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들어온 혜령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 심의원과 선거 사무실 직원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은 엄연한 테러예요. 상대 후보를 감금하다니. 이 일은 조용히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네요.”
심의원이 혜령의 손을 잡고 다독이며 말했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기자 회견을 준비하고 싶은데...”
혜령은 홍보담당을 맡고 있는 직원을 바라보았다.
“아... 그런데.. 의원님... 내일이 선거일이고... 이 일이 자칫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는데요.. 이게 너무 엄청난 사건이라... 자칫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습니다.”
홍보담당 직원을 돕기 위해 다른 직원이 말했다.
혜령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 만약 사건을 터트리면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여론에 밀려 경찰이 조사에 나서겠지. 아니면 검찰이든가.’
‘그렇다고 이일을 덮어두자니 병원에 있는 지은이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래! 우선은 그렇게 해야겠어!’
혜령이 생각이 정리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이번 일에 대해서는 선거가 끝난 후로 미루기로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 수도 없는 일이예요. 제가 정한수를 만나 보겠어요.”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혜령씨를 감금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 앞에 나타나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요?”
“심대표님 걱정 마세요. 이래봬도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거든요. 아마도 정한수 앞에 제가 나타나면 적잖은 충격을 줄 수 있을 거예요. 그 후에 그가 알아서 행동하겠죠.”
“그렇긴 해도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혜령은 자신을 걱정하는 심대표와 직원들을 뒤로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물론 여유를 보이기 위해 고개를 돌려 윙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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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정한수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여자가 혜령이라는 것에 허둥대며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정후보님을 이렇게 놀라게 할 일인가요?”
혜령은 정한수를 내려 보며 팔짱을 꼈다.
“아...니... 그게... 아이고.. 어서 오세요.”
정한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그녀에게 맞은 편 자리에 앉도록 손짓했다.
“몇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내일의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서는 선거 후 공식으로 조사를 의뢰하도록 하죠. 그동안 몸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혜령은 그대로 서서 말했다. 그리곤 뒤로 돌아 당당하게 그의 서재를 나섰다. 그 모습을 정한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민혁은 건너편 옥상에서 혜령이 정한수를 향해 거침없는 일침을 놓는 장면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누나는 정말 강심장이야.’
민혁은 혜령의 행동에 감탄을 하며 계속 정한수를 주시했다. 사실 그가 이곳에 다시 온 것은 정한수를 처형하기 위해서였다. 민혁의 손에는 저격용 라이플이 쥐어있었다. 그를 조준하고 있을 때 갑자기 혜령이 나타난 것이다. 그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그가 알고 있는 혜령이라면 충분이 예상했어야 했다.
‘역시 내가 처리하는 것보다는 누나가 직접 하는 게 더 낳겠지.’
건너편 정한수의 서재가 갑자기 부산해 졌다. 정한수는 서재를 이리저리 거닐며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러나 전화를 들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정한수요. 홍의원 부탁합니다.]
[의원님께서는 지금 회의 중 이십니다. 전화 메모 남겨 놓겠습니다.]
[어이 이봐! 지금 중대한 문제가 터졌다고... 얼른 바꿔!]
[의원님께서 회의 중 오는 전화는 메모만 남겨 놓으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야이 시발년아! 너 죽고 싶어. 응.. 얼른 바꾸라면 바꾸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
[긴급이야! 긴급!]
[무슨 일이야?]
[아.. 형님.. 큰일 났습니다.]
[뭐가 큰일이야. 어디 전쟁이라도 터졌어?]
[아니 그게 아니고... 박혜령이 때문에 죽게 생겼습니다.]
[박혜령이 왜? 그건 네가 잘 처리했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그게... 그년이 제 앞에 버젓이 나타났습니다.]
[에잉... 사람이 왜 그리 확실하지가 못해? 그래서?]
[그년이 엄포를 놓고 갔습니다. 선거 후에 공식 수사 의뢰하겠다고.]
[머리 아프군.]
[그년이 당선될 꺼 뻔하쟎습니까? 그럼 그땐 금빼찌 달고 설처대면 저 죽습니다. 형님.... 살려주십시오.]
[바보같은 놈. 여자하나한테 그렇게 쩔쩔 매서야.... 으음....]
[형님.. 형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일단... 일본에 가있어... 어차피 이번 선거 물 건너갔잖아. 일본에 가서 내가 시키는 일 좀 해...]
[일본 말입니까? 갑자기 일본은 왜?]
[길게는 나중에 다 알게 되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해...]
[바로 갑니까?]
[이 바보야! 생각 좀 해! 오늘 밖에는 시간이 없잖아. 내일 선거 끝나면 그년이 당장 네놈 목에 칼을 드리델텐데... 오늘 중으로 이 나라를 떠..]
[알겠습니다. 형님.]
정한수는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민혁은 무심코 넘겨 버렸다.
‘이로써 마무리 된건가? 좀 찜찜하군. 어쨌건 이제 나도 내 일에 전념할 수 있겠어.’
민혁은 찜찜함을 뒤로하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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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좀 괜찮아?”
