.... 30분 후에 보고 받도록 하죠.”

그녀가 집무실로 들어가자 병규는 집무실 앞에서 머뭇거리며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보좌관들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저 사내가 누구인지 속닥이다가 혜령이 다시 나오자 후다닥 자리에 앉아 바쁜 척했다.

“들어오지 않고 뭐해요?”

“아... 네...”

병규는 그녀를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녀의 집무실 한가운데는 회의용 원형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기억자형 책상과 그 주변에 허름한 책장들이 몇 개 있었다. 소박한 모습의 집무실이었다.

“앉아요. 민혁이에게 얘기 들었어요.”

“....”

“무도관 관장이셨다구요? 나도 태권도라면 좀 하는데. 얼마나 했었요?”

“넵.. 아버님께서도 무도인이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줄 곳 해왔습니다. 대학도 체육대학 태권도학과를 나왔습니다.”

“오.. 그래요. 국가대표나 출전 했던 경기는 없었나요?”

“아버님의 반대로 경기 출전은 한 번도 못했습니다.”

“아.. 안됐네요. 아버님께서 왜 그러셨을까요? 그리고 말 편히 하세요.”

“아.. 네. 아버님께선 진정한 무도인은 남 앞에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요.”

“그런데 어쩌다 동철씨를 만났죠?”

“우연히 제 무도관에서 대련이 있었는데 그때 감동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분께 대련을 요청했고 깨끗하게 제가 졌습니다. 그 날 이후로 그 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흠.. 남자들은 참 우습군요.”

혜령은 이 사내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별장에서의 기억 때문에 선뜻 결정하기 힘들었다.

“지난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가 그녀의 의중을 읽었는지 먼저 선수를 치며 말했다.

“사실 난 당신이나 그 애들한테서 직접 그 짓을 당하지 않았지만 지은이는 많이 힘들었어요. 사무실에서 당신을 보면 그 일이 자꾸 생각 날 텐데. 힘들꺼예요.”

“....... 전......합...”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뭐 할 얘기라도 있어요? 그냥 편하게 해요.”

“...... 그...날... 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 않았다니?”

“민혁 형님이 들어오시는 통에 전 보지도 못했습니다.”

“풋...”

혜령은 웃을 수 없는 얘기지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병규는 얼굴 전체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방울방울 맺혔고 그러다 보니 머리카락도 물기를 머금어 가공할 스프레이의 고정력을 무력화시켜 한줄기의 머리카락 묶음이 애교머리처럼 이마에 내려왔다. 그리고 그의 표정 또한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려는지 울쌍이 다되어 있었다.

“아.. 그럼.. 지은이가 모를 수도 있겠군요.”

“....”

“그럼 우선은 같이 일 해보도록 하죠. 그리고 내일 지은이가 출근 했을 때 최종 결정을 할께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보좌하겠습니다.”

혜령은 그를 대리고 사무실로 나가 다른 보좌관들에게 병규를 소개 했다.

지은은 오랜만에 아들과 놀이공원으로 놀러가게 되어 그녀 역시도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그동안 정장 스타일만 고집했던 그녀가 간편한 나들이 복장으로 2층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본 민혁은 그녀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매력을 느꼈다.

“와~ 누나 멋진데... 누나한테 이런 면이 있다니...”

“그래? 이뻐? 내가 안꾸며서 그렇지 나도 꾸미면 혜원이나 언니만큼은 한다고.. 훗훗..”

“그래.. 언니.. 평소에도 좀 꾸미고 살아... 정장만 입고 다니니까 너무 차가워 보이더라.. 준형아 엄마 이쁘지?”

“응! 이뻐... 난 이모보다 엄마가 더 이뻐..”

“칫.. 준형이 이모가 뽀뽀 안해준다..”

혜원이 뾰로통해진 표정을 짓자 준형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입을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실은 이모가 더 이뻐... 쉿...비밀이야!’

그리곤 다시 엄마 곁에서 해맑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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