병실로 들어오는 혜령과 민혁의 모습에 그동안의 무료함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듯 혜원이 침대를 박차고 내달렸다. 그리곤 민혁에게 폴짝 뛰어 안겼다.
“참나? 언니보다 민혁이가 그렇게 좋냐? 언니는 죽을 고비 넘기고 왔더니.”
“아냐.. 언니.. 언니도 보고싶었어. 병원에 있으니까 너무 심심하잖아. 그나저나 죽을 고비라니? 언니가 왜 죽어?”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저.. 이젠 좀 내려오지 않을래?”
“아니.. 나 저기 침대까지 안고 가줘. 히...”
“오면서 얘기 들었다. 정희는 좀 어떠니?”
금방까지도 밝게 웃던 혜원이 민혁의 몸에서 힘없이 떨어지며 두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아직... 의식이 없나봐... 언니 어떻게 정희 불쌍해서.. 으앙...”
결국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혜령이 그녀를 다독거렸다.
“괜찮을 거야..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지... 괜찮아.. 괜찮아..”
그녀의 다독임에도 불구하고 혜원의 울음은 한참을 지나서야 그쳤다.
“우리 자매가 민혁이에게 큰 빚을 졌네. 민혁이 아니었으면 나나 혜원이나 큰일 날 뻔했잖아.”
“그지.. 난 내 눈앞에서 뭐가 휙휙 하더니 그놈은 자빠져 있고 오빠가 내 앞에 떡 서있는 거야... 그때 오빠가 왜 이렇게 멋있던지.”
“난 그것보다 훨씬 멋진 모습을 봤는데. 그냥 막 날라 다니더라고. 아니 어떻게 그렇게 싸움을 잘해?”
“그냥 좀...”
“전에 얘기 했잖아..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반대편 지구.. 크크크”
혜원은 신이 난 듯 갑자기 주먹을 쭉 뻗었다.
“나.. 이참에 깨달았어.”
“뭘?”
“무술을 배울꺼야.”
“무술을?”
“응... 갑자기 언제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그때마다 오빠가 구해주러 오겠지만. 그래도 만일을 위해 배워야 겠어.”
“내가 도복입고 운동할 때 야만인이라고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누구더라?”
혜원이 갑자기 주변을 뒤적거렸다.
“뭐해?”
“응? 그 야만인이라고 했던 사람 찾고 있는데?”
“어이구...”
“헤...”
아픔이 있었고 아직도 잊히지 않는 아픔이 있지만 다시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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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철씨!”
“아니 형님 동철씨가 뭡니까? 동생한테. 그냥 동철아 하세요.”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뇨?”
민혁은 자신의 낙천적인 성격이 모두를 더 힘들게 만들게 됐다고 생각했다.
“사실, 혜령누나가 정한수에 대해서 강경하게 압박을 할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면 동철씨가 개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한수를 사주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의뢰하려면 뚜렷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수사 진행과정 중에 동철씨가 연류된 것과 실제 감금 행위를 한 동철씨를 빼고 수사가 진행될 수 없는 거지요.”
“아... 그렇군요. 결국은 지은 죄에 대해 죄값을 치러야 갰지요.”
동철은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알겠어요. 제가 자수를 하지요. 결자해지라고 제가 묶은 매듭이니 제가 풀어야 갰죠.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우리 아이들 말입니다. 그 애들은 관련이 없는 걸로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다 제가 잘못한 일이고 애들은 제 말만 따랐을 뿐입니다.”
“그건 제가 누나와 얘기를 나눠보죠.”
“그리고 정한수의 사주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는 제가 갖고 있습니다. 정한수가 제게 지시할 때 녹음해둔 녹취록이 있습니다. 그걸 증거로 정한수를 충분히 사주 혐위를 입증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
동철은 만년필 모양의 녹음기를 꺼내어 민혁에게 건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 민혁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정한수의 목소리와 동철의 목소리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것으로 정한수를 사주혐의로 잡기에는 충분한 자료가 되었다.
민혁은 만년필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동철과 헤어졌다.
잠시 후, 민혁은 혜령과 마주앉아 있었다.
“누나, 동철씨와 얘기 해봤어요. 자수하겠답니다. 대신 자신의 단독 범행으로 해 달래요. 부하들은 실제로 납치에는 관여하지 않았데요. 그리고 여기 동철씨가 정한수에게 납치를 사주 받을 때의 대화를 녹취한 녹음깁니다.”
민혁은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혜령에게 건넸다.
“그럼... 그 애들은 어떻게 할 거야?”
“알아보니까 학교에 다녀야할 아이들도 있더군요. 그래서 그 애들은 대안학교 같은 곳에 보낼 생각예요. 그리고 나머지는 제가 데리고 있으려고요.”
혜령은 정한수를 잡을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 동철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했다.
민혁은 다시 동철과 그의 부하들이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을 모이게 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얘기 해 주었다.
처음에는 동철이 자수한다는 말에 자신들도 자수하겠다고 아우성치다 동철의 설득에 잠잠해 졌다.
“동철씨, 애들 중에 학교에 가야할 애들을 가려주세요.”
민혁의 말에 동철은 10명의 아이들을 뽑아냈다.
“이 아이들은 제가 학교를 알아봐서 학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대안학교같은 곳이 있는데 직업교육을 받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아.. 병규씨와 대웅씨를 포함해 5명은 저와 함께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료를 보니까.. 음.. 어디 있더라...”
민혁은 서류 뭉치를 뒤적이다 마침내 원하는 자료를 찾았는지 서류를 뽑아들었다.
“최형규가 누구지?”
민혁이 이름을 호명하자 날렵한 몸집이 사내가 손을 들었다.
“제가 최형隻求?”
“그래. 자낸 내 비서로 나와 늘 함께 다니도록 하지. 대웅씨는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챙겨주세요. 병규씬 나와 일하는 친구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오늘 이후의 거취문제에 대해서 정리가 끝났다. 병규와 그 조원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생활하기로 했고 대웅과 학교로 갈 아이들은 동철이 마련한 거처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동철씨,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세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네. 우리 애들만 무사할 수 있다면 저야 괜찮습니다.”
민혁은 그들을 뒤로하고 형규와 함께 지은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혜원은 이미 퇴원 했지만 아직 지은이 회복 중이었다.
“지은이 누나! 나왔어...”
“어! 오빠 왔네. 우리 혜원이 지은이언니 간호하느라 혼났어.. 칭찬해줘..”
“그래.. 왔어? 별 일 없고..”
민혁은 혜원에게 대답대신 꿀밤주었다.
“응. 별 일 없지... 많이 좋아졌네?”
“응... 모두들 덕분이지...”
지은의 목소리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갈라지는 목소리... 그때의 상처로 인해 성대를 3/1이나 잘라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아마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아.. 정희씨도 이 병원에 있지? 어때?”
민혁의 물음에 혜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전하지 뭐... 그때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힘들었을 테니까..”
정희는 수술이 끝나 후로 이틀이 지나서야 깨어났다. 그러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대인 공포증과 기피증이 생기고 말까지 잃어버렸다. 그저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다 섬뜻 섬뜻 그날의 기억이 나는 지 진저리를 쳤다. 아무래도 그녀에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병실 분위기가 정희의 일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 맞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형규야 들어와라.”
딸깍 소리와 함께 스르르 병실 문이 열렸다. 쭈뼛대며 들어오는 사람이 인영이 보였다.
날렵한 몸집의 사내가 병실로 들어섰다. 지은은 낯이 익은 얼굴이 들어오자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생각이 났는지 소리쳤다.
“넌....”
“아..안녕하셨습니까?”
그는 당황했는지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젠 그에게서 지워져야 할 모습이었는데 당황하다보니 본능적으로 행동이 취해졌다.
“야야.. 이런거 하지 말랬잖아..”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민혁이 형규를 대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혜원이 벌떡 일어서서 요리조리 살피듯 형규를 뜯어보았다.
“인사해 혜원아. 형규야.. 그러고 보니 나이가 동갑인거 같은데..”
“아.. 반가워.. 난 박혜원이야.”
혜원이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바지춤에 손바닥을 쓱쓱 문질러 땀을 닦아내고 가볍게 혜원의 손을 잡았다.
“전... 최형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민혁이 지은이에게 형규를 소개하려고 지은을 돌아보았다. 뜻밖에도 지은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실 그날 별장에서 있었던 일을 지은은 아무에게도 얘기 하지 않았다. 혜령도 그 일에 대해선 물어도 대답을 회피하거나 불현 듯 화를 내기도 했다.
“... 누나.. 왜 그래?”
갑자기 형규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동철과 대결을 하던 날도 지은의 앞에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던 것이 형규였다.
형규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가끔 어깨가 들썩이는 걸로 봐서는 울고 있는 듯 했다. 한동안 병실 안은 침묵이 흘렀다.
먼저 정적을 깬 건 다름 아닌 지은이였다.
“네가 형규였구나... 날 씻겨 줬던... 그래.. 네가 형규야... 기억할 수 있어.”
그랬다. 식사를 갖다 주러 왔다가 지은을 욕실에서 씻겨 주던 날렵한 몸집의 사내가 바로 형규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그때는.... 용서해주십시오.”
“괜찮아.. 형규야... 이미 용서했어... 너희들 모두 이미 용서했어... 그러니까 울지 말고 일어나.”
그녀의 말에도 형규는 꼼짝 않고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민혁이 형규를 일으켜 세워주자 그제야 마지못해 일어났다.
다소 진정이 됐는지 형규의 떨림이 줄어들었다.
“잠깐만요.”
형규가 머뭇거리다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가 무언가를 들고 있는지 뒷짐을 지고 침대 옆에 섰다.
“이거.. 받아주세요.”
형규가 내민 것은 언제 준비했는지 붉은 색 장미와 안개꽃이 소복한 꽃다발이었다. 그는 지은을 바로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린 체 지은이 앞에 꽃다발을 내밀었다.
“이쁘구나. 나 주려고 가져 온 거니? 고마워.”
지은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향기를 맡았다. 향기로운 꽃내음으로 한결 그녀의 기분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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